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회귀빨로 지존 헌터
- 3권 3화
태욱이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세세하게 하나하나 모두 똑같이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드워프들이 그때와는 다른 생각이나 경험이 있다면 당연히 반응도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더구나, 믿음을 보여 줘야 한다면서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드워프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로남불인가?'
자신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믿음을 보여 주라면서 자신들은 믿음을 보여 주지 않는 것과 같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단순한 이방인일 뿐이야."
"이방인?"
"그래. 이방인. 지금까지는 같은 마을 드워프들끼리 살고 있었지. 물론 그들도 처음에는 지금과 같은 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겠지."
태욱의 말에 어렴풋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은비였다.
그녀가 대구에서 지낸 시절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전 세계에 몬스터 출몰 후, 대도시라고 불리는 모든 곳에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습격도 있었고, 몬스터들이 항상 상주하는 곳도 시간이 지나자 정해졌다.
결국 국가가 나서서 장벽을 설치하고 구호소를 차리는 동안 혼돈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대구에 있는 헌터들은 서로 합심을 해 민간인을 구하는 일을 해 왔다.
겉으로는 우락부락하고 말도 좋게 나가지는 않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안전이었다.
험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서도 위험에 빠진 민간인이 있으면 재빨리 나섰다. 그들의 마음 한편을 보여 주고 있었다.
몬스터 습격이 잦아들고, 상주하는 곳에 대한 정보가 뿌려지자, 갑자기 위협에 빠지는 이들이 줄어들었다.
"오늘은 별일 없나 보네?"
"에잇, 몸 좀 풀 수 있을까 했더니만."
대구의 헌터들은 이제 매일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 밥 먹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쉬지 않고 전투를 해 온 탓에, 움직이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좋네."
"좋긴 뭐가 좋아?"
"사람들이 안 죽잖아."
"......."
"......."
한 사내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그토록 움직였던 이유가 저것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이다.
대구가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그들이 알지 못하는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헌터들의 모습은 자신들과 상당히 비교되는 것이었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구두와 벨트, 사소한 액세서리까지 모두 깨끗한 느낌을 줬다.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서울의 헌터들에게 처음에는 아무도 대응하지 않았다.
헌터란 무릇, 여기저기 상처가 있으면서 인상이 험악한 사람들이었다.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일반 시민들에게는 생소하게 보였다.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을까?
혹시, 우리를 지켜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처음에는 서울의 헌터들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 헌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직접 몬스터 사냥을 하는 모습들이 포착되기 시작하자, 시민들의 의견은 손바닥 뒤집듯이 금방 뒤집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헌터에서 이제는 꼭 필요한 헌터로 자리 잡았다.
항상 궂은일에 가장 먼저 나서며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 사람들의 박수 세례가 쏟아졌고, 이에 몬스터를 처리하는 장면이 많이 보이기도 했다.
"워매, 저 사람들 진짜 헌터가 맞나 봐."
"그래, 몬스터를 단칼에 베어 버리더라니까?"
"진짜?"
"그럼, 진짜지. 내 눈으로 똑똑하게 봤다니까."
이런 대화가 자연스럽게 나올 때쯤에, 대구의 헌터들과 서울의 헌터들이 같이 움직이는 사건이 있었다.
몬스터 폭주 사태.
국가가 만들어 놓은 방책을 넘어 밖으로 몬스터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일시적으로 튀어나온 몬스터들을 토벌하는 토벌대를 구성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앞으로 튀어나온 이들이 서울의 헌터들이었다.
"저희가 가장 앞을 맡겠습니다. 저희만 따라오십시오."
가장 앞장서서 몬스터를 처치해 나가는데, 다들 그들의 앞길을 막지 않았다.
지금까지 매번 먼저 나서는 헌터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제약을 걸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의 사냥 후 그들은 본격적으로 숨겨 놨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치지 않고 사냥을 하던 서울 헌터들이 강력한 몬스터가 나오자, 살짝 뒤로 빠지는 것이었다.
"지금 빠지면 어떻게 하자는 거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의욕이 앞서서 실수로 마력을 모두 사용해 버렸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는 모습에 대구의 헌터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넘겼다.
물론 사상자도 발생했다.
민간인 피해는 없었지만, 헌터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전투가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그러한 패턴은 어김없이 보여졌다.
결국 가장 강한 몬스터는 대구의 헌터들이 상대를 하고 그렇지 않은 약한 몬스터들은 서울의 헌터들이 상대를 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눈에는 그러한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위험한 몬스터가 있는 곳은 오직 헌터들의 눈만 존재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시민들의 눈에는 서울 헌터들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억울함은 쌓이고 쌓여 결국 대구의 헌터들이 폭발했지만, 시민들은 더 이상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아니, 이제는 거의 서울 헌터들의 등에 업혀서 다니더만 왜 저런 불만을 이야기하는 거야?"
"그러게, 대구 헌터들이 몬스터 사냥했던 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에 대구의 헌터들은 모두 제 살길을 찾아 고향을 버리고 떠났다.
헌터들이 떠나자, 조금씩 서울 헌터들의 탐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던 은비는 이를 갈았다.
"그래, 단순히 이방인들에 대한 기억이 있으면 저렇게 행동하는 게 당연하지."
드워프들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한동안 어두웠다.
태욱은 은비의 어깨를 토닥이며 계속해서 이동했다.
목표는 광산 근처에 있는 몬스터.
어차피 드워프들에게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몬스터이기도 했고, 이번 출정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 * *
은밀하게 이방인들의 뒤를 쫓던 페일은 그들이 숲속 가운데 야영을 준비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준비성이 철저한데?'
가운데 모닥불을 피워 놓고 사방으로 모두 알람을 준비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철저하게 인간스러운 모습이었다.
드워프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실력과 무기를 믿는다.
그러니, 경계는 둘째고 항상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긴장감을 푸는 것이 가장 좋은 전투를 준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달랐다.
준비하고 또 준비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만반의 준비를 끝내면 모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이제, 우리도 저러한 모습을 갖춰야 되는데.'
이번 몬스터 습격을 통해 페일은 드워프들이 저런 모습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됐든 좋은 모습이 아닌가?
안전을 확보하고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오늘 야영지도 정했으니, 한 잔 할까?"
"그럴까?"
나무 밑동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 인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맥주?'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인간들의 모습을 봤더니, 그의 예상대로였다.
'진짜 맥주를 먹다니.'
그에게 있어서 맥주는 펍이나 집에서 즐기는 용도이지, 저렇게 사냥터 중간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쇠 컵으로 이뤄져 있는데, 밀봉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돼 있는 듯 보였다.
"제, 제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아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따금씩 한탄과도 같은 한숨이 흘러나왔지만, 페일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 냈다.
'그래, 난 저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러 온 거야.'
마음속으로 굳은 다짐을 했지만, 자꾸만 향하는 시선을 막을 수는 없었다.
* * *
일찍이 따라오는 것을 알고 있던 태욱은 야영 준비를 마치고 일부로 팀원들과 맥주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 줬다.
'이 정도면 충분해.'
벌써부터 고개를 기웃거리며 이쪽을 주시하는 눈빛이 색달랐다.
하지만, 이곳에서 아는 척을 할 수는 없었다.
저들이 경계병을 보낸 것을 우리는 전혀 몰라야 계획이 이뤄지는 것이니까.
"그 가방에서 육포 좀 꺼내 봐."
"육포요?"
태욱의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영리였다.
이제는 그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믿고 따르는 영리가 태욱이 부탁하기에 가장 편안한 인물이었다.
"그래."
"여기 있어요."
영리는 가방을 뒤적여 육포를 찾아 태욱에게 건네고 자신의 입안으로 하나 집어넣었다.
우물우물.
입술을 달싹이며 잘근잘근 씹는 모습이 꼭 애니메이션 속 다람쥐 모습을 닮았다.
"우리 영리는 진짜 다람쥐 같아."
"뭐가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되묻는 영리에게 지원이 대답하며 영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야, 많이 먹어."
앞머리가 부스스해지든 말든 영리는 자신이 먹고 있는 육포에 온 신경을 담았다.
슬그머니 태욱의 곁으로 다가온 지원은 귓속말로 조심히 물었다.
"이거 언제까지 해야 되는 거야?"
"아마, 내일 몬스터 사냥할 때까지?"
"사냥?"
놀란 눈을 하고 되묻는 지원이었다.
그녀의 계획에는 드워프들과 친분 관계를 맺고 계약을 하는 것 외에 사냥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사냥한다는 태욱의 말에서 이미 계획돼 있던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해 줘야지. 무기도 제대로 챙겨 오지 못했는데."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강한 몬스터는 아니니까."
지금까지 상대한 몬스터들이 지원과 영리 은비의 레벨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셈이었다.
이제는 꽤나 덩치를 크게 부풀릴 수 있을 정도로 소환수의 레벨도 상승했지만, 아직도 녀석들은 영리의 어깨를 자신들의 보금자리인 것마냥 놀고 있었다.
'그래도, 할 땐 해 주는 녀석들이니까.'
아쉬운 마음을 담아 시선을 보내면서도 따로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내일 사냥에 나서야 되니까, 충분히 휴식하시고, 내일을 준비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각자의 스타일로 대답한 은비와 영리, 지원은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금강철인은 태욱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앞으로 손발을 맞춰 나가야 할 인물이지만, 두 사람은 따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공통된 주제가 있지 않으면 서로에게 개인적인 속내도 들어 내지 않았다.
"둘이 이야기 좀 할까?"
그러던 와중, 먼저 대화를 걸어온 사람은 금강철인이었다.
"우리 둘이?"
태욱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되물었다.
금강철인은 이곳에 어떤 사유로 오게 됐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말이야......."
태욱은 그의 푸념을 듣는 데 꽤나 긴 시간을 할애했다.
금강철인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과묵한 도인.
흰머리 휘날리며 부스스한 머릿결을 가지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인자한 모습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시끄러운 목소리에 절로 귀를 막곤 한다.
특히, 예쁘고 귀여운 여성이라면 한마디라도 더 걸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혼자 살았던 거지?"
"아, 그건 말이야. 내가 조절이 잘 안 돼."
낯빛이 어두워진 채로 대답하는 금강철인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다시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하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