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16화
번뜩.
순간적으로 강한 절삭력을 지닌 은사가 통로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틈에?'
빠른 손놀림, 그리고 움직임.
이들은 정보원이 아니었다.
암살자.
그들은 암살을 위해 파견된 것이었다.
제자리에 멈춰 섰던 그의 사각을 향해 단검이 날아들었다.
휘이이익.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단검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태욱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단검이 지척에 다다르자, 태욱은 몸을 회전시켰다.
휘릭 하고 반회전에 이르자, 검은 정확하게 가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역시나 노리고 있었군.'
정확한 타이밍을 노려 움직인 것이다.
일부로 태욱은 보이는 것에 모든 신경을 쏟지 않았다.
귀, 그리고 피부로 느끼는 촉감에 신경을 쏟은 것이다.
일시적으로 상승한 청각이 단검이 날아오는 것을 알려 주고, 촉각으로 그 거리감을 확인한 태욱의 멋진 회피였다.
하지만,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었다.
바로, 단검에 묻어 있는 검은색 물질.
암살자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독성이었다.
어떤 종류의 독을 사용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해 내지 못했지만, 분명 전투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독성이었다.
"크하하하하."
태욱의 완벽한 회피를 읽어 내지 못한 암살자는 광소를 터뜨렸다.
처음부터 모든 행동에 노림수가 깔려 있었다.
살짝 떨리는 어깨.
그리고 약간 느린 이동속도.
팀에 섞이지 않은 호흡.
모든 것에 태욱이 자신을 향해 오기 위한 미끼를 던져 놓은 것이다.
은사가 정확하게 깔려 있는 곳으로 도주.
그리고 그를 처단.
계획대로 착착 일이 진행되자, 암살자는 안심을 한 것이다.
"별거 아닌데, 형은 왜 이런 사람을 그렇게 경계하는 거지?"
단검에 발라 놓은 독은 최상급 독이었다.
단 한 방울로 코끼리 300마리는 죽일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독.
직접 피부에 닿지 않아도, 독으로부터 풍겨져 나오는 기운만으로도 충분한 타격이 될 수 있었다.
아무리 헌터라고 할지라도, 이런 독에 급습당하게 되면 답이 없었다.
해독제를 항상 지니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위급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극독.
너무나 쉽게 일이 풀리자,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단순 정보만 건네주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네."
시체가 된 태욱의 곁으로 다가선 복면의 사내는 긴장을 풀었다.
싱겁게 끝나 버린 전투가 주는 아쉬움이 진득했다.
그때였다.
"크억."
발밑에서 올라온 갑작스러운 공격에 신음을 토해 내는 복면의 남성.
"이거 엄청 강력한 독이네?"
태욱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혀로 입술을 핥으며 일어나는 태욱의 모습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의 모습과 비슷했다.
* * *
"왜 안 오는 거지?"
누구보다 규진을 아끼는 진혁이었다.
최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을 즐겼다.
일부로 자신이 미끼가 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번 목표에 대해서도 스스로가 미끼가 되겠다는 말에 진혁은 거절하지 않았다.
너무나 안일했던 생각이었다.
매번 그가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니, 이번에도 금방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저쪽으로 간 것 같은데?'
벌써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꾸만 고개가 규진이 움직인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아 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움직여야 된다.
"리더, 시간이 다 됐습니다."
"흐음."
"빨리 이동하셔야 됩니다."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정해진 수순대로 움직이는 것이 이들이 숙명이었다.
"저기, 도착했습니다."
멀리서 검은 모습을 하고 다가오는 인영을 보자 진혁은 한숨을 내뱉었다.
"휴우."
혹시나 그가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을 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동생처럼 지내 온 규진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감정을 표하진 못하겠지만, 왠지 가슴이 시린 것은 막아 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 돌아간다."
4명이 한 조를 이뤄 움직이려고 할 때, 진혁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익숙하면서 익숙하지 않다?'
온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독기는 분명 규진을 의미하고 있었지만, 그의 행동이 어딘가 수상했다.
"누구지?"
"이런 쉽게 들킨 건가?"
태욱은 자신이 죽인 암살자의 모습을 하고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들이 다시 모일 것을 태욱은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당하는 척 움직임을 보인 뒤, 자연스레 그 틈으로 파고드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일전에도 이러한 역할을 해낸 적이 많았다.
스킬을 그대로 복사하고 보여 줌으로써 믿음을 갖게 만든 것이었다.
'이번에는 예민한 사람이 있는 것 같군. 어쩌면 두 사람이 서로 연결돼 있을 수도 있지.'
단번에 자신을 꿰뚫어 보는 모습에 태욱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지 않았었나? 그럼 지금 해 줄게, 이제 시작이야."
태욱의 손끝에서 퍼져 나간 독 구름이 대지를 메웠다.
"포이즌 필드."
사방으로 뻗어 나간 독이 호흡기를 통해 복면의 사내들에게 조금씩 흡수됐다.
순간적으로 호흡을 멈추긴 했으나, 이미 흡입한 2명의 사내는 그 자리에 털썩하고 쓰러졌다.
가장 가까이 접근을 할 때까지 모습을 숨긴 것이다.
독 기운을 은은하게 뿜어 동료라는 것을 인식시킨 후, 급격하게 퍼져 나가는 독을 사용해 일격에 처리해 버린 것이다.
치밀한 계획에도 한 사람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바로 태욱이 아군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리더였다.
"역시, 눈치가 빨라. 과연 실력도 좋은지 확인을 해 봐야겠네."
태욱은 그에게 허리춤에 달려 있는 단검을 내던졌다.
"추격하는 단검."
단검에 눈이 달린 것처럼 일정 목표를 쫒아가는 스킬이었다.
태욱이 펼쳐 낸 기술을 보고 진혁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 스킬은?'
그를 뒤쫓던 규진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어떤 적을 상대하든, 마지막 스킬로 사용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아직도 서려 있었다.
"네, 이 녀석!"
채채챙.
날아오는 단검을 자신의 무기로 걷어 낸 이후, 태욱에게 진혁은 달려들었다.
"내 동생을 네 녀석이!"
진혁의 눈은 붉게 충혈된 상태로, 어깨까지 들썩였다.
냉정을 잃고 호흡까지 가빠진 상태.
말을 하면서 조금씩 태욱이 뿜어낸 독기를 흡수한 것이다.
암살자인 그는 중급 독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매일 독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곳에서 생활을 하니 자연스럽게 신체가 그 힘을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태욱이 뿜어내는 독은 그 이상이었다.
"쿨럭."
입가에 검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피가 모두 죽어 버린 것이다.
"이 자식아!"
음성과 함께 입 밖으로 튀어나온 핏덩이들이 하늘에 흩뿌려졌다.
이빨 사이사이 핏물들이 얼마나 그가 분노하고 있는지 알려 주고 있었다.
"글쎄, 날 죽이려고 한 녀석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거북한데? 그리고 아직 죽이지 않았다."
"죽이지 않았다니?"
"글쎄, 좋은 인질이 될 거라 생각했지."
태욱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도착해 상황을 지켜봤다면 태욱은 악당과 다름없었고, 지금 피를 토하는 진혁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벌인 게 아니야, 너희가 벌인 것이지."
태욱의 말에 진혁은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모든 정보를 말하겠다. 다만 목숨만은."
"글쎄, 그건 들어 봐야 아는 이야기고, 단정 지어 이야기할 수 없네?"
칼자루를 쥔 태욱에게 이제는 목숨을 구걸해야 될 판이었다.
입안에 있는 작은 캡슐을 먹어 치워 당장이라도 자결할 마음이 있었지만, 그의 행동을 막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규진.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에 진혁이 매뉴얼과 같은 행동을 멈춘 것이다.
'정말 살아 있다면 조금의 정보 정도는.'
어차피 자신은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정보를 노출한 대가로 그룹으로부터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목숨이라는 것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규진이 살아 있다는 믿기 힘든 말에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지 알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 말에 믿음이 생겨났다.
"저, 정말 말하면 살려 줄 것이냐?"
어떤 암살 팀장이 저런 말을 내뱉을 소냐?
본래의 그였다면 이런 말 따위는 하지 않고, 자결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훈련받았고, 스스로가 가진 정보가 얼마나 커다란지를 알고 있었다.
진혁이 이렇게 정에 흔들리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가 흡수한 독 때문이었다.
전문적으로 훈련된 사람은 환각을 보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숨겨 내고 움직일 수 있다.
만약 태욱이 환각만을 그에게 보여 줬다면 환각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태욱은 환각과 더불어, 신경세포가 전달하는 신호를 뒤섞었다.
신체적인 감각, 정신적인 메커니즘을 모두 실제라고 믿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포이즌 필드라는 것이 엄청난 스킬임을 보여 준 단편적인 예인 것이다.
단 50%의 효과로 이렇게 큰 힘을 낼 수 있는데, 태욱은 무척이나 운이 좋았던 것이다.
"물론이지, 대신 정보의 무게가 무겁다면 인정해 주겠어."
달콤한 말로 진혁을 꾀자, 결국은 그의 입에서 실토한 한 단어.
"U.S.H.C."
United States Hunter Club.
미국헌터클럽.
미국 내부에 있는 한 조합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높은 등급의 헌터들이 모여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하는 즉, 강자들의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헌터들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지식인.
나라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정치인.
엄청난 돈으로 경제를 움직이는 자본가.
헌터조합으로부터 시작됐지만, 그 경계가 모호해진 거대한 덩어리였다.
기득권층의 덩어리.
그들의 이름이 나오자 태욱은 더욱 스스럼없이 남성들의 얼굴을 부숴 버렸다.
콰득.
손에서 뇌수가 넘쳐흘러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과거로 돌아와도 너희는 똑같은 쓰레기 녀석들이구나.'
태욱은 그들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분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싹부터 잘라 주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고."
싸늘하게 변해 버린 태욱의 표정은 누구보다 차가웠다.
* * *
"갑자기 미국이라니? 무슨 소리야?"
태욱이 미국으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게, 볼일이 있어서 그래."
"기사님, 우리가 같이 가면 안 되는 일이에요?"
고양이 눈을 한 채로 태욱에게 매달려 이야기하는 영리의 모습을 보고 태욱은 영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혼자 갔다가 오는 게 빨라서 그래."
"에휴."
태욱이 끄끝내 거절을 하자 아쉬움을 토로하는 영리였다.
"그럼 빨리 다녀오세요."
영리는 태욱과의 데이트를 기점으로 더욱 태욱에게 애정의 시선을 보내곤 했다.
그러곤 조강지처의 모습을 하고는 태욱의 뒤를 서포터하는 것마냥 움직였다.
지원은 그런 영리의 모습을 보고 태욱에게 살짝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