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19화
의아한 표정으로 태욱의 접근을 지켜보던 이들은 바로 신경을 끊었다.
이곳에서 사냥을 하다 피해를 입은 헌터들의 숫자는 극히 드물었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없었다.
물론 초기에 상대방의 사냥을 방해하거나 고의적인 방해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헌터클럽에 의해 제제당하고 이 사냥터 안으로 그림자조차 비추지 못할 정도가 됐다.
헌터클럽은 이미 사회적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었다.
클럽의 위세를 믿은 헌터들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경계를 하는 것이 아닌, 우연하게 이동하려는 장소와 방향이 같은 거겠지 하고 단순하게 치부했다.
"신경 끄고 우리 거나 준비해."
"알았어."
결국 단순하게 치부한 하나의 사건이 그들로 하여금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는 배경이 돼 버렸다.
다가온 청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단 한 단어뿐이었다.
"헌터클럽?"
미소를 지으며 묻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자, 번쩍하고 별이 보였다.
태욱은 던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단번에 앗아 갔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한 곳으로 옮길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다급하다는 것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헌터클럽.
그가 누구를 건드렸는지 확실하게 보여 줄 차례가 된 것이다.
태욱은 던전 내부를 돌아다니며 헌터클럽의 로고가 그려진 옷을 입은 모든 사람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위협을 느낀 헌터가 태욱을 향해 스킬을 펼쳤다.
"아이스 월(Ice Wall)!"
물리적인 접근을 막기 가장 용의한 스킬이었다.
꽤나 대인과의 전투 경험이 쌓여 있는 듯했지만, 마구잡이로 몰아치는 태욱의 공격을 막아 내기에는 실력이 한참이나 부족했다.
"화염장(火焰掌)."
차가운 얼음이 순식간에 녹아 내려가며 구멍이 뚫렸다.
다급하게 외친 스킬과 대비해 너무나 여유로운 대처법을 보인 태욱이었다.
"그럼 잠시 실례."
이번에도 역시 태욱은 목덜미를 강하게 강타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의식을 잃게 만들었다.
* * *
실종됐던 클럽원들이 하나둘 의식을 차리고 던전 밖으로 흘러나왔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마이크의 대한 소식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돌아온 다른 클럽원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도 하나같이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공격하더니 의식을 잃었어요."
"그저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쉬지 않고 이동하고 있었어요."
"갑자기 별이 반짝이더니 그대로 아무런 기억이 없어요."
인상착의를 종합해 보면 한 사람이 틀림없었다.
단 한 명이?
높은 수준에 있는 클럽원들은 물론이고 이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 혼자서는 가능할까?'
길버트는 고개를 내저었다.
도저히 자신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한두 명은 몰라도 이 많은 사람에게 계속 다른 수법으로 공격을 해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모두의 결과는 단 하나였다.
의식이 놓게 만드는 강한 공격.
누구 하나 신체적으로 후유증을 가지는 것이 아닌 정확하게 필요한 힘만 딱 사용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직접 나서야 되겠군.'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정체 모르는 사람이 길드원들을 핍박하고 있다.
그것도 던전 내부에서.
어떻게 들어갔는지 파악이 되지 않고 있으나, 암살자 계열의 헌터일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먼저 그를 찾아낸다면 충분한 승산은 있다.'
자신은 클럽원들을 기절시킬 정도로 세밀한 공략은 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먼저 발견을 한다면 충분히 승부가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
많은 스킬을 가질수록 성장하는 데 한계가 나타나지.
꽈아아악.
길버트는 허리춤에 묶여 있는 검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지금까지 길버트는 이 검 하나만 가지고 높은 위치에 올라왔다.
검을 맞대고 싸운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질 것 같은 상대는 몇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당당하게 요정 던전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던 것이다.
위풍당당하게 도착한 던전 입구에서는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꿀꺽.
담담하게 상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혹시나 모르는 불안감이 그를 옥죄고 있는 것이었다.
'난, 당당한 랭킹 10위다.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속으로 다시 한 번 되뇌었다.
자신의 위치와 그리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아니, 길버트를 막아서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었다.
던전 앞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은 방향을 바꿀 필요가 전혀 없었다.
몇몇은 그가 온다는 것을 발견하고 재빨리 자신의 자리를 비켜 내 주곤 했다.
심지어 길버트의 얼굴을 보자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하는 헌터도 더러 있었다.
"......."
"......."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환호성을 내지르지 않았고 박수를 치며 칭송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가진 침묵이 길버트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결국 헌팅클럽을 통해 그의 소식은 만천하에 밝혀졌다.
길버트가 지금 무슨 심정으로 이 사냥터 안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이는 전혀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개를 숙여 그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뿐이었다.
'이곳에 일어나는 일을 막아 주세요.'
'우리의 안전을 부탁드립니다.'
각자의 염원을 눈빛에 담아 길버트를 향해 쏘아 냈다.
길버트도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가진지 알았고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
"여러분,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일어난 미스테리한 일을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외침에 단번에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강한 진동이 나타내는 진한 울림이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두근.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길버트는 자아가 이탈을 해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군중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의 카타르시스.
많은 사람이 하나가 돼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소리쳤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눈보라 가득 피어나는 설원 한가운데서 피어나는 수수하고 따뜻한 한 떨기 꽃과 같이.
차갑게 내려앉은 마음을 누구보다 뜨겁게 만들어 줬다.
"와아아아아!"
한 박자 늦은 함성과 함께 길버트는 던전 내부로 들어갔다.
자신을 지지하는 많은 이를 뒤로하고 얼마 걷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꾸 사라지는 헌터들의 실마리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저, 녀석인가?'
다른 사람들의 제보와 같았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들소와 다름없이 달려들었다.
일정한 속도를 띄며 다가오는 녀석을 향해 길버트는 자신의 검을 뽑았다.
스르르릉.
검신이 옅게 떨리며 뽑혀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적의 목을 베어, 그 피를 흠뻑 적셔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땐 서로를 향해 각자의 무기가 혀를 날름거리며 공격해 나갔다.
* * *
태욱은 저 멀리서 자신이 원하는 큰 물고기가 드디어 사냥터에 들어온 것을 알았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건가?"
낚시꾼들이 이야기하는 기다림.
물고기를 낚기 위해 낚싯대를 던져 놓은 것 외에도 또 필요한 것이다.
물론 좋은 포인트를 찾아간다고 하더라도 기다림이 없다면 낚시를 성공하기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입질이 찾아왔을 때, 정확한 타이밍을 포착하는 것.
지금 태욱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타이밍이었다.
그저 물고기가 미끼를 보고 간을 보기 위해 툭툭 건드릴 때는 기다려야 한다.
정말로 입을 벌려 그 미끼를 삼키려고 할 때, 적당한 챔질을 통해 정확하게 바늘을 입가에 걸어 버리는 것이다.
태욱은 길버트를 보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만약 그가 정보를 얻어 왔다면 태욱의 행동을 예측하고 움직일 터.
적어도, 지금은 그가 예상한 대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그를 속이기 좋은 방법일 것이다.
조금씩 둘 간의 거리가 줄어들자, 길버트가 태욱의 예상대로 검을 뽑았다.
검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겠다는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뽑은 것이 아니었다.
공격 루트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뽑아낸 것이다.
검을 이용해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려면 필수적으로 지나야 하는 곳이 있다.
인간의 신체를 기준점으로 뒀을 때 9개로 나눌 수 있었다.
지금 길버트가 막아 낸 위치는 상단부 3군데였다.
좌측 상단.
우측 상단.
정상단.
기본적으로 3곳을 막아 낸다면, 상대의 검로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합!"
기합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검을 찾아 길버트의 눈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9개의 공격 루트 중에 3개를 차단했으니, 나머지는 6가지였다.
자신만만한 길버트는 어떤 공격이라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했다.
'검 끝만, 검 끝만.'
스스로 되뇌며 눈으로는 열심히 검을 찾았다.
이윽고 검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재빨리 검로를 막아섰다.
채채채챙.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를 막아 내는 데 성공했으니, 승기는 자신에게 돌아왔다고 길버트는 착각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상대방이 암살자라는 강한 인식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채 습격을 자행했지만, 그 속도를 막지 못해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기습만 막아 낸다면?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갈 수 있다는 반복되는 생각이 스스로 결과를 도출해 낸 것이다.
만약 그가 동생을 잃지 않은 상태였다면 지금에 가까운 추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항상 머리를 믿지 않고 상황을 믿어 왔으니까.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고, 자신의 계산과 착각은 가장 멀리해야 된다고 판단했다.
누적된 피로감과 동생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귓가를 간질이는 목소리에 놀란 토끼눈이 돼 상대를 바라봤다.
"꽤나 솜씨가 좋은걸?"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분명 자신이 내뱉어야 하는 말을 상대방이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말투를 보니, 상대는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유가 넘치는데? 기습에 실패하면 죽는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지?"
길버트는 태욱에게 미소를 지어 보냈다.
마지막 발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곧 실력의 바닥이 드러나고 땅에 누워 있는 사람이 태욱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난 한 번도 암살자라는 이야기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지?"
단도.
일격의 습격.
그리고 의식을 잃은 상태.
3개의 정보로 단순히 태욱을 암살자라고 단정 지은 것이다.
물론, 보통이라면 이런 추론이 맞았다.
암살자가 아닌 이상 단도와 습격을 자행하는 이는 드물었다.
실력이 좋다면 이미 이름이 알려져 있거나, 유명한 길드의 소속이었다.
길버트가 바라보는 태욱은 전혀 머릿속에 없었다.
어떠한 위험이 감지되지 않았다.
뚝뚝.
그때였다.
구레나룻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턱 끝을 거쳐 바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