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회귀빨로 지존 헌터
- 3권 23화
찬성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는지, 갑자기 얼굴로 쏟아지는 총알에 오우거는 깜짝 놀라 언덕 뒤로 숨어 버렸다.
"일단은 시간을 벌었어.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번개같이 한 명이 튀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후발대로 지원을 온 헌터 부대 소속 전투 헌터였다.
찬성은 이제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되는지 정확하게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일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전투 요원이 아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지원 부대.
혹시나 놓치는 것을 바로잡고 사람들의 생명을 가장 최우선시하는 것이었다.
'오늘과 같은 일은 때때로 반복된다.'
당장 내일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있을 곳이 어딘지 명확하게 아는 것이 많은 생명을 구하는 일이었다.
찬성은 그 길로 대대장실을 향해 노크를 했다.
똑똑똑.
* * *
태욱과 주원은 언덕 너머로 보이는 새카만 형체를 보고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건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분명 입꼬리는 살짝 올라간 것이 미소라고 볼 수 있었으나, 잔뜩 찌푸려진 미간과 흔들리는 눈동자는 미소라고 보기 힘들었다.
"어쩌면 좋을까요?"
"그러게요."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이 함성을 뿜어내는 몬스터들을 보고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일단은 저 몬스터를 처리하고 이야기를 계속할까요?"
찬성의 물음에 주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에서 몬스터들은 마치 바다 밀물 타이밍처럼 끝없이 몰려들었다.
쉬지 않고 몬스터를 처치하며 한계를 느낄 법하다고 생각한 양팀은 서로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보통이라면 이 정도에 지치기 마련인데.'
오랜 전투를 통해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을 몸으로 익혀 온 주원과 쌍둥이 형제는 자신들만 오랜 전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지금까지 헌터들은 많은 숫자와 유대 관계를 통해 전투를 치러 왔다.
그들은 더 강하게 힘을 쏟아붓는 방법만 모색했지, 오랜 전투에 대비하진 않았다.
최선을 다하고 나면,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뒷사람이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강한 화력을 일순간에 뽑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당연하듯이 말을 했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었다.
강한 화력으로 몰아치는 몬스터를 처리한 이후, 후속 부대가 그 자리를 채우고, 휴식을 취한 뒤에 다시 전선에 들어서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소수의 헌터로 구성돼 있는 팀에서는 전혀 다르게 활동한다.
각자의 체력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몬스터를 향해 효과적인 기술을 날리는 데 최적화된 것이다.
당연하게 오랫동안 전투를 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혀 냈다.
단번에 강한 힘을 쏟아 내는 것이 아닌 스스로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괜찮아요?"
"네, 이쪽은 괜찮습니다. 여유가 넘치시는 것 같은데?"
"오랜 경험으로 익혀 온 것이지요."
하염없이 여유로운 두 사람이었지만, 실제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몬스터들은 지평선 끝에서 계속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결국 시간이 한쪽 편을 들어 준다면 몬스터들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퍼퍼퍼펑."
강력한 화약 소리와 함께, 몬스터가 한 무더기 공중으로 비산했다.
60mm 박격포의 포탄이 몬스터들 가운데 떨어진 것이었다.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키며 새카맣게 몰려 들어오던 몬스터 부대의 듬성듬성 틈을 만들었다.
"전군 사격 개시!"
그러고는 언덕위에서 밀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태욱과 주원 일행은 그들을 반겼다.
가슴팍에 그려져 있는 태극 마크가 저들이 어디 소속인지를 알려 주고 있었다.
대한민국 육군.
몬스터 토벌을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지만, 그 실체를 알기는 힘들었다.
최전방에서 활약을 하고 있으니, 그들의 활약상을 알릴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몬스터들에게 이미 죽음을 당한 사람은 소문을 전파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미 밖에서 헌터들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니, 소식을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기 군인들이 다가오네요?"
"그러게요. 앞으로 3일 이상은 전투를 벌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한 시름 돌렸습니다."
주체는 생글생글 웃으며 땀방울이 하나도 맺히지 않은 이마를 소매로 닦아 내는 시늉을 보였다.
긴장이라는 것을 하나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표본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저는 대한민국 육군 소속 헌터 부대의 김찬성입니다."
"다행입니다. 이렇게 지원을 오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이곳에 발이 묶일 뻔했습니다."
태욱은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서며 손을 뻗었다.
사실 찬성은 이곳에 이렇게 급격하게 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몬스터 토벌은 대원들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무리하지 않아 가며 그 범위를 좁히는 데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급격하게 움직일 경우는 단 하나뿐이었다.
사람의 생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혹시나 남아 있는 생존자들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며 자신의 신념을 다하는 찬성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몬스터들의 이동이 부대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몬스터 나침반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가 최전선에 있는 지휘부에 있는 것은 바로 그의 탐지 능력 덕분이었다.
적재적소에 사람들을 배치하고 최대한 피해를 줄여 가기 위함이었다.
마침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그에게 강한 신호가 전달됐다.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는 무리에서 조금씩 그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뭐지?! 이건!'
느껴지던 힘이 약해진다는 것은 바로 몬스터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그 힘이 줄어드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몬스터 토벌.
하지만, 사방이 막혀 있을 정도로 강력하게 전달되는 힘에 의하면 그들이 포위됐다는 것까지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저희야 뭐 매번 하는 일인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실례지만 소속이나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찬성은 보고를 하기 위해 헌터의 소속이나 이름을 물었다.
개인적으로 부대를 활용했으니, 그 보고서를 작성함에 있어 당연한 것이었다.
어찌됐든 생명을 살렸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부대원을 활용한 것에 대한 책임은 묻겠지만, 큰 문책은 없을 것이었다.
"저는 한성 중공업 헌터단 소속 강태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저희 동료들이구요."
태욱의 이름을 듣자마자 찬성은 깜짝 놀랐다.
"여기 계신 분들이 한성 중공업 헌터단입니까?"
아무리 세상에 관심이 없다고 할지라도 한성 중공업이라는 이름은 누구든 알고 있었다.
최초의 마정석 합성기를 발명한 것도 모자라, 이번 몬스터 사태에 가장 앞장서서 일반 시민들을 지원한 단체.
대기업들 사이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어 낼 수 있는 강한 신념을 지닌 회사.
국가의 움직임에 자의든 타의든 관여한 엄청난 회사의 사람들이었다.
"뭐, 그리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일단 한성 중공업 소속 헌터는 확실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태욱의 말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찬성은 반대편에 서 있는 3명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분들은?"
마치 태욱에게 설명을 해 달라는 듯이 물었지만, 3명의 파티원은 스스로 자신들을 설명했다.
"저희는 떠돌이 헌터들입니다."
"어디 소속되거나......."
"없습니다."
찬성의 말이 끝나기 전에 주원이 대답했다.
머쓱해진 찬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일단 확인서를 작성해야 되는데,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태욱은 이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주원은 난처하다는 듯이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기에 계셨다는 서류에 사인만이라도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우물쭈물 망설이는 주원을 본 태욱은 주원의 행동으로 어렴풋이 눈치를 챘다.
'처음 우리를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행동이다.'
분명 친절하게 다가와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국가 관계자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약간의 경계하는 눈초리, 그리고 한발 떨어져 있는 저들의 몸짓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무언가 신뢰하지 못하거나, 이들에게 당한 것이 있다는 것.
태욱은 자신들은 이미 공개돼 있고 꽤나 큰 덩어리를 지니고 있으니,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일단 저들이 난처하지 않게 해야겠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미소를 지으며 태욱이 물었다.
"저희만으로는 안 되나요?"
태욱의 행동에 놀란 토끼눈이 되는 주원이었다.
무슨 커다란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몬스터들과 전투에서 만난 사이.
하지만, 자신을 보호해 주겠다는 명백한 의사를 밝히는 행동에 놀란 것이었다.
"저, 안 되기는 하지만......."
찬성도 전혀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가 공개되기 싫어하는 헌터는 많이 있었다.
음지에서 활동을 하거나, 진짜 사람들이 싫어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버린 부류.
여러 부류가 있었지만, 음습한 기운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한성 중공업 헌터팀에서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융통성을 발휘할 생각도 있었다.
"일단 저희 지휘부로 이동하시죠."
찬성은 태욱 일행을 보고 손짓을 건넸다.
뒤에 있는 3명의 사람에게는 마치 보지 못했다는 듯이 등을 지고 있는 모습에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이었다.
"감사드립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다시 뵙겠지요."
등을 지고 있는 찬성에게 고개를 숙여 가며 인사를 하는 주원이었지만, 찬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재빨리 태욱 일행을 이동시켰다.
"빨리 가시죠, 저는 오늘 여기 계신 분들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정식으로 이들을 여기서 보지 못했다고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태욱 일행과 찬성은 주원을 비롯해 쌍둥이를 그대로 둔 채, 지휘소를 향해 걸어 나갔다.
* * *
"그럼 여기 작성을 해 주시겠습니까?"
찬성이 가지고 온 흰 종이에는 꽤나 세세하게 분류가 나뉘어져 있었다.
시간 :
장소 :
소속 :
인원 :
각자의 능력 :
사건이 발생한 개요 :
쓰윽 훑어본 태욱은 어깨를 들썩이며 물었다.
"전혀 귀찮게 안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꽤 많네요?"
"하하, 저도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위에서 내려온 명이라."
너털웃음을 지으며 찬성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10개의 눈동자를 모두 피하기는 힘이 들었다.
관자놀이에서는 식은땀이 삐질 흘리고 있었고, 이글거리는 그들의 눈빛에서는 언제든 달려들 준비가 돼 있다는 기세를 풍기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짜 이걸 다 쓰란 말이야?"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은비였다.
몸을 쓰는 것이 가장 편한 은비는 이런 서류 작업을 가장 싫어했다.
그 때문에 대구에서 활동을 할 때도 몬스터 처리에 가장 앞서서 움직였지만, 서류 처리는 항상 뒷전으로 미루거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