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14화
chapter 4
기다란 복도 끝.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오직 남겨진 것이라고는 듬성듬성 달려 있는 촛불.
스스로를 태우며 빛을 내고 있는 촛불들이 유일한 빛이었다.
습하고 축축한 기운이 흐르는 이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항상 입을 굳게 다문 채 이동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항상 어떤 의식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하게 움직이는 걸음 거리.
팔의 각도, 다리의 각도.
심지어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까지 오차가 없었다.
매번 톱니바퀴처럼 반복되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재대로 데려가는 거 맞아? 여긴 손님을 이런 취급하나?"
연신 말을 내뱉으며 가는 한 남성의 시야는 안대로 가려져 있었다.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있으니 길을 잃은 염려는 없었지만, 파르르 떨리는 그의 신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안대를 한 채, 어디론가 끌려가는 사람의 정체는 바로 창수이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의뢰 때문이었다.
"정말,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거지?"
"네, 물론입니다. 이미 어두운 루트에서는 입소문이 퍼져 있습니다."
부하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심부름센터.
아니, 심부름센터라고 이야기하기도 힘들었다.
커다란 조직을 가진 그들이 무엇이든 의뢰자가 원하는 상태를 만들어 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G. O. D.
신을 지칭하는 말로, 그들의 발아래 있는 어떠한 것이라도 원하는 상태로 만들어 준다는 것.
자신이 잘 지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의 유대 관계를 만들어 준다.
분노가 있다면?
분노를 표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정확한 표현에 의한 임무 하달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주는 엄청난 조직이었다.
창수는 그들에게 한성 중공업에 대한 의뢰를 한 것이다.
'네놈들이 나를 무시했다 이거지? 금방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싹싹 빌게 만들어 주겠어.'
호기롭게 의뢰하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분위기에 압도가 됐다.
아무것도 대응하지 못한 채, 그저 끌려가는 것밖에 하지 못하니, 얼마나 두려울 것인가?
처음 만나자마자 안대로 눈을 가리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을 때 느껴지는 막연한 불안감.
혹시 돈을 노리고 자신의 생명을 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해서 맴돌았다.
시간이 지나자 그의 걱정은 기우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끼이이이익.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안락한 의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흐음, 아주 푹신하고 좋군.'
약간의 긴장이 풀리자, 입을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밖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아니, 이곳은 손님을 이렇게 대우한다는 건가?"
안대가 풀리자마자 내뱉은 말은 실소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 두려움에 떨고 있던 모습이 사라진 채, 완전한 갑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위협적인 자세로 의견을 피력하는 그 앞에 한 남성이 자리 잡았다.
"오시는 데 고생하셨습니다. 저희의 안전 때문에 불편을 드린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크흠, 앞으로는 초대 방법을 바꿔야 될 것 같소, 내가 뭐 많이 아는 것은 아닌데, 솔직히 이런......."
창수의 오지랖 같은 말이 길어지려고 하자, 곁에 있던 검은 옷의 사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제재를 가했다.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합니다."
다시 한 번 차갑게 내려앉은 분위기에 창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결과만 안 좋아 봐. 내가 어떻게 하는지 두고 봐야 될 거야.'
거친 속내를 이미 밖으로 표출하려고 했지만 검은 후두의 남성이 양옆을 지키고 있으니, 절로 입이 다물어진 것이다.
"의뢰는 어떻게 하실 건지?"
"아, 그게 이렇게 해도 될까 모르겠는데, 안면을 튼 상태도 아니고, 아무리 유명하다고 하더라도 서로 비즈니스를 하는......."
창수가 거들먹거리며 운을 뗐다.
거래를 함에 있어서 갑의 입장에서만 진행했던 그의 특성이 또다시 드러나는 것이다.
항상 칼자루는 본인이 쥐고 움직이는 것이 편했던 창수는 이번에도 자연스레 몸에 밴 움직임을 보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칼자루.
먼저 쥐는 사람이 임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힘을 가진 사람이 칼자루를 쥐게 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강한 사람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칼 내려놔."
배려는 강한 사람이 하는 것이지, 약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여기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앉아 있는 두 사람 중 강자는 창수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지, 창수가 아니다.
"그거 알고 계십니까?"
나지막이 이야기하는 남성에게 창수의 시선이 옮겨졌다.
'뭘 말하려고 저런 분위기를 풍기는 거야.'
의아한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던 창수이었다.
"저희는 저희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제 얼굴을 아는 순간 죽었다는 소리입니다. 물론 원하시면 보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
가려진 복면을 향해 움직이는 손을 창수가 다급하게 막아 세웠다.
"아, 아니. 적어도 계약을 하려면 신뢰를 쌓아야......."
그가 지금 복면을 벗어 버린다면 진짜로 자신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 얼굴을 보지 않고 거래를 어떻게 하는지 묻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보여 드리려고 하는데."
"돼, 됐습니다."
"저희는 모든 거래를 후불로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소리입니다. 개의치 말고 의뢰를 말씀해 주시지요."
간접적인 표현이 창수를 압박했다.
서로 힘겨루기로 주고받는 대화는 생략하자.
속전속결로 빨리 끝내고 너는 네가 할 일, 나는 내가 할 일을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럼 한성 중공업을......."
창수가 힘들게 입술을 달싹였다.
"한성 중공업이라고 하면."
남성은 창수가 이곳에 왜 왔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뢰인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하지 않는 이상, 의뢰로 치부되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자신이 원하는 말이 나오길 기대했다.
창수에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이 사건 내부에 들어가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합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정도 수준이었나?'
그래도 세계에서 꽤나 높은 수준의 기업이라고 칭송받는 섬성 그룹의 이사라고 들었다.
정작 내부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어도, 실체는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G. O. D.와는 달리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복수에 눈이 먼 남성이 찾아온 것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은 아니었다.
"한성 중공업? 정말 그 정도로 괜찮습니까?"
하지만, 참을성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창수에게 물었다.
그의 숨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죠."
자신들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이용하는 하나의 수단.
정작 상자를 열어 보니 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같은 방향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아주 짧은 구간을 공유하는 정도였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
모든 것이 자신들의 기대치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만약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면?
의뢰자를 상향 평준화시키지 않았다면?
당연히 알 수 있을 결과였다.
"네 그럼 모든 것이 완성되면 그때 만나 뵙겠습니다."
인사를 건네고 창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뒤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남성에 의해 목덜미를 강하게 맞고 기절해 버린 것이다.
창수가 기절해 버리자, 한 수하가 고개를 숙여 사죄를 표했다.
"죄송합니다. 정보가 부족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저쪽이 저 정도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 다행이지,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들면 돼."
그의 눈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지만, 일단 이 자리에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 * *
'일단 저기서 시작해야겠군.'
태욱은 독물의 소굴로 들어온 이후, 순찰을 하면서 적절한 위치를 찾고 있었다.
팀원들을 모두 데리고 사냥에 나선 것이 아니었다.
솔로잉(Soloing).
그는 본래 혼자 사냥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파티 사냥은 자신의 위치에 맞는 행동을 하고 서로가 손발을 맞춰 간다.
탱커는 몬스터 몰이와 도발을 담당하고, 커다란 피해를 입을 것 같은 공격을 몸으로 막아 낸다.
딜러는 빠르게 몬스터를 공격해 목숨을 앗아 가고, 힐러는 회복을 서포터는 보조 수단을 맞춘다.
모든 일에 손발이 맞는다면 파티 사냥이 가장 높은 효율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5명의 파티가 사냥에 나서면 5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머리가 5개인 것이다.
물론 사냥에 나서기 전에 일정한 매뉴얼을 만들고 리더가 파티를 이끌어 나간다.
몬스터를 탱커가 이끌어 오고, 딜러가 공격을, 힐러가 회복을, 서포터가 보조를 한다.
물 흐르듯 움직이는 상황에서는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다.
돌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때 일어나는 것이 분열이었다.
탱커는 몬스터를 모두 묶어 둘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리더는 도주를 생각할 수도 있다.
딜러가 강한 공격으로 몬스터를 녹일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탱커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상황, 상황마다 모든 결정을 리더가 내린다고 해도, 다른 이들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만들어 내는 것이 불신이었다.
한 번 믿지 못하게 된 파티는 결국 와해되고 마는 것이다.
태욱은 모든 역할을 혼자서 해낼 수 있다.
딜러가 탱커를, 탱커가 힐러를.
상황에 맞는 판단을 한 방향으로 쭉 밀고 나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가장 복잡하지 않은 사냥이 바로 솔로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솔로잉이란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선명하게 드러나는 단점이 있었다.
손속의 부재.
여러 방향에서 생각하고 볼 수 있는 정보가 상당히 줄어든다.
태욱도 언제까지 솔로잉으로 사냥할 생각은 없었다.
팀원들의 성장도 필요했고, 손속을 맞추는 협동심도 필요했다.
그러나, 태욱에게 있어서 지금은 너무나 중요한 시기였다.
커다란 수레를 끌어 나가려면 힘이 필요했다.
시작부터 모든 일을 동료들에게 나눠 분담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상태에서 동료들이 도움을 주게 된다면?
분명 그들이 가지는 여유는 상당할 것이다.
'일단 내가 완성돼야 되는데.'
태욱은 굳은 의지를 가지고 사냥에 나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맹독 슬라임.
강한 독을 사방으로 뿌리고, 신체로 흡수를 해 조금씩 먹잇감을 녹여 영양분을 흡수한다.
이동속도가 느릴 뿐더러, 강한 독만 조심한다면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곳에 사냥 온 가장 큰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