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회귀빨로 지존 헌터
- 4권 2화
스킬을 복사해 낸다고 해서 상대방의 능력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에 스스럼없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스킬을 복사해 가겠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어느 누가 자신이 힘들게 터득한 기술을 아무런 보상 없이 가져가는데 기뻐하겠는가?
혼자서 쏟아 넣은 시간과 노력은 그 어떠한 것으로도 쉽게 보상될 수 없음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조용하게 그의 뒤에서 스킬을 복사해 낼 수밖에 없었다.
* * *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금방이라도 몬스터들이 쏟아져 내려올 듯 보이던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멈춰 섰다.
"뭐지?"
은비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에게 몬스터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것이 기본이었다.
단순히 욕망에 눈이 멀어, 파괴하고 부수고 식욕을 채우는 것이 오크들이었다.
군집을 이뤄 활동을 하고,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적일지라도 숫자로 밀어붙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집단이었다.
엄청난 번식 속도를 성장 배경으로 일정 이상의 군집이 형성되면 먹이사슬이라는 개념이 뒤바뀐다.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오우거들도 오크들의 숫자가 일정한 개채를 넘어서면 오크들을 피해 다닐 정도로 몬스터의 흉포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뭔가 이상해."
태욱은 저들의 습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크들의 이상행동이 너무나 의심스러웠다.
'분명 뭔가 노리는 것이 있다.'
산등성 위로 오크들이 보일 정도라면, 저 너머는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가 존재한다.
그들이 일순간에 몰아치면?
적어도 이곳에 오래 발목을 붙잡힐 수도 있었다.
날이 선 날카로운 감각이 태욱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내가 직접 움직인다."
팀의 일원으로서 리더의 역할을 하지만, 전투를 치르면 1순위로 나서는 직책이 없는 태욱이었다.
탱킹이 부족하면 서브 탱커의 역할.
딜이 부족하면 딜러의 역할.
서포터가 부족하면 서포터의 역할.
팀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지, 그가 주축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기에 가장 발을 빼기 좋고 특수한 임무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혼자서 괜찮겠어?"
은비는 태욱의 말에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일종의 장난이다.
"물론이지, 그럼 여길 잘 부탁한다."
태욱은 동료들을 믿었고 동료들 역시 그를 믿었다.
* * *
조용하게 산길을 오르던 태욱은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바로 식스센스인가?'
오감을 제외한 6번째의 감각.
찬성으로부터 흉내 내기를 통해 습득한 스킬이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콕콕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과 더불어 적절한 긴장감이 태욱의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아직 오크들에게 접근하기까지 꽤나 먼 거리다. 그런데 느껴지는 이 기분은 뭐지?'
태욱은 머지않아 그 감각의 실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크르르릉."
산속에 있는 나무들이 방해물이 돼 낮은 소리가 밖으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만들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웨어 울프였다.
늑대의 형상을 지닌 녀석들은 깊은 숲속을 근간으로 지내는 녀석들이었다.
야간에 은밀하게 접근을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지만,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낮에는 그 능력이 반감된다.
기습을 통한 상대방의 당황을 이끌어 내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었다.
물론 강한 앞발의 힘과 무엇이든 물어뜯을 수 있는 강력한 턱을 이용한 공격은 무시무시했다.
"크르르르."
아직 그들은 태욱의 접근을 확인하지 못했는지, 연신 낮은 하울링을 이용해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
오크들이 쉽게 접근을 하지 않는 이유였다.
웨어 울프와 오크의 연대?
서로의 적대?
아직까지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오크들이 산등성이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웨어 울프 때문이었다.
'일단 돌아가야겠어.'
태욱은 짧은 정찰을 마치고 주둔지로 돌아왔다.
"어떻게 됐어? 이유는 파악한 거야?"
은비의 물음이 쏟아지기 시작할 때 태욱이 그녀를 막아섰다.
"일단 이것들을 준비해 줘."
복귀를 하면서 적어 놓은 종이를 은비에게 내밀었다.
서치라이트.
거울.
섬광탄.
TNT.
빛을 내기 위해 적합한 물체들을 써 놓은 종이였다.
"이걸 어디다 쓰려고?"
"웨어 울프를 발견했어."
은비는 태욱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웨어 울프?"
"오늘 밤 습격이 이뤄질 수도 있어, 그러니 차분하게 준비를 해야 해."
태욱은 자꾸만 강하게 느껴지는 식스센스의 기운에 빠른 협조를 부탁했다.
"최대한 많이 준비하면 좋아. 우리가 피해를 적게 보면 볼수록 수복은 더 빨라지니까."
그러고는 자신의 어깨에 달려 있는 무전기를 매만졌다.
상황 판단이 정확하게 서지 않았기에 쉽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무전기.
주위에 있는 모든 군인이 서로에게 정보를 보내는 유일한 창구.
이것을 통해 찬성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전달될 때, 분명 많은 숫자의 군인들이 그 말을 듣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만약 모든 곳에서 웨어 울프에 대한 방비를 하는 움직임이 보인다면, 지금과 같은 대치 현상은 이뤄지지 않을 수 있었다.
태욱은 그래서 고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최선이 있는데, 굳이 다른 것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찬성 씨 강태욱입니다."
태욱의 무전으로 현재 알고 있는 모든 상황을 전파했다.
* * *
치직.
치치치치직.
치칙.
무전 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울렸다.
웨어 울프를 발견하고 현재 그들을 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휘부는 비상이 걸렸다.
"현재, 서치라이트를 요청하는 부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보관하고 있는 모든 물자를 활용해도 충분하게 배치가 되기 힘듭니다."
"곳곳에서 웨어 울프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무전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무전기 앞에 앉아 무전을 듣는 병사들이 연신 입을 놀리고 있었다.
분명 지금까지 조용하던 지휘소였다.
탐색을 했지만 사소한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들은 웨어 울프라는 이름이 신호탄이 돼 지휘부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찬성은 고심에 빠졌다.
분명 일전에 탐색했을 때는 그런 흔적이라고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서 파고 들어왔고, 그 빈틈의 부분을 찾는 것이 바로 찬성의 역할이었다.
"어디에서 숨어 들어왔을까?"
붉게 그려진 전선은 이미 한참 전투 중에 있었다.
제자리를 지키면서 흘러 들어오는 몬스터를 막아 내기 위한 방어선은 확실히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분명 틈이 있었을 텐데."
촘촘하게 그려 놓은 지도에는 도저히 뚫고 들어올 만한 곳이 없었다.
능선.
계곡.
동굴.
어느 하나 빠짐없이 직접 실사를 하고 지휘소에 축소판으로 만들었다.
찬성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젠장!"
탕!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친 찬성의 행동에 깃발이 모조리 쓰러졌다.
"어디, 어디....... 아, 잠깐. 지금 전 부대 무전 확인해. 통신 구축이 되지 않은 곳이 어딘지 확인해야 해."
쓰러져 있는 깃발을 보고 무언가를 알아챈 것인지, 찬성은 지휘소에 있는 병사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완벽하게 그려 놓은 자신의 시나리오.
만약 지금 연결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전선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의 손은 쓰러져 있는 깃발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푸욱.
푹.
푹푹푹.
신속하게 쓰러져 있는 깃발들이 다시 스티로폼으로 돼 있는 3D 지도에 꽂혀 나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있던 위치와는 많이 달랐다.
한참이나 뒤로 빠져 있던 동쪽은 상당히 위쪽으로 꽂혀 있고 서쪽은 살며시 뒤쪽으로 후퇴돼 있었다.
전선으로 배치돼 있는 병력을 움직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작전부관의 능력이었다.
"찾았습니다. 현재 독수리 부대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무전해 봐."
찬성의 생각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는지, 더 이상 지도에 손을 대지 않았다.
"동쪽 지휘관들에게 연락해, 지금 당장 진격하라고. 그리고 서쪽에게는 현재 자리를 어떻게든 고수하라고 몬스터의 습격은 오늘 저녁에 이뤄진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저 해가 지평선 뒤로 넘어가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이 데드라인인 것이다.
명령을 내린 찬성도 재빠르게 무전기 곁으로 다가섰다.
최대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한 시라도 빨리 이 소식을 전 부대원들에게 전파해야 했다.
* * *
서쪽에 있는 인접 부대들은 조금씩 앞으로 출정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의 위치를 사수하라는 명을 받자마자 부대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힘 대 힘의 싸움에서 위치를 지키는 것이 가장 힘들다.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여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맥없이 무너진다면 한참 뒤로 밀리게 돼 있었다.
상대의 힘을 완벽하게 파악했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파악하지 못했을 때 하는 방법이 있었다.
목표 지점보다 한참을 앞으로 나서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제 살을 조금씩 내어 주면서 정해진 곳까지 조금씩 후퇴를 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힘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처를 하는 것이었다.
각 부대의 지휘관들은 맡은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부대를 움직인 것이다.
"전장 정리 없이 부대 이동한다. 신속하게 움직여!"
군인의 본분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전장 정리다.
이곳에서 내가 얼마나 머물렀고 어떻게 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모든 정보였다.
그런 것이 필요 없고 부대 이동을 하는 이유는 병사들 모두 알고 있었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병사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전선을 앞으로 이동한다."
"빨리, 빨리 움직여!"
마치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돼지의 얼굴을 하고는 억지로 움직이는 병사들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사기가 떨어져 나가는 병사들에게 지휘관은 더욱 강하게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자,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급격한 이동으로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한 병사들의 신음 소리와 더불어 조금씩 후퇴를 하며 정해 놓은 포지션을 지키는 일.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밝은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
그것이 군인의 본분으로서 당연했지만,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초연해질 수 없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 그게 바로 죽음이었다.
병사들의 붉은 피와 땀 그리고 그들의 함성이 전선을 꿋꿋하게 지켜 냈다.
* * *
한국 정부는 대대적인 몬스터 소탕을 마지막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회복 속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완벽한 롤 모델이라고 칭송하며 한국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듯 보였다.
적재적소에 헌터들과 군인을 배치해 시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안전지대 확충이라는 결과를 안겨 줬다.
가장 주축이 된 사람은 바로 찬성이었다.
작전부관이던 그의 계급은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물론 주변의 시기 질투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앞장서서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객관적으로 아니 주관적으로 봐도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한순간 각성을 하고 나서부터,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