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18화
그렇다.
원해서 하는 희생과 강제로 당하는 희생은 느낌부터가 다르다.
헌터들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양보하고 희생해야 된다는 기본은 없었다.
자신이 생명을 걸고 일해서 번 돈이 시간이 지날수록 적은 돈이 된다면?
누가 그것을 좋아하겠는가?
"그쯤 하시죠."
태욱이 흥분하려는 헌터를 말렸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표정의 변화가 심했다.
"오늘은 좋은 날 아닙니까? 이렇게 맛있는 식사와 좋은 술이 있는데 화를 내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중간에서 중재를 하는 태욱이었다.
'사실 이러한 것에 싸울 이유가 전혀 없다.'
그의 생각에는 이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당장 몬스터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돈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생존하고자 노력을 해야지, 수중에 있는 금전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짤막했던 식사 시간을 끝낸 이후, 헌터들과 대통령은 기자들이 머물고 있는 밖으로 나섰다.
"자자, 기자님들도 같이 한 잔 하시죠."
이제는 공식적으로 기자들도 헌터들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식사 시간은 헌터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한 조치였고, 이후에 이어지는 맥주 타임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개최한 행사였기 때문이었다.
기자들에게는 헌터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 헌터들에게는 자신의 의도가 언론의 힘을 빌려 내비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 *
"우리 미국은 전방위적인 몬스터 코어 수입을 금하고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인민들은 몬스터 코어 생산량의 감소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운동을 시작해야 된다."
동시의 두 나라의 기습 회견이었다.
한국과 전혀 이야기되지 않은 말을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한국의 헌터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과 중국은 전방위적인 압박을 시작했다.
수출을 비롯한 모든 무역에 전방위적인 압박이었다.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나가는 나라.
경제 1위 국가.
그 나라를 뒤흔들 수 있는 방법이라면 가릴 필요가 없었다.
중국과 미국은 서로 협력 관계로 한국이 무너지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한국에 대한 압박이 시작됐다.
한국은 몬스터 코어가 주 시장이었다.
땅 덩어리는 커다랗지 않더라도, 몬스터를 잡아내는 헌터들의 질이 높았다.
그러니 당연하게 몬스터 코어가 더욱 많이 생산되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소비의 한계였다.
세계적으로 수출을 하고 필요한 에너지원을 모두 한국에서 조달한다면 국내 소비를 증진시킬 필요가 없었다.
생산량에 비해 소비량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은 수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 만한 몬스터 코어 생산량이 되지 않았다.
작은 약소국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생산량을 가지고 충분한 소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정작용이 일어나지만, 한국은 엄청난 생산량을 가지고 있지만 소비량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나 중국은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하고 있으며 소비량 또한 엄청났다.
수출의 주력이었던 중국과 미국이 단번에 몬스터 코어 수입을 중단하자, 한국은 발등에 불이 붙어 버린 것이다.
"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장 판로가 막혔습니다."
코어 수출을 업으로 살고 있는 많은 기업이 우수수 도산한 것은 기본이었다.
도산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라의 경제가 휘청하고 흔들릴 정도로 큰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아무런 사전 고지 없이, 이렇게 발표를 한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외교부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 대사관 라인에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겁니까?"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미국과 중국이 단번에 돌아선 것에 대해 사태 파악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식도, 이유도 전달받지 못한 지금이 너무 화가 난 것이다.
"저, 그런데 이상점을 발견하기는 했습니다."
"이상점이요?"
"헌터들이 중국과 미국으로 갔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헌터들이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헌터들의 이탈이었다.
'이런, 우리나라의 사태를 파악한 것인가?'
현재 국회의원들과 대통령의 힘겨루기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러던 와중 헌터들에게 은밀하게 접근해 그들의 이탈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이민 신청 서류에 헌터들이 포함돼 있습니까?"
"하급 헌터들은 대다수 중국으로 넘어갔고, 상위에 김민찬이라는 헌터는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쾅!
"젠장!"
국회의원들과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제대로 국정을 살피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헌터들과의 만찬도 그들을 위해 준비했는데.'
자신이 그들을 공격하겠다는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했던 만찬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져 버렸다.
오히려 그게 발단이 돼 튕겨져 나간 헌터들이 생겨난 것이다.
헌터들이 떠난 것은 대통령에게만 피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방조했던 헌터 조합, 국회의원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헌터들이 정말 떠났다는 말입니까?"
국회의원은 헌터 조합 회장에게 투정부리듯 이야기했다.
"솔직히 돈, 명예를 모두 떠안겨 준다는데, 끌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실리를 찾아 항상 꼬리 자르기를 하는 국회의원들이었다.
자신들도 그렇게 이곳저곳 붙어 다니는데, 헌터들이 행동하는 것을 욕할 수는 없었다.
"크음, 저희는 대의를 위해서."
정곡을 찔린 국회의원은 헛기침을 하며 스스로를 변명하기 바빴다.
'너희가 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고 헌터가 이익을 쫓아가면 돈에 눈이 먼 것이냐? 쯧쯧.'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한참이나 내뱉고 있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도 이제 슬슬 발을 빼야 되나?'
회장은 헌터들의 이탈을 조금씩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탐욕스러운 제안에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가 휘청거릴 만큼 힘들어졌는데, 자신이 살길은 스스로 마련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내 살길을 찾아야겠어.'
투정만 내뱉는 국회의원은 이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전형이었다.
* * *
중국의 랜드 마크.
만리장성.
기다랗게 펼쳐져 있는 성벽은 톡톡하게 그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바로 몬스터의 습격을 차단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새였다.
뿌우. 뿌우.
뿔 나팔 소리가 길게 퍼져 나왔다.
정기적으로 위험 요소가 없을 때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였다.
1번은 아무 이상 없음.
2번은 특이 사항 없음.
한 번과 두 번은 시시때때로 울리기 때문에 정상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관리자의 안일한 생각과 동시에 한 번 더 뿔피리 소리가 흘러나왔다.
뿌우.
3번. 이것은 몬스터의 출현을 확인했다는 신호였다.
'뭐야, 몬스터가 튀어나온 거야? 일단은 보고부터 해야겠군.'
몬스터가 나왔다고 단번에 성벽을 넘어 들어오지는 않는다.
멀리서 관측이 됐을 때, 보고를 시작한다.
'헌터 부대에 연락하면 그만이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수화기를 드는 순간 또다시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뿌우.
지금까지 총 4번.
근접해 몬스터가 출현했다는 신호였다.
'뭐야? 초동 조치가 필요하다는 건가?'
그의 안일한 생각은 멈출 줄을 몰랐다.
뿌우.
다섯 번의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위기감이 코앞으로 닥쳤다.
'뭐야? 몬스터가 넘어 들어오고 있다고?'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지 보고바람.
"몬스터, 몬스터가 출현했습니다. 지금 만리장성을 넘어 습격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실려 있었다.
"뿔피리 소리 5회 이상. 긴급 상황입니다."
-딸칵.
반대편에서는 목소리도 내지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5분 이내.
초동 조치 부대가 이곳에 도착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만리장성을 넘어 들어오는 몬스터들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은 없었다.
초동 조치 부대는 3번의 뿔피리, 혹은 4번의 상황까지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말 그대로 간단한 상황과 빠른 대처가 필요할 때 출동을 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5번의 소리가 울렸다면?
그것은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던져진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수라장이 돼 버릴 것 같은 전선의 끝에서 그는 도망치기 위해 밖으로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지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살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밖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생존 욕구에 따른 본능이었다.
위험한 상황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정도로 투철한 직업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몬스터로부터 시민을 지키겠다는 사명감도 역시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밖으로 나선 그의 표정은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휘릭.
착!
"이, 이런."
하지만 차마 욕설도 내뱉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오는 채찍에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채찍의 주인은 바로 데몬이었다.
날벌레 같은 인간이 빼꼼하고 머리를 내밀기에 자신도 모르게 후려친 것이다.
눈앞에 날아다니는 날 파리를 보고 본능처럼 잡아 버리는 생리와 같은 것이다.
데몬에게 있어서 경비대들은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였다.
손짓 한 번에 우수수 떨어지는 인간들이었다.
"자, 가자!"
데몬을 따라 마왕군이 만리장성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앞을 막아서는 것은 그들에게 그저 걸림돌이었다.
발치에 치이면 차이고, 앞을 막아서면 부술 뿐이었다.
3000년이 족히 넘게 위풍당당한 기세를 펼치던 만리장성의 최후는 아주 초라했다.
몬스터들에게 짓밟히고 부서지는 데 단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 * *
웨에에엥.
-치익, 긴급 출동. 긴급 출동.
-현재, 제3 관측소 몬스터 출현. 긴급 출동조 출동 바람.
막사 내부에 설치돼 있는 스피커에서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긴급 출동조 비상, 비상!"
"긴급 출동조 비상, 비상!"
"긴급 출동조 비상, 비상!"
헌터들로 편성돼 있는 중국의 한 부대.
그들은 몬스터의 위협에서 가장 빨리 현장에 도착하기 위해 항상 훈련에 임했다.
사이렌이 울리면 입으로 비상 상황을 외치며 빠르게 관측소에 도착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약한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임무였다.
이들이 생성된 이유는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