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17화
"무슨 일을 했길래? 쟤가 저래?"
"몰라, 나도 모르겠어."
태욱도 영리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릴 적 동네 오빠를 동경하듯 따라다니던 모습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사람의 곁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단숨에 성장해 버린 동생을 보는 것 같아 태욱도 이상함을 느꼈다.
"네가 잘 챙겨 줘."
"글쎄, 그건 싫은데?"
웬일인지, 영리를 잘 챙겨 달라는 태욱에 말에 뭐가 심통이 난 건지, 지원도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이거 도통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네.'
여자들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에 태욱은 더욱 이상함을 느꼈다.
"7829번 항공기에 탑승하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타는 곳 12번 탑승구로 향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항 내부를 울리는 안내 방송에 태욱은 동료들을 떼어 놓고 출국 심사대 안쪽으로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 밝게 웃는 모습으로 안으로 들어온 태욱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태욱은 미국에 놀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뒤를 쫒은 이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벌집을 건드린 대가는 톡톡하게 치러야지, 다음부터 벌집에 있는 꿀을 욕심 내지 않을 것이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에 욕심내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겪어 본 이들만이 아는 것이다.
* * *
태욱은 비행기에 올라타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고 자신을 흔드는 스튜어디스의 손길에 정신을 차렸다.
"손님?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스튜어디스에게는 그가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미 하차 방송을 여러 번 했고, 다른 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태욱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으니, 그에게 직접 다가와 상태를 확인한 것이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것만으로 벌써 도착을 한 건가?'
태욱은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자신에게 내민 칼을 보고 어떻게 대처를 해야 될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길거리를 지나다 갑자기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었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되나 고민한 셈이다.
칼을 뺏는 정도로 끝낼 것인지.
신고를 해 경찰서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직접 손볼 것인지.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했다.
'일단은 인사나 건네야겠다.'
일단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탄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다만, 여기까지 온 수고료는 톡톡히 받아 가야지.'
태욱은 밝게 웃는 얼굴로 밖으로 나섰다.
"흐읍. 하아."
공항 밖으로 나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깊은 심호흡이었다.
폐부 깊숙하게 들어오는 공기가 미국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기분이었다.
약간은 느끼하면서 비릿한 향기가 나는 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냄새가 없었다.
'향기라고 해야 되나?'
미국에 도착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 태욱은 지체 없이 택시를 잡았다.
"가장 유명한 던전으로 가 주세요. 최대한 빠르게요."
능숙한 영어를 뽐내며 택시 기사에게 이야기하자, 택시 기사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헌터이신가 봐요?"
"아,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헌터시니까 사냥하러 가시는 거구나."
택시 기사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 물론이죠. 사냥하러 갑니다."
태욱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 대상이 조금 다르지만.......'
적어도 2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
꽤나 긴 거리를 운전하는 택시 기사의 귓가에 웃음이 가득했다.
* * *
"손님 도착했습니다."
"하암, 도착했나요?"
"네. 여기가 바로 LA 최고의 사냥터 정령의 소굴입니다."
도착을 하고 주위를 살피니, 꽤나 익숙한 던전이 눈에 들어왔다.
정령의 소굴.
불. 물. 바람. 땅.
4가지 속성의 하급 정령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사냥터였다.
정령이 물리적인 힘이 강한 것은 아니다.
물론, 물리적인 타격은 합당한 피해를 입히기 힘들었다.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딜러와 탱커들은 이곳에서 사냥을 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더욱 인기가 많은 곳이지.'
미국의 헌터들이라고 생각하면 막연하게 드는 이미지가 있었다.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힘으로 상대방을 짓눌러 사냥을 하는 원시적인 방식.
상대를 압도하는 피지컬로 위용을 드러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커다란 덩치와 힘으로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닌, 지식과 기술의 집약으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면에서 정령의 소굴은 아주 적당하고 인기가 많은 사냥터일 수밖에 없었다.
물리적인 타격을 입지 않으면서 사냥을 할 수 있는 곳.
그렇기에 미국헌터클럽이 운영하는 사냥터였다.
자신의 소속으로 돼 있으면 저렴하게 시설물을 이용할 수도 있었고, 가드로부터 적극적인 지원도 있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운영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던전을 국가에서 운영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은 클럽이나, 단체에서 운영을 한다.
국가적인 관리를 떠나서 클럽이나 단체에서 관리를 하면 더 안정적으로 이뤄진다는 미국 정부의 판단이 있었다.
클럽에 소속돼 있는 헌터들이 던전 내부의 안전을 책임지고 던전에 대한 사용료를 1년에 한 번씩 정부에게 지불을 하니,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다만 단점이 명확하게 있지.'
바로 소속되지 않은 헌터들은 엄청난 금액을 내고 사용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헌터가 클럽이나, 단체, 그룹에 소속될 수 있다면 태욱도 두 손 들고 환영을 할 것이다.
약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미국 내륙에서 운영하는 형태를 보자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금수저.
대개 자신의 노력 없이 얻은 부로 편하게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헌터가 되더라도 그 위치는 첨예하게 차이 난다.
이미 가진 사람은 더욱 쉽게 높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바닥에서 맴돌다 제자리에 지치기 마련이었다.
미국의 사냥터들 대다수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 머지않은 미래에 뒤처지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긴 했지.'
미래와 다르지 않게 차곡차곡 자신의 무덤을 파고 내려가는 헌터클럽에게 태욱은 그다지 좋은 조언을 던져 주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을 건드렸으니, 그 책임을 확실하게 물을 생각이었다.
'저기 오는군.'
그의 눈에 익숙한 동그란 로고.
가운데 선명하게 독수리가 그려져 있었다.
강인한 힘과 긴 생명을 표현하는 독수리가 이들에게 주는 상징적 의미는 커다랬다.
그러니, 당당하게 자신의 가슴 한편이나, 왼쪽 어깨에 붙여서 다닌다.
한마디로 독수리는 그들의 프라이드였다.
'저렇게 하고 다니니 눈에 띌 수밖에.'
물론 대외적인 업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면 로고가 없는 옷을 입기도 하지만, 평상시에는 로고가 없는 옷을 입지 않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태욱은 그들의 뒤쪽으로 은근슬쩍 붙었다.
"마이크, 오늘도 사냥하러 들어가는 거야?"
"물론이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금방 출전할 수도 있는데 시간이 부족해."
"에이, 그래도 너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는걸?"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면서 정령의 소굴에 들어갔다.
커다랗게 보이는 마크로 그들을 제재할 이유를 찾지 못한 문지기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둘의 뒤를 쫒는 태욱을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곧바로 다르게 접근해 오는 사람들을 막아서는 데 급급했다.
"죄송한데 어디 소속이십니까?"
"여기는 헌터클럽 전용 사냥터입니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며 던전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였다.
그들은 마이크의 바로 뒤를 쫒는 태욱의 낌새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펼쳐진 스킬들이 그들의 눈을 가로막은 것이다.
"은신."
"동화."
"쉐도우 이팩트(Shadow Effect)."
"디스어피어(disappear)."
"미스디렉션(Misdirection)."
이동에 제한을 두지 않으며 상대방의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스킬들로 몸을 둘렀기 때문이었다.
점점 깊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마이크는 자신과 같이 들어온 동료와도 헤어졌다.
"오늘은 저쪽으로 가는 거야?"
"응, 호수 방향이 사람이 없어서 사냥하기 편하거든."
마이크가 사람이 없는 사냥터를 선호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가진 스킬 덕분이었다.
결국 동료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원하는 사냥터에 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깊숙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쯤이면 충분하려나?"
마이크는 주위를 살폈다.
고요하고 적막한 숲속 한가운데, 주변의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그의 시선은 대충 살펴보는 것이 아니었다.
꼼꼼하게 그러면서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자신의 행동으로 다른 이, 아니 형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형의 명함은 까마득히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 하나가 혹시나 모르는 형에게 방해가 될까 봐 마이크는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마이크의 눈빛이 돌변했다.
순박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던 안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차갑고 무거운 시선만이 몬스터를 향해 있었다.
우드득.
우드득.
좌우로 꺾은 마이크의 목에서 뼈마디가 비명을 내질렀다.
관절을 풀면서 나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기괴하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자, 이제부터 시작해 볼까?"
마이크의 음성에는 자신감이 확실하게 묻어났다.
뒤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태욱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이곳에 도착을 했을 때부터 마이크를 유심히 바라보는 태욱이었다.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그가 무엇을 준비하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내가 아는 마이크가 아닌가?'
적어도 그가 아는 마이크는 조심성이 부족했다.
사냥에 있어서 항상 호전적이고 가장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했다.
주변에 있는 아군에게 피해를 입힌 적도 더러 있었지만, 미비했기 때문에 태욱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런 태도를 취하는 마이크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미래에 어떤 사건이 있었겠지.'
적어도 그가 아는 마이크는 조심스러운 성격을 벗어나 있었다.
모든 사냥 준비를 마친 마이크는 즉시 스킬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
"라이트닝......."
그의 손끝에서 조금씩 모여 가는 전기 구체를 보고 태욱이 황급하게 달려들었다.
'결단이 빠르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마이크가 확실했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것.
공격에 있어 망설임이 없었다.
주변에 안전을 확인하자마자, 스킬을 남발하려는 마이크의 행동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퍼억.
스킬명을 끝까지 외치지 못하고 외부의 타격에 의해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이크가 사용하려고 했던 스킬은 바로 라이트닝 볼(Lightning ball).
전기로 만들어진 구체가 상대를 타격하는 강력한 스킬이었다.
준비 시간이 긴 만큼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었지만, 태욱은 그 찰나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처음에 추격을 할 때는 주변과 동화될 수 있는 정도로 움직였지만, 깊은 사냥터로 이동하는 마이크의 뒤를 쫓아갈 때는 은신의 스킬을 사용했다.
안일한 마음과 더불어 태욱의 적절한 스킬이 깊은 곳까지 들어오면서 태욱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 지금부터 쇼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