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1화
Chapter 1
타르가는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두려운 마음이 생겨났다.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사람이 있는 곳은 생활 소음이라는 것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숲 속에서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혀 나는 소리와는 다르게, 생동감이 느껴지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하지만, 타르가가 느낄 수 있는 소리는 오직 자연의 소리뿐이었다.
'마을에 무슨 변고가 있는 것인가?'
이미 뒤에서 쫒아오고 있는 태욱 일행에게서도 의심의 끈을 아직 놓지 않았다.
'분명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
인간을 본래부터 불신하고 있는 타르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욱은 뒤에서 착실하게 뒤쫓아가고 있었다.
"가, 같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태욱과 타르가를 미쳐 쫓아가지 못한 영리는 결국 소리를 내며 그들을 멈춰 세우려 했다.
"그럼 흔적을 남겨 둘 테니, 쫓아오시게."
타르가는 한시가 바쁨으로 흔적을 남겨둘 테니 쫓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출발해 버렸다.
"분명 이렇게 이동하다가, 몬스터를 만난다면 우리가 가장 취약할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영리를 바라보는 태욱의 표정이 지원에게 읽혀 버렸다.
"아, 아무래도."
태욱은 머쓱한 듯이 머리를 털어 내며 곤란한 표정을 금세 감춰 버렸다.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지. 짐이 돼 버리면 안 되니까."
전투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마을에 위해가 되는 행동을 해 버리면 짐이나 민폐가 돼 버린다.
지원이 걱정하는 것은 그런 부분이었다.
"어쩌면, 마을에 있는 다른 엘프들을 보여 주기 싫어할지도 모르겠어."
"그런가요?"
"응, 우리가 지칠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빠르게 이동한다는 건 지치기를 의도했다고 할 수도 있지."
절래절레.
태욱은 그것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엘프는 마을을 지키는 경비대장이야."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어."
본론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모두가 아는 이야기라며 퉁명스럽게 은비가 받아쳤다.
"경비대장, 마을의 위기가 닥쳤다.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아?"
태욱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분명 타르가는 안내를 하는 임무를 잠시 맡았지만, 그의 본분은 바로 마을을 위험으로부터 지켜 내는 일이다.
갑자기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다면?
자신들을 배려해서 천천히 이동한다?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경비대장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놔야 될 것이다.
태욱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타르가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지금 그만큼 큰 위기라는 거야?"
"아까 사이클롭스도 단번에 처리했잖아."
여유롭게 사이클롭스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모두가 봤기 때문에 엘프들의 전투 능력을 모두가 알게 됐다.
"만약, 그를 넘어서는 전투 인원이 마을에 없다면?"
다들 아차 하는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그저 이곳에 있는 자신들은 외지인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탓이다.
외지인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마을에 있는 동료들이다.
엘프들은 인간들보다 폐쇄적이기 때문에 약간은 다른 패턴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히려, 지금껏 우리가 거추장스러워서 시간을 잡아먹었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우리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은데."
"괜찮아, 우리가 마음을 쓰고 있는 건 충분히 느끼고 있는 것 같으니까."
제 나름대로 해석해서 결론을 내린 은비와 지원이었지만, 태욱은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분명 우리에게 긍정적인 태도는 아니었어.'
적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 마음이 없다고 해서 호의적인 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마음이 이분법적으로 딱 나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회복되는 대로 찾아가 보자."
태욱은 휴식을 취하며 주변을 살폈다.
경계병들이 모두 마을로 돌아갔다면, 언제라도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확률이 있기 때문이었다.
* * *
열기가 후끈후끈 뿜어져 나오는 풀무 앞에서 스틸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솟구쳐 오르는 불길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의 손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깡.
깡.
깡.
모루 위에 철 덩어리를 올려 두고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망치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제, 수량은 거의 다 된 것인가?"
그의 목소리에는 한 줌의 수분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모래사장에 모래가 굴러다니듯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메말라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매진해 무구를 만들었다는 것 정도는 눈칫밥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얼마나 걸린 거지?"
눈의 초점은 풀려 가고 있었고, 아무도 그의 곁에 서 있지는 않았다.
"사흘....... 아니 그 이상인가?"
터벅.
터벅.
마치 마지막 불꽃을 찬란하게 태우고 꺼져 가는 불씨와 같은 모습이었다.
촤악!
그때였다.
등 뒤에서 차가운 물이 한 바가지 쏟아졌다.
"정신, 정신 차려!"
황폐해진 스틸에게 물을 뿌린 것은 바로 텅스텐이었다.
처음 대장간에 드워프들이 잡혀 왔을 때와 지금 같은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쉬지 않고 불을 내뿜는 풀무였다.
여러 곳에 퍼져 나가 있는 다른 드워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모루 위에는 가지런히 정과 망치만이 놓여 있었다.
급하게 어디로 간 것도 아닌데, 많은 수량의 무구들을 해결하려면 열심히 해도 시간이 모자랄 터인데, 다른 드워프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하나를 암시할 뿐이었다.
마왕이 원하는 납기일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그 담보로 생명을 빼앗아 갔다는 것이 알 수 있었다.
지금 모루 위에서 망치를 두드리는 드워프들은 생명을 가진 생명체라고 부르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기계처럼 연속된 동작을 반복하는 것일 뿐, 더 이상 장인 정신에 의해 특별한 무구를 만들어 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 그것을 넘겼을 때.'
스틸은 자신의 부족원들을 지키기 위해 넘겼던 채찍을 떠올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마왕은 더욱 고품질의 무구를 원했다.
언제든 목줄을 강하게 조이면 튀어나올 수 있는 공산품과 같다고 생각을 했는지, 더욱 드워프들을 강하게 압박할 뿐이었다.
하지만, 무구라는 것이 쉽게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일정한 영감을 받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 몇날 며칠을 쉼 없이 움직여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탄생을 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원하기만 했다.
그렇게 끌려 나간 드워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가 힘을 내야지."
암흑만 가득한 미래가 자명하지만 텅스텐은 그러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
마왕의 노기로부터 살아남은 두 명의 드워프.
서로가 서로의 등불이 돼 주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한쪽의 불씨가 꺼질 때쯤이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장작을 집어넣고 공기를 불어넣듯이 서로가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됐지만, 점점 그 상황은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한쪽이 억지로 쓰러지려는 다른 기둥을 지지하는 정도.
올곧게 서 있는 기둥까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무리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혼자서는 버텨 내지 못하는 것이다.
"스틸! 스틸, 정신 차려!"
"터......, 텅......, 스......, 텐......."
말을 하는 것까지 어눌해진 드워프 촌장이었다.
하지만, 아직 눈빛은 죽지 않았다.
적어도 텅스텐과 스틸은 자신의 정신이 날아가지 않을 때까지는 서로를 지킬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 * *
타르가는 마을에 도착을 하자마자, 다른 엘프들을 찾았다.
'어디 있지? 혹시 대피소로 이동했나?'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떨어진 엘프들을 안전한 곳으로 제일 먼저 이동시켰다.
물론 그 엘프들 중에서는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엘프도 있었고, 점점 힘을 잃어 가는 엘프도 있었다.
그들을 다른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자연의 부름에 절로 대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엘프들의 사상이었다.
"어디, 어디 있는 거야?"
타르가는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엘프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휙.
휙.
정신없이 풍경이 타르가를 향해 쏟아지는 와중에서도 타르가는 작은 흔적들을 발견했다.
'일정한 패턴을 따라 움직였군.'
마을에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생긴 움직임.
만약 몬스터들이 마을을 습격했다면, 적어도 엘프들의 보폭에 다급함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엘프들의 발자취에는 다급함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왔는가?"
등 뒤에서 엘프 장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습니다."
타르가는 재빨리 한쪽 무릎을 꿇고 장로에게 예를 갖췄다.
"그럴 필요는 없다. 내 다른 경비병에게 소식을 전달받았다."
"장로님의 허락 없이 봉인을 해제했습니다."
이미 타르가를 보자마자 장로는 알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봉인을 해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힘이 부족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더욱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 타르가는 정진하겠다고 말을 내뱉었지만, 일순간에 느껴지는 파괴적 성향을 숨기지 못했다.
"전투를 하면서 희열을 느꼈느냐, 아니면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꼈느냐?"
조금씩 변해 가는 타르가를 장로는 바로잡기 위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가 생각해 결론에 도출해야 성장을 하는 법이다.
마치 봉인돼 있던 힘을 해제하면서 만들어 낸 강함에 취하는 순간, 평온하고 안정감을 위해 움직이는 엘프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두 가지 감정을 다 공유했습니다."
거짓을 말하느니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타르가였다.
만약 강함에 조금 더 취해 있다면 이러한 대답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감정이 왜 느껴졌는지 파악했는가?"
"물론입니다."
타르가의 대답에 장로는 한숨 내려놨다.
적어도 자신이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냉정하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내를 부탁한 인간들은 어떻게 된 것이냐?"
장로가 특별하게 허락했던 인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타르가에게 물었다.
"인간들은 지금 마을로 오고 있습니다."
"마을로?"
장로가 되물었다.
"네, 마을에 비상 상황이 생긴 것 같아서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들이 마을에 들어온다......."
장로는 생각에 잠겼다.
분명 생명의 나무로부터 이상 현상이 감지됐다.
종합적으로 내린 결정이 인간들을 나무로부터 떨어뜨리려고 했던 장로의 생각이었다.
'정녕 그들은 생명의 나무를 원하는 것인가?'
마을의 위기, 발전 등을 알려 주는 생명의 나무였다.
갑자기 강해지는 기운.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
그것이 앞으로의 부정적 상황, 긍정적 상황을 알려 주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 발생한다는 신호탄일 뿐이었다.
인간들이 마을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아 재빨리 보냈지만, 이렇게 되는 것도 다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마을로 들여야겠지."
"죄송합니다. 제 판단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니야, 자연의 순리가 그렇다니 어쩔 수 없는 것이지."
댕.
댕.
댕.
댕.
마을 부근에서 규칙적인 종소리가 들려왔다.
타르가가 마을로 들어온 방향이었다.
"인간들이 찾아왔나 보군."
"제가 가서 다시 마을 밖으로 안내를 하겠습니다."
마을에 들이지 않은 채, 되돌려 보내려고 했던 타르가를 장로가 말렸다.
"마을을 도와주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왔는데, 그렇게 할 필요 없다."
"그래도 마을에 외지인을 함부로 들일 수는 없습니다."
타르가는 마을 입구에서 인간들이 저지당할 것을 예상하고 흔적을 남기고 쫓아오라는 말을 남긴 것이다.
마을 깊숙한 곳까지 인간들을 들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