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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빨로 지존 헌터-57화 (57/146)

# 57

회귀빨로 지존 헌터

- 3권 9화

"은색으로 둘러싸인 이상한 컵에, 뚜껑이 떡 하고 막혀 있었지."

"그러고는?"

"그리고 손가락을 이용해 탁 하고 열면, 치익 소리가 나."

"우와와아아."

페일이 직접 행동을 보이며 설명하는데, 곳곳에서 함성과 함께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적나라한 설명에 다들 맥주가 당긴 것이다.

"그래서 지금 저들이 밖에 있는데 한 번 만나러 가 보겠어?"

마지막 페일의 말이 있기 전까지는 모두 호의적인 모습이었지만, 그 말과 함께 분위기는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래도 인간이잖아."

"맞아, 인간들은 우리를 속이려고만 하지."

"설마? 페일 너도 그들을 믿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설득을 하고 설명을 하려고 해도 드워프들은 페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들으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반짝이는 눈을 하고 듣고 있던 드워프들이 이내 자리를 벗어나려고 엉덩이를 떼는 순간, 스틸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너희가 진정 드워프가 맞는가?"

스틸의 목소리에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그게 무슨 말이냐? 우리가 드워프지, 누가 드워프냐?"

"맞다. 우리만큼 순수한 드워프가 어디 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툴툴거리며 드워프들의 불만을 차분하게 듣고 있던 스틸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도움을 준 녀석들을 무시한다는 것이 드워프가 할 짓인가?"

드워프들은 항상 도움을 받으면 그 이상으로 보답하려 노력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도움을 받은 동료가 있었다.

그를 도와준 사람을 성대하게 맞아 파티를 해 주는 것도 모자랄 터인데, 이렇게 그들의 종족이 인간이라고 무시하려는 행동이 드워프들의 성격상 맞지 않는 것이었다.

"진정, 우리가 드워프인가?"

다시 한 번 묻는 스틸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드워프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대답이 없는 틈을 타서 스틸이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우리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페일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에게 보답을 하려고 한다. 그 보답은 지금 당장부터 이뤄질 파티다. 불만 있는 이가 있는가?"

드워프들 가운데 아무도 목소리를 내는 이가 없었다.

오늘 하룻밤의 파티.

그것이 보답이라면 충분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서 그들을 데려오라. 그동안 우리는 충분한 준비를 끝내겠다."

마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스틸의 허락이 떨어지자, 페일은 재빠르게 마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태욱 일행을 향해 움직였다.

뒤뚱뒤뚱 뛰는 뒷모습에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은인에게 보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 * *

마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태욱 일행은 갑자기 마을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에 깜짝 놀랐다.

"와아아아!"

큰 함성이 울렸다.

마을 입구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크게 들릴 정도면 정말 커다란 소리가 난 것이다.

"아니, 뭐지?"

그들의 함성에는 어떠한 감정이 실려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악다구니를 써 대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움찔거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진짜 괜찮을까?"

"그래도 페일을 믿어야지."

페일은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안심을 하라고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나만 믿으라구!"

의기양양하게 걸어 들어가는 그 뒷모습은 꽤나 믿음직했다.

태욱 일행은 지금까지 페일과 같이 있으면서 한 행동을 믿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동료들의 무기를 정비해 주고, 보답을 해 주고 싶다는 말을 내뱉은 녀석이었다.

적어도 드워프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종족이었다.

만약 마을로 들어가서 그들이 반기지 않는다면 아마 페일은 보답을 하기 위해 태욱과 같이 움직였을 것이다.

그런 페일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 것이었다.

"마을에 가서 꼭 들어올 수 있도록 설득해 볼게. 조금만 기다려."

사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마을로 들어가려고 하는지 페일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페일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광물을 얻기 위해 혹은 드워프들의 특유 기술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부탁을 하려고 찾아왔다는 말은 드워프에게 부탁이 있다는 소리다.

지금 마을에 그 드워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든 페일이었다.

페일은 이들에게 확신을 주고 마을 안쪽으로 떠났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커다란 함성이 들렸다.

"진짜, 괜찮을까?"

"어떤 결과든 이야기해 준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자."

태욱은 만약 이곳에서 드워프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해결의 실마리는 잡았다.

만약 마을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페일에게 부탁을 하면 들어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부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나머지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약간이 시간이 흐르자 마을 입구에서 페일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온다, 온다구."

"어디?"

"저기 저쪽에 페일 아니야?"

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를 가진 드워프 한 명이 뒤뚱거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됐어! 됐다구!"

양손을 높이 흔들며 뛰어오는 그의 표정에는 미소가 담겨 있었다.

기다림 끝에 받은 대답이 달콤하니 다들 절로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은 막아 낼 수 없었다.

"오늘 마을에서 잔치를 할 거래, 그러니 같이 와서 즐기자고 하던데?"

"진짜?"

무기를 고쳐 준 이후로 부쩍 친해진 페일과 은비는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눴다.

페일은 태욱보다 은비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편했다.

팀의 리더로 보이는 태욱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기 뭔가 불편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도 쉽게 흘려들으려고 하지 않는 태욱의 모습에 조금씩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아무런 생각 없이 대화를 하기에 편안한 사람은 은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마을로 가서 오늘 밤을 불 싸지르자고."

"그래, 나도 좋지!"

페일은 상당히 들떠 있었다.

다시 한 번 이들의 맥주를 먹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반가웠다.

분명 드워프들의 맥주와는 다른 느낌을 주는 맥주가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충격으로 다가올지 예상했다.

은비는 드워프들이 만든 맥주를 먹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고, 페일은 다른 드워프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결과는 같은 방향이었다.

마을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며 주위를 살피자, 분주한 드워프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 여기 좀 도와줘."

"빨리, 이제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서 누구 하나 표정을 찡그리는 이가 하나 없었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밝은 표정이 누구 하나 억지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보통 축제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정말 그 축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기쁜 표정과 빠릿빠릿한 행동을 보인다.

자신이 축제를 준비하는 것이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행사 준비 내내 울상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기만 할 뿐, 개인의 생각으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전자의 사람은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엄청나게 솟아오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다르다.

심지어는 지금 하는 일이 왜 하는지, 이유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인간들이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원은 자신의 연구소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생각했다.

개인의 시간을 빼앗지 않기 위해 최대한 배려를 하지만, 그렇지 아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주변을 살폈다.

과학자에게 있어서 드워프들이 만들어 놓은 것은 신기한 전시품을 보는 것과 같았다.

머리로는 절대로 이해되지 않는 형태로 만들어진 몇몇의 건축물이 특히나 깜짝 놀랄 정도였다.

"저런 게 가능한 거야?"

아래쪽이 크고 위쪽이 작게 만드는 것이 구조역학상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생김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아래가 크고 위쪽이 작게 만들어진다.

주위의 건물을 살펴도 위쪽이 더 커다랗게 지어진 건물은 흔치 않았다.

"완전 피라미드를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네?"

은비도 옆에서 지원의 말을 거들었다.

피라미드가 거꾸로 놓여진 상태.

생각의 사고를 벗어나는 생산품들이었다.

당장 밖으로 가져 나간다면 사람들은 희대의 발명가, 혹은 건축가가 나타났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주위를 구경하고 있던 태욱 일행은 바로 옆으로 다가온 스틸의 존재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다가와 가볍게 인사를 건네려고 하던 스틸은 그들의 행동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자 결국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크음. 으음."

등 뒤에서 소리가 나자 모두 고개를 돌렸다.

키가 작은 두 명의 드워프가 서 있었다.

태욱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두 명의 드워프였지만, 지금 여기에서는 전혀 일면식이 없는 상태였다.

회귀 전의 인연을 이곳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인연을 만들고자 이곳에 찾아왔으니, 행동거지 또한 자연스러워야 한다.

태욱은 손을 뻗어 자신의 팔꿈치를 두드리는 인사를 건넸다.

드워프 종족들의 고유 인사.

인간들에게는 하지 않는 것이었다.

태욱의 행동에 흥미로운 눈빛을 한 채 스틸이 다가와 그와 마찬가지로 드워프식 인사를 건넸다.

"내 살다 보니, 인간에게 드워프식 인사를 받게 될 줄이야."

"아닙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한 번 해 봤습니다. 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태욱이 쑥스럽다는 듯이 말을 조근조근 이어 갔다.

스틸은 그 행동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그 정도면 충분하지, 뭘 더 바라나. 이렇게 우리의 인사까지 준비할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곁에 서 있던 크리트에게 묻자.

"......."

크리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초리에서는 어떤 분노나 적대심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스님의 눈을 보는 것 같은 인자함이 가득 서려 있었다.

"우리 페일의 목숨을 구해 줬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인연이 됐습니다. 위험하기도 했고 마땅히 목숨은 구해야 되는 것이 니까요."

페일의 목숨을 구한 것을 화두로 내던지는 스틸이었다.

드워프의 특성상 절대로 받은 은혜는 쉽게 넘기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공표를 해 모든 이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게 한다.

지금 스틸이 일부로 그 말을 태욱의 앞에서 꺼낸 이유는 간단했다.

페일의 목숨에 대한 보상을 하기로.

축제는 부산물일 뿐이었다.

혹시 자신이 가진 것 중에 원하는 것이 있다면 능히 꺼내 줄 마음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드워프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아무런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

인간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스틸이었다.

더 이상 드워프 마을은 인간과 오래가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은인은 은인이고 마을의 교류는 마을의 교류였다.

여기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면 더 이상 인간과의 관계를 이어 나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원하는 바를 찾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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