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회귀빨로 지존 헌터
- 4권 18화
두 개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충돌을 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의지를 내비치고 있었다.
"이곳을 통과할지 말지, 결정을 해야겠어."
태욱은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만약 다크 엘프들에게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이곳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야, 그렇다고 숲을 돌아서 가게 된다면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된다면 강행 돌파가 가장 좋은 거 아냐?"
은비는 자신의 도끼를 휘두르며 말했다.
어차피 위험은 다가오는 것이고 그것을 극복하면 그만이라는 그녀의 생각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행동이었다.
"나도 동의, 얼마의 시간이 더 추가될지도 모른다는 건, 지금 드워프들이 어떤 상황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어."
드워프들과 친분이 높은 지원 역시 은비의 말에 동조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실력에 확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드워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앞섰기 때문이었다.
"저는 돌아가는 것을 추천해요. 제 친구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거든요."
영리는 자신의 어깨에 앉아 있는 소환수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을 알고서는 돌아가자는 곳에 표를 던졌다.
금강철인 역시 영리의 말에 동조했다.
굳이 부상을 염려하며 이곳을 통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설명이 뒷받침됐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았다.
"이제 내 선택만 남은 건가?"
결국 태욱의 선택으로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나는 이곳을 통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태욱이 알고 있던 미래와 달라진 지금.
뭔가 새로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혹여나, 더욱 빠르게 드워프들을 구해야 된다는 마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일단은 다크 엘프들과 접촉하는 수준으로 이동을 했으면 좋겠어."
섣부른 한쪽의 선택이 아닌, 양쪽을 다 쥐고 갈 수 있는 방향을 택했다.
혹여나 다크 엘프들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그럼 일단 숲을 조금씩 들어가는 것으로 결정."
은비는 호기롭게 앞으로 나섰다.
휘리리릭.
푸욱.
그녀의 동작이 한 발짝 빨랐다면 날아온 화살의 목표물이 됐을 것이다.
발끝에 약 3cm 떨어진 바닥에 깊게 파고든 화살을 보고 모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뭐하는 녀석들이냐?"
숲의 울림에 따라 어디서 목소리가 들려오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벌써 나타난 것인가?'
태욱은 다크 엘프들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아니면, 우리를 계속 경계하고 있었나?'
아마 정확한 경계선은 은비가 서 있는 곳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곳에서 더 이상 접근을 하면 화살 비의 목표물이 될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이곳을 통과하려고 한다. 다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며, 단순히 이동만 할 것이다."
태욱이 숲을 향해 외쳤다.
"너희의 목적은 알지 못한다. 다만 숲에 더 이상 다가오면 공격 의사로 받아들이겠다."
다크 엘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어떤 협상의 여지도 없었고,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담겨져 있었다.
"우린 이곳을 지나가야 된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마라, 마지막 경고다."
목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슈우우욱.
푸욱.
발끝에 다시 한 번 박힌 화살은 경고를 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목표물에 정확하게 쏘아 낼 수 있다고 하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태욱은 동료들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몇 명의 다크 엘프들이 이곳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한 발 물러나자는 신호였다.
"그럼 돌아가도록 하지."
담백하게 말을 내뱉은 태욱은 숲 밖으로 나서길 결정했다.
천천히 숲 밖으로 이동한 이후 금강철인은 태욱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이대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고, 이동을 한다면 숲의 경계선을 따라 이동을 해야 되는 것이 확실했다.
"만약, 저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태욱은 그들의 행동에 이상점을 느꼈다.
다크 엘프들이 아무리 호전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보여 준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경고의 의미.
일반적인 다크 엘프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다크 엘프가 아닌 일반 엘프들이 하는 행동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다크 엘프들은 경고를 하지 않는다.
그저, 접근하는 모든 생명체를 죽일 뿐, 일정한 경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접근을 막는 것이라면?
그저 숲에 들이지 않게 하려면 그냥 죽이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생존자를 내보내게 되면?
생존자들이 이곳을 위험 지역으로 선정을 하게 된다.
딱히 이곳에 목적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곳에 오지 않게 된다는 것을 전제에 두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곳에 직접 들어가 봐야겠어."
"그건, 잘못된 생각인 것 같소, 숲 속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오."
금강철인이 태욱의 말에 반발했다.
일부로 가시밭길을 걷겠다는 태욱의 발언에 의문을 가진 것이다.
"뭔가 내가 알고 있는 다크 엘프들의 행동과 달라."
"다르다면 뭘 이야기하는 것이오?"
"저들은 다크 엘프가 아니야, 엘프들이지."
"엘프? 다크 엘프라며?"
태욱의 발언에 갑자기 은비가 끼어들었다.
"응, 녀석들은 다크 엘프가 아니야, 그저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지."
"흉내를 낸다니?"
"다크 엘프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들의 행동 패턴은 엘프들과 다름없어. 보통의 다크 엘프들은 경고를 하지 않아. 죽이면 죽였지, 경고는 전혀 하지 않지."
"그럴 이유 따위는 없지 않나?"
"몰라,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지."
* * *
숲속 한가운데.
높고 굵은 나무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아래는 넓은 공터가 존재했다.
공터의 한가운데는 강렬한 빛이 한 줄기 쏘아져 내렸다.
"장로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젊은 엘프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엘프를 보고 장로라 지칭했다.
그의 이름은 타르가.
최고의 전사에게 내려지는 칭호였다.
엘프 마을은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
자신의 마을에서 태어나 삶을 마감할 때까지. 숲은 그들의 터전이었고 집이었다.
자신의 집을 무단으로 침입하려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 방어 태세를 취한다.
타르가라는 칭호는 가장 강한 전사.
즉, 단단해 부서지지 않는 엘프 전사에게 내려지는 칭호였다.
"타르가, 무슨 일이 있는가?"
"또, 마을에 접근을 하려는 자가 있었습니다."
엘프 족장은 한숨을 내뱉었다.
"흐음, 또 인간들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들의 표정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 * *
처음 인간들이 이곳을 침범했을 때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들을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땅을 파, 그들의 사체를 묻어 버리고 새로운 생명의 씨앗으로 자라나길 염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인간들의 욕심은 끊이질 않았다.
점점 많은 숫자의 인간들이 엘프 마을을 침범하기 위해 접근해 왔고, 그것을 막기 위해 엘프들은 노력했다.
그 한계는 금방 찾아왔다.
죽인 인간들을 더 이상 숲에 매장을 할 수만은 없었으며, 계속해서 늘어나는 숫자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다른 방법을 계속해서 모색해 봤지만, 그들에게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한 명의 엘프가 의견을 냈다.
"혹시, 인간들이 더 이상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공포심을 심어 주는 건 어떻습니까?"
"공포심?"
"그들에게도 분명 공포심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와 근본은 같지만, 이미 퇴색돼 있는 다크 엘프들이 하는 수법을 사용하는 것이."
"뭐? 뭐야?"
"감히 신성한 엘프를 뭘로 알고 이러는 거냐?"
단숨에 반대 의견들이 튀어나왔다.
엘프는 신성한 존재.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이는 자신들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선대 엘프들의 생각이었다.
그것을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저 어린 엘프가 반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노발대발하며 나선 것이다.
"감히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 온 것이 아니라고 부정할 셈이냐?"
어린 엘프는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럼 네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고 있느냐?"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린 엘프의 대답이 나오자 여기저기에서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크음."
"허허,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저런 이야기를 하다니. 세상은 너무 암흑으로 물들었어."
조금씩 변해 가는 엘프 마을에 흉물이 들어섰다고까지 이야기하는 엘프들이 있었다.
"그들의 행동을 조금 가져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간들에게 공격당하지 않고, 자신의 마을 터전을 잘 지켜 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도 우리의 터전을 잃지 않고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우리의 최후의 방어선까지 비집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장로와 어린 엘프의 대화가 계속 진행될수록 주변에서는 잡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어허, 저걸 어쩌면 좋다는 말인가?"
"장로님 들어 줄 필요가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다른 목소리들을 장로는 일순간에 압축했다.
"의견을 들어 보고 내가 결정하겠다. 사사로운 감정은 모두 마음속으로 갈무리하게."
엘프 족장은 어린 엘프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넘겨줬다.
"인간들은 다크 엘프의 경계선을 보면 더 이상 접근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그렇다면 저희도 인위적으로 그렇게 만들면 인간들이 더 이상 접근을 하지 않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인간, 태생적으로 그들은 공포감에 사로잡히면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다크 엘프와 같이 울타리를 만들어 놓으면 우리를 그들로 착각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내면은 변하지 않았으니, 엘프임에 틀림없고 인간들의 접근을 막는 것은 해결이 되니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엘프의 말이 끝나자 엘프 장로는 고심에 빠져들었다.
"일단, 네 의견은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하자."
"감사합니다. 장로님."
어린 엘프는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 준 장로에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 * *
"무엇을 떠올리시는 겁니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장로 엘프에게 타르가가 물었다.
"과거 내가 처음 엘프 마을에 의견을 내뱉었던 것을 떠올렸다."
과거 어린 엘프는 지금의 장로였다.
한 마을을 책임지고 있는 장로의 선정까지는 많은 말이 있었지만, 선대 장로의 강한 의사로 그는 차기 장로가 됐다.
그의 의견으로 마을은 더욱 안정화될 수 있었고, 이따금씩 찾아오던 인간들도 조금씩 발길을 끊고 있었다.
"다시 인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괜찮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인간들이 있지 않았는가?"
장로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네, 알겠습니다."
"다른 특이 사항은 없는가?"
"네, 특별하게는 없습니다. 간혹 시취를 맡고 찾아오는 몬스터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마을에 가깝게 이동하려는 녀석들은 없습니다."
"그럼 됐다. 다시 경계를 잘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타르가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마을 경계를 향해 떠났다.
"혹시, 과거의 업이 이제 청산되는 것인가?"
허공을 바라보고 엘프 장로는 혼자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