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7화
장로의 스킬이 다른 사람의 손에서 뿜어져 나가는 것을 처음 본 타르가는 전기 충격을 받은 듯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빨리, 빨리 이동해!"
멍하니 태욱을 바라보던 타르가의 정신을 일깨워 준 태욱의 일갈이었다.
외침이 정확하게 먹혀 들어갔는지, 타르가는 다시 전방을 향해 움직였다.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한기가 점점 느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으슬으슬해지는 것 같지 않아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영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근육이 뇌까지 차오른 네가 뭘 알겠어?"
은비는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자, 바로 지원이 치고 들어왔다.
지원의 말에 은비가 발끈하려는 찰나, 태욱이 막아섰다.
"자자, 싸움은 나중에 하고 일단은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지."
마치, 리치의 소굴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태욱이었다.
'정체가 리치였어?'
아직 확신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에게서 나오는 차가운 기운은 주변을 전염시킨다.
"정확하게 찾아온 것 같은데?"
"확신하지 마, 아직 아무것도 나온 게 없잖아."
깊숙하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다른 언데드의 흔적을 찾기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아마, 이 한기 때문에 언데드들도 접근을 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강한 마법으로 시간을 벌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찾아왔으면 한참 전에 찾아왔어야 하는 구울과 스켈레톤이었다.
길은 오직 하나였고 중간 갈림길도 없었으니 통로를 꽉 채우고도 남을 녀석들이 오지 않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적을 알지도 못한 채로 가야 된다니."
"속도가 늦어졌습니다. 빨리 이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타르가는 잡담을 떨며 이동속도가 늦어진 것을 확인했는지, 태욱과 동료들을 독촉했다.
"잠깐 한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어, 이제 다시 빠르게 이동해도 괜찮아."
멋쩍은 듯이 핑계를 대는 은비였다.
깊숙한 통로를 걸어 들어간 지 10분이 지나자 저 멀리에서 커다란 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야 커다라네."
"이 문 안쪽에 있는......."
문을 보고 감상평을 내뱉는 와중에 타르가가 문을 활짝 열어 버렸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그렇게 열면."
뒤따라 지원이 말을 했지만, 이미 타르가에 의해 문이 활짝 하고 열렸다.
쏴아아아아아.
문 틈새로 냉기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왔다.
"이, 이게 뭐야?"
온통 그 안쪽은 극지방과 다를 바 없었다.
얼음 기둥이 인테리어인 듯 즐비해 있었고 안쪽은 각종 몬스터의 장기와 피부가 놓여 있었다.
"실험실인가?"
태욱은 내부를 보자마자 확신을 했다.
리치.
이곳의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실험실이면 생체 실험을 이야기하는 건가?"
곁에서 있던 지원이 말을 걸자마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는 누구인가?"
차갑고 냉소적인 목소리였다.
드디어, 이곳에 온 목적.
그 주인공을 발견했다.
* * *
"화살을 날려!"
"점점 전선이 뒤로 밀리고 있다, 속사 준비!"
커다란 전력이 일순간에 빠져나가고 벌이는 전투에서 엘프들은 마지막 가이드라인을 지켜 내지 못하고 뒤로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앙."
"그룩. 크룩."
거친 괴성을 내지르며 조금씩 파고 들어오는 언데드 군단.
그들의 힘의 원천인 끊임없는 인해전술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썬더 스톰!"
콰직, 콰드드드등.
번개가 바닥으로 내리치더니, 일순간의 전선은 다시 회복됐다.
"오늘밤을 버텨 낸다. 교대조 준비!"
벌써 3번째 교대조였다.
인간의 조언대로 8개 조로 나뉘어 휴식과 전투를 번갈아 가며 전장에 나섰지만 한계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끝인 건가?'
엘프 장로는 하늘을 바라봤다.
밝은 달이 엘프들을 비추고 있었다.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달빛 속에 타르가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가 분명 마을의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표정이었다.
"자! 마을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
장로의 다독임에 엘프들의 눈빛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 * *
"너희는 누구인가?"
태욱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직감했다.
이곳의 주인이 누군지 이미 한 번 상대를 해 본 경험이 있었다.
"리치."
"응? 리치라니?"
태욱의 곁에 서 있던 지원이 되물었다.
"냉기의 마녀. 이곳의 주인이 그녀야."
회귀 전.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 그녀였다.
그녀의 발아래 많은 헌터가 무릎을 꿇었다.
하나로 똘똘 뭉쳐 전투를 벌이던 헌터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냉기의 마녀.
그녀의 주변엔 항상 언데드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냉기의 마녀 엘리자베스가 전투력이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도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주위를 가득 채운 언데드 부대.
엘리자베스의 사랑스러운 실험체들이었다.
"엘리자베스."
태욱의 입에서 냉기의 마녀의 이름이 불리자 그녀는 발끈하듯 소리쳤다.
"어디 인간 따위가 내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인가?"
마치, 노예가 주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 것같이 있을 수 없는 일을 행한 것처럼 분노한 것이다.
"네년이 마을을 이렇게 만든 건가?"
갑자기 엘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엘리자베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엘프도 있었네? 꺄하하하하."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레어에 들어온 타르가를 아주 먹음직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가 바로 엘프 때문이었다.
자신의 실험을 위해 엘프가 있는 곳을 수색했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마을을 가운데로 두고 5군데에 대형 몬스터를 소환한 이후 언데드로 녀석들을 밀어붙였다.
분명 충분히 점령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강한 엘프의 사체를 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제 발로 이곳에 찾아왔으니 충분히 기쁠 만했다.
"너 강하니?"
엘리자베스는 타르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소름이 돋는 시선에 타르가는 몸서리를 쳤다.
'뭐지? 이 기분은?'
뜯어보듯 바라보는 시선을 처음 느낀 타르가였다.
"네년이 마을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냐?"
타르가의 물음에 엘리자베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가지고 싶은 녀석들이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탐욕스런 그녀의 말에 타르가는 단번에 달려들었다.
"네 이년!"
태욱의 눈으로도 쉽게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단숨에 그녀의 앞에 당돌한 타르가는 엘프 마을의 유물인 실라카의 쌍검을 교차하며 휘둘렀다.
채채챙.
검이 서로 교차하며 만들어 낸 파공음 이외에는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 어떻게?'
눈앞에 있던 엘리자베스는 허망하게 사라져 있었다.
"여기야, 여기."
목소리의 울림지는 타르가의 뒤편이었다.
'내 눈으로도 놓쳤다?'
타르가는 고개를 내저었다.
재빨리 몸을 돌린 타르가는 그녀를 향해 쌍검 중 하나를 내던졌다.
휘리리리릭.
또다시 검이 닿자마자 엘리자베스의 신변이 사라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라니까?"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타르가를 연신 도발하는 엘리자베스였다.
태욱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동어조차 없이 블링크를 사용한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만약 그녀가 블링크를 사용했다면 타르가의 공격이 닿기 전에 이동을 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동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타르가의 검이 자신의 몸에 닿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나?'
태욱은 자신의 기감을 모두 펼쳐 그녀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타르가의 공격.
그리고 새로운 곳에 나타나는 엘리자베스.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태욱은 엘리자베스가 마법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마력의 이동이 없어.'
마법을 사용하려면 그 매개체인 마나를 사용해야 된다.
아무리 소량의 마나를 사용하더라도 주변의 일렁임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마법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대기 중에 흩뿌려져 있는 마나를 변형시켜 수식을 완성시키기 때문이었다.
몸 안에 축적돼 있는 마나를 주입하는 것도 대기의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태욱은 그녀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태욱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이 있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기억해 내지 못했지만, 강력한 그녀의 특성이었다.
유체화.
오랜 시간 살아온 그녀에게 이제 육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리치의 특성인 라이프 베슬 덕분이었다.
라이프 베슬(Life Vessel).
영혼을 유지시켜 주는 장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심장이라면 그녀에게는 라이프 베슬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라이프 베슬에 생명을 저장하고 그것을 이용해 살아간다.
"조심해 타르가, 그녀의 본체를 찾아야 돼."
태욱은 엘리자베스의 속임수에 넘어간 척하기로 했다.
라이프 베슬은 안전한 곳에 숨겨 놓는다.
만약 라이프 베슬이 깨질 위기가 처한다면 이렇게 여유롭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녀석들이 내 본체를 찾는다고? 지금 이렇게 형상화하는 내가 본체가 아니라는 건가?"
놀리듯 이야기하는 엘리자베스를 뒤로하고 태욱의 눈은 빠르게 주변을 훑고 있었다.
'분명, 여기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거야.'
라이프 베슬의 단점은 먼 거리까지 유지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이동을 하려면 꼭 라이프 베슬을 가지고 이동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태욱은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고 있었고, 적어도 인간들이 라이프 베슬을 찾고 있다는 사실조차 숨겨야 했기 때문에 타르가에게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분명 본체가 있을 거야."
태욱의 외침에 타르가는 더욱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년! 이게 본체냐!"
다시 한 번 쌍검을 휘둘렀지만, 신기루가 사라지듯 그녀의 신형 또한 사라졌다.
* * *
"헉헉."
빠른 속도로 지쳐 가는 타르가였다.
쉼 없이 리치의 신형이 나타날 때마다 그는 움직였고 베었다.
그것이 설사 환영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마을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제자리에 멈춰 서 있을 수 없던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타르가는 자신의 힘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느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으며 점점 리치의 환영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라면 전혀 느끼지 못해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타르가는 자신의 손에 쥐어 있는 검을 내려다봤다.
'아마, 이것 때문인가?'
검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능력.
명경지수.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파악을 할 수 있는 능력 중 하나였다.
"어디 어디 있는 것이냐?"
또다시 헛손질을 한 타르가의 외침에 레어 내부가 엘리자베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아주 튼튼한 엘프였네, 이렇게까지 할 줄 전혀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야. 아주 훌륭해."
상품을 평가하듯 엘프의 신체 능력을 확인한 엘리자베스는 타르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저 엘프를 매개체로 실험을 한다면 굉장히 성공적인 결과물이 나오겠는데?'
버러지 같은 인간들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으나, 그들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라이프 베슬에 생명을 담아 놓고 이렇게 유체화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캬캬캬캬캬, 어디 이제 슬슬 메인 디시를 먹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