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23화
꼬르르륵.
뱃속에서 음식물을 넣어 달라며 아우성을 치자 지원은 머쓱한 듯이 웃었다.
"하하, 내가 이렇게 시간을 오래 끌었나?"
창밖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으로 대략 시간을 체크하고 있던 태욱이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저녁 먹으며 천천히 이야기할까?"
"저녁? 그것도 좋지, 빨리 가자고."
그녀의 움직임은 누구보다 빨랐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고작 구내식당이었지만.
* * *
태욱은 드워프를 찾아 나서기에 앞서 팀원들에게 의사를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같이 갈 사람 있어?"
일단은 던전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떠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지원의 입방정 때문이었다.
다른 동료들의 비해 일찍 드워프에 대한 소식을 전달받은 지원은 자신의 멋대로 이야기를 부풀려 동료들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드워프라는 엄청난 종족이 있데."
"드워프? 설마 판타지 소설에나 나오는 그 드워프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겠죠?"
"맞아, 그 드워프인데, 손기술이 엄청나다는데."
"에이, 그래 봤자죠. 요즘 얼마나 많은 장인이 있는데요."
"글쎄, 손만 대면 무기가 휘황찬란하게 바뀌고 갑자기 자아가 생기기도 한다는데?"
"누, 누가 그래요? 설마? 기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신 건 아니시죠?"
"아니긴 왜 아니야?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태욱이 말고 더 누가 있다고?"
동네방네 떠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펼친 지원의 힘입어 모든 동료가 같이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진짜 괜찮겠어?"
"뭐, 할 일도 없고,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고."
"뭐가?"
"그렇게 도끼질을 잘한다는데? 내 무기랑 서로 겨뤄 보려고."
영리에게는 호기심이, 지원에게는 과학적 지식이, 은비에게는 투쟁심이 솟구쳐 오른 것이다.
각자 다른 마음이었지만, 하나로 뭉쳐 멋진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번에 합류한 녀석이었다.
흔하게 탱커 포지션이 적성이라고 생각했던 녀석.
태욱의 미국행 동안 지원을 제외한 다른 동료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가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져온 것이 바로 영리였다.
금강철인(金剛鐵人)을 파티로 직접 모셔 온 것이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이뤄진 말이었다.
"제가 한 번 만나고 올게요."
"영리 니가?"
영리가 자신 있게 손들며 이야기하자, 곁에 있던 은비가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마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눈빛과 다르지 않았다.
"괜한 짓 벌이지 말고 그냥 쉬고 있어. 나중에 태욱이 오면 알아서 해결할 거야."
"그래, 대장이 해결할 거니까 영리 너는 그냥 기다리고 있어."
두 사람이 곁에서 말리자, 영리는 반항심이 돋았는지 그녀들의 충고를 뿌리쳤다.
"괜찮아요. 제가 해 볼게요."
자신 있게 양손을 가슴 방향으로 당기던 영리는 금세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뒷말을 붙였다.
"아마도, 괜찮겠죠......."
말끝을 흐리는 영리의 모습에 두 사람은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크하하하."
결국 영리의 뒤를 쫓아 나선 사람은 바로 은비였다.
지원은 인공지능 연구에 매진해야 됐고, 자신은 성장을 하기 위해 던전을 돌아야 했다.
하지만, 영리의 마지막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자, 결국 그녀의 뒤를 몰래 쫒은 것이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금강철인을 보자 저절로, 이빨이 갈릴 것이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 * *
"아휴, 힘들어."
절로 한숨이 흘러나올 정도로 가파른 숲길을 타고 오른 영리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직 절반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자신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나만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지.'
매번 동료들에게 도움받는다고 생각한 영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잔심부름은 기본이고, 쳐지는 분위기에 맞춰 힘을 낼 수 있는 분위기 좋은 개그들도 준비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개그에 웃지는 않았지만.'
태욱이 미국 길에 오르면서 영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적어졌다.
그래서 이번 금강철인을 팀 메이트로 만드는 것에 가장 큰 목표를 뒀다.
'진짜 우리 동료가 되면 다들 기뻐하겠지?'
물론 그녀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금강철인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 탓이다.
"진짜, 진짜 엄청 깊숙한 곳에 살고 계시네."
주변 경관을 살피며 산에 오르니, 어느새 금강철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기거하는 것으로 보이는 초가집이 보였다.
"어, 찾았다!"
그녀의 밝은 목소리와 함께, 실루엣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크음, 누구냐?"
영리가 다가서기 직전.
그녀를 막아서는 목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어느 곳에서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게 전 방향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저, 저는 영리라고 하는데요."
묻는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을 하자, 반대쪽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침묵이 흘렀다.
"......."
"......."
"......."
결국 다시 입을 연 사람은 금강철인이었다.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것이냐?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말이 미처 다 끝나기 전에 맑고 깨끗한 영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동료를 찾으러 왔는데요. 혹시 그 말 들어 봤어요? 너! 내 동료가 되라."
당당하게 손을 허공으로 뻗고 다시 자신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푸웃."
"하하."
동시에 두 명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나는 영리를 뒤쫓아온 은비의 웃음 소리였고, 나머지 하나는 무게를 잡고 있던 금강철인의 목소리였다.
한없이 밝은 영리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금강철인은 처음 영리가 자신의 집 주변으로 다가왔을 때,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오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서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지켜본 것이었다.
이곳으로 오면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한 걸음씩 똑바로 걸어올 뿐이었다.
'뭔가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지금까지 그를 찾아왔던 사람들을 비교하면 하나같이 어떤 목적을 두고 왔다.
행동거지를 살피면, 무언가를 설치하거나 다른 목적을 띤 사람들이 주위를 맴돌았다.
영리는 그러한 사람들의 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진짜 날 만나러 오는 건가?'
그의 눈동자는 영리를 따라 좌우로 움직였다.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가 자신에게 어떤 해코지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약간의 경계를 풀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보통 때라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숨죽이며 이곳을 찾아온 이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 계시는 거예요? 우리 보고 이야기하면 안 돼요?"
쓰으윽.
영리의 부탁에 한 커다란 나무 기둥 뒤에서 금강철인이 나타났다.
아무리 집중을 하더라도 그가 있었던 곳을 확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금강철인은 동화돼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영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인사를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인 금강철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뭔가 기분이 이상해.'
영리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그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5분이라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
"......."
"......."
"......."
긴 시간의 침묵을 깬 것은 관찰을 끝낸 금강철인이었다.
"어떻게 찾아왔어요?"
"저, 그게 방금 말씀드린 게 답니다."
"단순하게 동료가 되라구? 뭘 믿고 제가 그래야 될까요?"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의 금강철인이었다.
오랫동안 산속 깊은 곳에서 독수공방을 해 온 금강철인이었다.
그러던 와중, 젊은 여성의 방문이 마냥 기분 나쁘지는 않았던 탓이다.
"저, 그게 저희 동료분들은 모두 좋은 분들이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쩔 줄 몰라 하는 영리와는 달리, 금강철인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동료가 목적이라면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을 텐데."
그렇다.
금강철인보다 뛰어난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높은 수준의 던전에 가거나,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탱커를 찾으면 분명 금강철인보다는 높은 수준의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니에요. 당신이어야만 해요."
영리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당신만이 할 수 있어요."
영리에게는 태욱의 말이 전부였다.
자신의 팀에 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으며, 금강철인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는 건, 금강철인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금강철인은 호기심이 들었다.
"호오, 그래?"
자신의 턱 끝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순간 다시 한 번 영리에게 시선이 이동했다.
꿀꺽.
조용한 가운데 침 넘어가는 소리가 공터를 울렸다.
"아, 아니, 그....... 그게 말이지."
당황한 금강철인은 말까지 더듬으며 손사래를 쳤다.
"서, 설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망울을 한 채, 양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뒤로 한걸음 물러난 영리와 금강철인 사이로 하나의 신형이 파고 들어왔다.
금강철인의 음흉한 미소가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정확하게 안 사람이었다.
괄괄하고 터프한 그녀.
"야 이 개자식아, 누굴 보고 군침을 흘리는 거야."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비치며 튀어나온 은비였다.
그녀의 눈빛은 흡사 발정 난 강아지를 보는 듯 보였다.
"오, 오해가, 싸, 쌓인 것 같은데."
말까지 더듬는 모양새를 보니 금강철인은 정말로 당황한 것 같았다.
세 사람의 첫 만남은 썩 그렇게 좋지 않았다.
* * *
첫 만남의 기억을 떠올렸던 영리는 뒷걸음질 쳤다.
"어떻게 된 거야?"
아무런 상황을 모르고 있는 태욱은 지원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상당히 영리가 싫어하는 표정을 지은 것으로 봐서는 좋은 경험은 아니었던 것 같다.
"녀석이 너무 변태 같아서 그런 것뿐이야."
"아, 그거?"
태욱은 그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동료들을 따로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금강철인과 은비가 만나면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가 없는 상태일 것이 뻔히 보였다.
그리고 지원은 아무런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마지막 영리는 약간은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금강철인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렇게 서로 뒤섞이기 힘들지만, 한 번 섞이면 무엇보다 좋지.'
서로가 부족한 점을 채워 주기에 아주 적절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진짜 갈 거야?"
태욱은 금강철인이 같이 간다는 것에 큰 의문을 표했다.
단단한 방어를 하는 것 외에 어떠한 것에도 관심이 없어 보이던 그가 이렇게 직접 여행길에 떠난다는 것이 태욱의 입장에서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응? 뭐 보고 싶기도 했고, '다들' 간다니까."
금강철인의 말에 포함된 다들이라는 것은 대명사로서 동료를 표시하는 게 아니었다.
내포된 의미.
바로 영리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는 좋게 이야기하면 젊은 여성이 풍기는 아우라를 선호했다.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밖으로 비쳐지는 그의 행동이 스스로를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모든 수련을 마치고 나온 그는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리의 방문이 그의 수련을 중간에 포기하도록 만든 것이다.
태욱이 아는 금강철인은 조금 더 진중하고 무거운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전혀 달랐다.
가볍고 오히려 난봉꾼에 가까웠다.
"다른 목적이 있으면 안 가는 게 좋아."
"아. 절대, 절대로 가고 싶어."
태욱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출발 준비를 모두 끝냈다.
"모두 준비가 끝났으면 출발할까?"
"빨리, 빨리, 출발하자."
"저는 뭐, 기사님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가자, 가자고."
"흐흐흫."
지원의 대답을 시작으로 영리 은비, 금강철인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