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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빨로 지존 헌터-92화 (92/146)

# 92

회귀빨로 지존 헌터

- 4권 20화

휘리리리릭.

꽤 먼 거리에 있었는데도 마왕의 채찍은 마치 생명이 있는 뱀이 움직이듯, 정확하게 드워프의 목을 움켜쥐었다.

"크어어어억."

단숨에 목이 죄어진 드워프는 숨이 막히는 듯 자신의 목에 묶인 채찍을 손으로 풀어내려 버둥거렸다.

"내가 여기 있는 드워프들을 모두 죽이려 했지만, 네 녀석의 선물이 마음에 들어 이 녀석 하나로 끝내겠다."

"제, 재발."

마왕의 채찍의 목표는 바로 크리트였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거리며 바동거리는 크리트의 모습을 보고서는 마왕은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을 내리꽂았다.

"하하, 소중한 녀석이라도 되느냐?"

"저희 마을 장인들 중에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녀석은 없습니다. 제발 아량을 베풀어......."

스틸의 강력한 외침에 마왕이 채찍을 휘둘렀다.

휘리리릭.

수려한 나선을 그린 채찍은 목이 감겨진 크리트를 스틸의 앞으로 데려왔다.

후우우웅.

채찍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크리트는 공중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눈은 흰자를 보이기 시작했고, 전신에는 작은 떨림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질식사가 분명했다.

"제, 제발, 마왕님."

무릎을 꿇고 이야기하는 스틸의 앞에 크리트가 툭 하고 떨어졌다.

쿠웅.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는 크리트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파공음을 냈다.

"이것이 마지막 경고가 될 것이다. 앞으로 정해진 시간에 맞추지 못한다면?"

"......."

"......."

드워프들의 침묵과 더불어 시선은 모두 마왕을 향했다.

"이것으로 끝내지 않을 것이야."

힘을 잃고 쓰러져 가는 크리트의 모습은 드워프들이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할지 직접 보여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이곳에 있는 드워프들은 정해진 무기를 만들고 이곳에서 생명을 다할 것이다.

* * *

경계에 서 있던 엘프들은 인간들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꼈다.

"저게 어떻게 된 거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닌가?"

"다들 조용."

경계의 가장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타르가는 엘프들을 조용히 시켰다.

'인간의 행동이 이상하다.'

보통의 인간들이라면 위협을 가하면 이곳에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다.

물론,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녀석들은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듯 경계선 안으로 접근해 화살의 목표가 될 뿐이었다.

지금까지의 인간들의 패턴은 똑같았다.

겁먹고 도망가거나,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화살 꽂이의 표적이 되거나였다.

하나, 이번 인간들은 신기했다.

엘프들이 직접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을 시작으로, 더 이상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한 번이면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인간들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이상 반복될수록 경계에선 엘프들은 그들의 접근을 조금 여유롭게 생각해 냈다.

또다시 자신들에게 음식을 주기 위해 접근을 하는 것이지, 다른 의미가 없다고 판단을 하는 것이었다.

"또 경계선을 밟고 있어."

"괜찮아, 음식을 찾아 헤매는 것이겠지, 식물을 아프게 하는 행동들은 하지 않아."

엘프 경계병의 대화를 듣자 타르가는 잘못된 행동들이 생겨난다고 판단했다.

"크흠, 누가 그걸 판단하는 거지?"

타르가는 다른 경계 엘프들의 말에 뒤에 슬그머니 다가와 툭 하고 던졌다.

"네네?"

"누가 그런 경계를 서라고 했지?"

냉정한 타르가에 말에 경계병들은 군기가 바짝 들었다.

"죄송합니다. 평소에도 저들이 하는 행동이 지금과 다를 바가 없어서."

"우리의 임무는 뭐지?"

"......."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경계병들에게 타르가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우리의 임무는 뭐지?"

낮게 읊조린 그의 음성은 상당히 침착했다.

"마을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오는 인간들을 돌려보내거나, 사살하는 것입니다."

"그럼, 임무를 수행해야 되지 않나?"

"맞습니다."

경계병들에게 임무를 다시 한 번 일깨우고서는 타르가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등 뒤에서는 화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어디에서도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경고의 의미로 화살을 날려, 더 이상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타르가는 마을로 돌아가 지금까지 있던 일들을 모두 장로에게 보고했다.

"뭐 인간들이 이렇게 열매를 가져왔다고?"

장로의 눈은 쉬지 않고 과일들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으로 거둬들인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 하나 나무에 매달려 있던 것을 강제로 따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엘프의 특성을 아는 것인가? 고작 인간이?'

과거 인간과 활발하게 거래한 적은 있었다.

그것도 한때였을 뿐이지, 굳건하게 문을 닫아 버린 엘프 마을에서는 이제 희미해지는 기억이었다.

엘프 마을에서 희미해지는 것을 인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인간의 최대 수명은 길어야 200년이 되지 못한다.

반면 엘프의 최소 수명은 800년이 되기 때문에 적어도 엘프 마을에서 희미해지는 기억은 인간들의 40대를 거친 기억과 같아야 정상이었다.

"녀석들이 다른 말은 하진 않았는가?"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저희가 먹는 과실들을 모아 정확하게 경계선에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을 뿐입니다."

장로는 고민에 빠졌다.

자신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한 발판으로 행동을 하는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해야 됐다.

신중하게 판단을 해야 됐기 때문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장로의 뇌리 속에는 강하게 그의 흔적이 새겨졌다.

'아주 재미있는 인간이군.'

많은 경험을 겪은 장로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행동해 접근해 오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그의 뇌리 속에 새겨진 기억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 * *

약 10일이라는 시간 동안 태욱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과일을 구해, 경계선 근처에 쌓아 두고 오는 것이었다.

'이제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태욱의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지금까지는 모습을 숨기고 화살만 날려 대던 엘프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늠름한 청년을 보고 있자니, 헛수고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의미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지?"

날카롭게 날이 선 질문은 아니었지만, 그의 행동에는 금방이라도 화살을 날릴 듯이 활시위를 강하게 당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대화를 하기 위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대화? 인간이 대화를 할 줄도 안다는 말인가?"

타르가는 콧방귀 끼듯이 그의 말에 냉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태욱은 타르가의 눈을 마주 보고 피하지 않았다.

엘프들은 눈으로 진실을 구분할 수 있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태욱이었다.

굳이 엘프 마을에 있는 어떤 것을 욕심내는 것이 아니라는 증명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태욱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이었다.

오랜 시간을 통해 성장하는 엘프들은 경험을 통해 진실의 눈이 생기는 것이지, 아직 엘프치고는 젊은 나이인 타르가에게는 진실의 눈이 생겨나지 않았다.

"인간이 잘도 내게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는군."

"저는 숨길 것이 없으니까요."

엘프의 습성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하는 태욱이었다.

"앞으로 이런 경고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 무슨 의미인 줄 알고는 있겠지?"

"물론이죠, 이제는 화살의 목표가 아니라는 말 아닌가요?"

태욱은 타르가의 말을 오해하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경고의 화살을 날리지 않겠다는 말이다."

눈썹이 움찔거린 타르가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태욱은 뭔가 단단히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지? 우리에게 마음을 연 것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폐쇄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는 엘프들이 마음을 쉽게 돌릴 수는 없었다.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줄 예상했던 태욱은 아차 싶었다.

"그 목표는 바로 이곳을 찾아오는 인간들이 될 것이오."

허탈한 마음이 품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래도 우리와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면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조심스럽게 그들의 의중을 떠봤지만,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숲속 깊은 곳으로 타르가는 들어가 버렸다.

"이걸 어쩌지?"

혼자 남은 태욱의 독백은 무척이나 힘이 없어 보였다.

* * *

다시 경계로 돌아선 엘프들은 타르가의 명령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구역을 나누고 그 안으로 들어오는 녀석들에게는 모두 경고 사격을 자행했다.

"일단 마을로 돌아가 보고를 하고 오겠소. 다들 삼엄한 경계를 부탁하오."

타르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보고의 시간에 맞춰 마을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장로에게 바로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빠짐없이 보고했다.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인간들은 저희의 경계에 과일을 가져다 놓고 돌아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래?"

장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대화뿐이라고 했습니다."

"대화가 목적이라고?"

"네, 제가 확인했을 때는 별다른 특이점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타르가의 이야기에 장로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인간의 말이 진실일까?'

아직 타르가에게 인간의 내면을 알아볼 수 있는 진실의 눈이 없었다.

이제 막 생성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거래에 유능한 인간이라면 숨길 수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지.'

"그 인간에게 안내를 할 수 있느냐?"

"물론입니다."

타르가는 고개를 숙여 가며 대답했다.

장로가 인간을 보자고 마음을 먹으니, 순식간의 그의 호위대가 자리를 잡았다.

"됐다. 나는 타르가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곳에는 경비병도 있다."

"하지만, 장로님."

곁으로 다가온 호위부장이 장로를 붙잡았다.

"이곳에서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 바로 나다."

장로의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엘프 장로는 그만큼 힘과 지혜가 있어야 받을 수 있는 직책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그의 발에 반박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 다녀올 테니, 내가 없는 동안 소중한 보물을 잘 부탁한다."

엘프 장로의 말에 모두 오른쪽 심장에 손을 올렸다.

착.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는 절도감이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장로님."

평이하고 담담하게 대답한 호위대장의 목소리는 강한 결의가 흘러넘쳤다.

"자, 그럼 앞장서게. 타르가."

"네, 장로님."

한 발 앞서 걸어 나가는 타르가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적어도 장로의 행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일 정도였다.

"이 풍경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엘프 장로는 과거 이곳에서 경계를 서던 과거를 떠올렸다.

자신 덕분에 다크 엘프와 같은 겉모습을 가진 엘프 마을이 탄생했으니 기분이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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