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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빨로 지존 헌터-110화 (110/146)

# 110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14화

감정이 추슬러질 때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아무도 독촉을 하지 않고 그저 지원이 슬픔에서 깨어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흐끅. 흐끅."

마치 수도꼭지같이 끊임없이 흐르던 눈물은 이제 조금씩 줄어들었다.

목 놓아 외치던 슬픔의 표현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어깨를 들썩이던 지원의 상태가 차분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슬픔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희망이 있어."

그녀는 그 와중에서 희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시체들 중 스틸을 발견해 내지 못한 것이었다.

적어도 스틸이 이곳에 없다는 것.

그것이 지금 남겨진 지원의 마지막 희망이 됐다.

그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

이것이 지원이 절망하지 않은 가장 큰 요인이었다.

"아직 여기여기가 빛나고 있어."

그녀의 손목에 있는 수신기.

모두를 이끈 수신기의 불빛이 희미하지만 아직 남아 있었다.

거리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

"빨리, 빨리 그를 찾아야 돼."

지원은 뭐에 홀린 듯이 자꾸 되뇌었다.

"그래, 지원아 빨리 스틸을 찾아보자."

억지로 몸을 일으켰지만, 곧 어지럼증을 올라왔는지 휘청거렸다.

"어어, 위험해."

곁에 있던 은비가 재빠르게 흔들리는 지원의 몸을 추슬렀다.

"괜찮아, 나 혼자 갈 수 있어."

지원의 의지는 확고했다.

'찾을 때까지 이렇게 주저앉을 수만은 없어.'

스틸을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쓰러지지 않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번뜩이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주섬주섬 자신의 가방을 찾더니, 드워프들의 시체를 덮어 줄 수 있는 커다란 천을 찾았다.

천을 넓게 편 지원은 한 곳에 모인 드워프의 사체를 한 번에 덮었다.

"부디, 다음 생에는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을 감고 간결하게 빌어 보는 지원이었다.

"이제 괜찮아, 출발하자."

애써 밝게 이야기하는 지원의 모습에 태욱은 마음이 아팠다.

'힘들겠어.'

하지만 밖으로 절대 표현하지 않았다.

억지로 힘을 내려는 그녀에게 괜히 상실감을 안겨 주는 것보다 침묵으로 그녀를 지지하는 것이 더욱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드워프의 사체를 뒤로한 채,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커다란 철문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여기인가?"

안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담금질 소리가 그들을 반겼다.

끼이이이익.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확실하게 담금질 소리가 들려왔다.

깡깡.

지원은 반사적으로 스틸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스틸! 스틸!"

한눈에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어....... 어......."

혼이 빠져나간 스틸은 어버버거리며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스틸과 함께 남아 있던 텅스텐이 지원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마을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던 인간.

그들이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여길?"

텅스텐은 인간들이 여길 어떻게 찾아왔는지 의문을 가졌지만, 지원의 손목에 있는 수신기를 보고 단박에 눈치를 챘다.

'우리를 찾아서 이곳까지 온 거구나.'

어쩌다 마주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이곳은 마왕의 무구를 만들어 내는 비밀 장소.

밖에서는 이곳에서 무기를 만드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일 텐데, 무턱대고 들어올 이유도 없었다.

"다, 다행이다. 으어어어엉."

텅스텐은 지금까지 참아 왔던 눈물이 샘솟듯 터져 나왔다.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스틸을 대화 상대 삼아 혼자서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버텨 내고 있었다.

굳게 지켜 왔던 신념과도 같은 감정이 와르르 무너졌다.

"다행이야. 흑흑. 너무나 다행이야. 이제 아무도 보지 못하는 줄 알았어."

울컥하고 쏟아지는 눈물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마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길고긴 시간을 기다려 큰 기쁨을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러한 상태라면 당장이라도 죽어도 상관없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나마 안면이 있던 지원은 텅스텐에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었다.

"흐어어어엉, 다행이야."

텅스텐은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던 것인지 계속해서 지원을 끌어안고 다행이라는 소리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이다.

"괜찮아요. 이제 고통은 나눠서 부담할 수 있어요."

토닥토닥.

일단 어떻게 된 영문인지 파악을 하는 것보다는 텅스텐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스르르륵.

등을 쓰다듬는 따뜻한 기운에 억지로 버텨 오던 텅스텐이 갑자기 축 하고 늘어졌다.

"텅스텐, 텅스텐!"

행동이 사라진 텅스텐을 보고 지원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조그맣게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에 마음을 놨다.

드워프들을 찾아냈으니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은 나중에 해도 충분했다.

* * *

두 명의 드워프을 데리고 서울로 복귀를 서둘렀다.

드워프들의 상태가 상당히 나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그런데 뭘 위해서?'

간혹 드워프들은 자신의 혼신을 다해 전설의 무기를 만들어 내곤 한다.

우스갯소리로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구를 만들며 식음전폐(食飮全廢)는 물론이고 수면조차 취하지 않는다.

'완전히 수면 부족과 영양실조가 태반에 나타나 있어.'

눈가를 보면 깊게 새겨져 있는 다크서클은 만성피로를 의미했고 충혈된 눈, 갈라진 피부들은 얼마나 그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탄탄하고 커다란 가슴근육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빼빼 말라 버린 팔뚝은 연속된 망치질로 근육의 파손이 이뤄졌다고 누구라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야윈 드워프의 모습은 태욱으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드워프들의 안전을 위해 빠르게 이곳을 벗어난 채 병원으로 이들을 이동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욱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드워프와 엘프들의 소식을 간간히 전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가지는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인간의 탐욕스러운 감정이 그들을 직접 보기를 원했고 특별한 생각을 하는 녀석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노예라든지.'

남들이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할 수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엘프와 드워프를 관상용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태욱을 건드릴 사람은 거의 없었다.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는 헌터들이 단번에 모두 달려든다면 모를까, 알게 모르게 상위 랭커에 포함돼 있는 헌터들은 모두 태욱의 소식을 듣고 있었다.

이제 세계적인 한성 중공업의 가장 큰 힘의 주축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만약 그를 건드리게 된다면 누구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만약 드워프들이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태욱은 그들이 원하지 않을 경우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대로 자연 회복을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위험했다.

'최대한 잡음을 줄인다.'

드워프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룹에 소속돼 있는 최고의 의사들로 구성을 하고 간호는 동료들이 하고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신경 쓴다면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다.

회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을 선택했다.

'일단 회복이 우선이다.'

밖으로 말이 새어 나가더라도 이대로 드워프를 둘 수는 없었다.

"돌아가자, 한국으로."

* * *

한국으로 돌아온 태욱은 한성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병원의 특별실을 통제했다.

의사를 제외한 아무도 특별실 안을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들었다.

물론 의사들의 입단속은 기본이었다.

"절대 이곳에서 봤던 것을 밖에서 말을 하시면 안 됩니다."

서약서까지 작성했지만, 구두로 다시 한 번 의사들의 뇌리에 꽂히게 만들었다.

비밀 엄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스틸. 괜찮아요?"

정신을 차린 듯 침대 위에 앉아 있는 그에게 지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스틸은 공허한 하늘만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조차 없었다.

'완전 혼이 빠져나간 것인가?'

아직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누가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말을 할 수 있는 존재.

텅스텐.

그가 아직 남아 있었다.

"텅스텐."

텅스텐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지원."

스틸과 같이 혼이 빠져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상당히 지쳐 있었다.

"좀 괜찮습니까?"

"네, 다행히도 탈진 전에 도착을 하신 것 같습니다."

텅스텐은 태욱에게 감사의 표현을 했다.

만약 그가 오지 않았다면 지옥 같은 어둠의 소굴에서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닙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텅스텐의 감사 인사를 받고 난 이후 병실은 고요했다.

'정말 괜찮은 것일까?'

의사들에게 들은 바로는 온전한 정신이 되돌아왔으니 그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더라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무슨 이유로 그곳에 잡혀 갔는지 묻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만약 자신의 발언이 기폭제가 돼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꺼낸다면 그 나름대로 텅스텐에게 힘든 일이 될 것이기 자명했다.

"저, 저기."

태욱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이야기를 해 드려야겠죠."

왜 자신을 불렀는지 이유를 알고 있는 텅스텐이었다.

어떤 사유에서 자신이 그곳에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했는지.

그 사실을 묻기 위해서 온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 그게....... 힘들면 이야기 안 하셔도 됩니다."

태욱은 그의 상태가 가장 중요했다.

무엇보다 지원의 아버지와 같은 스틸을 끝까지 지켜 준 유일한 드워프였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생명 유지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병원에 도착을 했을 때, 스틸의 상태는 심각했다.

탈진 직전.

아사 직전.

탈수 직전.

모든 에너지원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스틸의 곁을 지켜 준 텅스텐에게 너무나 감사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닙니다. 제가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으니, 이렇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겁니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너무 많은 이야기라서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텅스텐이었다.

"순서 없이 이야기하셔도 알아서 정보를 잘 취합하겠습니다."

"그럼 드워프 마을에 그가 나타났을 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텅스텐은 자신의 마을에 마왕 베리알이 나타났을 때부터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장엄한 이야기는 시간을 가는 줄 모르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왕군을 위해 무기를 만든 것.

그리고 베리알이 자신이 원하는 수량이 완성됐을 때부터 한 명씩 드워프들을 죽여 나간 것.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을 할 때도, 눈썹이 찌푸려질 때도 있었다.

어느 순간 태욱과 텅스텐의 주변에는 모두가 모여 있었다.

"힘든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이것밖에 되지 않아 미안할 따름입니다."

어떻게 보면 앞으로 태욱이 상대를 해야 할 마왕군의 무기를 만들어 줬다는 죄책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아닙니다. 이렇게 이야기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태욱은 생각의 정리를 하기 위해 병실 밖으로 나왔다.

"후우, 큰일이 있었군. 근데 마왕군의 무기를 정비하다니?"

회귀 전의 기억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왕군은 신체 능력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들에게 드워프제 무기가 쥐어졌으니, 마왕군은 더욱 강력해졌다.

"이제 어떻게 상대를 해야 할지."

마치 앞길이 꽉 막혀 막막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다음을 감당하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어차피 조금씩 변화되는 것은 예상했던 일이다. 더욱 강해진다면 충분히 그들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태욱의 강한 다짐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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