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회귀빨로 지존 헌터
- 4권 3화
"진급 명령서 받기 전이지만, 미리 축하하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부대 대대장으로 있던 양충희는 그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아야 되는데 괜찮겠나?"
헌터 부대 소속으로 돼 있던 그는 준위라는 계급이 되는 순간 더 이상 대대에 소속돼 있을 수가 없었다.
작지 않은 곳이지만, 순식간에 치고 올라간 그의 계급이 더 이상 그를 이곳에 잡아 둘 수 없게 만들었다.
"지휘사령부로 배치되는 겁니까?"
양충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단체.
공군, 해군, 육군의 지휘관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네."
양충희와의 면담을 마지막으로 그는 전출 명령을 받았다.
국가적인 영웅으로 추대돼 그의 계급은 이례적으로 준위라는 계급을 받을 수 있었다.
부사관으로서 최고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원사라는 계급이 있었지만, 그와는 맞지 않았다.
원사는 오랜 군 생활을 통해 부사관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 계급이다.
그 대상자들은 최소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군에 몸을 담은 사람들이기에, 원사라는 계급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찬성은 원사라는 계급보다 전문성이 높은 준위라는 부사관과 장교의 중간 정도로 볼 수 있는 계급을 하사받은 것이었다.
"여기가 내가 군 생활을 할 곳이구나."
찬성은 새로운 마음가짐을 하고 건물 입구에서 전경을 바라봤다.
지금까지는 부관에 불과했지만, 정말 이곳에서는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래, 오늘부터 더 열심히 해야겠어.'
하지만, 찬성의 다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 났다.
"충성!"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최고 계급의 지휘관들이 모여 있는 건물이다 보니 높은 계급의 사람이 즐비했다.
그들이 찬성에게 보내는 시선에는 모두 불쾌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시기.
질투.
두 가지의 감정이 뒤섞인 이상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이거 스타가 돼 버렸나?'
어느 하나도 그의 경례를 받아 주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바삐 발을 놀렸다.
'앞으로 꽤나 피곤하겠구먼.'
사실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다.
이례적인 특진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시기 질투를 할 것이 분명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모든 사람이 할 줄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당연히 자신이 올라가게 될 위치라고 생각하던 자리에 뜬금없는 사람이 앉았으니 그 자리를 훔쳐 갔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찬성은 자신만의 특유의 유대감으로 그들과 친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을 따돌리는 것은 기본이고 이곳에서 어떠한 유대관계도 맺을 수가 없었다.
"저, 저...... 기."
찬성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찬바람을 쌩쌩 불며 뒷모습을 보이는 사무실.
사무실 내부에는 병사는커녕 부사관도 존재하지 않았다.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그를 왕따시키고 있었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한 텃세 때문인지, 찬성은 의욕이 일지 않았다.
'내가 여기 있어도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찬성은 앞에 놓인 전역서를 보고 고민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어떤 일이라도 하고 있으면 이렇게까지 자괴감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과 시기 질투가 심한 이 단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 전역을 하자.'
스윽.
사회적 이슈로 영웅이 됐던 그가 초라한 전역을 하게 된 이유는 군대의 부조리함 때문이었다.
밖으로 노출될 일이 거의 없는 이 단체가 보여 주는 행동에 대해 찬성은 역겨움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그저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맥이 턱 하고 풀려 버렸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되자, 결정은 빠르게 이뤄진 것이다.
찬성의 전역은 빠르게 이뤄졌다.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사람이 꽤나 있었으니,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전역을 수리해 버린 것이었다.
"일단 누구를 찾아가야 하나?"
찬성은 금방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 * *
한성 중공업.
이제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자리 잡았다.
꿀꺽.
그 앞에 선 찬성은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여기에 있는 건가?"
사실 찬성은 태욱의 연락처를 모르고 있었다.
그에게 알게 된 정보는 오직 한성 중공업에 소속된 헌터라는 것뿐이었다.
"그분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태욱의 도움을 통해 홍대 일대에 있던 몬스터들을 일괄 토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성 중공업이라는 커다란 단체의 소속돼 있는 헌터라면 자신의 능력을 더욱 높이 사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곳에 찾아온 것이었다.
"저, 강태욱이라는 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강태욱 이사님이요?"
"네?"
찬성은 강태욱 '이사'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고작 헌터팀에 소속돼 있다고 생각을 했지, 높은 위치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연줄이 돼 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무턱대고 찾아왔는데,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가 찾는 분이 이사님인지는 모르겠지만, 성함은 확실합니다. 강태욱이라는 분입니다."
"저희 회사에 강태욱이라는 직원이 얼마나 계시는지 알 수는 없으나, 헌터부에 소속돼 계신 분은 그분 한 분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럼 맞을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경비는 그를 자리에 두고 경비실로 향했다.
경비원은 예전 자신이 막아섰던 사람이기에 태욱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회사의 높은 직함을 가진 사람을 모두 외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에게 친절함을 보인 사람을 잊을 수는 없었을 뿐이다.
"강태욱 이사님 손님인데, 최대한 빠르게 조치해 드려야지."
하지만, 아쉽게도 경비의 바람과는 달리 사무실 내부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저 강태욱 이사가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가지고 손님에게로 다가섰다.
"지금 자리에 계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언제 출근하실지도 모르겠고, 혹시 연락처를 남겨 주시면 제가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강찬성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고, 연락을 부탁드린다고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찬성은 자신의 연락처를 작성하고 쓸쓸한 뒷모습을 남긴 채 되돌아갔다.
* * *
태욱은 한성 중공업에 출근해 자신의 자리를 향했다.
어제는 근처 몬스터가 출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토벌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가 그대로 퇴근했다.
책상 위에 놓인 포스트잇에 눈이 저절로 갔다.
지금까지 책상 위에 놓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강찬성.
010-735X-XX36
연락 바랍니다.
'강찬성이라.'
이름을 보자마자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영웅으로 추대받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포스트잇에 적혀 있는 사람이 동일 인물일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만약 협조가 필요하면 회사 공문으로 왔겠지.'
국가 단체에 소속돼 있는데, 굳이 민간인처럼 따로 연락처를 남겨 놓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포스트잇을 구겨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뭐 특별한 거 없나?"
태욱이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원의 연구 결과였다.
그녀가 빨리 인공지능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태욱의 머릿속은 온통 인공지능으로 꽉 차 있었다.
지금 한성 중공업에는 마도 공학자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이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데, 출근을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이곳에 종종 출근을 하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금방 밖으로 나간다.
'오늘도 이곳에서 할 일은 없어.'
태욱은 깔끔한 책상을 뒤로하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밖으로 나서는 태욱을 보고 경비원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회사로 들어가려고 했던 자신을 막아 세웠던 경비원.
그를 잊을 리가 없었다.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인지라 좋은 인상이 심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어제 찾아온 손님에게 연락은 해 보셨나요?"
태욱과 유대감이 있다고 생각한 경비는 스스럼없이 어제 찾아온 손님을 물어봤다.
"어제 찾아온 손님이요?"
"네, 연락처 남겨 달라고 해서 남겼는데, 아직 안 해 보셨어요?"
"연락처요?"
태욱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책상 위에 전화번호와 남겨진 이름.
"아! 감사합니다."
태욱은 경비원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다시 사무실 안쪽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직, 안 치웠겠지?'
사무실 밖을 나서면 들어오는 일이 적기 때문에, 태욱의 방은 바로바로 청소가 되곤 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포스트잇이 버려지지 않기를 바라며 태욱은 바삐 발을 놀렸다.
"저, 저기, 잠깐만요."
마침 그의 방을 치우고 나오는 청소부 아주머니가 태욱의 눈에 띄자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저, 저는 시킨 일만 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자신을 불러 세우는 태욱의 목소리에 떨리는 듯이 변명을 해 댔다.
"아니, 뭐라고 하는 거 아닙니다. 방 청소를 끝내셨나 해서요."
"지금 막 끝냈습니다."
"그럼 휴지통에 들어 있던 쓰레기는 어디 갔나요?"
"쓰레기요?"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두고 태욱은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버린 쓰레기통을 들고 물었다.
"이 안에 들어 있던 종이 못 보셨어요?"
"아, 그거라면."
흰 비닐로 돼 있는 봉투 안을 펼치니 그 안에 태욱이 찾던 종이가 떡하니 있었다.
"이 종이 찾으시는 건가요?"
"네, 감사합니다. 양...... 효심 씨?"
"아닙니다. 제 할 일을 한 건데요."
태욱은 두세 번 더 감사 인사를 하고 종이를 폈다.
-강찬성.
010-735X-XX36
연락 바랍니다.
구깃구깃 구겨진 종이였지만, 번호를 확인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충분히 식별 가능한 정도여서 재빨리 휴대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2번의 신호음이 울리더니 이내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마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냐는 듯이 재빨리 흘러 들어오는 상대방의 목소리.
"네, 강태욱이라고 합니다. 혹시 강찬성 씨 휴대폰 아닌가요?"
태욱의 질문에 휴대전화 건너편에서는 아주 밝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맞습니다.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일전에 홍대 방향에서 몬스터 퇴치를 맡았던 강찬성 중사라고 합니다.]
"중사라뇨? 준위님 아니십니까?"
태욱도 뉴스를 꼼꼼히 살폈기 때문에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추앙받아 높은 계급으로 승진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준위가 아닙니다. 그냥 민간인 강찬성입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