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2화
태욱 일행은 타르가가 남긴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저기, 저긴가?"
드워프 마을을 처음 도착했을 때, 웅장한 방책과 더불어 마을의 경계를 인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엘프들의 마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숲속 한가운데 있는 작은 오두막집 같은 분위기였다.
인위적인 건물이 아닌 자연과 동화되는 친화적인 건축물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엘프와 드워프는 너무 많이 차이 나네."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은 은비의 말에 지원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신호기의 불빛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지원의 모습을 눈치챈 영리는 은비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언...... 니."
입모양으로 뻐끔뻐금하는 영리의 모습에 은비는 고개를 돌렸다.
"미, 미안."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때문에 지원의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른 것을 잘 알았다.
"일단 초대 아닌 초대를 받았지만, 너무 조용한 것 같은데?"
화재를 황급하게 돌린 지원이었다.
시무룩하게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다고 해서 드워프들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지금 찾아가는 중이었다.
"잠시 방향이 틀어졌지만, 금방 갈 수 있을 거야."
어느새 은비는 지원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잠시 정지."
태욱은 천천히 접근을 하는 와중에 제자리에 멈춰 섰다.
'여기가 일종의 경계선 같은데.'
뭔가 미묘하게 다른 구역.
바닥에 놓여 있는 나뭇잎 방향이 달랐다.
제멋대로 흩뿌려져 있었던 것과는 달리, 꼭지가 일정한 방향을 향해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왜? 더 안 들어가?"
"누군가 우리를 찾으러 오겠지. 우리의 접근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바람 소리에 묻혀 이따금씩 들려오는 종소리를 태욱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엘프의 스킬 덕분인 건가?'
태욱이 복사한 엘프의 스킬.
숲에서의 이동속도를 올려 주고 회복력과 반사 신경을 향상시키는 줄로만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다른 부가적인 효과도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온 것을 알고 있나?"
"저기 누가 오는 것 같은데?"
멈춰 서서 기다린 지 채 5분이 흐르지 않았다.
빠르게 자신들을 찾아오는 엘프들의 모습에 지원과 은비는 깜짝 놀랐다.
그때였다.
태욱의 귀에 들리는 종소리가 이전과는 달랐다.
땡땡땡땡.
여유롭고 일정한 시간을 두고 울리던 알림 소리가 갑자기 다급함을 알리고 있었다.
"뭐, 뭐지?"
엘프 마을의 경고의 종.
위협감이 없는 누군가가 찾아왔을 때는 천천히 그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고 나중에 울린 빠르게 반복되는 소리.
그것은 마을에 위험 요소를 발견했을 때 울리는 소리였다.
"전투 준비 태세."
태욱은 동료들을 향해 외쳤다.
반사적으로 전투를 준비하는 동료들의 행동은 지체 없었다.
늘 있던 일이었고, 태욱이 전투 준비라고 말하는 순간 일체의 여유가 없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었다.
"우리가 왔던 길을 따라온 것 같아."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봤다.
일행이 전투 준비를 끝내는 순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을 눈치챘다.
"뭐지?"
일반적인 몬스터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아니었다.
'언데드.'
분명 검은 기운으로 신체를 움직이는 녀석들이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이곳으로 왔지? 그것보다 언데드가 벌써 나타난다고?'
빠르게 바뀌어 가는 미래를 보고 태욱은 계획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하지만, 빠르게 당겨진 미래는 이미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있었다.
'안일했다.'
드워프를 찾을 생각만 했지,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적어도 주변의 환경이나 다른 헌터들의 성장을 보고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자신의 안일함을 탓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물론, 엘프 마을에 피해를 주는 것은 더욱 반대고.'
등 뒤를 살피자, 저 멀리에서 엘프들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몬스터들이 풍기는 악취가 장난 아니군."
어느새 태욱의 곁으로 다가온 타르가였다.
"미안합니다. 저희가 일부로 계획한 것은 아닌데."
의심을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태욱 일행에게 큰 피해를 입고 서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모든 이유가 그들에게 쏠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타르가는 고개를 내저었다.
"일부로 하지 않았다는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저들과 협업을 했다면, 인간들에게서 악취를 느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시취에 시 자도 나지 않았다.
스스로 몸을 청결하게 하더라도 몸에 배인 시취는 영원이 닦아 낼 수 없는 것이다.
"일단은 마을로 녀석들을 들일 수는 없습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태욱은 망설이지 않고 나섰다.
언데드들은 작은 숫자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지치지 않는 체력.
낮과 밤을 무시하는 지속적인 공세.
각자의 전투력은 낮을지라도 쉬지 않고 공격을 하는 모습.
모든 것이 눈에 선명했다.
엘프 마을에 좋지 않은 감정?
그런 것 따위는 없다.
오히려 언데드들이라면 태욱이 치를 떨 정도인데, 적의 적은 아군이다.
적어도 태욱의 입장에서는 언데드보다 엘프들이 더 이로우면 이롭지, 언데드들이 이로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타르가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마을의 위험입니다. 스스로 막아 내겠습니다."
물론 타르가 혼자 막아서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동안 다른 엘프들이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언데드들이 조금씩 접근을 하는 동안 엘프들은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휘리리리릭.
휘릭.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화살들은 모두 언데드의 머리에 명중했다.
푹.
푸푸푹.
하지만 괜히 언데드가 아니었다.
화살을 맞고서 그 자리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날아오는 화살을 머리로 받은 채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언데드를 상대해 보지 못했던 어린 엘프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화, 화살을 맞고 다가온다."
"쓰러지지 않는다니?"
경험이 많은 노련한 엘프들은 어린 엘프들을 다독이며 외쳤다.
"관절을 맞춰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라."
"머리 말고 무릎, 팔꿈치, 어깨 주요 관절 부위를 맞춰라!"
그나마 언데드들을 상대해 본 노련한 엘프들이 어린 엘프들을 관리하며 연신 화살을 쏘아 대고 있었다.
타르가 역시 언데드들 사이로 들어가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었다.
촤악.
그가 휘두른 칼을 타고 구울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뼈마디를 연결하는 근육이 뜯겨져 나가자, 구울들은 그 자리에 풀썩 하고 쓰러졌다.
난도질하는 타르가의 움직임 한 번, 한 번에 쓰러져 나가는 건 예사고 뒤에 있던 다른 언데드들은 풍압에 밀려 뒤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엘프의 힘이 이 정도인가?'
차분하게 전장을 정리해 나가는 힘이 차원이 달랐다.
물론, 태욱과 은비가 타르가 정도의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행동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 줬기에 감탄을 한 것이다.
아무리 날고 긴다 하는 타르가와 엘프들이 사력을 다하고 있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전선은 마을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썬더 스톰!"
그때였다.
언데드들에게 강력한 파괴력을 작용하는 전격계 마법이 터져 나왔다.
콰가가각가강.
하늘에서 커다란 번개가 떨어지고 그 전류들은 교묘하게 언데드들 속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타르가를 피해 전류를 쏟아 내고 있었다.
첫 번개를 시작으로 연속해서 커다란 전류가 바닥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콰카카카카캉.
콰강.
커다란 번개 폭풍 속에서도 타르가는 일절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을 타고 전류가 들어오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지만, 전류가 이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교묘하게 다 피해 나갔다.
'타르가의 움직임이 좋은 것인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으니 금방 결론이 나왔다.
'시전자의 능력이 뛰어나다. 적어도 나 이상이다.'
지금까지 손에 닿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마왕뿐이라고 생각했다.
직접 대면을 한 사람은 오직 태욱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엘프 장로가 쏘아 내는 마법을 보고 그 역시 자신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라고 생각했다.
'근데, 왜 엘프 장로가 마지막 전투에서 나타나지 않았지?'
태욱은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어째서 엘프 장로가 회귀 전 있던 마지막 전투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인지.
그가 있었다면 조금 더 버텨 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들었다.
'아, 그렇군.'
태욱은 스스로의 생각에 버텨 낼 수 있을 것이란 게 머릿속에 박히자 암담한 생각이 자꾸자꾸 차올랐다.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장로가 전투에 참여했다고 할지라도 전투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마왕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이다.
쏟아지는 암담한 상황에 말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어.'
적어도 태욱은 아직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고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보관하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장작을 집어넣을 것이다.
그것이 태욱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일단은 장로의 스킬부터.'
태욱은 장로가 다시 한 번 쏘아 내려는 스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썬더 스톰!"
장로의 영창과 동시에 태욱의 입이 달싹거렸다.
"흉내 내기."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쏘아 낸 스킬은 태욱의 품으로 조금씩 조금씩 파고들고 있었다.
엘프와 언데드들의 전쟁이 어쩌면 태욱에게 있어서 뛰어오를 큰 발판이 됐다.
'천천히 조금씩 나아가면 돼.'
태욱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미래에 있을 마왕과의 전투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뜬구름 잡던 회귀 전과 회귀를 하자마자의 나약한 태욱에서 한 걸음 더 성장한 것이다.
* * *
엘프 장로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언데드에 깜짝 놀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이미 재빠르게 다른 엘프들이 뛰쳐나갔지만 여전히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마을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언데드와 엘프들의 전쟁은 꽤나 오래전에 이뤄졌다.
마왕이 등장했을 시기.
그들의 군단이 세상을 짓밟기 시작했을 때, 엘프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마을에 피해가 없다면 마을 밖으로 나아가 다른 이종족들과 동맹을 맺고 전투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 안 생명의 나무만 아무런 피해가 없다면 그들이 나설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언데드들이 점점 세상을 점령해 나가면서 엘프들의 숲도 마왕 군단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전장 한가운데 지금의 장로.
언데드들과의 전투 경험이 없던 어린 장로가 전투를 벌였고, 끝내 막아 내지 못했던 엘프들은 모두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생명의 나무를 찾고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어언 300년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