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22화
엘리스는 가소롭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태욱의 음성이 전해지자마자 놀란 토끼눈이 됐다.
자신의 고유 스킬을 사용하는 태욱의 모습에 너무나 놀란 것이다.
헌터클럽에서 비슷한 스킬을 사용하는 이는 무척이나 드물었다.
전 세계로 따지더라도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 특수한 스킬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도 깜짝 놀랄 정도지만, 아무런 놀람 없이 자연스럽게 대처를 하는 태욱의 모습에 더욱 놀란 것이다.
"힘들게 배웅 나왔는데,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저, 저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밖으로 나서는 태욱의 앞을 다급하게 막아서는 엘리스였다.
어떻게 해서든 마지막 클럽장의 의견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태욱은 금발의 엘리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공항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chapter 6
태욱이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이 있었다.
한성 중공업.
그가 여기를 가장 먼저 찾아온 이유는 출발 전 지원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익숙한 거리를 골목을 거쳐 도착한 한성 중공업 건물.
너무나 익숙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뭐지? 뭐가 이상한 거지?'
태욱이 없는 사이, 한성 중공업 입구에 떡하니 경비실이 세워진 것이다.
이질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분명히 한성 중공업이라고 적혀 있는 글귀에 태욱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입구에 달하자, 저 멀리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지, 정지!"
태욱은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돌리니 자신에게 다급하게 뛰어오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팔뚝에는 노란 완장을 찬 모습이 누군지 정확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경비.
덩치 좋고 운동신경이 좋은 청년이 아닌, 흔하게 동네를 거닐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노부의 모습과 같았다.
"어떻게 온겨?"
"아, 저 안쪽에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으잉? 내가 요 근래 일주일 동안 전혀 보지 못했는데, 확인을 해 봐야 되겠네."
태욱의 모습이 탐탁지 않았는지, 혀끝을 차는 소리를 내는 어르신의 행동에 태욱은 웃음 지으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어찌 보면 태욱의 앞길을 막는 노인이 더욱 자신의 역할을 잘하는 듯 보였다.
'참 열심히 하시네.'
태욱의 입장에서는 굳이 이런 사소한 검문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전화 한 통화면 자신의 신분을 확인시켜 줄 사람도 있었고, 그러면 막아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모르는 인물이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 내기 위한 남자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불쾌한 감정은 하나도 샘솟지 않았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태욱은 웃으며 그의 수신호대로 움직이자, 남자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들어오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방문자 목록의 그의 이름을 적었을 때, 재빠르게 행동거지가 바뀌는 경비의 행동에 오히려 태욱이 깜짝 놀라는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태욱은 개의치 않았다.
"그러게 진작 연락을 주지 그랬어."
지원은 태욱의 어깨를 툭 하고 치며 그를 데리고 연구실 내부로 들어갔다.
"글쎄, 저 사람도 자신의 일을 하는 건데 내가 방해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서."
그렇다.
태욱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분류하고 판단하는 것을 싫어했다.
경비원의 행동은 경비로서 당연하게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용인한 것이지, 주제넘는 행동을 보였다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연구는 어떻게 되고 있어?"
태욱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지원에게 약간의 언질을 주고 떠났다.
인공지능.
시간이 지난다면 자연스럽게 그 결과가 나타날 것이지만, 인공지능으로 무엇을 계획하기는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다.
만약, 순리대로 시간이 흘러 인공지능이 개발된다면 마왕을 상대하기는커녕 제대로 활용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태욱은 약간의 언질로 그녀로 하여금 인공지능 개발에 빠르게 착수하도록 요한 것이다.
"일단 기본적인 틀을 완성했는데, 중요한 것이 하나 남아 있어."
"중요한 거라니?"
당연하게 물고만 트면 저절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지원은 막히는 부분에 있어서 태욱에게 망설임 없이 이야기했다.
동류의 연구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 결론이었다.
미래의 과학기술을 아는 사람과,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
어떻게 보면 비슷하지만 전혀 관점이 달랐다.
태욱은 그저 경험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고, 지원은 그것으로부터 소스를 얻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
"에너지원?"
"응, 인공지능이라면 사람의 심장과도 같은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근원이 필요해."
지원은 태욱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을 보이자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심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알아."
태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고 이야기하는 거지."
"자동차로 말하면 엔진과 같은 느낌인가?"
"비슷하긴 하지만, 지금 우린 엔진도 만들고 외부 뼈대도 충분하게 만들 수 있어."
"그럼 문제가 뭔데?"
"엔진을 움직이는 연료."
"연료?"
태욱은 고개를 갸우뚱 움직였다.
'에너지원....... 연료.......'
고심에 빠진 태욱은 금방 그 정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미래에 있는 것.
회귀 전 세상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들.
스스로가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그건가......?"
태욱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나오자 지원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뭐, 뭔가 있지?"
지원은 태욱의 양쪽 어깨를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뭔가 알고 있는 거잖아. 빨리 말해."
그녀의 과학적인 욕구가 튀어 올라, 태욱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아, 저."
태욱은 지원이 미처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흔드는 탓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이따금씩 탄성과 같은 말만 흘렸다.
'일단, 진정을 시켜야겠어.'
태욱은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지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톡톡.
양손으로 어깨를 두드리자, 약간은 진정됐는지, 자신의 행동을 눈치챈 지원은 헛기침을 토해 냈다.
"크음, 미안 내가 정신이 없어서."
머리를 추스르며 자리에 앉은 지원은 태욱의 입만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나는 트로파린으로 구성돼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어."
태욱의 말에 지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트로파린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마정석을 기본으로 이용한 물질 중 저와 같은 단어는 듣지 못했다.
지구에서 만들 수 있는 물질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바로 마정석이다.
그렇기에 한성 중공업의 마정석 정제 기술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지원은 트로파린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서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트로파린?"
결국 정답을 찾지 못한 채, 태욱에게 되물었다.
"응, 트로파린."
당연하듯 대답하는 태욱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자꾸 되묻는 지원을 더욱 이해하기가 힘이 들었던 태욱의 표정은 구겨졌다.
두 사람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아, 미안 미안."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를 한 태욱은 천천히 그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회귀 전, 그러니까 우리 미래에는 트로파린이라는 물질을 사용했어."
"어떻게 연구된 건데?"
"그, 그거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는 태욱에게 쏟아지는 눈빛은 상당히 강렬했다.
마치, 정답이 없는 문제를 냈는데 정답을 알고자 하는 학생들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진짜 몰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근데 하나 알고 있는 게 있어."
"그게 뭔데? 알고 있는 거라니?"
태욱은 뜸을 들였다.
만약 이것을 이야기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할지 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행동은 항해를 하는 배의 키를 조금씩 조금씩 움직였을 뿐이었다.
조타를 한 번에 한 바퀴 이상 돌리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결과가 바뀌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굵직한 사건을 기점으로 조금씩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으로 바꿨다.
그 결과 미국의 헌터클럽에서 마수를 펼쳐 오는 것은 기본이었고, 하마터면 최종 생존자로 성장했을 한 사람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
어느 순간 태욱의 마음에 두려움이란 공포가 심어져 있었다.
최후의 생존자들은 하나같이 강했고, 쉽게 무너지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왕에게 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이그잭션 시스템의 힘으로 이곳으로 돌아왔다.
자꾸만 변해 가는 미래 속에 태욱은 결단했다.
어떤 결과물이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그래, 내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여야 돼.'
하지만, 더 이상 발을 빼기에는 너무나 늦어 버렸다.
이미 변해 버린 미래는 이미 예측은 불가능하다.
물론 마왕이 출현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지만, 빠른 시기에 세상이 바뀔지, 그사이에 다른 적군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드워프."
결정을 내린 태욱의 입에서 이상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드워프? 그건 뭐야? 물질이야? 아니면 새로운 몬스터? 설마, 판타지 소설 속에 나오는 그 드워프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긴, 네 생각이 정확하게 맞아."
"서, 설마?"
지원은 믿기지 않았다.
'설마 드워프가 존재한다고?'
소설을 보면 이종족이라고 불리는 드워프들은 장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진다.
손재주가 좋고, 물건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지원은 믿기지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드워프들과 같이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거야? 과학기술의 발달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한 거야?"
지원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그녀는 쉼 없이 질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진정, 진정하라니까. 내가 하나씩 다 설명해 줄 테니까."
태욱은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시간을 벌었다.
지원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두 사람은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드워프가 트로파린이라는 물질을 어떻게 전달해 줬는지, 그리고 대량생산에 대한 기회.
그리고 그들이 결국 세상과 단절하고 숲속 깊은 곳으로 숨어 버렸다는 후일담까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니 절로 해는 지평선을 넘어 아래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에휴, 이제 궁금한 건 다 물어본 거야?"
"일단 대충은?"
지원은 급한 호기심은 해결했지만, 아직 마음속에 궁금한 것이 더욱 많았다.
수학 학자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공식이 눈에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을 외면하지 않았다.
빨리 결과물을 내놓고 새로운 연구에 들어가길 희망할 뿐이었다.
지원도 그러한 면에서 똑같았다.
당장의 인공지능을 위한 새로운 물질.
트로파린.
그것을 만들어 내는 걸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두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