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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빨로 지존 헌터-108화 (108/146)

# 108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12화

진중하고 근엄하게 이야기하던 마왕의 말투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그의 등 뒤로 쏘아져 나오는 검은 아우라는 조금씩 엘리자베스를 잠식하기 위해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약간의 차질이 생겼습니다."

"차질이라?"

조금씩, 주변이 어둡게 변하고 있었다.

이 어둠이 대관을 모두 채우게 만들었을 때 변하게 되는 어떠한 것에도 예상할 수 없었다.

"마왕님과 견줄 수는 없었지만, 저의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인간이 저를 막아서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 뭐라? 나와 힘을 견줘?"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마왕의 분노가 뿜어져 나오자 엘리자베스는 재빨리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저 그 인간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법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두 삭제되고 간신히 소멸만을 면한 채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호라?"

마왕은 엘리자베스의 설명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드디어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인가?'

마왕의 진노가 조금 사그라지자, 엘리자베스는 연신 자기 변론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언데드를 이용해 엘프 실험체를 금방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녀석이 나타나자마자 조금씩 꼬여 가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에 살까지 붙여 가며 마왕에게 이야기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갑자기 튀어나온 인간 녀석 때문에 모든 일이 틀어졌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마왕님께 좋은 소식을 가져다 드리려고 노력했는데 제 능력 이상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왕님."

이미 엘리자베스의 추가 설명은 전혀 듣고 있지 않은 마왕이었다.

"크하하하. 알겠다. 물러나거라. 나중에 다시 불러들이마."

마왕의 축객령에 엘리자베스는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다.

언제 마음이 뒤바뀌어 자신에게 형벌을 내질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마왕은 이미 엘리자베스에 관한 생각을 모두 지웠다.

처음엔 괘씸했는데, 아주 흥미로운 소식을 자신에게 가져다줬으니, 용서를 해 준 것이다.

"어떤 녀석이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같은 미래를 반복할 것이다. 크하하하하."

지독한 마왕의 웃음소리가 대관 내부를 가득 채웠다.

* * *

울창한 숲을 통과하자 드넓게 펼쳐진 평야가 태욱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 장관이다 장관이야."

숲속에서는 아무리 먼 거리를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다.

물론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면 펼쳐지는 숲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땅에서 이렇게 푸르고 넓은 평야를 보는 것은 무척이나 다른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피크닉 온 것 같아요."

영리 역시 기분이 좋다는 듯이 감상평을 내놨다.

"얼마 남지 않았어."

벌써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드워프를 찾아 떠나온 여정이었다.

예정보다 길어진 일정에 걱정이 가득한 지원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녀도 일정 부분 이해를 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숲을 넘어가면 금방이라도 그들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지원의 안타까운 감정이 밖으로 드러났기에 태욱이 곁에서 위로를 한 것이다.

"괜찮아, 금방 찾을 수 있겠지."

자신의 손목에 남겨진 불빛이 가까운 곳에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기에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았다.

"한쪽은 사막이고 중간은 울창한 숲 그리고 이번에는 광활한 대지, 어느 것 하나, 같은 곳이 없네."

"이렇게 가다가 추운 지방이 나오겠어."

"추운 곳은 이미 거쳐 왔잖아?"

이미 엘리자베스의 전투에서 극심한 추위를 경험한 동료들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각만 해도 오싹한 추위였다.

"그럼 가자고.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까."

태욱은 동료들을 다독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광활한 평야의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을 때 은비가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이런 곳에서 몬스터라도 만나는 경우,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겠다. 땅속이라면 또 모를까?"

그녀의 말이 시발점이 됐는지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바닥이 주저앉은 것이다.

"야!"

"야! 누가 그런 사망 플래그 꼽으랬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와중에 지원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돼 울렸다.

쿠웅.

콰드드득.

착.

사뿐.

탓, 탓, 탓.

각자의 개성에 맞춰 바닥에 떨어지며 힘을 줄였다.

무자비하게 바닥에 떨어진 은비를 제외하면 말이다.

태욱은 마치 바닥에 붙은 듯이 '착' 하고 떨어졌다.

지원은 최대한 벽면을 긁어 내려오며 바닥에 떨어지는 속도를 줄였고, 영리는 소환수를 이용해 아주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금강철인은 벽을 딛고 뛰어오르기를 몇 번 반복하며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에 큰 충격을 입은 사람은 은비뿐이었다.

"크억."

"그러게. 잘 내려오지."

"이게 나 때문이냐?"

떨어져 큰 고통이 오는 것도 억울한데 자신의 탓을 하는 지원의 목소리에 은비는 버럭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은비의 외침은 의도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덕분에 변화된 것이 있었다.

바로 아래로 깊게 떨어진 굴에서 울려나오는 울림이었다,

"문이냐~ 문이냐~."

메아리가 돼서 돌아오는 은비의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꽤나 깊이 아래쪽까지 떨어졌기에 다시 벽을 타고 올라가기에는 암담했다.

"여기 길이 있는데 이쪽으로 가 볼까?"

깊은 곳에서 발견한 길은 3군데였다.

그중 한 곳이 드워프들이 있다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연 굴로 들어가는 것이 좋은 선택일까?"

굴 내부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변변한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무턱대고 들어가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너무 무모한 거 아니야? 차라리 어떻게든 저 위로 올라가서."

지원은 그 선택에 반대표를 던졌다.

물론 한시가 급하기 때문에 눈앞에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보이면 당연히 군침을 삼키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거나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이었다면?

모르고 덥석 집어먹었다면 그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아무래도 난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지원은 이곳으로 떨어지기 전으로 기어 올라가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고 이야기했다.

금강철인과 영리는 어느 선택을 해도 상관없다는 분위기가 되자 두 사람은 태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디가 좋은 것 같아?"

"응? 그걸 왜?"

"당연히 여기 두 사람은 어디든 괜찮다는 의사를 계속 표현했는데 너만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잖아."

은비와 지원 간의 대화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사실 태욱도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어디로 가든 드워프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원의 마음은 다급함에서 초래됐다.

혹시나 만약 길을 돌아가게 됐을 때 '이미 늦어 버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빠르게 도착을 할 수 있다면 그녀에게 어떤 길이든 별 상관이 없었다.

"차분하게 생각한다고 결정 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마땅히 저 위로 올라갈 방법은 없잖아."

태욱은 두 사람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딱히 다시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결정 난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굴을 타고 깊게 들어가는 것.

때때로 아티팩트를 이용해 다시 선정하면 되는 것이니 방향을 잃을 걱정도 없었다.

"일단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이되, 길이 달라지면 그대 대처를 하자고."

만약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면 태욱과 영리와 계약을 하는 대지의 정령에게 도움을 받으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빠르게 드워프들이 있는 공간에 도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태욱 일행은 굴 내부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라이트!"

조금만 깊게 들어가자, 밖의 빛이 모두 차단돼 한 치의 앞을 볼 수 없게 됐다.

태욱은 자연스럽게 마법을 발현했다.

"참 이렇게 보면 만능이라니까, 어떤 것이든 필요한 게 있으면 쑥쑥."

필요한 마법을 적재적소에서 꺼내 쓰는 것 같은 태욱의 모습에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불이 필요하면 화염 마법.

빛이 필요하면 빛 마법.

물이 필요하면 수계 마법.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는 않아도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꺼냈다.

"마법 주머니 같아요. 아니 만능 주머니라고 해야 되나?"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말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

태욱의 뾰로통한 말투에 영리가 다가왔다.

"아니, 전 장난으로."

나머지 세 사람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유일하게 반응한 사람은 영리뿐이었다.

영리는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데 많은 심혈을 쏟고 있었다.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영리의 머리를 태욱이 흐트러뜨렸다.

"하하 장난이야, 신경 쓰지 마."

"진짜요?"

갑자기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하고 아래에서 치켜 올려보는 눈을 보면 누가 화를 낼 수 있겠는가?

그저 머리를 쓰다듬고 마음을 풀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근데, 이거 어딘가 익숙하지 않아?"

그저 동굴 내부를 걷고 있을 뿐인데, 익숙함이 느껴졌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은비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거리자, 바로 옆에서 카운터펀치가 날아왔다.

"그건 네가 둔해서 그런 거고, 진짜 어딘가 기묘하게 익숙한 것 같은데."

지원은 태욱의 말에 동의했다.

미묘하게 어딘가 익숙하다.

가 봤을 리도 없는 이렇게 지하 깊은 동굴이 익숙하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혹시 여기가?"

"그래, 혹시라는 생각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갈 수 있어."

태욱과 일행은 조금씩 더 깊은 곳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 * *

화르르르륵.

불길이 솟구치는 화덕을 보고 있으면 멍하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뭘 하는 것일까?'

스틸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그 의미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무구를 만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눈에는 총기가 다 사라졌다.

그저 기계처럼 강철을 달구고 때리고 마무리하는 작업을 수천 번 반복했다.

마치 영혼이 없는 인형과 다름없었다.

"스틸! 스틸!"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시켜 준 유일한 벗.

아무도 남지 않은 대장간을 단둘이 지켜 낸 텅스텐이었다.

스틸과 크리트가 꾸려 나가던 드워프 마을의 인원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남겨진 텅스텐과 스틸이 그 명목을 유일하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 어......."

의미 없는 성대의 울림이었다.

어떻게든 그의 생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텅스텐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오늘, 벌써 몇 개나 만든 거야?"

"어....... 어......."

자신이 만들어 낸 강철 검 무더기를 향해 고개를 돌린 스틸이었다.

의미 없는 의성어를 계속 내뱉더니 이내 텅스텐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 줬다.

"한...... 서른 개 정도인가?"

믿을 수 없는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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