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회귀빨로 지존 헌터
- 4권 12화
"일단은 원거리 공격은 걱정 말고 날개 뚫린 녀석들에 집중해!"
"그렇게만 해 주면 나도 좋지."
은비는 재빨리 그리핀에게로 뛰어들었다.
처음 바닥으로 떨어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그리핀의 날개를 공격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녀석들을 상대하기란 약간 까다로운 것이 있었다.
"끼요오오오오옷!"
바로 이 커다란 목소리였다.
멀리서도 크게 들리던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니 쉽게 전투를 벌이기는 힘들었다.
"으윽."
은비는 그리핀이 입을 벌릴 때 반사적으로 양손을 이용해 귀를 틀어막았지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녀석의 목소리에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녀석 목청 하나는 엄청 크네."
어느새 지원의 앞으로 다가온 금강철인이 베리어를 만들어 그리핀의 울음소리를 튕겨 냈다.
"일단은 같이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안 그렇소?"
은비는 놀란 토끼눈이 돼 금강철인을 바라봤다.
"이렇게 길게 말을 할 수도 있었어?"
"물론입니다. 과거에 같이 이야기도 하지 않았소?"
처음 은비와 금강철인이 만났을 때 긴 이야기를 했지만, 은비의 기억 속에서는 지워져 버렸다.
그리고 항상 이야기를 할 때 짧은 대답을 하곤 했던 금강철인이었기에 그녀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단 전투부터 끝내고 이야기하시죠."
금강철인은 고개를 돌려 다시 그리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소리만 큰 방해가 되지 않는 이상 그리핀은 금방 처리를 할 수 있었다.
녀석의 울음소리를 튕겨 내는 방어벽을 세우고 조금씩 접근을 해 단숨에 목을 쳐 낸다.
실로 간단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만한 능력이 없으면 실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합!"
또 한 번의 기합소리와 함께 그리핀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강인한 체력과 완력 그리고 버티기 힘든 청력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날개가 망가진 그리핀은 상대하기 쉬웠다.
벌써 은비의 손을 거쳐 간 그리핀만 해도 10마리가 넘었다.
"이렇게 많았나?"
이마를 타고 뚝뚝 흐르는 굵은 땀방울이 그녀의 목선을 거처 커다란 골짜기로 흘러 들어갔다.
"꿀꺽."
적막한 한가운데 무언가 목을 타고 흘러 들어가는 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그 주인공은 바로 금강철인이었다.
주위의 그리핀이 울음소리를 내지를 때 그녀의 곁에서 정확하게 보호막을 펼쳐야 소리에 타격을 입지 않기 때문이었다.
항상 은비를 주시하던 금강철인은 그녀의 육체미에 시선이 꽂힐 수밖에 없었다.
"하하, 뭐야? 너도 사람 몸을 볼 줄 아는 구나?"
"어허, 그런 게 아니오. 잠시 목이 말라서 그랬을 뿐, 절대 다른 음탕한 생각 따위는 하지......."
갑자기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금강철인을 보고 은비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적어도 소인은 거짓말을......."
다시 이야기하려는 금강철인의 말은 잘라 버리고 은비는 다시 그리핀을 향해 이동했다.
"그, 그게 진짜 아니란 말이오."
"알았어, 알겠다고."
이동을 하는 와중에도 금강철인은 은비의 곁에서 계속해서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은비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모든 몬스터 녀석을 처리하고 긴히 대화를 청하겠소."
"알겠으니까, 그만하고 일단 그리핀 녀석들이나 처리하지."
바닥에 누워 있는 그리핀은 10여 마리.
녀석들만 처치하면 이곳에 출정 온 목적은 모두 종료된다.
"간다아!"
* * *
"뭐, 뭐지?"
뭔가 이상함을 느낀 영리였다.
'어떻게 된 거지?'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파지직은 이런 정령이 아니었다.
전기 정령이라고 특별하게 대우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환 시간에 비례해 정령의 힘이 강력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비교적 먼저 계약한 다른 소환수들과 달리, 적은 시간을 같이 지내 왔던 파지직이 갑자기 강한 화력을 내뿜으니 당황을 한 것이었다.
"지직아?"
영리는 나지막하게 전기 정령의 이름을 불렀다.
온몸이 푸른색인 파지직은 영리의 부름에 밝은 표정으로 뒤돌았다.
파지직의 주변에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영리는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언제까지라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줄만 알았던 정령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소환된 소환수가 단 한 번도 진화를 이룩한 적은 없었다.
그저, 덩치가 커다랗게 변하거나, 쓸 수 있는 힘이 강해지는 것일 뿐, 따로 외형적인 모습이 바뀌는 경우가 없었기에 영리에게는 지금이 엄청난 충격이 됐다.
빛이 일순간에 뿜어져 나오더니, 미소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멀끔한 청년만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서 있었다.
-안녕?
영리는 갑자기 머리를 울리는 소리에 당황했다.
"뭐, 뭐야?"
자신의 눈을 못 믿겠다는 듯이 연신 깜빡였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녕! 나 여기 있어 지금 앞에 보이잖아.
"지직이?"
갸우뚱한 표정을 하고 되묻자 푸른 청년은 기쁜 듯이 날뛰었다.
-나야 나! 내가 파지직이야. 네가 지어 준 이름이지.
"진짜?"
-그럼 진짜가 아니면 네가 지어 준 이름을 어떻게 알겠어?
영리는 어리둥절한 상황을 적응할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청년 하며, 갑자기 강해진 스킬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진짜, 내가 파지직이야.
"만약 그렇다면 왜 모습이 바뀐 거야?"
자신도 정작 왜 이렇게 됐는지 이유를 모르겠는지 파지직은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모르겠어.
"그럼 지금 한 것이 네가 한 게 맞아?"
파지직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가 강해진 정도를 처음 경험해 보는 영리였다.
물론, 처음 강한 소환수와 계약을 했을 때의 경험과는 느낌이 색달랐다.
'소환수도 성장할 수 있어?'
지금까지 영리의 소환수들은 영리에게 받아 올 수 있는 마력의 양에 따라, 힘을 조절하며 스킬을 사용했다.
영리가 성장을 함에 따라 그 힘의 최대치가 증가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리는 자신의 소환수들이 강력해지는 것이 아니라, 쓸 수 있는 한계선이 높아진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그저 숨겨져 있던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강해진 태생적인 힘이 그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힘을 쏟아부을 수 있던 건 아니지?"
이미 외형이 바뀌어 버린 전기 정령에게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아니, 과거에 나였다면 최대 출력을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지금 공격은 하지 못할 거야.
"그럼 진화라도 했다는 거야?"
-나는 한 단계 성장했어. 예전에는 하급 정령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중급 정령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파지직은 자신의 몸을 이곳저곳 확인한 후 영리에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른 소환수들도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건데.'
정확하게 어떤 이유에서 파지직이 성장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스스로가 강력해지는 것 말고도 또 다른 성장 방법을 알게 됐으니, 새로운 활로가 생긴 것이었다.
* * *
어두운 방 안에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괴성이 공간을 가득 채우더니 이내 흔들리기 시작했다.
"흐허헙. 헉헉."
거친 숨을 계속 몰아쉬는 하나의 물체가 안광을 번뜩였다.
지속되던 고통이 잠시나마 멈춰선 것 같았다.
"아, 아직 아직도 멀었는가?"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그의 눈에는 욕심이 가득 차 있다.
"크아아아아!"
또다시 고통이 시작됐는지, 온몸이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디디는 두 발을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기묘하게 그려진 바닥의 그림이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결국 참지 못한 고통을 입 밖으로 내뱉는 괴성으로 해결하려는 것 같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의 목소리에는 광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 * *
찬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이마를 간질이는 머리카락을 정리하자 땀방울이 주륵 흘러 내렸다.
"후아, 이것도 힘드네."
바닥에 떨어진 모든 그리핀을 정리하고 나자, 저 멀리서 후발대 인원들이 도착을 했다.
"마침 시간 맞춰 오셨네."
은비는 때마침 도착한 후발대에게 몬스터의 사체를 자연스럽게 인계했다.
터억.
"그럼 우리는 아직 못 다한 대화를 나눠 볼까?"
어느새 금강철인의 곁으로 다가온 은비는 그의 어깨에 손을 걸치며 물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는 뭐 할 말이 엄청 많은 것 같더만."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골목길로 향했다.
"태욱, 괜찮은 거야? 표정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데?"
"으응? 아니야, 약간 피곤해져서."
태욱은 영리에게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동안 소환수가 진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물론, 그녀가 숨기고 있었다면 전혀 알아낼 방도는 없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는 의문이었다.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녀석들의 외형과 같았어.'
영리의 파지직은 외형이 변했다.
회귀 전 태욱이 알고 있는 전류 정령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오히려 그의 기억과 같은 정령은 바로 진화를 이루기 전의 정령과 모습이 같았다.
다만 그 크기만 다를 뿐이었다.
'뭔가 많이 변화하고 있어.'
적어도 이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와는 조금 많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각자의 발전은 예상 가능했지만, 이미 예측이 불가능한 영리가 나타났다. 그렇다는 것은 계획을 전체적으로 뒤바꿔야 되나?'
태욱이 고심에 빠져 있는 것을 눈치챈 지원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슨 심각한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면 너무 피곤해?"
"으응, 조금 피곤하긴 하네."
태욱은 지원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혼자 막사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언니, 언니, 얘 되게 귀여워지지 않았어요?"
"누구?"
"제 어깨에 있는 녀석이요."
영리의 어깨에 앉아 있는 녀석을 처음 본 지원은 미소를 지었다.
"쿠쿠, 귀엽다기보다는 늠름하다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깨에 앉아 있는 녀석이 영리의 말에 팔짱을 끼고 째려보는 모습에 지원은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 그런 의미로 이야기한 건 아닌데. 미안해 지직아."
영리는 자신의 어깨에 앉아 있는 녀석을 달래 주느라 저 멀리 가 버렸다.
현장을 마무리하는 것은 결국 지원의 몫으로 돌아갔다.
물론 하는 일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 몬스터 사체가 남았는지, 파괴된 곳은 어디고 생존자는 몇 명이었는지 전체를 파악하게 만드는 것은 오롯 그녀의 몫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쉬러 가는 건데."
지원은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커다란 판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쓰윽.
쓰윽, 쓱.
숫자가 기록될 곳은 많지 않았다.
어차피 생존자는 0이었고, 구출을 당한 사람도 없었다.
몬스터의 사체만 기록하고 위치만 이야기한다면 더 할 일도 없었다.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까?"
토벌이라는 것이 끝없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상황이 달라지고, 갑자기 몬스터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주둔지 이동은 다른 개념이었다.
어디 한쪽에서 몬스터들이 사라지고, 다른 곳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그 패턴이 변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