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23화
은비는 자신이 아무리 날뛰어도 그림자도 드러내지 않는 녀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디서 눈을 부라려!"
그녀의 강한 도끼질은 대지를 흔들릴 정도로 큰 충격을 줬다.
한 번의 휘두름이면 몬스터들이 넉백(Knock-Back)이라도 당하는 듯 뒤로 밀려났다.
풍압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부관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은비의 전투력이 측정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눈에 띄는 헌터들은 그 전투력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고작 조무래기들 사이에서 날뛰는 것일 뿐이지, 능력이 훤히 보이는 부관들의 입장에서는 망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은비는 전혀 달랐다.
그녀의 움직임은 예측을 벗어났고 흩뿌려진 몬스터 군단으로는 은비의 한계치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 강한 몬스터를 밀어 넣고 그녀의 한계를 확인해 보려고 해도 여실히 그 계획을 묵살시키는 덕분에 쉽게 부관들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은비는 고개를 돌려 태욱을 바라봤다.
뻥끗뻥끗하는 입모양을 천천히 읽었다.
'살살 좀 해?'
의미를 알아채자 은비는 광분했다.
"X발 목숨을 내놓고 싸우고 있는데? 야 이 개자식아!"
태욱의 말이 그녀의 시발점이 됐는지, 있는 힘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누구는 전장에서 죽어라 싸우고 있는데 뒤에서 구경을 하며 살살하라니?
그게 말이 되는 것인가?
까딱 잘못하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가는 것은 기본이었다.
전장에 몬스터들이 쓰러져 나가기 시작하자, 기운이 넘실거리는 녀석이 하나 보였다.
다른 오크들의 비해 덩치가 1.5배인 녀석이 위험한 기운을 스멀스멀 피워 냈다.
'저 녀석인가?'
은비는 단번에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10부관 중 하나가 쫓아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준보스 등장인가?"
저기 멀리 지휘소에서 늠름한 기세를 뽐내고 있는 녀석이 보스 몬스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은비는 팔을 휭휭 휘두르며 그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덤벼봐, 이 자식아!"
그녀의 기세 넘치는 말에 오크가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까가가가강.
도끼날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진동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네놈의 목숨은 여러 개인가?"
지금까지 인간과 대화를 하는 오크는 없었다.
콧바람을 세게 내뱉으며 흥분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오크는 봤어도 이렇게 담담하게 말을 내뱉는 오크는 처음이었다.
"오? 사람 말을 할 줄 알아?"
"너희만 이지가 있는 줄 아느냐?"
몬스터와 대화를 하는 것이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인간이 이룩한 것을 미개한 그들이 자연스럽게 행한다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꽤나 싸울 줄 아는 것 같은데? 과연 날 이길 수 있을까?"
"그건 해 보지 않고 모르지."
오크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비에게 달려들었다.
자신보다 커다란 대검을 자유롭게 휘두르는 모습이 은비와 비슷했다.
대검과 양날도끼.
서로의 무기를 박살 내듯 강한 일격을 주고받았다.
콰카캉.
마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절로 모든 헌터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뭐야? 저 녀석과 합을 겨루고 있어."
지금까지 저 일격을 버텨 낸 헌터들은 없었다.
그저 일격에 사라지거나 목숨을 내놓을 뿐이었다.
분쇄되지 않고 유일하게 버틴 이는 은비뿐이었다.
"생각보다 강력한데?"
"전투력이 출중하군."
오크는 당연하게 자신의 일격을 버텨 내지 못할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들은 커다란 무기를 제 수족처럼 사용하지 못했다.
무기가 크면 클수록 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것에 대한 반발력을 감당하지 못했다.
오크는 당연하게 눈앞에 있는 인간이 도끼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그녀는 정확하게 타점을 비켜 내며 자신의 대검의 충격을 분산시켰다.
실로 놀라운 전투 센스였다.
오랜 시간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쉽게 해낼 수 없었다.
'생각보다 강력해.'
은비가 1합을 주고받으며 느낀 감정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실하게 그의 대검 주위로 강력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힘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겠다는 의지가 강력하게 보였다.
'하지만, 나도 힘만큼은 뒤지지 않는다고.'
은비는 자신의 근육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하하합!"
기합과 함께 천천히 은비 쪽으로 기울던 두 가지 무기의 가운데 접점이 점점 오크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크아아아!"
단발마와 같은 외침을 내뱉으며 마지막 힘을 폭발시켰다.
오크는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로 은비의 공격을 피해 냈다.
'뭐야? 힘을 아껴 둔 것이었어?'
충분히 분석을 하고 달려들었던 오크 츄르가였다.
처음 은비가 나타났을 때 상당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을 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그녀를 분석했을 때, 자신 혼자서 너끈히 이길 수 있는 상대임을 확인하고 이렇게 달려들었다.
처음의 1합의 결과는 당연하게 츄르가가 생각한 정도의 힘을 보였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자신이 시간을 두고 분석한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만족스러운 전투력을 보여 주니 호승심이 상승했다.
'이것도 버티나 보자.'
츄르가는 연속해서 공격을 이어 나갔고 마침내 서로의 무기가 공중에 자리 잡았다.
힘 싸움.
약간의 균형 이동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기세 싸움이었다.
암컷으로 보이는 인간이 이렇게까지 싸운 것은 놀랄 정도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 정도까지군.'
마지막 마무리를 지으려고 힘을 쓰는 순간 암컷이 함성을 터뜨렸다.
목소리와 힘이 비례라도 하는지, 그 힘은 점점 강력해졌다.
'으어어어, 버티기 힘들다.'
한 발자국 뒤로 내어 줘 버렸다.
"취익?"
저도 모르게 콧바람이 강력하게 나왔다.
자신보다 약하다고 판단한 녀석의 힘이 상상을 초월했고 앞으로 전진밖에 할 줄 모르는 본인에게 뒤로 물러서게 했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해 버린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야겠어.'
용서하지 못한다는 눈빛을 쏘아 보낸 츄르가는 자신의 대검을 높이 들었다.
"분노의 힘이여, 그것을 표출하라! 버서커!"
-버서커(Berserker)
분노를 기본 바탕으로 자신의 힘을 증폭시킨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힘을 모두 공격력으로 전환시킨다.
방어를 등한시하고 단번에 강력한 힘을 터뜨린다.
피해를 입어도 고통에 둔감해지며 120%의 힘을 폭발시키는 스킬.
츄르가가 스킬을 터뜨리자, 태욱은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스킬을 발휘했다.
"흉내 내기!"
하얀 빛이 공중에 머물더니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태욱은 오크가 펼쳐 낸 스킬을 확인하더니 은비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은비! 최대한 시간을 벌어!"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최대였다.
그녀는 지금 목전에 스킬을 발동한 오크를 두고 있었다.
힘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뭐? 이 정도 공......."
말을 하며 1합을 한 은비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워졌다.
'뭐지? 힘이 갑자기 강력해졌어.'
방금 전까지 힘겨루기에서 우위를 점했던 은비였다.
그 힘으로 상대방을 확인했고 제압도 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렸지만, 지금 터져 나오는 힘을 이해할 수 없었다.
"크아아아아아!"
돌격을 하며 함성을 내지르는 오크의 돌진을 막아 내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미 도끼를 휘두르며 만들어 낸 상처에서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크는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뭔가 이상해.'
분명 상처를 입으면 그에 따른 고통에 의해 움직임이 둔화돼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 오크는 전혀 그럴 기세가 없었다.
오히려 공격 속도와 힘이 더욱 넘쳐나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은 시간을 번다.'
은비는 공격을 버렸다.
그녀의 스타일을 완전히 버린 것이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생각하는 그녀가 손속을 망설일 정도로 오크의 공격은 빠르고 정확했다.
'그리고 저 붉은 눈.'
갑자기 하늘을 보고 함성을 내지르고 난 뒤에 녀석의 눈동자는 붉게 변했다.
태욱의 조언.
시간을 최대한 벌라고 하는 것도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순간 강화 스킬인가?'
은비가 판단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 부족했다.
연계로 들어오는 오크의 공격이 너무나 거셌기 때문이었다.
"지원! 영리! 은비를 보조해!"
태욱은 곁에 숨어 있던 동료들을 모두 소집했다.
시간을 벌기도 전에 은비가 그대로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풍겼기 때문이었다.
"은비, 어떻게든 버텨!"
"간다!"
"얘들아 도와줘!"
바로 전투 모드로 돌입한 지원.
소환수를 보내는 영리.
두 사람은 재빨리 은비의 서포터를 자처하고 나섰다.
언제까지나 은비 혼자서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오크의 공격을 막아 내기 힘들어 보였다.
그녀는 선천적인 공격형이지, 수비형이 아니었다.
"X, X발! 이 녀석 순식간에 뒤바뀌었어."
결국 공격을 모두 막아 내지 못한 은비는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양팔에는 생채기가 연연했고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붉은 피가 힘겨워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현무! 방어 모드!"
"게틀링 샷건!"
영리는 은비의 몸을 감싸는 현무의 방어막을 펼쳤고 지원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는 오크에게 게틀링 건을 난사했다.
타타타타타탕.
쉬지 않고 불을 뿜어내는 지원의 공격에 오크는 잠시 제자리에 멈춰 섰다.
"취익 취익."
거친 콧김을 뿜어내는 오크에게 더 이상 자아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분노에 사로잡힌 한 마리의 오크, 몬스터일 뿐이었다.
"크아아아앙!"
잠시의 소강 시간 동안 호흡을 가다듬은 은비가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이 자식아! 어디 한 번 해 보자!"
은비의 호승심이 발동한 것이다.
방어 태세로 돌아섰던 자신은 버리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공격이 그녀의 주특기였다.
방어는 모두 지원과 영리에게 맡겨 둔 채로 그녀는 자신이 뽑아낼 수 있는 힘을 터뜨렸다.
콰가가가강.
높게 쳐들었던 도끼가 강하게 바닥을 내리찍었다.
"엑스 바이브레이터!"
주변의 대지를 강하게 흔드는 스킬.
은비는 이 스킬이 적에게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중심 흔들기.'
생각보다 근접 전투에서는 균형 감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경험해 보지 못한 곳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유리해.
은비는 자신이 싸우기 좋은 공간으로 오크를 끌어들인 것이다.
똥개라도 자신의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가듯이 지면이 흔들리는 상황에서의 전투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흔들흔들.
바닥이 요동치듯 흔들리고 오크는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지금이다!"
은비는 단숨에 달려들어 오크와 검과 도끼를 교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