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회귀빨로 지존 헌터
- 3권 1화
Chapter 1
탕.
탕.
탕.
탕.
쇳덩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뭐하는 거야? 빨리 빨리 하라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이가 화덕 앞을 지키고 있는 녀석을 재촉했다.
그의 이름은 스틸.
드워프 마을 제일의 대장장이였다.
"아니,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스틸의 말에 투덜대며 연신 바람을 불어 넣는 크리트.
두 명의 드워프는 태어날 때부터 경쟁 관계에 있었다.
부모님도 라이벌 관계였던 두 드워프의 인연은 나이가 먹어서도, 최강의 대장장이가 돼서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화덕은 내가 관리할 테니까, 너는 담금질이나 신경 쓰라고."
크리트는 불만 섞인 말투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잔소리를 내뱉었다.
마을에서는 이 두 명의 관계를 이렇게 불렀다.
철근과 콘크리트.
줄여서 철콘.
서로 관계가 없는 두 개의 물질이 일정한 배열을 통해 섞이면 내구성이 더욱 강해진다는 의미였다.
철근은 압축의 힘에 굉장히 강한 내성을 지닌다.
하지만, 뒤틀리는 힘에는 버텨 내지 못하고 그대로 휘어지는 특성을 지녔다.
콘크리트는 그러한 측면에서 정반대의 특징을 지녔다.
압축의 힘에는 약한 내성을 비틀림의 힘에는 강한 내성을 지녔다.
서로 약점이 되는 부분의 강점을 지닌 두 물질이 섞여서 예상치 못한 강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두 명의 드워프는 서로 다른 물질이 섞여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듯, 서로 경쟁하며 만들어 내는 무구들이 다른 드워프들이 만들어 내는 것에 비하면 몇 배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화덕 온도 떨어진다니까?"
"담금질이나 신경 쓰라고!"
스틸과 크리트는 서로를 항상 경쟁자로 여기며 대장간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 전 열린 대회에서 스틸이 1등을 하는 바람에 지금 당장은 그가 가장 좋은 자리에 모루와 망치를 가져다 뒀지만, 금세 크리트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몰랐다.
"어허! 감히 어디라고!"
"고작 한 계단 차이야. 다음 마을 평가에서는 내가 이길걸?"
이빨을 바득 갈고 있는 크리트에게 가소롭다는 듯이 스틸은 그를 비웃었다.
"하하하, 이기고 나서 말이나 해."
두 명이 언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 가장 말단으로 들어온 드워프인 페일이 융해로에 다가섰다.
'빨리 끝내고 가서 쉬어야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어젯밤 그는 마을 어귀에 있는 펍(Pub)에서 맥주를 거하게 즐겼다.
성인식을 마치고 난 이후 처음으로 입에 맥주를 댄 것이다.
처음 느끼는 알싸한 맛과 강하게 목젓을 타격하는 타격감이 상당한 충격이었다.
여기저기에서 마셔 보라며 넘겨주는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 정신을 그대로 놔 버린 것이다.
그렇게 길바닥에 누워 뻗어 있다 새벽 어스름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힘들게 공방에 출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페일은 주변의 말이 마치 동굴 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들렸다.
'으아,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워.'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다른 장인들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볼멘소리도 할 수 없었다.
"뭐라는 거야?!"
"언제 시켰는데 아직도 그 자리인데? 빨리 안 가져와?"
만약 머리가 아파 정신이 없다고 이야기했다면 저들이 페일을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볼까?
아니, 전혀 그럴 분위기는 아니다.
혼이 나면 혼이 났지, 절대 좋은 말을 들을 수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 조금만 버티자, 조금만 버텨.'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퇴근 시간이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쉴 생각에 빠진 페일은 자신이 융해로에 어떤 물질을 집어넣고 있는지 눈치를 채지 못했다.
'하나. 두울, 셋.......'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어 가며 넣어 버린 철괴.
잠시 멍한 생각에 빠진 나머지, 옆에 있는 다른 물질까지 융해로에 집어넣어 버린 것이다.
툭.
손끝에서 떨어지는 순간 페일은 자신이 다른 물질을 집어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뭔가 다른 것이 들어간 것 같은데?'
그 순간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 이 자식아! 뭘 집어넣은 거야!"
최고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마을에서 인정받은 스틸의 호랑이 같은 외침이었다.
스틸은 크리트와 언쟁을 주고받으면서 대장간 전체의 안전과 행동을 유심히 살펴봤다.
아무리 봐도 가장 늦게 들어온 신입이 오늘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이었다.
안색과 그의 곁에서 느껴지는 냄새를 통해 숙취로 고생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하나같이 장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드워프일 뿐이었다.
누구 하나에게 신경을 쓰기보다 전체 중 실수를 줄이는 데 신경 쓰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크리트와 언쟁을 벌이면서 그만 페일의 실수를 막지 못한 것이었다.
페일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이걸 어떻게 하지?'
도저히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멍하니 융해로에 부족한 철괴를 보충하려고 집어넣다가 바로 옆에 있는 은괴 하나를 집어넣은 것이었다.
평소에도 혼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장인들이었다.
-어떻게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어, 하지만 혼입을 하면 죽여 버린다.
-혼입? 그랬다면 혀 물고 자살해야지.
-가장 신경 써야 할 거? 혼입이지. 만약 내가 그걸 했다면? 자살하는 게 덜 고통스러울 거야.
많은 대장장이가 가장 많이 하는 잘못이 혼입이었다.
가장 크게 욕을 먹는 것도 바로 혼입이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물질이 뒤섞일 때는 생각지도 못한 물질이 탄생한다.
그것을 실패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성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드워프들이 만들어 내는 물질 중에서는 실패가 바탕인 것도 몇 개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페일이 집어넣은 두 개의 물질은 전혀 좋은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일전에 섞인 적이 있었다.
단단하기는 무르기 짝이 없고 많은 양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밖으로 조금이라도 편하게 방출하게 만드는 무기를 만드는 데 있어서 아무런 효용이 없는 물질이 돼 버린 것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페일은 재빨리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속이 메스껍고 바닥은 금방이라도 덤빌 듯이 울렁대기도 했으나, 큰 실수를 한 마당에 술이 모두 달아나듯 깨어 버렸다.
"어떻게 할 거야?"
"제, 제가 어떻게든......."
"어떻게든? 그냥 집어치워."
화가 난 스틸은 페일의 어깨를 강하게 밀어냈다.
콰앙.
융해로 반대 방향으로 밀려낸 페일은 그대로 벽으로 부딪혔다.
'크윽.'
고통의 찬 신음 소리도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저기 찢어지듯 화내는 드워프들이 자신을 융해로 안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대로 멈춰 섰던 것이다.
"나가! 저리 꺼져 버려!"
페일은 대장간 밖으로 쫓겨나듯 도망쳐 나왔다.
'일단 오늘은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안 되겠어.'
대장간에 더 있다가는 목숨을 추릴 수 없을 것이었다.
내일 다시 와 사과를 하면 화는 다들 풀려 있을 것이다.
모두가 하는 실수였으니까.
하지만, 그 실수가 큰 실수라는 것은 가슴속 깊은 곳에 새겨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커다랗게 뭐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페일의 발걸음에는 무거움이 담겨 있었다.
'에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장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무척이나 기뻐했었는데.'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이 대장간에 들어간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고 말해 주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엄마."
나지막이 엄마를 불렀지만,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얼마 전 몬스터의 습격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그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이까지 총 3명을 일순간에 잃었다.
그가 지금 공방에 매달려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토벌을 나가 순간의 방심이 만들어 낸 비극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드워프들은 일정한 거리를 이동 후 휴식을 취했다.
별다르게 경계병들을 세우지 않았고, 자신이 만들어 낸 무기가 스스로를 지켜 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애병이 가져다주는 믿음이 그들을 방심하게 만들었고 결과는 참혹했다.
"그때 그러지만 않았어도."
조용하게 내뱉는 그의 음성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페일의 어깨는 축 처진 채로 힘이 실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 * *
대장간 밖으로 페일을 쫓아내자 다른 대장장이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어떻게 하지?"
"저기 한쪽에다 모아 두고, 다시 강철괴를 녹여야지."
"에휴,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녀석, 정신이라도 차렸으면 좋겠는데."
다들 걱정스러운 말을 입에 담았다.
한 마을에서 오랫동안 지켜봐 온 이웃사촌의 사이였다.
고작, 융해로에 괴(塊) 하나를 잘못 넣었다고 이렇게까지 꾸지람을 내비칠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은 오직 하나였다.
페일을 위하는 마음.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혹시라도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도록 지금을 극복하고 일어날 수 있도록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행동한 것이다.
마을의 펍에 있던 사람들도 페일에게 일부로 밝게 웃으며 행동을 한 것이었다.
페일의 행동에 두 개의 물질이 뒤섞여 버렸다.
전혀 공식화된 비율이 아니기 때문에 예상할 수, 아니 사용할 수 없는 미완성의 물질이 돼 버렸다.
장인의 눈이 융해된 액상으로 향했다.
'아마도, 제대로 사용하기는 힘들겠군.'
드워프로 태어나면서 가지게 된 통찰의 눈.
물질이 가진 능력을 대략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그의 눈에 비친 융해된 액상은 딱히 이용처를 찾기 힘들었다.
물질이 마력을 잘 담아내지만, 그 내구성이 너무나도 약하다는 것.
드워프에게 내구성이 약한 물질은 그 효과에 따라 사용처가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보통 쓰이는 경우는 바로 도금이었다.
물체의 표면에 조금 더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그냥 사용을 한다면 너무나 물러 내성을 오래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 물질은 내구성도 약한 데다 사용을 하면 쉽게 벗겨져 버렸다.
아무리 작은 실수라도 경험이 쌓이면 좋은 결과물을 낳을 수 있게 되지만, 완전한 실패작이나 다름없었다.
"이걸 어디다 쓰지?"
"에이, 다시 분리해서 써야지. 이 많은 제품을 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스틸과 크리트는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것 말고는 도저히 방법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곁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은 다른 대장장이들은 각기 자신의 모루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일단 빨리 우리끼리 준비하자고."
"그래, 새로운 무기가 완성되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거야."
그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 * *
마을 밖 한 공터에 도착한 페일은 나무 기둥 아래 등을 기댔다.
"에휴."
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혼나도 당연하지. 날 많이 생각해 주시던 분들인데.'
페일의 뇌리에 대장장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스틸 아저씨."
"크리트 아저씨."
대장간 1등과 2등의 위치에 오른 두 장인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르는 페일은 괜히 자신 때문에 두 사람에게 피해가 갔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단 오늘은 좀 추스르고 내일 생각해 봐야겠다."
나무 밑동에 기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저 멀리 수상한 움직임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