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회귀빨로 지존 헌터
- 4권 14화
일본의 몬스터 정리가 끝이 나는 가운데, 태욱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어.'
태욱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일본 스스로가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지휘 체계를 구축했고, 위협적인 강한 몬스터들은 모두 처리를 끝마쳤다.
딱히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확신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능이의 예상 덕분이었다.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태욱보다 세세한 판단까지 정확하게 내리고 있었다.
커다란 틀에서 보고 있자면 태욱과 지능은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선택의 기로에서는 두 사람의 선택은 궤를 달리했다.
당장 눈앞에서 쓰러져 나가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태욱의 선택이라면 지능이는 작은 희생이라도 총생존자의 숫자가 많은 것을 선택했다.
당장 눈앞에 있는 5명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30분을 소모하는 대신, 5명의 희생을 통해 30분 먼저 이동을 하고 더 많은 숫자의 사람을 구하는 것을 지능이는 항상 선택했다.
그리고 태욱이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해 내기도 했다.
일단 선택을 하면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곁에서 정확한 서포팅을 하는 것이었다.
태욱의 마음을 가장 흔든 것은 바로 이상 현상이었다.
갑자기 몬스터가 사라졌다.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몬스터의 이동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마나를 통해 순간 이동을 시켰다면 마나의 흔적이 남았을 것이고, 몬스터들이 야간에 몰래 이동했다면 발자국의 흔적이라도 남았을 것이다.
그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몬스터들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는 표현보다는 증발했다는 것이 더 맞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런 이유 또한 찾지 못했다.
비밀로 서류가 만들어지고 보고가 됐다고 하지만, 그 소문이 퍼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몬스터에 관한 이슈는 항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조금이라도 지금과 다르다면 새로운 방책을 마련한다는 빌미로 사람들은 정보 제공을 당당히 요구했다.
물론 일반인이 이러한 정보를 요청한다면 들어 줄 리 만무하지만, 정부에 일정 금액을 지출하고 있는 유명 기업들이 요구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들어 줘야 했다.
정부는 항상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하고 그것을 제공해 주는 기업이야말로 마지막 희망이었다.
이제는 국민들에게 세금을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서 제공하는 투자 비용을 받아야 된다는 점이 가장 달라진 것이었다.
당연히 가장 큰 축을 지지하고 있는 한성 중공업에도 이러한 정보가 들어온 것이다.
일반 시민들은 전혀 모르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정보가 돼 버린 것이다.
태욱은 이 이상 현상에 대해 고심했다.
'과거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나?'
정확하게 그가 파악을 할 수 없었다.
과거 그는 다른 사람의 뒤를 따라다니며 근근이 삶을 연명했을 뿐이었다.
강한 힘과 명예, 돈, 이러한 것들은 그와 관련 없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돈?
명예?
강인한 힘?
모든 것이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었다.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정도로 부족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면으로는 가장 앞서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과거에도 이러한 현상이 있었다면 분명 뭔가 움직임이 달라졌을 텐데.'
태욱은 회귀 전을 되짚어 봤다.
자신이 아는 것은 커다란 사건들뿐이었다.
'그리고 경험이지.'
먼저 몬스터와 마왕을 만났을 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어떤 뒷공작이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지막 생존자로서의 경험과 능력은 전투를 발휘하거나 커다란 사건이 있을 때뿐이었다.
'그때도 아마 지금과 같은 사건이 있었을지도 몰라.'
마치 두 눈을 감고 더듬거리며 앞을 나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태욱이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이 있지.'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마왕을 쓰러뜨리는 것.
방해를 하거나 우선적으로 막아 낼 수만 있다면 가장 좋은 예방이었다.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를 끝마친다는 것은 손자병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확실하게 상대를 막아 낼 수 있는 힘을 기르면 그만이었다.
"똑똑똑."
밖에서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나야, 지원이."
"뭘 새삼스럽게 노크야? 일단 들어와."
태욱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원을 반겼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거야?"
"별건 아니고 벌써 시간이 된 것 같아서."
태욱에게 다가오며 지원은 뇌쇄적인 눈빛을 쏘아 냈다.
"뭐, 뭐?"
뒷걸음질 치며 뒤로 물러서던 태욱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덜컥.
바로 뒤에 있는 책상이 길을 막아 버린 것이었다.
'뭐, 뭐지?'
꿀꺽.
마른 침이 삼켜지는 소리가 막사 내부를 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있잖아."
지원이 말을 하는 도중에 어깨에 걸쳐 있던 옷이 스스륵 하고 팔뚝까지 내려왔다.
"뭐, 뭐하는 거야?"
"뭐하긴, 긴히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거지."
"그런데 왜 자꾸 다가오는 거야?"
당황스러운 표정을 한 태욱을 보고 지원은 씨익 하고 웃었다.
"뭐긴, 뭐야? 곧 드워프 마을에 찾아갈 시간이 됐다고 알려 주려 왔는데, 뭐 이상한 상상이라도 한 거야?"
자연스럽게 어깨 아래로 떨어진 외투를 추어올리며 태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어리네, 이 누나가 뭐 필요한 거라도 알려 줄까?"
지원의 도발적인 표정에 태욱은 그녀를 밀어냈다.
"뭘, 이상한 상상을 했다고 생각해? 크흠 그런 일 없으니까. 어차피 이제 몬스터 정리도 대충 끝났고 한국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어."
그러곤 마치 자신은 전혀 이상한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모든 것은 계획적이었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미 지원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그래 넌 전혀 몰! 랐! 어!"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하는 지원의 모습에 태욱은 더욱 억울했다.
"아니라고!"
그의 공허한 외침은 이미 밖으로 나간 지원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 * *
이제는 더 이상 높은 언덕을 기어오를 필요는 전혀 없었다.
드워프 마을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높은 절벽에 살고 있는 하피들을 모두 처치했으니, 가벼운 몸놀림으로 뛰어 올라가도 방해가 될 몬스터는 하나도 없었다.
높고 높은 절벽을 뛰어 올라가니 예전에 비해 빠른 시간에 절벽 위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숲만 건너고 나면......."
태욱은 뒷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이제 다 왔다."
그의 뒤를 이어 올라온 다른 동료들도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분명 울창한 숲이 보여야 정상이었다.
중간중간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숲.
풍족하진 않아도 과일이나 열매들이 결실을 맺어 음식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는 이곳이 황폐화됐다.
완전 불모지나 다름없이 변해 있었다.
"설마?"
태욱은 재빨리 앞으로 튀어 나갔다.
숲을 건너 이제 드워프 마을이 코앞이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청천병력 같은 상황이었다.
"안 돼, 안 돼!"
그의 기억상 드워프 마을은 사라진다.
이것은 확실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시기까지는 꽤나 여유로운 시간이 있었다.
"부, 분명 앞으로 3년 아니 1년은 이곳은 사라지지 않았어야 됐는데."
태욱은 떨리는 목소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분명 당겨진 시간만큼 드워프 마을이 사라질 것을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빠른 시간에 뒤바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분명 당겨진 시간만큼 계산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 1년 이상은 여유가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지능이가 분석한 결과이니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점점 더 시기가 빨라진다?'
아무리 시간이 당겨진다고 하더라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분명 일정한 속도로 증가하는 폭이 보여졌기 때문에 지능이도 분석 결과를 나타낸 것이었다.
'정보가 부족한가, 아니면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태욱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어떠한 상황이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것도 몬스터들이 사라진 것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
은비가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태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떨궜다.
마치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어. 먼저 이들을 이동시킬 시간도 분명히 있었다.'
안일했던 자신의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털썩.
그는 결국 제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도 아니었고, 체력적으로 지친 것도 아니었다.
행동에 따른 책임 그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대로 감전이라도 된 듯이 온몸에 힘이 풀려 버린 것이었다.
일종의 혼절이나 다름없었지만, 정신만큼은 잃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어떻게 해."
태욱은 나지막하게 계속해서 말을 되풀이했다.
"어떻게."
"어떻게."
그와 마찬가지로 또 한 명이 충격을 받았다.
올라온 우선순위로만 따지면 가장 마지막인 지원이었다.
영리와 은비 그리고 금강철인은 강한 육체적 능력 덕분에 재빠르게 올라올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지원은 아무래도 늦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동료들이 태욱의 곁으로 모여 있는 사이 이제 올라온 지원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쓰읍."
상쾌한 공기가 코끝을 찌르고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잔뜩 숨을 들이마셨지만, 뭔가 이상함이 엄습했다.
"콜록, 콜록."
호흡기를 통해 허허벌판에 깔려 있는 먼지들이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게 뭐야?"
이제야 감은 두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허허벌판이 돼 버린 숲을 보고서는 지원은 정신없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자, 잠깐. 같이 가."
갑자기 튀어 나가는 지원과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태욱을 보고 갈팡질팡하던 은비는 재빠르게 지원을 뒤쫓아갔다.
태욱에게는 영리와 금강철인이 있었으니, 자신은 은비의 뒤를 쫒아가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지원은 일반인의 비해서는 빠른 속도였지만, 은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전투 최전방에서 움직이는 그녀의 속도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금방 지원의 뒤를 잡을 수 있었다.
"뭐가 이렇게 급한데."
"스틸, 크리트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지원이 걱정하는 것이 뭔지 눈치챈 은비는 그녀를 단숨에 안아 들었다.
"꺄악. 뭐하는 거야?"
"잠깐만 이대로 있어. 금방 데려다줄게."
은비는 지원의 걱정이 어떤 것인지 단숨에 눈치챘다.
지원의 걱정이 얼마나 슬픈지 은비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