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11화
"마음에 들지 않아, 아이스 스피어!"
단번에 그에게 마법을 쏘아 냈다.
커다랗고 날카로운 얼음 창이 회전을 하며 그에게 쏘아졌다.
아이스 스피어가 그의 신형에게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팟.
폭발음을 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본래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삭제됐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았다.
"뭐지?"
갑자기 일어난 당황스러운 상황에 엘리자베스는 연속해서 마법을 쏘아 냈다.
"아이스 스피어!"
"아이스 볼!"
"포이즌 포그!"
"프리즌!"
순간적으로 4중 마법을 영창하며 쏘아 낸 마법체들이 모두 그에게 다가서기 전에 사라졌다.
"이, 이게 뭐야?"
처음으로 느껴 보는 상실감이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마법을 쏘아 냈을 때 가볍게 막아 내는 이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마왕 베리알.
그 말고는 이렇게 손쉽게 막아 내는 경우가 없었다.
갑자기 드는 공포심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뭐, 뭐야?"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천천히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태욱이었다.
당황한 그녀는 계속해서 마법을 쏘아 냈지만, 결국 다가오는 그를 막아설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자꾸 묻는 그녀의 물음에 태욱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날 이렇게 만들어 줬으니, 나도 나 나름대로의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널 이렇게 만들었다고?"
스르륵 다가오는 태욱의 손길에 엄청난 공포심을 느낀 엘리자베스는 바로 자신의 라이프 베슬로 이동했다.
"어디 가?"
음흉한 그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로부터 다급하게 자신의 라이프 베슬을 챙긴 엘리자베스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헉헉. 뭐야? 그 녀석은?"
마왕 이후로 가장 큰 공포심을 느낀 엘리자베스는 마왕에게로 도망쳤다.
* * *
"모두 화살 준비!"
"준비!"
전장이 한참이나 뒤로 밀려 있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버티던 엘프들의 눈에는 이미 총기가 사라져 있었다.
억지로 버티고 또 버텨 내며 별동대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와르르르르.
화살을 겨누던 언데드들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하고 무너지듯 앞으로 쏟아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엘프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성공한 것인가?'
장로는 그 모습을 보고 별동대가 임무를 완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많은 언데드가 일순간에 힘을 잃은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와아!"
"우리가 승리했다!"
"생명의 나무를 지켜 냈다!"
"마을의 안전을 보장했다!"
뒤늦게 엘프들의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타르가는 괜찮은 것인가?'
장로의 직감이 좋지 않았다.
분명 언데드들이 쓰러진 것을 보고 마음이 편했어야 했지만, 뭔가 걸리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모두 마을로 돌아간다!"
전선을 지키던 엘프들을 데리고 장로는 마을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전투는 끝이 났고 마을에 있는 다른 엘프들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야 했다.
'타르가, 재발 안전하게 돌아와만 다오.'
장로가 무척이나 아꼈던 엘프였다.
차기 장로로 손색이 없던 그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 * *
엘리자베스가 사라지자, 홀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한기가 사라졌다.
"정말 이걸로 된 걸까?"
태욱은 미처 엘리자베스가 도망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분명 엘리자베스는 나중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동료의 안전이었다.
만약, 자신이 날뛰었다면 지금 영리와 지원 그리고 은비, 금강철인까지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 동료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야. 그리고 마을을 지킬 수 있었어.'
태욱은 자신의 손에 쥐인 실라카의 검을 바라봤다.
'제대로 된 복수는 반드시 해 주마.'
검을 보고 태욱은 다짐했다.
타르가의 복수를 반드시 이뤄 줄 것이라고.
"다들 마을로 돌아간다."
태욱은 동료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가며 동료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갑자기 몸이 변해서 마나를 조종할 수 있다는 거야?"
은비와 지원이 동시에 물어 왔다.
"응, 그렇게 된 것 같아."
동료들은 태욱에게 갑자기 영리의 소환수들이 사라진 것 그리고 냉기를 내뿜어 대던 리치가 도망치듯 사라진 것에 대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진작 이야기해 줬으면 깜짝 놀라지도 않았을 텐데."
영리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태욱에게 말했다.
"미안, 당장 위급한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었어."
태욱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남겨진 주작의 소환 시간은 고작 5분.
영리의 마나가 소진되면 소진될수록 뿜어내는 열기도 약해지고 있었기에 마음이 급했던 태욱이었다.
저벅저벅.
일부러 지금 이동도 천천히 하고 있었다.
영리는 단번에 많은 양의 마나를 소모해서 제 발로 걸어가기가 무척이나 힘들 정도였다.
주변에서 들쳐 업고 이동을 하려고 해도 그녀가 거절했다.
"이 정도에서 쓰러지면 안 돼요. 앞으로 더 위험한 일도 있을 텐데."
영리의 굳은 의지를 받아들여 그녀가 이동할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엘프 마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바닥에 깔려 있는 언데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엘프 마을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이제 마을 도착!"
가장 기뻐하는 이는 바로 영리였다.
자신 때문에 이동이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진작 눈치챘지만, 스스로의 힘을 기르고 싶은 영리는 도움을 거절했다.
하지만 마음만은 불편했던 것이다.
그러니 마을에 도착을 하자마자 가장 기뻐한 것이다.
"그럼 난 장로님을 만나고 올게,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줘."
태욱의 말에 동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멈춰 섰다.
* * *
"장로님?"
태욱은 장로를 찾아 마을에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을 향해 이동했다.
"어디 계십니까?"
"그렇게 큰소리로 찾지 않아도 되네, 그나저나......."
장로는 태욱의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오며 말을 하다 그의 손에 쥐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인가?'
만약 타르가가 살아서 돌아왔다면 인간이 자신을 찾아올 리는 없었다.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타르가의 생존을 바라고 또 바랐다.
그랬기에 그가 온 것이 다른 목적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슴 한편에 있었다.
"죄송합니다."
자신을 보고 단번에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확인한 태욱은 먼저 사과의 인사를 건넸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는가? 마을을 지켜 준 영웅인데."
"아닙니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우리 마을 최고의 전사의 최후는 어떠했는가?"
장로는 타르가의 마지막을 물었다.
"그가 없었다면 저희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태욱은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를 건넸다.
타르가가 아니었다면 검을 손에 쥘 수도 없었고, 본 드래곤을 상대하며 힘이 빠진 상태로 엘리자베스의 공격을 받았을지도 몰랐다.
힘을 아끼고 있던 탓에 태욱의 환골탈태도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이번 전투의 가장 큰 공로자는 바로 타르가였다.
"이걸 돌려 드리러 왔습니다."
태욱은 자신의 손에 쥐어 있는 검을 내밀었다.
장로는 검을 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우리의 것이 아닌 것 같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자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잘 어울리기 때문에 하는 말일세."
"그, 그래도 이건."
태욱은 실라카의 무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괜찮네. 이미 그 무기는 상징성을 잃었네."
"상징성이라고 함은?"
"그것은 마을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마을을 지켜 낼 수 있는 무기네. 이번에 마을을 지켰으니 그 의미는 다했다고 할 수 있지."
장로는 태욱에게 실라카의 검을 밀었다.
"그러니, 우리에게 있는 것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가지는 것이 좋지."
태욱은 장로의 말에 한사코 거절하려고 입을 열었다.
"괜찮......."
"우리 마을을 구해 준 답례라고 생각하시게. 그럼 우리 마을의 유물을 소중하게 다뤄 주게나."
"알겠습니다."
자꾸만 권하는 장로의 권유를 끝내 거절하지 못한 태욱이었다.
"그리고 숲 반대편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안내자가 필요한가?"
"아닙니다. 저희끼리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다시 우리 마을에 들를 때 실라카를 보여 주게, 마을에 들어올 수 있는 징표니까 말이야, 하하하하."
장로는 애써 속으로 슬픈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태욱은 그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군말하지 않고 마을을 당장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잘 가시게."
꾸벅.
태욱은 고개를 숙여 장로에게 인사를 하고 마을 입구로 향했다.
"자, 가자."
"벌써 끝난 거야?"
아쉬운 마음을 내비치는 은비였다.
드워프 마을에서는 축제를 하면서 기쁨을 만끽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었다.
* * *
꽁지가 빠지게 도망간 엘리자베스는 아직도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극심한 공포.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치솟아 오르는 공포가 그녀의 감정을 휩쓸었다.
마왕과 대적한 이후로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마왕님과 같은 수준일까?'
자신보다 전투력이 높은 사람의 능력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무섭다는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얼마나 확실하게 감각을 전달해 주느냐가 관건인데, 태욱과 마왕은 그 궤를 나누기 힘들었다.
"일단, 일이 틀어졌으니 보고를 해야겠지."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낸 것은 다 마왕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가 만들라면 만들어야 하고 실패를 했을 때 뒷감당 또한 자신이 해야 됐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실패를 이야기했을 때 들려올 불호령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걸음걸이가 순식간에 느려졌다.
마왕 성에 도달해 느끼는 중압감이 더욱 커다랗게 변한 것이다.
끼이이이익.
커다란 성문이 열리고, 그녀를 막아서는 문지기는 없었다.
그녀의 히스테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무슨 말을 들으려고 그녀를 막아서.'
굳어진 표정을 보고 냉큼 뒤로 물러서는 문지기였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머릿속에는 온통 다른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마왕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돌릴 수 있을까?
지금 자신의 손에는 라이프 베슬 말고는 다른 선물이 없었기에 더욱 걱정스러웠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녀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이윽고 마왕의 대전에 도착한 엘리자베스는 호흡을 크게 가져갔다.
"흐읍. 후우."
길게 들이마시고 내뱉는 그녀의 날숨에는 온통 걱정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
털썩.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고 감히 왕좌에 앉은 마왕의 발끝도 바라볼 수 없었다.
"마왕님 저 왔습니다."
오들오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야기했지만, 목소리에는 강한 떨림이 담겨 있었다.
"그래, 벌써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왔느냐?"
"그, 그것이 아니라......."
준비 과정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마왕의 목소리에 엘리자베스는 말까지 더듬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