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13화
보통의 드워프 장인들이 만들어 내는 것은 하루에 2개 정도.
30개를 만들었다고 하면 얼마나 그가 빠르게 만들어 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서른 개나 만들었다고? 좀 쉬엄쉬엄 하는 게 어때?"
"어....... 어....... 그래."
"벌써 우리가 여기 온 지 며칠이나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
"......."
공허하게 텅스텐의 말이 울려 퍼졌다.
"안 그래?"
다시 한 번 되묻는 그의 목소리에도 스틸은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갑자기 침묵을 하는 스틸을 텅스텐은 반복해서 불렀다.
"스틸, 스틸! 정신 차려!"
"어....... 어......."
텅스텐은 스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안심했다.
'아직 쓰러지면 안 돼, 절대로.'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스틸의 신체가 어떻게 변화될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이미 의지를 잃은 스틸이었기에 텅스텐은 더욱 단어 선택에 조심성이 늘어난 것이다.
"그럼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움직이자고."
"그래....... 그래......."
힘없는 스틸의 목소리에 텅스텐은 더욱 마음이 아파 왔다.
* * *
"아무래도 너무나 익숙한 곳이야."
"그래, 마치 드워프 마을의 채광 광산 같은......."
은비의 말에 지원과 태욱은 눈이 번뜩였다.
"드워프 광산?"
"그래, 거기였어."
왜 이렇게 굴 내부가 익숙한 것인지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드워프들의 손길이 여기저기 묻어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여기, 여기도."
자세히 살펴보니 굴 내부를 지지하는 지지대의 짜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
"드디어 제대로 찾아온 것인가?"
갑자기 감정이 벅차오른 지원이었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 같은 상태가 됐다.
'드디어, 드디어 찾았어요. 촌장님.'
지원이 감상에 젖어 있는 동안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괜찮아? 조금 나아진 거야?"
지원의 상태가 괜찮아지자, 태욱이 다가와 물었다.
그녀에게 스틸은 제2의 아버지와 같았다.
힘든 일을 곁에서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고 뒤에서 아무런 말없이 응원을 해 주는 스틸이 자신의 아버지와 똑 닮았다.
결과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성장이 큰 기쁨이 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스틸은 그녀에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방향을 전혀 찾지 못한다면 이정표를 제시하는 정도로 그녀를 뒤에서 지켜봤기에 지원은 더욱 그에게 부정(父情)을 느낀 것이다.
"후우, 괜찮아졌어."
감정을 잘 추스른 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계속해서 가 볼까?"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접어들자 발걸음 하나하나에 힘이 실렸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행보가 이제 그 끝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기 조금만 더 나아가면 결승점에 도달하고 그토록 원하고 만나고 싶어 하던 스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힘이 나는 것이었다.
"가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걱정 가득한 말투를 하고 점점 깊숙이 파고드는 지원이었다.
도보로 약 10분.
굴은 상당히 안정돼 있었고 저 멀리에서 왠지 모르게 강철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 환청이 들리는 건가?"
"무슨 환청?"
"저 멀리서 강철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치 만나기 전 흥분한 나머지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까 봐 수시로 주변에게 되물었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미안, 나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걸."
지원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은 은비였다.
내려가는 동안 몇 번이고 반복됐지만, 대답을 성실하게 하는 은비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깡, 깡.
은비가 결국 참지 못해 화를 터뜨렸다.
"벌써 몇 번째야, 안 들린다니까!"
깡, 깡.
큰 목소리를 내지르는 은비의 목소리 사이로 미세하게 강철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영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깡, 깡.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집중을 하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소, 소리가 들려요!"
영리의 다급한 외침에 모두가 집중해서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깡, 깡.
"정말이다!"
"진짜 들려!"
기쁨에 은비와 지원은 서로를 얼싸 안았다.
얼마나 기다렸던 철 두드리는 소린가?
마치 철 두드리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청량하게 들려왔다.
소리를 듣자마자 가장 빠르게 움직인 사람은 다름 아닌 지원이었다.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를 찾든 다급하게 굴 깊은 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가, 같이 가!"
"저렇게도 좋은 것인가?"
기뻐서 폴짝이는 지원의 모습을 보고 태욱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얼마 가지 않았다.
"꺄아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 주인공은 가장 먼저 뛰어 들어간 지원의 목소리였다.
Chapter 4
원하는 수량이 만들어지자 마왕은 아무렇지 않게 드워프들을 죽여 나갔다.
"왜 내가 마음에 들 만한 것이 없는 거지?"
물론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인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이유에 맞춰서 하나둘씩 그 숫자를 줄여 나갔다.
원하는 수량을 맞추지 못해서, 깜짝 놀랄 만한 높은 수준의 무구를 완성하지 못해서, 손에 맞지 않는 무기를 만들어 내서.
각자 다른 이유였지만, 하나라도 마음에 걸리면 가차 없이 그들을 죽였다.
무구는 이미 충분할 정도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드워프들을 죽여 나가는 데 부담이 없어진 것이다.
"제, 제발."
양손으로 빌면서 이야기를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러게, 만들라고 하는 걸 제대로 만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잖아."
사악하고 노리는 것이 정확하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악의(惡意).
장난기 가득한 그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이 끌리면 원하는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권력을 쥐고 흔드는 그에게 감히 대항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원하는 것을 가지고 쟁취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둘인가?"
"다른 드워프들을 더 잡아들일까요?"
곁에 있던 신하가 그의 말 속에 담긴 의견을 짚으려고 했다.
"아니 괜찮아. 둘이면 충분하지."
"네, 알겠습니다."
신하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마왕의 뒤로 이동했다.
"시체는 저 밖에 내버려 두고 계속해서 무기를 만들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더 이상 드워프들에게 흥미가 떨어졌는지, 마왕은 두 명을 그대로 남겨 둔 채로 대장간 밖으로 나섰다.
"아 맞다, 이번에 엘리자베스를 공격한 녀석이 있었지?"
"냉기의 마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냉기의 마녀는 무슨, 냉기의 마녀 차핫."
베리알은 그녀의 수식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냉기의 마녀라니. 자신보다 강한 적을 보고 꽁무니 빼듯 도망친 그녀의 행동이 수식어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왕 베리알이나 그녀를 쉽게 보는 것이지, 다른 수하들은 전혀 달랐다.
"그녀를 위험하게 만들었던 녀석들을 한 번 찾아봐."
"살려서 데려올까요?"
찾아보라는 베리알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들은 신하였다.
그가 찾으라고 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만약 그가 진짜 돌아온 것이라면 몇 번이고 다시 극복할 수 없다는 공포심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
* * *
지원은 누구보다 빠르게 깊은 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깡. 깡.
점점 커다랗게 들리는 담금질 소리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스틸! 스틸!"
스틸의 이름을 반복하며 부르며 뛰어나가는 지원의 앞에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빛이 하나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붉게 반짝이는 수많은 불빛.
마치 달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믐날에 붉은 은하수가 수놓아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지?"
걸음을 서서히 멈추고 그 정체를 알아보는 순간.
"꺄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붉은 불빛의 정체는 바로 드워프들의 피였다.
멀리서 다가오는 태욱의 라이트 불빛에 반사돼 각자 자신만의 색깔을 빛낸 것이다.
붉은 그들의 핏방울이 만들어 낸 강한 혈향은 지원의 코끝을 찔러 들어왔다.
그녀에게 너무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크리트.
스틸과 더불어 같이 마을을 꾸려 나갔던 인물이 지금 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크리트!"
황급하게 뛰쳐나간 지원은 자신의 몸에 핏물이 묻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크리트! 괜찮아요?"
손에 닿은 크리트의 몸에서는 열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생물체가 가지는 따뜻함.
그것은 전혀 없었고 손끝으로 파고드는 차가움이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서, 설마 안 돼!"
지원은 가슴 깊게 파고드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무엇을 위해 이곳까지 왔는가?
그들의 따뜻한 웃음을 잊을 수 없어서 그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나 늦어 버렸다.
"크리트, 제발, 제발 뭐라도 말해 줘요."
눈에서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안 돼, 이럴 수 없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드워프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던 지원의 마음은 단번에 추락하듯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제발, 제발 무슨 말이라도....... 흑흑."
참아 왔던 슬픔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아무도 그녀의 곁으로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격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안 돼! 왜! 나에게!"
처음 보는 지원의 모습이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부모를 잃은 것 같은 슬픔이 담겨져 있었다.
실의에 빠져 있는 지원에게 가장 먼저 다가선 이는 바로 은비였다.
그녀와 가장 많이 티격태격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은비는 지원의 슬픔이 자신의 고통으로 파고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마음속으로는 이미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이상 이야기했겠지만, 저 슬픔은 잘 알고 있는 은비였다.
자신도 목숨을 내줘도 아프지 않을 동료를 잃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지원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은비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꽉 안았다.
토닥토닥.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흐아아아아앙."
속으로 울음소리를 감추고 있던 지원의 목소리가 밖으로 터져 나왔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