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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빨로 지존 헌터-55화 (55/146)

# 55

회귀빨로 지존 헌터

- 3권 7화

드워프 페일은 그들이 나눠 주는 것을 받으면서도 의심을 풀지 않았다.

아니, 풀지 못했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항상 친절하고 혼자 가지고 있는 것을 능히 베풀 줄 알았다.

멀리서 보고 있으면 드워프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누며 서로 즐기는 것이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는 슬로건과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여기 이것도 먹어 봐요."

먹을 것은 기본이고 드워프에게 중요한 맥주도 스스럼없이 나눠 줬다.

"맥주 한 잔 드실래요?"

"맥주요?"

은색으로 돼 있는 이상한 물건을 툭 하고 던졌다.

얼떨결에 받아든 페일은 요리조리 살폈다.

'이게 맥주라고?'

그의 기억 속에 있는 맥주는 커다란 오크통 안에 담겨 있었다.

기억을 샅샅이 찾더라도 은색으로 돼 있는 곳에 담겨 있는 맥주는 확인하지 못했다.

여는 방법을 확인하지 못한 페일에게 본보기로 보여 주듯 그들도 맥주를 꺼내 들었다.

"여기를 이렇게."

치익.

캔을 따면서 탄산이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곤 그 안에 들어 있는 맥주가 흰 거품을 만들어 내며 위로 흘러나왔다.

"어어? 츄릅. 흔들렸나 보네."

페일은 입을 가져다 대며 마시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따라 했다.

치익.

캔 뚜껑을 따는 것이 어색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맥주를 입에 한 모금 머금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눈이 번뜩하고 뜨이고 입안을 채우는 맥주의 향이 지금까지 먹었던 어떤 것과도 달랐다.

강한 타격감을 주는 탄산과 더불어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 주는 가벼운 향과 맛은 페일에게 충격적이었다.

'이게 맥주인가?'

맥주의 느낌을 주지만, 너무 가벼워 맥주라고 생각하기는 조금 힘들었다.

항상 오크통에 담긴 진한 맥주를 먹어 온 그에게는 약간의 충격이었지만, 그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하기엔 그들의 표정에는 궁금증이 실려 있었다.

마치, 페일이 어떤 말을 할까 내기라도 건 모습이었다.

"저, 그게."

맥주를 마시고 처음 입을 열자 사람들이 모두 페일에게 시선이 쏟아졌다.

"어때요? 맛있죠?"

"가벼워서 먹은 것 같지 않죠?"

"드워프들은 맥주의 대가라면서요?"

각자 한마디씩 물었지만, 페일에게는 순식간에 대답을 여러 번 해야 되는 상황이 됐다.

"한 분씩 대답해 드릴게요. 일단 맛은 있습니다. 맛 자체가 먹고 뱉어 버릴 정도의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페일의 평가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번째, 가벼워서 먹은 것 같지 않다. 이 질문에 답은 그렇다입니다. 저는 가벼운 맥주를 이번에 처음 먹어 봅니다. 상당한 충격이 목으로 전달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먹은 것 같지 않다는 대답에 진한 뒷맛이 느껴지지 않아, 라고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상당히 긴 설명이 이어졌다.

페일에게 관심이 높은 질문을 하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말문이 트인 것이었다.

맥주는 아직 많았고, 그들은 서로가 불편해 하지 않는 선에서 질문을 주고받았으며,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술자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오늘 고마웠어요."

약간은 거부감이 있던 페일도 한 잔 두 잔 이어지는 술잔과 더불어 올라오는 술기운에 조금은 풀어진 마음을 보였다.

"제가 고맙습니다."

태욱은 그를 향해 목례를 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경계심을 풀지 않았던 것은 과거의 인간들 때문이었다.

같은 인간 때문에 생겨난 드워프들의 행동을 태욱은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조금씩 마음을 풀고 천천히 다가와 준 페일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닙니다. 목숨도 구해 주시고, 이렇게 친히 맥주까지 나눠 주신 마당에 무슨 고마움을 표시하십니까?"

"그래도 저희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라 다행이었습니다."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찰나, 페일의 작은 목소리가 페일의 귓가에 진동을 줬다.

"사실 저희 드워프들은 과거에 인간들에게 이용을 당했습니다."

낮게 읊조리는 페일의 음성을 태욱이 낚아채 되물었다.

"이용을 당했다니?"

"말 그대로이지요. 친절하게 다가온 인간들은 저희의 모든 것을 약탈해 갔습니다."

페일의 음성에는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인간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 수 없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아....... 그건......."

태욱은 사죄의 말을 던졌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간으로서 인간을 대표해 사과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 사과는 제가 받을 것이 아닙니다."

빠르게 사과를 하는 태욱을 말리는 페일이었다.

사실 자신은 인간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바가 없었다.

인간의 대표로 사과할 것이라면 자신 말고 직접 피해를 입은 드워프들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의 나이는 40이지만, 드워프에게 있어서 40이라는 나이는 아직 어린아이와 다름없었다.

외형적으로 턱수염이 자라 있고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마을에서는 그를 장년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청년 혹은 아직 어린아이 취급을 당할 뿐이었다.

"사실 저희는 드워프를 만나러 왔습니다."

태욱이 힘겹게 입을 열자 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여기 탄광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드워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페일이 대답했다.

태욱은 짐작했다고 말하는 페일에 말에 화들짝 놀라며 사과했다.

"일부로 숨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드워프 마......."

"물론 이유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 주변에는 저희 마을 말고는 다른 드워프 마을이 없습니다."

너그럽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페일에게는 악의적인 감정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태욱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곳에 찾아온 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을 대표해서 이곳에 찾아왔고, 그리고 직접 사과를 하기 위해 몬스터들을 뚫고 이 광산으로 온 것이다.

"일단은 마을로 같이 돌아가셔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같이 가 주신다면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사과할 기회를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이신가요?"

페일은 태욱의 물음에 손사래를 쳤다.

"아, 저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아직 어린 드워프일 뿐입니다. 마을에 가면 촌장님께 말씀은 드려 볼 수 있습니다."

단 하룻밤의 인연이었지만, 페일은 악감정이 없이 순수하고 깨끗하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태욱에게 마음을 연 것이다.

"일단 내일 아침 동굴을 벗어나 마을을 향해 이동합시다."

"그럼 주무십시오."

페일은 그 자리에서 바로 곯아떨어졌다.

* * *

다음 날 아침.

가장 먼저 일어나 준비를 마친 사람은 바로 페일이었다.

꽤나 늦은 시간까지 같이 술을 즐겼지만 과음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늦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페일이 조금 부지런하게 일어난 탓이었다.

스르르르륵.

스르르르륵.

숫돌을 가지고 자신의 무구를 정비하는 페일이었다.

그에게는 간이 모루와 망치 그리고 언제 만들어 냈는지, 풀무도 한쪽에 있었다.

쒜엑. 쒜엑.

소리를 내며 강한 불길을 일으키는 풀무까지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페일이 가장 먼저 불러낸 사람은 은비였다.

"거기 몸 좋은 아가씨."

"네? 저 말하는 건가요?"

은비가 주위를 살피며 되물었다.

"그럼 그렇게 매력적인 근육을 가진 아가씨는 인간들 중에 보기 힘들지."

"하하, 뭔가 잘 아시네."

자신을 칭찬한 페일의 말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가까이 다가서는 은비였다.

"혹시 등 뒤에 메고 있는 무기를 잠깐 줄 수 있는 건가?"

"무기요?"

갑자기 자신의 무기를 달라는 페일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은비였다.

자신의 무구가 소중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애병(愛兵)을 달라고 이야기하면 누가 쉽게 넘겨주겠는가?

"여기서 뺏어 갈 수도 없지 않은가? 등 뒤에 진 도끼의 울음소리가 들려 잠시 빌려 달라는 이야기네."

은비는 페일의 말을 바로 알아차렸다.

무기를 정비해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드워프들 중에서도 낮은 축에 속하는 페일이었지만, 인간으로 보면 꽤나 높은 수준이었다.

그가 직접 무기를 손봐 준다는 것은 쉽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뚝딱거리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은비의 무기에서 광택이 나기 시작했다.

무기 본연의 빛깔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우와."

페일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대단한 능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조금 손보기는 했는데 완벽하지 않아."

툭 하고 무심하게 건네주는 페일의 투박한 손 위에는 은비의 도끼가 올려져 있었다.

한데 거기에는 은비가 건네준 도끼가 아니라 완벽하게 새로 탈바꿈한 무기만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드워프만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태욱은 페일이 무기를 정돈하는 모습을 보고 흉내 내기를 시전했지만 '대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는 시스템 알림을 들을 뿐이었다.

그가 가진 고유의 특성과 경험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무기를 받아든 은비는 탄성을 터뜨렸다.

"진짜 내 무기인가요? 정말 이게?"

믿기지 않는지 무기 이곳저곳을 살피며 물었다.

은비가 만족해 하는 모습을 보이자 페일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손봐 준 무기를 신줏단지 모시듯 행동하는 은비가 마음에 들었다.

무기가 가지는 특성이 있다.

그 실체를 아는 사람은 그만큼 활용도가 높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꾸준하게 도끼를 주 무기로 활용해 왔던 은비였기 때문에 더욱 페일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눈이 있었다.

"이 손잡이부터, 여기의 활용도까지?"

자신이 어떻게 무기를 사용하는지 아는 것 같았다.

"주로 힘으로 사용하는 것 같던데, 손잡이 밸런스가 많이 무너졌어."

페일은 무기의 단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어떤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알고 있다는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인 것이다.

"마을로 가면 더 좋게 해 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이게 한계야. 역시 간이 도구로 하는 수리는 한계가 있다니까."

누가 봐도 완벽한 수리였지만, 페일의 눈에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임시방편으로 사용하기 좋게 만들었을 뿐, 특색이 드러나지 않았다.

"일단 사용하고 있어, 마을로 가서 다시 손봐 줄 테니까."

페일이 툴툴거리며 내뱉은 말에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조금씩 그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단단한 바위라도 물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지면 그 틈이 갈라지게 돼 있다.

신뢰가 없던 사이라도 이렇게 계속해서 같이 지내고 서로가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충분히 그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단 하룻밤이었지만, 페일이 알고 있는 인간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이 자신이 가진 선입견을 바꿔 줬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모든 인간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잘못된 생각이 발전적인 미래를 만들어 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 것이다.

그렇기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은비의 무기를 손봐 준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나중을 기약했다.

"어찌 됐던 이제 마을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동굴 밖을 보면서 말을 하는 페일의 표정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

저 무시무시한 녀석들을 뚫고 지나갈 생각에 참담함이 앞을 가렸다.

"글쎄요."

태욱은 그런 페일을 보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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