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회귀빨로 지존 헌터
- 3권 15화
"우리도 빨리 시작하자고."
앞으로 튀어 나간 은비의 등을 노리고 달려드는 오크가 한 마리 있었다.
"차압!"
순식간에 튀어 나간 금강철인이 그녀의 등 뒤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뭐, 뭐?"
갑작스럽게 금강철인에게 안긴 꼴이 된 은비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기다리시게."
금세 오크들의 사이를 뚫고 태욱과 영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금강철인이었다.
"은비, 지금은 대구와는 달라, 천천히 우리는 상처 입지 않고 전투 지속력을 높여야 돼."
"그, 그런가?"
자신의 행동이 과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를 챈 것 같았다.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마음에 드는군, 물론 모두 잘한 것은 아니지만.'
금강철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은비의 행동을 인정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앞으로 튀어 나갔던 은비가 다시 뒤로 돌아오자, 위치를 정렬했다.
가장 앞을 막아서는 태욱과 금강철인.
그리고 뒤를 맡은 은비.
가운데서 소환된 하수인들을 부리는 영리까지.
서로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전투는 이제 시작됐다.
편대를 만들어 천천히 밀고 들어오는 인간들의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오크들이 단번에 고개를 돌렸다.
일순간에 한 점이 돼 주목당하는 기분이 상당히 꺼림칙했다.
"취익, 취익!"
그리고 그들이 내뿜는 콧바람은 여간 강한 게 아니었다.
코 밑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수염이 얼마나 강하게 숨을 내뱉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돼지 새끼가 어디서 흥분을 하고 그래?"
"발정제라도 처먹었나?"
은비는 전면에서 전투를 벌이지 못하자, 계속해서 오크를 도발하는 말을 내뱉었다.
"어, 언니?"
평소에도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은비의 본모습을 정확하게 본 적이 없는 영리는 놀란 토끼눈이 됐다.
어디서도 저런 적나라하고 퇴폐적인 욕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 참, 우리 영리는 이쯤에서 귀를 막는 게 좋을 거야."
은비는 영리를 걱정하는 말을 툭 하고 던지더니, 손수 그녀의 귀를 막아 줬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단숨에 가슴속에 먹먹하게 막혀 있던 말들을 내뱉었다.
"야이, 발정 난 돼지 새끼들아. 언니 가슴 보고 그렇게 흥분해서 달려들면 내가 어떻게 모두를 감당해 줄까? *&$#&@$%&*"
"......."
"......."
그녀의 말을 끝으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오크들도 반응하지 못했고, 곁에 있던 태욱과 금강철인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귀에 익지 않은 도발이 뿜어져 나오자, 다들 멍석이 돼 버렸다.
제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입을 벌리고 있다면 입으로 혼령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이 들은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위해 뇌에 있는 회로가 빠르게 회전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정적 이후 오크들도 한두 마리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녀의 도발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오크들이 본격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취익."
"죽여라! 킁킁."
"취익취익. 인간이 우리를 농간한다."
분노에 치솟아 있던 오크들이 당장이라도 그녀를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손에 쥐었다.
"취익. 공격한다."
"던진다!"
그러곤 한 마리가 단숨에 공중으로 자신의 장창을 휘릭 하고 던졌다.
파란 하늘에 한 개의 장창이 선발대처럼 튀어 오르자, 잠시 후 각자 다른 무기들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무기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당장 옆에 없으니, 손에 쥔 것을 던져서라도 맞추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오크들의 분노가 가득 찬 무기가 하늘을 수놓았다.
태욱이 올라가는 무기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저, 은비야?"
"왜?"
은비의 당당한 대답과 함께 하늘을 까맣게 물들었다.
"어떻게 할래?"
태욱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건지 물었다.
"그, 그게 나도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눈을 회피하면서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당연하게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지만, 마음에서 끌어 올라오는 커다란 감정을 참지 못해 생겨난 일이었다.
"너, 인마, 나중에 보자고!"
금강철인도 은비에게 살며시 감정을 표출했다.
따로 반말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 상황만큼은 아니었던 것이다.
푸욱.
가장 먼저 튀어 올라갔던 장창이 바닥에 꽂혔다.
창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파고 들어간 것을 봤을 때, 하늘에 있는 다른 무기들이 어떤 효과를 보여 줄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미안, 나도 이 정도일 줄은 전혀 몰랐다니까."
그녀의 함성과 더불어 하늘에서는 각종 무구들이 바닥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기들은 마치, 장마 시에 댐이 물을 저장해 놨다가 댐의 입구를 열어 버리는 것처럼 손살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기들에게는 일정한 목표라고는 없었다.
자연스러운 중력의 효과로 공중으로 높이 치솟았던 무기들이 땅으로 떨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일의 장본인인 은비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것쯤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짜, 양심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양심?"
은비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되물었다. 이에 일행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절로 입이 벌어졌다.
"허허."
참을 수 없는 너털웃음이 흘러나오는 금강철인이었다.
공중으로 높이 치솟았던 첫 번째 무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신호탄이 됐다.
슉, 슈슈슈슈슉.
순식간에 옆으로 몇 개의 무기가 바닥에 꽃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쏟아졌다.
'오른쪽....... 왼쪽.......'
하늘을 보며 가장 적은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려고 영리는 애를 썼다.
하지만, 그녀의 신체 능력으로는 모든 무구를 다 피할 수는 없었다.
'왼쪽....... 왼쪽....... 아, 저건.......'
순간 자신이 막아 낼 수 없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 두 눈을 질끈 하고 감았다.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피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인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 빠른 피해였다.
"팅!"
그때였다.
영리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무구 하나가 쇳소리를 내며 튕겨져 나갔다.
바닥에 꽂혀 있던 장창을 하늘로 차올린 은비의 기지가 발휘된 것이었다.
영리가 자신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드는 무기를 보고 눈을 감는 것까지 은비는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기를 상관하지 않고, 영리의 신체를 지키는 데 행동을 맞춘 것이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무기를 피하기 위한 행동이 아닌, 영리의 안전을 위해 한 행동은 고스란히 그녀에게 돌아왔다.
무기를 발로 차올림과 동시에, 사각이 됐던 다른 방향에서 떨어지는 도끼를 확인하지 못했다.
'어어?'
떨어지는 도끼날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천천히 움직이는 만큼, 신체 또한 무겁고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완전하게 피해 내지 못한 도끼는 은비의 볼에 큰 생채기를 만들었다.
"촤악."
살을 찢고 떨어지는 도끼에서 바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핏방울이 공중에 치솟았다.
"크압."
통증을 참지 못한 은비가 신음을 밖으로 토해 냈다.
그녀의 두 볼에 새겨진 기다란 상처를 타고 흐르는 붉은 핏방울이 더욱 무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 언니?"
깜짝 놀란 영리는 은비를 불렀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렇지 않게 쓰윽 하고 볼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고 미소를 짓는 은비였다.
20초가량의 무기 비가 쏟아지고 난 이후,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이제 하늘이 보이는 것 같네."
은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어련히. 누구 탓인데, 이제 맑아져......."
그녀의 말에 툴툴거리며 불만을 토로하며 고개를 돌린 금강철인은 말의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은비에 볼에 새겨진 깊은 상처를 확인한 것이다.
영리가 피하기 위해 도움을 준 것은 알고 있었다.
때때로 금강철인과 태욱도 영리의 안전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은비가 저렇게 커다란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적나라한 모습에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 이거 별거 아니야."
동료들의 모습에 은비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Chapter 4
대책 본부.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모두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안전에 관한 것이다.
비상사태를 선포한 만큼 벌어지는 어떤 일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컨트롤 타워를 24시간 돌리고 있었다.
"서울에 지금 다섯 개의 헌터팀이 구축돼 있습니다."
"헌터팀?"
"네, 정부 소속이 아닌 개인 헌터 소속들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헌터들이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밖으로 나섰다는 말을 들은 대통령은 마치, 쓴 커피를 단숨에 들이마신 기분이었다.
시민들의 안전을 구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정부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헌터들의 힘을 빌려야 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국방부, 국방부장관!"
대통령이 국방부장관을 부르자, 곁에 있던 장관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넵. 대통령님."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모습이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사실,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가장 많은 질책을 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적절한 대응책을 빠르게 내비치지 못했기 때문에 나왔던 반응이었다.
"아직도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까?"
"현재, 국방부에 꾸려져 있는 헌터팀이 배치 중에 있습니다."
약 15도 높은 방향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국방부장관이었다.
"그렇다면, 얼마나 커버가 가능하단 이야기입니까?"
대통령이 중요한 포인트를 찔렀다.
급하게 헌터팀을 꾸려 냈다고 하지만 만족스러울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군대 내부에 있는 인원들을 착출해 만들어 냈기 때문에 서로가 손발이 맞기는커녕 서로 하나가 돼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 그게......."
정확하게 얼마나 넓은 곳을 관리할 수 있을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아마 서울 전역 가까이를......."
일단 되는 대로 말을 내뱉자, 대통령의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죄, 죄송합니다."
"빨리 준비해서 보고하세요."
대통령의 말과 함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국가적인 지원과 더불어, 헌터들이 삼삼오오 모여 몬스터 토벌을 시작하자, 사람 간의 따뜻한 온기가 조금씩 도심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여기, 여깁니다."
"다들 모이세요."
헌터들이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난 이후 사람들을 모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에게 생필품을 건네주는 것만으로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다.
"어서 나오세요. 지금 몬스터는 길거리에 단 한 마리도 없습니다."
소리 높여 외치는 헌터의 모습에도 시민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기도 아무도 없는 건가?"
벌써 며칠째, 길거리에 있는 몬스터를 처치하고 난 이후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몬스터와 사람이 공존하는 구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헌터들이 빠르게 구축된 공간은 시민들이 있었고, 그렇지 않고 몬스터가 득실대는 공간은 결국 몬스터가 자리를 잡아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