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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빨로 지존 헌터-99화 (99/146)

# 99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3화

"또 다른 재앙인 것인가?"

마왕의 힘을 강제로 억누르고 힘겹게 일어선 과거의 영웅.

그들은 가까스로 마왕을 마계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임무를 마친 것처럼 바로 한 줌의 모래로 뒤바뀌었다.

과거의 힘든 경험이 장로에게는 선명하게 기억됐다.

"언데드들로부터 마을을 지켜 낸다."

이제 더 이상 전장에서 덜덜 떨던 어린 엘프는 사라졌다.

한 마을을 이끌 정도로 크게 성장했고 전투 능력도 뒤지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마을을 지켜 내겠다.'

그의 눈에는 신념이 보였다.

마을을 잃고 전전긍긍 뿔뿔이 흩어졌던 과거의 엘프들.

고통에 몸부림치던 엘프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절대로 잊지 않도록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전투는 시작됐고, 끝에는 어떤 마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마을의 위험을 떨치고 있는 악의 무리를 위해 나서자!"

엘프들은 장로의 목소리에 힘입어 전투를 벌이는 마을 밖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목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검은 형태의 언데드들이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네, 이놈들!"

엘프 장로의 눈에는 분노가 서렸다.

언데드의 약점.

성(聖).

뢰(雷).

물론 화(火) 계통과 수(水)와 같이 5대 원소의 마법이 그들에게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성스러운 기운과 강한 전류를 내뿜는 것 두 가지다. 더욱 큰 시너지를 발생시킨다.

장로의 주변에 있는 마나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장로의 손에 쥔 스태프의 머리 방향으로 쏟아졌다.

"썬더 스톰!"

강력한 전력계 마법인 썬더 스톰.

언데드들의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금방이라도 번개가 떨어질 정도로 스파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파직.

구름 내부에서 생성되는 전류는 이윽고 바닥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카카카카캉.

콰카강.

썬더 스톰은 발동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제멋대로 날뛰려는 전류를 컨트롤하는 세밀한 조작이 어려운 것이다.

보통은 아군이 뒤섞여 있는 전장 위에서 번개를 내리꽂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였다.

대마법사도 세세하게 컨트롤 하는 데 많은 심력을 소모하는 것보다는 다른 마법을 준비해 터뜨리는 것이 효과적인 것이다.

엘프와 인간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장로의 곁에 있는 다른 정령들이 그의 컨트롤을 보조하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마법을 발동시킨 것이다.

세간엔 이렇게 알려져 있다.

같은 속성이 아닌 다른 속성의 정령들은 서로를 배제한다.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이야기다.

물론, 불의 정령이 물의 정령을 싫어한다와 같은 예를 들면 맞는 이야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한다.

대지의 정령과 물의 정령이 친하게 지내는 것.

불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이 서로를 좋아하는 것.

아직 인간들에게 확인되지 않은 서로의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5대 속성이라고 부르는 것도 인간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 여러 가지 속성을 지닌 정령들도 물론 존재한다.

엘프 장로가 계약을 맺은 정령은 번개, 바람 그리고 물의 정령이다.

모두가 전력 계통에 친화력을 지니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전류 통제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전류들은 엘프 장로가 이끄는 방향으로 능숙하고 편안하게 목표물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다.

콰직.

콰드드드득.

"크르르르릉."

전력계 마법이 정통으로 몸을 통과하는 순간 근육이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부르르르르르.

근육을 지탱하는 신경계가 전류 타격을 받아 근육의 축소와 이완의 행동을 하는 데 제동이 걸린 것이다.

한 번에 쭉 응축되는 것도 아니고 힘이 풀려 풀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짧은 순간 동안 수십, 아니 수백 번의 신호가 뒤바뀌니 그대로 멈춰서 부들부들 진동만 떨고 있었다.

언데드들을 제자리에 멈춰 세우면 마지막 뒤처리를 하는 것이 타르가였다.

엘프 장로의 움직임 한 번에 억지로 전장을 밀고 들어오던 언데드들의 행동에 제약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장로의 마법이 펼쳐지자 언데드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언데드들은 공포를 모르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는 그들이 다시 충원되기도 전에 모두 쓸어버리니, 멀리에서 보는 모습은 언데드들이 뒤로 후퇴하는 것 같은 일시적인 착각에 빠진 것이다.

기세를 잡아 가던 엘프들의 전투는 그들의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듯 보였다.

대규모 전투의 기본은 기세였다.

우리가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투를 벌이는 것과 패배를 직감하고 전장에 나아가는 병사들은 그 힘을 발휘하는 정도가 달랐다.

강한 마법을 통한 선수를 친 엘프들은 유리한 고지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욱 강하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점점 전장은 밀고 올라가고 있었고, 엘프들은 자신이 화살이 언데드들에게 먹혀 들어가는 것이 눈에 보이니 쏘아 내는 화살의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휘휘휙.

휘리릭.

하늘에 있는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화살이 구울에게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푸욱.

일시적인 제지.

순간적으로 행동이 멈추는 것만으로 화살의 목적은 완료한 것이었다.

순차적으로 근거리 엘프들이 관절을 자르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머리를 부수는 연속되는 행동이 자행됐다.

퍼석.

뼈 무더기가 강한 힘을 버티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자, 다 덤벼라!"

호기롭게 앞에서 전투를 벌이는 엘프가 외쳤다.

그의 단발마 같은 음성은 그것이 마지막이 됐다.

휘이이익.

푸슉.

언데드의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엘프의 심장을 관통한 것이다.

방심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가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다.

전투를 하면서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다.

일시적으로 몸에 생기는 고통을 숨기고 계속해서 힘을 쏟아 낼 수 있도록 만드는 생체 물질.

그것이 엘프 스스로가 한계까지 몸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화살이 날아올 때, 눈치를 채고 몸을 재빠르게 뒤로 빼려고 움직였지만, 근육의 일시적인 과부하가 그를 멈춰 서게 만들었다.

화살은 정확하게 심장을 관통하고 그대로 엘프는 차가운 바닥으로 쓰러졌다.

"안 돼!"

"토리코!"

그와 친하게 지내던 몇몇은 그의 이름을 울부짖었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전장에 미세한 균열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멍하니 엘프들의 전투를 지켜볼 생각이 없었던 태욱은 전장에 합류했다.

눈앞에 적이 나타났는데 망설일 이유 따위는 없었다.

몬스터.

자신의 욕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녀석들.

물론 인간도 그러한 욕구에 맞춰 움직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지라는 개념이 있었다.

대화를 통해 차분하게 풀어갈 수 있다는 점 또한 몬스터와 인간이 다른 이유였다.

그러한 면에서 엘프와 인간은 비슷한 생물이었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것을 해결할 방안을 검토하는 것 또한 이지를 가진 생명의 존재 이유였다.

하지만, 저기 새까맣게 몰려 들어오는 언데드들은 그런 이지가 없었다.

"우리도 같이 싸운다."

태욱이 결단을 내리자, 순식간에 전투 모드로 돌입하는 동료들이었다.

"그래, 오랜만에 싸우네. 그동안 몸이 좀 쑤셨는데 덤벼 봐라!"

호기롭게 앞으로 튀어 나가는 은비.

"전투 준비."

스스로 장비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지원.

"얘들아 부탁해."

소환수를 이용해 전투태세를 갖추는 영리.

이미 최전방으로 뛰어나간 금강철인.

모두가 한뜻이 돼 엘프가 전투를 벌이는 전장으로 뛰어나갔다.

"가자!"

태욱이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엘프들의 사이사이로 들어가 주변과 동화되기 시작했다.

'아직 썬더 스톰은 사용할 수 없어.'

엘프 장로가 사용한 대규모 마법.

정확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기에, 이렇게 혼잡하게 뒤섞인 곳에서 사용하기는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만약 숙련도가 높았다면 적극적으로 스킬을 쏘아 댔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엘프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어.'

아직 재대로 스킬을 활용해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쓴다면 예상치 못한 피해가 일어날 것이 자명했다.

"크큭."

시체 썩은 냄새를 풍기며 태욱에게 접근한 구울을 단번에 쳐 냈다.

퍽.

하늘을 수놓듯 공중으로 솟구친 구울에게 화살 비가 쏟아졌다.

파파파파팟.

연계 동작이라도 해도 믿을 정도로 일말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알고 이러는 건가?'

인간들이 도움을 준다는 것을 인식하고 화살을 쏜 것인지, 아니면 정확한 목표물을 포착하면 반사적으로 화살을 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곳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태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래에, 사람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

마왕의 힘 앞에서 힘에 굴복하지 않고 노력하려는 마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자신의 터전을 지키는 일.

안전하고 밝은 미래.

지키고자 하는 결의.

자연스럽게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으니 협동이 되는 것이었다.

엘프와 언데드의 전투에 하나의 일원으로 포함됐다.

"하합!"

은비도 태욱과 다르지 않았다.

언데드 사이로 들어간 그녀는 주변에 있는 구울들에게 자신의 스킬을 쏟아 냈다.

"스핀 엑스!"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에 알맞은 스킬이었다.

-스핀 엑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적에게 회전력을 더해 파괴력을 향상시키는 기술.

주의 사항 : 오랜 시간 시전 시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개인의 능력에 따라 파괴력의 차이가 극명하다.

신체적 능력으로는 뒤지지 않는 은비였다.

그녀가 휘두른 도끼질에 언데드는 반토막이 나거나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파파파팍.

퍼퍼퍽.

후웅 후웅.

연속해서 회전하는 그녀를 막을 도리가 없으면서도 언데드는 폭풍의 눈으로 계속해서 물량을 쏟아 넣었다.

'으윽.'

점점 주위를 둘러싸는 구울들의 숫자에 호기롭게 회전하던 그녀의 움직임이 점점 둔화되기 시작했다.

퍽. 퍽.

"하하합!"

휘릭 퍼억.

마치 기관총을 연사로 놓고 쏘아 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던 것과 달리 빠르게 지쳐 나가는 은비와 같이 점점 반복되는 소리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안 돼. 더 빨리.'

가까스로 힘을 내 봐도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언데드의 물량에 결국 은비는 제자리에서 회전을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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