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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빨로 지존 헌터-91화 (91/146)

# 91

회귀빨로 지존 헌터

- 4권 19화

태욱은 엘프 마을을 통과하기 위해 그들의 환심을 사야 된다고 판단했다.

"주위에 과일이나 열매를 모아야겠어."

"과일이나 열매?"

"그건 뭐하려고?"

엘프들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과 같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살생을 지향한다.

물론, 자신의 마을에 들어오는 녀석들에게는 가차 없이 화살을 발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살생을 하지 않는다.

흔하게 과일 나무의 과실이라고 할 수 있는 열매들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이상 절대 섭취하지 않는다.

최대한 생명을 존중하기 위함이었다.

"과일을 나무에서 따지 않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만 주워 모아야 해."

"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은 결국 얼마 없다고."

은비는 태욱의 말에 의문을 가졌다.

과일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것도 있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들을 모은다면 금방이라도 한 무더기는 따올 수 있었지만, 태욱은 그것을 거부했다.

"우리는 지금 엘프의 호의를 사기 위해 이렇게 과일을 모으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정확하게 태욱이 왜 과일을 모으라고 했는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동료들의 물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게 한다고 엘프들의 환심을 살 수 있어?"

은비의 질문의 목적은 하나였다.

고작 이런 행동으로 정말 환심을 살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었다.

이걸 한다고 해서 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박혀 질문을 던졌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습성과 행태는 이해할 수 있다는 거지. 우리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라진다면 적어도 이야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태욱은 적어도 그들이 엘프라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을 했다.

만약, 다크 엘프들이었다면 정말 강행 돌파를 할 것인지 우회를 할 것인지 정했어야 했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으로 태욱을 바라보는 동료들을 향해 그가 외쳤다.

"나를 믿고 움직여 주면 안 될까?"

태욱의 간절한 말에 동료들은 주위를 살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

"......."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의 눈만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좋지?'

'틀린 이야기도 아니지만.'

'말을 듣고 잘못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바삐 돌아가는 눈동자 사이에서 서로는 어떤 전음(全音)을 사용한 것도 아니지만,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태욱의 말에 동조를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가장 먼저 은비가 입을 열었다.

"그럼, 뭐 어쩔 수 없나? 다 같이해 보자고."

어색한 듯 연기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영리가 지원 사격에 나섰다.

"그래요, 그래 항상 기사님 말씀에 틀린 게 없었어요."

"일단 움직여 보지."

쉬지 않고 금강철인 역시 한마디 보탬이 되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고마워, 다들."

지원은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사실 가장 고마워할 것은 바로 지원이었다.

태욱이 드워프를 찾아 헤매는 마음가짐과 그녀의 마음가짐은 달랐다.

마치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기분은 그녀가 가장 컸을 것이다.

그러니, 절로 감사의 인사가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동료들이 이렇게 움직여 주는데, 우리가 조금 더 힘을 내야 될 필요는 있을 것 같은데."

태욱은 지원의 곁으로 다가서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 * *

"여기 과일이 한 무더기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

은비의 목소리가 숲의 가까이에서 들렸다.

"너무 깊게는 들어가지 마, 그들의 경계선은 그들만 알고 있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까."

일정한 표식을 해 놓고 있지 않은 이상, 인간들은 엘프 마을의 경계선을 확인할 수 없었다.

최소한의 행동반경으로 열매를 찾아 모으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모으다 보니 시간은 걸렸지만, 어느 정도 요기를 때울 수 있는 정도의 양이 모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건가?"

만족스러운 양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모았다.

"글쎄, 일단은 해 봐야 알겠는데."

태욱은 모아져 있는 과일들을 모아, 다시 엘프들을 만났던 곳으로 이동을 했다.

"여기쯤이었나?"

엘프들에게 공격을 받은 장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여지없이 화살이 날아오겠지만, 더 이상의 접근은 멈췄다.

품에 안고 온 과일들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곤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엘프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보상이었다.

경계를 서고 있는 엘프들은 식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물론,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체적인 타격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소량의 식사만으로 오랜 시간 전투를 벌일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특별히 식사 시간을 따로 갖지 않아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도 생리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식(食).

그들도 충분한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허기지지 않아도 뭔가를 입에서 오물거린다든지 하며 혀로 맛보는 행위를 통해 엘프들도 충분한 행복감을 느낀다.

좋은 감정과 좋지 않은 감정으로 나뉘어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는 같은 선물을 하더라도 의미가 변색되기 마련이었다.

안 좋은 쪽에서는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친구가 주는 선물이었다.

아직 어느 한쪽으로도 색이 물들지 않은 상태에서의 대가 없는 선물은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태욱은 그들의 먹을 수 있는 것들로 선물을 준비한 것이었다.

자신들을 분명히 경계하고 있지만, 나쁜 마음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 아니다.

경계를 서는 것은 그들의 일이다.

악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태욱 일행을 막아서지 않는 것이다.

'이걸로 일단 대화라도 나눌 수 있게 되면 좋겠는데.'

태욱의 작은 바람은 자신도 모르게, 엘프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생명의 위협을 받던 인간이, 엘프들의 식량을 준비해 준다?

그것도 인간의 기준으로 선정된 것이 아닌, 오직 엘프들이 먹는 음식으로?

문화적인 차이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은 엘프들이 아직 인간에게서 보지 못한 행동들이었다.

인간들은 자신의 것을 나누지 않고, 욕심을 위해 다른 생명을 업신여기거나 빼앗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엘프들의 입장에서는 태욱의 행동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작은 변화로 엘프 마을에서는 커다란 후폭풍이 몰아쳤다.

엘프들은 매번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그들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항상 그래 왔기 때문에 경계를 서는 엘프들이 가장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됐다.

엘프 마을을 벗어나 밖으로 나서는 녀석들은 보통 경계를 서는 엘프들이 주축이 됐다.

그렇다 보니, 강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엘프들이 마을 경계를 서게 된다.

아무리 고르고 고르더라도 변질되지 않는 엘프들을 고르기는 힘이 들었다.

그러기에 항상 안전핀을 만들어 놓은 것이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장로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다.

태욱의 행동의 파동은 아주 작았지만, 잔잔한 호수 가운데에서 시작된 파장은 호숫가 끝으로 멀리 멀리 퍼져 나가고 있었다.

* * *

깡깡깡.

열기가 가득 차 있는 공간에 규칙적인 쇠 두르림 소리가 연속됐다.

깡깡깡.

쇠를 만지는 드워프들의 표정에는 예전과 같은 미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담긴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본래 드워프들의 장인 정신은 자유로운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다.

각자 만들고 싶은 무구를 만들어 특색을 집어넣으며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기본 틀에 박혀 있는 무구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도출해 내지는 못했다.

깡깡깡.

연속되는 두드림 속에서도 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드워프들의 모습을 지켜본 스틸은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걸 어쩌면 좋다는 말인가?'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드워프들이 가장 밝은 표정을 지을 때는 대장간에서 무구를 만들 때 나오는 표정이라고.

하지만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내는 드워프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결책이 필요해.'

스틸은 제자리에 멈춰 선 채로 고민에 휩싸였다.

그때였다.

열기가 가득 찬 대장간 안에 차가운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누구야! 누가 문을 연 거야!"

온도는 큰 역할을 한다.

약간의 온도 변화에서 내구성과 완성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작업을 하는 동안은 대장간 문이 굳게 닫혀 있어야 했다.

"크하하하하, 누구? 내가 누군지 묻는 것이냐?"

문 쪽으로 재빠르게 시선이 옮겨진 스틸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드워프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공포의 근원.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재빨리 고개를 조아리며 사죄하는 스틸은 다음으로 이어진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열심히 무기를 만들고 있으니, 이 정도는 내가 넓은 아량을 베풀어 용서를 해 주겠다."

스틸은 절로 폐 부속에 가득 찼던 공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가, 감사합니다."

"다만, 내가 마음에 쓰이는 것이 있어."

"그, 그것이 무엇입니까?"

냉소적인 웃음을 짓고 있는 마왕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고, 발끝을 바라보며 스틸이 물었다.

어떤 의미로 그가 이야기한 것인지는 알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마왕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질 않길 바라는 그의 희망이 담긴 질문이었다.

"너무 늦어지고 있어."

결국, 스틸은 원하지 않았던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장인이라고 하더라도 일순간에 많은 물량을 쏟아 내기는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고개를 조아리며 사죄를 표하는 스틸은 재빠르게 자신의 모루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옆에 펼쳐져 있는 기다란 채찍을 가지고 마왕의 앞으로 달려왔다.

"다른 무구는 늦어져도 지금 완성된 것이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기다란 채찍이 쥐어져 있었다.

벨제부브는 어떤 무기를 사용하더라도 숙련도는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그렇기에 특별하게 무기를 가리지 않지만, 항상 그의 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었다.

단순히 완성도 때문에 채찍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채찍의 특성이 자신이 전투를 벌일 때 가장 완벽하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마왕님께서 가장 마음에 들어 하실 만한 채찍을 만들어 왔습니다."

"오호 그래?"

"일단 이걸로 마음을 푸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시간을 조금만 더 내어 주신다면 최대한 물량을 맞춰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스틸은 마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마왕은 스틸에게 건네받은 채찍을 손에 쥐고 몇 번이고 흔들었다.

휘릭.

차악!

휘릭.

차악!

손끝으로 감겨 들어오는 움직임이 매우 마음에 들었는지 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아주 마음에 들어, 내 친히 용서를 바라는 우리 대장장이에게 아량을 베풀지."

"감사합니다!"

기쁨의 인사를 건네는 찰나, 마왕의 채찍은 아래에서 무구를 만들고 있는 다른 드워프들에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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