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6화
'지금이 타이밍인가?'
'놓치면 안 돼?'
'강하게 어필하기 위함이겠지? 다른 방법이 또 그의 머릿속에 있을 거야.'
언제부터인지 태욱의 의견에 새로운 방법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엘프들에게 박혀 버렸다.
새로운 선택에 따른 해결책은 곧바로 제시할 수 있었고 효과는 커다랗게 돌아왔다.
믿는다면 반드시 결과를 보여 줬던 그의 행동이 쌓이기 시작해 이제는 엘프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쳐 버린 것이었다.
"고민을 해 봐야겠군."
고위 엘프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장로가 내린 결정이었다.
엘프 장로 역시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보냈는데, 실패를 한다?'
머릿속에 가장 안 좋은 생각이 닿은 것이다.
만약 인간들이 실패를 하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우리의 유물을 소지하고 간다면?'
인간들에게 좋은 무구는 너무나 매혹적인 물건이었다.
갑자기 욕심이 나 유물을 들고 도망갈 수도 있었고,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몰랐다.
지금 엘프들에게 남은 희망은 얼마 없었다.
* * *
장로의 결정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대로 다른 엘프들을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없어.'
인간이 이야기한 대로 전열을 가다듬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에서 마을을 지켜 내니 처음보다는 수월했다.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 부품처럼 획일화돼 움직이는 모습에 조금씩 과부하가 걸리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안 되겠습니다. 화살이 다 떨어졌습니다."
"크아아악."
피해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부상자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일시적으로 만든 화살도 거의 바닥을 보여 가고 있었다.
'우리에게 남겨진 다른 해결책은 없다.'
결정을 내린 장로는 타르가를 소환했다.
"타르가, 너의 손에 우리 마을의 존폐가 달렸다."
가장 강한 엘프 장로가 직접 가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장로는 이곳을 지키는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었다.
전장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가장 믿음직한 타르가를 인간의 틈에 끼워 보내려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목례를 가볍게 건넨 타르가는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바라봤다.
"이, 이것은?"
"잘 알고 있겠지? 우리 엘프 마을의 유물이니까."
과거 엘프 마을 인원 중 한 명이 구원자로 선정됐다.
그는 인정사정없는 칼날을 휘두르며 전장의 지배자가 됐고 마물들을 죽이는 데 가장 앞서 나갔다.
-바람의 실라카의 쌍검.
검의 끝을 봤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실라카의 무기.
착용자의 몸놀림을 가볍게 만들어 주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패닉에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
명경지수(明鏡止水).
흐려져 있는 정신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
샤프니스(Sharpness).
잘 관리된 검의 날은 깃털이 내려앉아도 썰려 나간다.
오토 리페어(Auto Repair).
자동으로 검이 수리된다.
테이블 위에 놓인 마을의 정수나 다름없는 무기를 보고 타르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정말 이걸......."
"우리 마을의 희망이니,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 아닌가?"
타르가는 엘프 장로의 목소리에 근심이 담겨 있는 것을 느꼈다.
'장로님.'
처음 자신이 무기를 쥐었을 때가 떠올랐다.
* * *
"얘들아, 이제부터 무기 훈련을 교육하겠다. 마음에 드는 무기를 하나씩 집어 보겠니?"
책상 위에는 각종 무기가 놓여 있었다.
엘프들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인 활부터 단도, 장검, 쌍검, 양손 검까지 많은 종류의 무기가 즐비해 있었다.
"저는 이걸로 할래요."
"저도요."
"내가 먼저 찜한 건데?"
"내 거라고! 건드리지 마!"
어린 엘프들은 화살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위의 거의 모든 엘프가 활을 주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은 활이 좋은 무기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파고 들어가 있던 것이다.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한 물건이에요.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선택하도록 하세요."
활 쪽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어린 엘프들 중 유독 한 명만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타르가?"
혼자 쌍검 앞에서 있는 엘프의 이름은 타르가였다.
"네, 선생님."
"타르가는 이 무기가 좋니?"
"저는 이게 좋아요."
엘프들은 보통 몸놀림이 좋다.
물론 그중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 몇몇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타르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까지 술래잡기라는 명목아래, 아이들의 움직임을 교정했다.
더욱 빨리, 더욱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길을 닦아 주면,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점점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놀이를 하는 와중에 가장 탑을 찍은 녀석이 바로 이 타르가라는 녀석이었다.
친구들에게 절대 잡히지 않고, 자신만의 행동 패턴도 생겨났다.
널따랗게 뛰어다닐 수 있는 대로로 도망치는 아이들을 몰아넣고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바를 이룰 정도로 머리 역시 명석했다.
선생은 이 아이가 당연하게 활을 쥘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사냥꾼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추격에 능하고 덫을 놔 사냥감을 기다린다.
하지만, 아이가 택한 것은 쌍검이었다.
"이게 왜 좋아?"
"직접 상대를 할 수 있어서 좋고, 한 쌍으로 돼 있어서 효과적일 것 같아서요."
타르가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수준의 실력이라면 멀리서 공격하는 이가 유리하다.
근접전으로 가기 전에 목숨을 앗아 가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실력이 다르다면?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이는 근거리로 이기기 힘이 들었다.
"선생님, 전 이게 좋아요. 이걸로 하고 싶어요."
"그래, 타르가 마음대로 하렴."
* * *
'그때는 그랬었지.'
잠시 과거를 떠올렸던 타르가는 다시 쌍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네가 희망이라고 몇 번이고 말해도 부족한 것 같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부디 잘 부탁하네."
"꼭 마을의 안정을 되찾도록 하겠습니다."
타르가는 인사를 꾸벅하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쌍검을 가지고 밖으로 나섰다.
"후우."
그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봉인했던 힘을 해제하는 순간부터 조금씩 조금씩 그 힘이 빠져나간다.
따로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남겨진 시간은 대략 어느 정도 되는 거지?'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하늘에 만월이 차오르고 있었다.
저 달이 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때가 작전 개시의 시간이었다.
"이제 출발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보통 언데드들은 낮과 밤 중 밤에 전투력이 조금 더 상승한다.
밤에 작전을 가져가는 것은 일종의 부담을 안고 가는 것이지만, 최후의 최후까지 버텨 내며 미룬 결과가 이것이었다.
당장 말고는 더 이상의 여유 시간이 없었다.
'조금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낮에 이동했을 텐데.'
마음의 아쉬운 소리를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말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다른 해결책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준비는 모두 끝이 났습니까?"
타르가를 향해 물어오는 태욱이었다.
"네, 모두 끝났습니다. 그럼 이동하시죠."
그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 * *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접근을 한다고 했는데, 이미 언데드들이 위치를 발견한 듯 순식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어엉."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오는 구울을 타르가는 단숨에 양단(兩斷)했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퍽.
퍼퍽.
그와 동시에 은비가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엑스 바이브레이터."
-엑스 바이브레이터(Axe Vibrate).
지면을 강하게 충격해 대지를 흔들고 중심을 잃게 만드는 액티브 스킬.
다수 전투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지만, 살상 능력은 상당히 떨어지는 스킬이었다.
다만 적을 죽여야 끝나는 전투와는 다르게 오늘의 목적은 하나였다.
의심 부위에 있는 저 커다란 물체.
시체로 쌓아 올린 것인지 주변으로 삐쭉삐쭉 솟아 있는 커다란 봉분 같은 곳을 향해 이동해야 되는 것이다.
콰광.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은 은비의 도끼와 함께 전방에 서 있는 구울들이 중심을 잃은 채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지금!"
앞에 서서 길을 연 은비는 동료들에게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와 동시에 동료들은 목적지까지 깔끔하게 열려 있는 곳을 향해 뛰었다.
"다시 한 번!"
"엑스 바이브레이터."
은비는 몇 번이고 바닥을 내리찍었다.
쿵.
길이 열리면 그곳으로 또다시 뛰어드는 행동이 반복됐다.
너무 많은 언데드가 길목을 막고 있었기에 한참 후에나 도착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은비의 활약으로 예상 시간보다 더욱 빠르게 봉분 근처에 도착했다.
가까이 다가서니 스산한 기운이 피부를 타고 몸속으로 침투하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이제 시작이야."
태욱은 뒤를 돌아 하나의 스킬을 쏘아 냈다.
"썬더 스톰!"
엘프 장로의 시그니처 스킬.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는 마법을 태욱이 구현해 낸 것이다.
물론 장로와 같이 세세한 컨트롤은 불가능했고 그 크기 또한 차이가 났다.
하지만, 지금 태욱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최대한 추격을 느리게 만들어야 돼.'
어차피 구울과 다른 언데드의 이동속도는 상당히 늦었다.
입구에 커다랗게 구멍이 난 듯이 쓱 하고 사라진 빈틈을 메우고 들어오는 데는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다.
태욱은 이곳에 와서 썬더 스톰을 사용할지 여부를 고민했다.
'숨길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이것저것 가려 가면서 이 임무를 수행할 수는 없었다.
태욱의 손에서 뻗어 나가는 마법을 확인하는 순간 타르가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