# 122
회귀빨로 지존 헌터
- 6권 1화
Chapter 1
데몬은 어슬렁거리며 전장을 향했다.
'식후 딱 좋은 소화시키기 정도겠지.'
딱히 츄르가를 위기에 몰고 갔다고 했지만, 전혀 부담될 정도는 아니었다.
식후 소화를 시키는 운동.
편하게 몸을 움직이며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적당히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지금 당장 자신도 츄르가를 상대한다면 한 손으로 상대가 가능했다.
이유야 너무나 간단했다.
데몬과 츄르가의 전투력의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이었다.
데몬은 츄르가에게 타격을 입혔지만, 그의 목숨을 단번에 뺏어가지 못했으니 별 볼일 없는 녀석일 것이라 생각했다.
"가자아!"
움찔.
데몬 고유의 음성이 수하들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연스럽게 피어(Pear)가 담겨 있었다.
이동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 전투를 위해 움직이는 것.
하나의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목소리에 피어가 담겨 밖으로 표출됐다.
진중한 눈을 한 데몬은 깨끗하게 펼쳐진 전장을 바라봤다.
"저 녀석인가?"
가장 선봉에 서서 큰 도끼를 휘두르며 무력시위를 하는 인간.
특별하게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저년을 미끼로 삼아 함정을 파 놨을 것입니다."
츄르가는 데몬의 곁으로 다가와 자신이 당했던 상황을 그대로 설명했다.
"함정? 나를 두고 어떠한 계책이라도 펼쳐 보라고 해라."
"직접 나서시는 겁니까?"
주변의 수하들이 그에게 의중을 물었다.
그때였다.
"아닙니다. 저희를 내보내 주시면 반드시 승리를 가져오겠습니다."
일전의 설욕을 풀어내겠다며 츄르가는 의욕을 불태웠다.
데몬은 츄르가를 내려다봤다.
그의 눈빛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가능한가?"
츄르가의 의욕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의 실수는 스스로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보인 것이다.
"물론입니다."
당당하게 포부를 밝히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데몬은 고민했다.
'성장하기에 좋은 시기다.'
수하들이 언제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들이 성장을 하는 것은 자신이 성장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데몬은 10명의 수하들 눈에 띄는 녀석들을 3명 불러 세웠다.
"츄르가, 다이치, 로콘."
"네."
"옙!"
"말씀하십시오."
"셋이면 충분하겠지?"
본래 마음으로는 2명을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3명을 보내는 것이 안전할 것이란 판단이 내려졌다.
데몬으로서는 수하들이 자신의 자식과 같았다.
직접 성장시키고 키워 내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그들이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면 자신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실(失)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데몬에게 호명된 이들.
오크 츄르가.
리자드맨 다이치.
하피 로콘.
모두 데몬의 힘을 물려받은 상위급 몬스터였다.
그들이 은비를 향해 나아갔다.
* * *
은비는 저 멀리서 마왕군이 저벅저벅 걸어오는 것을 느꼈다.
"휘유, 이거 장난 아닌데?"
천천히 걸어오는 그들에게서 저절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압도당한 것이다.
'이제 어떡해?'
태욱을 향해 입모양으로 신호를 보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전혀 없었다.
"어떻게 하냐고!"
대뜸 소리를 내지르니, 태욱은 손을 높게 들어 하늘을 휘저었다.
'휘젓고 다니라는 이야기지?'
은비는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 번 날뛰어 볼까?'
그녀가 편하게 마음을 먹은 이유는 하나였다.
동료들에 대한 믿음.
그들이 자신의 등 뒤를 지켜 주고 있는데 걱정할 것이 없었다.
정작 위험한 상황이 된다면 언제든 자신을 위해 뛰어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은비는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가득 찬 상태에서 단번에 그 호흡을 뿜어내며 성대를 강하게 울렸다.
"야 이 거지 같은 새끼들아!"
조용한 대지에 그녀의 목소리의 울림이 쩌렁쩌렁 이어졌다.
새끼들아, 들아, 들아, 들아.
절벽에 부딪혀 돌아올 메아리가 없는데도 머릿속에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아따, 목청 좋고.'
스스로의 목청도 만족했다.
"이 새끼들아 안 오냐!"
그녀의 도발이 정확하게 먹혀들었는지, 저 멀리에서 한 마리의 오크가 엄청난 속도로 뛰어들었다.
콰가가가강.
바로 은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그 오크였다.
"위대한 전사와 목숨을 건 전투를 할 준비가 돼 있는가?"
오크는 그녀를 인정하고 목숨을 건 결전을 벌이기로 생각했다.
오크들끼리는 서로의 이름을 묻는 것이 그 전투의 시작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은비는 그의 발언이 너무나 생뚱맞았다.
"뭐라는 거야?"
한쪽 손을 들어 귀를 파는 시늉을 하며 그를 무시했다.
"가, 감히! 신성한 전투를!"
분노를 하며 울분을 터뜨리던 츄르가는 그녀에게 더 이상 여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크아앙!"
함성과 함께 커다란 대검이 그녀를 두 동강 내겠다는 기세로 쏘아졌다.
콰지지직.
도끼의 넓은 면으로 대검의 공격을 받아 내던 은비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이 파열음은?'
지금까지 오랜 시간 사용해 온 그녀의 양날 도끼.
드워프들이 손을 봐줬다고 하지만, 그 내구성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하필이면 지금?'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저 미쳐 날뛰는 오크를 막아 낼 거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우지끈.
도끼의 기둥을 타고 손끝에는 점점 그 힘을 다해 가는 도끼의 비명 소리가 전달됐다.
'이대로는 전투를 벌일 수 없어.'
은비는 손을 입에다 가져다 댔다.
"휘이이익!"
높은 고성의 음이 그녀의 입을 통해 빠져나왔다.
도주 신호.
혹은 도움을 요청하는 시그널이었다.
'뭐지?'
다급하게 신호를 보내는 그녀를 보곤 태욱은 당황했다.
'분명 그가 모습을 드러낼 텐데.'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지금 당장 데몬을 상대할 수 없었다.
최대한 스킬을 흉내 내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승산이 없었다.
'위급한 상황인 것 같은데, 하필이면 지금.'
태욱은 아랫입술을 핏물이 새어 나올 정도로 강하게 물었다.
입안에 씁쓸한 피 맛이 맴돌았다.
마음속으로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고 있지만, 그의 몸은 이미 그런 상태를 벗어났다.
"은비!"
재빠르게 그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결국 은비가 신호를 낸 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
잠깐의 시간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예상이 불가능한데 몸을 숨기고 그녀의 죽음을 바라볼 수는 없던 것이다.
"무기, 내 도끼가."
재빠르게 그녀의 곁으로 다가선 태욱과 금강철인은 츄르가의 앞을 막아섰다.
"위대한 전투를 방해하는 것이냐?"
츄르가에게는 오직 은비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앞을 가로막은 2명의 인간들이 상당히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 선수 교체라고 해야 하나?"
태욱은 이미 그녀가 전투를 벌일 수 없음을 확인했다.
길게 늘어선 도끼날에 그어진 선.
균열의 흔적이 눈으로 보일 정도로 선명하다면 저건 더 이상 무기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호승심이 있다면 이건 어떨지 모르겠네. 버서커!"
태욱은 실라카의 검을 들고 스킬을 외쳤다.
'이번에도 분명히 괜찮을 거야.'
스킬을 발동하자마자 시야는 차츰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호흡은 점점 가빠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어깨를 이용해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공기를 폐부 속으로 집어넣기 위해 몸의 행동이 스스로 변한 것이다.
방어를 등한시한 채, 상대방의 목숨을 노리는 어마 무시한 스킬.
만약 지금 태욱이 실라카의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면 보이는 것 전부를 파괴하려 달려들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누구보다 냉정하다.'
주변을 살펴봐도 몸의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전신에 힘이 감돌아 언제든 폭발시킬 수 있도록 준비가 된 것은 물론이었다.
"네놈, 어디서 그런 아류작을 내게 가져오느냐?"
츄르가는 버서커를 외치고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버서커라는 것은 온 정신을 놔 자신을 전투 기계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정신을 놓지 않는 이상 버서커 스킬의 절반밖에 사용을 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스스로가 했던 것은 정답이고 다른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착각하는 전형이었다.
"내가 진정한 버서커를 보여 주지, 버서커!"
츄르가의 어깨는 펌핑을 하듯 점점 부풀어 올랐다.
눈동자의 하얗던 공막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공막 안에 있는 실핏줄들이 넘치는 힘을 버텨 내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크아아아앙!"
완벽한 전투 모드가 된 츄르가는 단번에 태욱에게 달려들었다.
콰직.
콰드드득.
커다란 대검을 태욱은 실라카의 검으로 정면으로 받아 냈다.
'제발, 버텨 줘.'
겉으로 보기에도 내구성은 실라카의 검이 더 약해 보였다.
하지만, 태욱이 믿는 구석은 따로 있었다.
바로 오토리페어 기능.
자동으로 일정한 타격은 스스로 회복이 가능했다.
은비도 저 대검을 정면으로 받아 내면서 양날 도끼에 쌓였던 피로도가 한 번에 폭발하며 도끼가 상처를 입은 것이다.
태욱은 츄르가의 대검에 정면으로 부딪혔고 그 타격을 모두 막아 내지는 못했다.
"크윽."
절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무기의 내구도로는 상대의 공격을 버틸 수는 있어도 그에 따른 반탄력이 태욱의 어깨를 직통한 것이다.
'무슨 힘이 이렇게나 강해.'
개인의 힘을 120% 이상 올려 주는 것이 버서커 스킬.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개인 차가 크게 벌어진 것이다.
똑같이 120%의 힘을 사용하더라도 태욱와 츄르가의 힘의 차이가 만들어 낸 엄청난 결과였다.
"후우,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다시 츄르가와 거리를 만들었다.
'정면으로 부딪혀서는 나한테 승산은 없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그것을 하자.'
태욱은 일시적으로 사용했던 버서커 스킬을 해제했다.
힘을 주 종목으로 사용하는 녀석이라면 그 힘을 활용하지 못하는 곳으로 끌어들이면 그만이었다.
태욱은 재빠르게 마법을 펼쳤다.
-환영문.
한때 태욱과 영리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었던 엄청난 결계.
태욱은 그것을 펼쳐 냈다.
'정확한 이지가 없다면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다.'
아무리 힘으로 그 벽을 두드린다고 해서 부서질 일은 없었다.
그가 두드리는 벽이 진짜 벽인지 환영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할 테니까.
일단 츄르가를 묶어 뒀다고 생각한 태욱은 전열을 정리하기 위해 본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움직였다.
쨍그랑.
그때였다.
절대로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그의 주문이 단박에 박살이 났다.
'뭐, 뭐지?'
있을 수 없는 일에 허망한 표정을 지은 태욱은 그 원인을 금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공중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하피 한 마리였다.
"역시 동료가 있었던 것인가?"
그들도 생각이 있다면 일전에 패배한 오크를 혼자서 다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딘가 그의 동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에 있었으니 쉽게 관측이 되지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