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회귀빨로 지존 헌터
- 4권 13화
총량의 법칙으로 사라진 몬스터들은 분명 어딘가에서 나타나야 정상이었지만, 그 법칙을 무시하고 송두리째 사라지는 모습이 종종 관찰됐기 때문이었다.
몬스터의 갑작스러운 실종.
무슨 일이 정확하게 벌어지는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분명 모종의 계획이 있을 텐데."
하지만, 그 계획은 태욱에게서도 인공지능이 가진 정보의 결론에서도 자신이 펼치는 상상에 나래에서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표면으로 드러날 때까지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는 것인가?'
사람들은 몬스터가 사라진다는 것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당장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녀석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삶의 질을 올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바로 인간들에게 몬스터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마석이며, 엄청난 체력과 힘을 가진 헌터들이며, 모든 생활 방식이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맞춰져 있는 것이다.
물론 먹이사슬이 무너진다고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게중에 돌연변이도 나올 수 있고 다른 환경에 적응해 자신을 더욱 뽐내는 계층이 생겨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탄탄한 피라미드 층을 이루고 있는 먹이사슬의 계층이 무너지는 것은 커다란 혼란을 이룩할 수도 있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네."
고민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어둠 속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지원이었다.
"지능아."
"네, 말씀하십시오."
"만약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어떤 위험이 펼쳐지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제가 전달받은 정보와 지금까지의 행동 패턴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판단한 결과?"
"인간은 약하지 않습니다."
지원은 갸우뚱한 표정을 하고 되물었다.
"약하지 않다라?"
"인간들은 위기가 닥쳐왔을 때 그 해결책을 언제고 제시했습니다. 물론 그 시간이 무척이나 길었을 경우도 있었고 짧은 경우도 다분히 있습니다."
"......."
지원은 인공지능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높은 삶의 질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오롯이 인간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동물들은 신체를 변형시킨다든지, 상황을 뒤바꾸려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환경을 바꿔 몸에 맞추려고 움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예상치 못한 위험이 찾아오더라도 분명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지능이의 발언에 지원은 입을 떡 하고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 인간은 수없이 적응해 왔지.'
생각의 변화.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는 세상을 만들었다.
처음 헌터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그 등급을 나누고 몬스터들의 위치를 파악해 안전지대도 형성해 냈다.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안전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것으로 부를 축적하고 소비하는 생활이 다시 돌아왔다.
'오지 않는 위험에 걱정하는 것은 마치 시간을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구나.'
지원은 막연한 두려움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기감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능아, 고마워."
"별말씀을요."
약간은 차가운 지능이의 음성에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졌다.
가파른 언덕의 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찾아보는 것이 언젠간 끝없이 높은 언덕을 오를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Chapter 4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몬스터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다니?"
지도에 그려져 있는 푸른 점은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세 개의 점을 이은 내부에는 붉은 점이 다수 찍혀 있었다.
푸른색은 아군 그리고 붉은색은 몬스터를 지칭하는 지도의 표기였는데, 어젯밤과는 숫자의 개수가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사방에서 막아서고 있는데, 몬스터들이 갑자기 증발했다는 것이 말이 되오?"
"죄송합니다."
"헌터들의 반응은?"
"그 어떤 헌터들도 몬스터들이 단순히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변형된 지도의 표기가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아니 그럼 어디로 갔단 말인가!"
결국 지휘관의 호통이 이어졌지만,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저......."
조용한 지휘통제실에 한 명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일제히 시선이 모였다.
"어, 그래. 보급담당관 말하게."
"몬스터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사라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아니 그게 말이 되나?"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누가 초임 장교가 이런 곳에서 말을 하라고 했어?"
보급관의 입에서 말도 안 되는 것이 터져 나오자 다른 간부들이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만하게."
대대장은 다른 간부들의 웅성거림을 막아섰다.
"꽤나 흥미가 있는 이야기 같은데,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라."
턱을 매만지며 대대장이 생각에 잠기자, 보급담당관은 자신의 의견을 다시 피력했다.
"네 맞습니다. 실제로 갑자기 몬스터가 나타난 것에 대한 증명은 어느 곳에서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몬스터로부터 커다란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개발하는 것은 많지만, 그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는 전혀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 봐."
"저희는 저희의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를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고민을 해도 해결이 나지 않으니, 상급 부대, 그 이상의 연구팀을 불러와야 된다는 이야기인가?"
대대장은 정확하게 보급관의 생각을 꿰뚫었다.
끝없이 마라톤 회의를 하는 것은 어떤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자신들의 생각으로 정확한 이유를 알아낼 수 없으니 더 높은, 혹은 더 전문적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이유를 찾아낸다는 간단한 결론이었다.
보통의 군대라면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체계적이고 확실하게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상급자에게 알리지 않는다.
온전하게 자신의 통제 아래에 모든 것이 파악되었다고 생각할 때 보고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급자들의 태도의 문제였다.
어떤 문제든 자신의 관점에서만 생각하고 원하는 바를 따로 표현하지 않고 알아서 하급자가 해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보고를 듣는 사람이 명확하게 파악을 하고 있다는 느낌만 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군대에서 이런 유연한 생각을 하는 것은 단순히 초임 간부이기 때문이었다.
"흐음, 일단 다른 대처 방안은 없는 것인가?"
"......."
"......."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저 눈만 굴리고 있는 모습을 본 대대장은 자신의 앞에 있는 수화기에 손을 뻗었다.
"대대장님!"
"다른 방법이 있는가? 나는 저 방법이 제일 좋은 것 같은데? 우리끼리 말을 한다고 해결책은 나오지 않아. 연구팀이든 누구든 와서 이 사태에 대해 이야기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닌가?"
"맞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사유도 말하지......."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네."
대대장이 진중한 음색으로 이야기하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상급 부대의 연락을 하자, 순식간에 별동대를 꾸려 부대로 파견이 도착했다.
"충성!"
"충성. 어서 오게."
"반갑습니다. 대대장님 사령관님 명을 받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견장에는 국화꽃이 두 개 그려져 있는 남성의 얼굴은 꽤나 어려 보였다.
"계급에 비해 어려 보이는 것 같은데?"
"네, 어립니다. 하지만, 일은 확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보통 군인들은 계급으로 상대방을 평가한다.
생각보다 어린 외모를 지니고 있지만, 중위이라는 계급은 아무나 지닐 수 없었다.
무언가 특별한 업적이 있어야 하거나, 전쟁 중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계급이라는 것이 업무의 능숙도를 기본으로 얼마나 업적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첫 대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계급장뿐이었다.
"그럼 잘 부탁하네."
"네, 알겠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확인 후 보고드리겠습니다."
* * *
"수치 측정해."
"별다른 이상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우리가 저들이랑 똑같은 결과밖에 모른다고? 제대로 한 거 맞아?"
"맞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 현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뭐?"
구왕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분명 뭔가 흔적이 남았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완벽한 범죄는 없다.
어떤 일을 행하면서 흔적이 전혀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벌어진 상황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변화된 것도 없고 그저 몬스터가 사라졌을 뿐.'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그에게 보고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똑똑똑.
구왕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이내 입을 떼었다.
"연구왕 중위입니다. 보고 드릴 것이 있는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 안쪽에서 대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들어오게."
끼이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깔끔하게 정돈된 대대장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회사 사무실과는 다르게 오와 열을 맞춰 정돈된 책상 위가 인상 깊었다.
'꽤나 꼼꼼한 성격이군. 아니면 부관이 정리 정돈에 능숙하거나.'
개인적인 감상평은 이쯤으로 하고 본론에 들어갈 차례였다.
"충성."
"충성, 그래 연구왕 중위 어떻게 됐는가?"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구왕은 소신껏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이곳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본대로 복귀해서 보고를 하는 것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본대에 보고하듯 대대장에게 보고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이곳에 왔을 때, 대대장이 보여 준 눈빛 덕분이었다.
어떤 사유로 몬스터가 사라졌는지, 그리고 대처해야 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눈빛.
그것이 구왕을 이렇게 따로 보고를 하도록 만들었다.
연구왕의 보고를 들은 대대장은 심각한 표정이 돼 자신의 턱 끝을 매만졌다.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았다라. 이거 우리 부대원들이 착실하게 일을 하고 있었구만. 허허."
이내 너털웃음을 짓더니 연구왕에게 상체가 기울었다.
"전문적인 연구원들이 조사를 하고도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 부대원들이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겠지. 일단은 잘 알겠네."
연구왕은 또 다른 질문을 대비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궁금증만 해결한 상태로 돌려보내는 대대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권위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행동만 행할 뿐.'
만약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면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하를 닦달하고 어떻게든 보고서를 작성해 새로운 것을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책임질 수 있는 부분에서 자신이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힘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충성!"
대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왕이 어떤 이유조차 찾지 못했던 이상 현상은 한국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몬스터들의 흔적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벌어진 사건에 대해 아무런 교집합이 없었다.
국가, 지형, 날씨 어떠한 것에서도 공통분모는 없었다.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진 일이지만, 아무런 접점이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당황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