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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빨로 지존 헌터-120화 (120/146)

# 120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24화

채채채챙.

도끼가 검날을 미끄러져 나가며 거친 쇳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오크도 그대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취익."

강력한 코어 근육으로 어떻게든 바닥을 지지하고 있었다.

등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커다란 근육은 은비의 타격을 상쇄시키고 그 힘을 되돌려줄 정도로 탄탄했다.

"크압!"

대검과 도끼는 연속해서 교차했다.

금방 전투의 방법을 몸으로 터득하는 오크였다.

츄르가는 바닥이 흔들리는 가운데 버서커 모드가 풀려 버렸다.

일순간에 분노는 모두 사그라지고 제정신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런 경험은 몇 번 없었다.

자신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버서커 모드를 활성화시키고 정신이 되돌아왔을 때 주위에는 자신뿐이었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오직 살육에만 미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분노를 이겨 낼 정도로 상대방의 저항이 강력하다면?

제정신이 돌아오고 상대와 자신이 대면하는 상황이 됐다.

"인간, 강력하군."

"이 개자식아! 너 따위에게 칭찬받으려고 지금까지 살아온 게 아니야!"

도리어 자신의 피 냄새와 오크의 피 냄새가 뒤섞이자 은비가 흥분해 버렸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태욱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잠시 진정해."

여전히 오크를 바라보는 시선은 돌리지 않았으나, 은비에게 잘 들릴 수 있는 정도의 목소리 크기로 이야기했다.

금방이라도 앞으로 뛰어나갈 것 같던 은비는 태욱의 목소리를 듣고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제 됐어."

오크는 천천히 천천히 뒤로 걸음을 물리고 있었다.

이곳에 계속 있어 봤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선 것이다.

"인간들, 그럼 나중에 다시 보게나."

결국 후퇴를 선택한 츄르가였다.

오크와 몬스터 부대의 퇴각은 지금까지 있었던 전투에서의 첫 승리를 이끌었다.

오직 몬스터들에게는 후퇴란 없었다.

생명을 다할 때까지 밀어만 붙이던 그들의 후퇴를 만들어 내니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승리야! 진짜 승리라고!"

그저 몬스터를 모두 쓰러뜨리는 것 말고는 제대로 된 승리를 가져 보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장쯔진은 그들의 곁으로 다가와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짝.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완벽한 승리가 아닙니다."

태욱은 아직 만족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헌터들은 제대로 된 첫 승리에 아주 기뻐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직접 뒤로 물러섰습니다. 이걸 보고 승리라고 하지 않으면 어떤 것이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적어도 그들은 내일 더 강력한 몬스터를 이끌고 돌아올 것입니다."

태욱은 장담하듯 이야기했지만, 이미 승리의 도취감에 취해 있는 그는 태욱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 * *

만리장성 전선에서 승전보를 올렸다는 소식은 금방 중국 정부에 들어갔다.

"정말 승리를 했다는 말인가?"

"네,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승리를 했다는 소식을 몇 번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 진실을 파헤쳐 보니 별것 아니었다.

가까스로 막아 낸 것이지 몬스터의 후퇴를 만들어 내지는 않은 것이었다.

"이번에는 틀림없겠지?"

"맞습니다. 몬스터가 헌터를 상대하지 못하고 뒤로 후퇴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쓰윽.

서류를 주석의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 대상이 누구인가?"

차락.

주석은 서류철을 펴 읽어 내려가며 물었다.

"장쯔진의 말을 전달하자면 한국에서 온 헌터들이랍니다."

"뭐? 한국의 헌터?"

당연하게 중국의 헌터가 첫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했던 주석이었다.

한국의 도움을 요청한 것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한 곳을 막고 있으면 당연하게 충분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란 주석의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다.

하지만, 하나는 건져 올린 것이 있었다.

한국의 헌터들이 지금 중국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마 전 한국으로 날아가 치욕적인 일을 행하고 왔었다.

스스로 고개를 숙여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들어간 천문학적인 금액.

'내가 들이붓은 돈이 얼만데.'

이번에 한국 헌터들을 데려오면서 얼마나 많은 돈을 소모했는지 벌써부터 경제적 타격이 심각했다.

'녀석들을 중국에 들일 수 있으면?'

주석의 표정은 종이 뒤집듯 뒤바뀌었다.

치욕스러웠던 표정에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 헌터를 우리 대중국에서 사로잡을 방법은 없는가?"

주석이 말하는 그는 바로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끈 헌터를 말하는 것이다.

"일단 추진은 해 보겠습니다만, 헌터의 소속이 바로 한성이라는 것이 걸림돌입니다."

"한성?"

"예."

한성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다시 표정이 어둡게 변하는 주석이었다.

한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펼치고 있었다.

몬스터에서 추출한 코어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물체를 만들고 있었다.

합성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처음 행한 것도 한성이었다.

아무리 중국에서 그 기술을 빼내 오려고 해도 항상 한성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그럼 한성을 우리 발아래로 데려오면 되겠구먼."

주석의 눈에는 욕심이 가득 찼다.

아무리 세계적인 활동을 하더라도 지금까지 많은 소비의 지분을 차지한 것이 중국과 미국이었다.

중국 본토에 회사를 만들어 주고 그들을 통째로 삼키면 아주 먹음직스러울 것이란 생각이 든 주석이었다.

"하지만, 한국과 지금 불미스러운 일로 이번 회담에서 상당히 많은 것을 내어줬습니다. 그사이에 헌터에 관한 것도 포함돼 있습니다."

"알 게 무엇인가? 우리는 몰랐다고 하고 뒤에서 공작을 벌였다고 말하면 그만인 것을. 크하하하하하."

탐욕스러운 웃음이 주석실을 가득 채웠다.

"그럼 주석님의 말씀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의 어리석은 짓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 * *

태욱은 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신의 구역을 만들었다.

'스킬을 확인해 보면 주위에 누군가가 있는 것은 상당히 위험해.'

이미 오크 츄르가의 전투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본 태욱이었다.

그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앞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나도 저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큰 걱정이 앞섰다.

만약 자신도 분노에 휩싸여 자아를 잃게 된다면?

시간이 지나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됐을 것이다.

'버서커.'

너무나 매혹적인 스킬이었다.

'만약 이것을 내 의도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상처와 같이 생겨나는 통증 때문이었다.

물론 통증이 모든 것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었다.

통증이 생김으로써 뇌 속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그것을 통해 일정한 각성 효과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지속된 전투를 하다 보면 아드레날린으로도 한계가 명확하게 생긴다.

고통을 인식하면서부터는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지고 정확한 타이밍에 원하는 공격을 하기도 힘들어졌다.

태욱은 주위를 살폈다.

이곳에 아무도 오지 못하게 단단히 못을 박았으니, 여기로 찾아올 헌터들은 없었다.

'몬스터라도 찾아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어디로 끌려갈지 모른다.'

괜히 다른 몬스터를 살육하고 싶은 마음에 그들을 쫓다가 이곳을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태욱은 몬스터를 상대하려는 마음을 접었다.

'일단 내 상태를 확인한다.'

"버서커!"

태욱의 눈이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압, 뭐지?'

시야가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무엇이든 파괴하고 싶은 마음속 충동이 끌어 올랐다.

'이게 버서커 상태인가?'

오직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집념만 머릿속에 가득 찰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 달리, 자신은 온전히 제정신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터질 것 같았던 마음의 살의는 조금씩 사그라지고 머릿속은 깨끗해졌다.

그저 시야만 붉게 변했을 뿐이었다.

'서, 설마?'

태욱은 자신이 쥐고 있는 검을 내려다봤다.

-바람의 실라카의 검.

검의 끝을 봤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실라카의 무기.

착용자의 몸놀림을 가볍게 만들어 주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패닉에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

검의 한쪽이 파괴돼 지금은 한 자루밖에 남지 않았다.

명경지수(明鏡止水).

흐려져 있는 정신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

샤프니스(Sharpness).

잘 관리된 검의 날은 깃털이 내려앉아도 썰려 나간다.

오토 리페어(Auto Repair).

자동으로 검이 수리된다.

태욱은 자신이 버서커 상태에서도 정확한 자아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다.

슬며시 검을 쥐고 있는 힘을 풀어내려고 했다.

그러자, 정신이 어지러워지고 눈앞에 있는 것을 인식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역시나군.'

검을 떨어뜨리지 않고 다시 강하게 쥐었다.

꽈악.

그러자 어지럽게 펼쳐지던 눈앞의 세상은 다시 깔끔하게 변했다.

다만 붉게 변한 세상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실라카, 당신은 어떤 이였습니까?'

태욱은 실라카의 검 덕분에 정신을 잃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자 실라카라는 엘프가 너무나 대단하게 보였다.

'버서커 해제.'

시야는 금세 평소와 다름없이 돌아왔고 몸을 가득 채우던 힘도 모래알 빠져나가듯 사라졌다.

'마음대로 사용이 가능하다?'

그에게 있어서 이제 버서커 모드는 장점만 남겨 둔 채 단점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다만 이 검을 쥐고 있을 때 한정이라는 것이지만.'

태욱은 가만히 자신이 쥐고 있는 검을 내려다봤다.

* * *

다급하게 도망쳐 나온 츄르가는 곧바로 데몬이 있는 막사를 향해 움직였다.

아직 상처에서는 피가 마르지 않고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를 막아설 수는 없었다.

착.

데몬의 앞으로 다가선 츄르가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말하라."

데몬은 츄르가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뚝뚝 피가 떨어지는 모습이 꽤나 괴랄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이런 것은 데몬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상처는 영광이었다.

전투를 통해 상처를 입더라도 마왕군의 힘을 내보일 수 있다면 그것이 너무나 큰 성은이었다.

"이번에 눈에 띄는 자가 있어 전투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만, 다녀온 것이군."

쿵.

데몬의 대답에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고개를 조아리는 츄르가였다.

"죄송합니다. 마왕군의 위세를 바닥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뭐라?"

"전투에서 확실한 승리를 가지고 오지 못했으며 그들에게 등을 보였습니다."

"크음."

데몬은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마왕군에 있어서 등을 보이는 짓은 죽어 마땅한 일이었다.

힘이 부족하다면 그 자리에서 죽음으로써 의지를 표출해야 되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온 것은 마왕군의 진보에 방해가 될 인물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뭐? 우리의 진군을 방해하는 인간?"

마왕은 그 이야기에 의미를 모를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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