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12화
"어이고, 김 이사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멀리서 유섭이 김창수를 알아보고 손을 뻗으며 다가왔다.
유섭의 알아챔이 반갑지는 않았는지 창수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축하드리러 왔지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손아귀에 힘이 절로 들어가려고 아우성을 쳤지만, 최대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아 보내 주신 화환은 잘 받았습니다. 이거 감사 인사라도 건네야 할 것 같네요. 오늘의 저희를 만들어 주신 게 바로 김창수 이사님 아니십니까?"
유섭은 창수의 이름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간접적인 표현인 것이다.
"하하, 제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시간이 바빠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유섭에 비해, 창수의 이마는 꿈틀하며 구겨졌다.
웃는 낯빛으로 인사를 했지만, 고스란히 감정이 모두 표출됐다.
창수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린 유섭은 당당하게 회의장 밖으로 나섰다.
그 뒷모습을 창수는 유심히 바라봤다.
'분명히 일부러 그랬어.'
유섭의 행동이 의도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섬상의 손을 완전하게 거절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찬밥 신세가 될 정도로 섬상은 작지 않았다.
자신이 고개를 숙이면 모르는 척 받아 줄 것을 예상하고 여기 찾아왔다.
자존심을 구겨 가며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마침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슬쩍하고 말을 흘릴 줄 알았다.
하지만, 단칼에 잘라 내는 그의 행동에 창수는 분노를 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무너질 것 같아? 어떤 사람인지 본보기를 보여 주겠어.'
그의 눈은 활활 타올랐다.
* * *
-한성 중공업 대기업과 합병 준비?
-효과적인 협정을 통한 도약.
-이제 경기장은 완성됐다. 정면승부를 해야 할 때.
-마정석 합성기, 이제 대량생산 체제?
-어디를 선택해야 옳은 선택인가?
-고민에 고민을 해도 정해진 곳은 없다.
각종 신문의 타이틀에 한성의 이름이 올라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제1면을 보면 모두 한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성 중공업이 가진 고급 기술을 풀어낸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근데, 여기 섬상은 왜 없는 거야?"
"글쎄, 대기업인데 왜 섬상이 없지? 혹시 예전에 한성 중공업 상대로 갑질이라도 한 거 아니야?"
"에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게 있을 수 있나? 금방 기사로 날걸?"
"그런가?"
"그래, 그런 거였다면 여기 신문 1면을 채우고도 남았지."
"섬상 기업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갖은 갑질의 연속.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지 않았을까?"
"맞아 맞아."
사람들에게는 진실이건 아니건 상관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저 모든 사건은 씹을 거리에 불과했다.
신문을 읽어 내려가면서 한성과 계약을 한 기업들이 차례대로 나열됐는데, 그 가운데 섬상이라는 이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딱 섬상만 빼? 그래도 대기업이잖아."
"대기업이 뭐?"
"판매처도 정확하게 있을 테고 생산력이나 품질들은 월등할 텐데?"
"품질만 따지면 GL이 좋지."
"그런가?"
출근길에 놓인 조간신문.
신문은 사람들에게 이슈를 던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의 주제는 한성 중공업 그리고 마정석 합성기에 관한 것이 주류를 이뤘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은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된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일반 사람들은 마정석 합성기를 직접 볼 일도, 사용할 일도 거의 없다.
실질적으로 대기업이나, 국가기관에서 사용을 하기 때문이다.
정작 신문 기사들은 이들에게 하나의 가십거리를 던져 주는 것만을 벗어나, 진짜 한 발자국 가까워졌다는 것을 인지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에 기쁘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꾸깃꾸깃 접은 신문을 벽으로 던져 버렸다.
휘릭.
추진력을 잃은 종이는 결국 바닥으로 추락했다.
"에이 씨! 이게 뭐라고!"
대문짝만하게 실린 신문이 그의 날카로운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내가 충분한 사과의 표현을 했는데 뭐야, 뭐하는 거냐고!"
창수는 아직도 유섭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그가 협정 자리에 참석을 한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한 것이다.
"정중하게 사과를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
분명 축하 화환도 보냈다.
대기업 임원인 자신이 수주에 선정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보냈다는 의미를 상대도 전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창수는 자신이 아직도 갑이라고 생각했다.
커다란 섬상을 등에 지고 있는데, 감히 중소기업 따위가 말을 듣지 않은 것이다.
"이 새끼들을 어떻게 해야 될까?"
창수는 온통 복수할 생각뿐이었다.
지금 이렇게 된 것도 모두 한성 중공업의 탓이었다.
처음 찾아갔을 때, 자신은 10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기다렸다.
아무런 대접도 받지 못한 채, 넓은 회의실에 덩그러니 놓여 비서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약이 오른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 강하게 나선 것인데, 좀생이 같은 한성 중공업이 주제를 모르고 거들먹거린 것이 아직도 눈에 선명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됐냐?"
독백과도 같은 말에는 분노의 감정이 서려 있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넓은 마음을 가지고 섬상을 받아 주지 않은 유섭이 쪼잔해 보이기까지 했다.
"큰사람이 되기는 글렀어, 우리 기업이 어떤 기업인데? 감히 무시해?"
그에게 있어서 섬상은 자신의 타이틀이자 얼굴이었다.
사람 김창수가 아닌 그는 섬상의 이사.
아무래도 진짜 힘을 보여 줘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진짜 힘을 보여 주지, 같잖은 힘 가지고 으스대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기업적인 측면에서 압박을 할 수 있는 카드들만 나뒹굴고 있었다.
똑똑똑.
"이사님 전무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저, 전무님이?"
창수의 방으로 전무가 직접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들어오는 질문에 창수는 곤란하다는 듯이 입술을 핥았다.
"...... 저 그게."
전무가 직접 창수의 입으로 이야기를 들으려고 이곳에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도 이미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인지를 하고 있었다.
지금 전무가 온 이유는 하나였다.
숙청을 하느냐, 아니면 재사용하느냐?
결국 책임을 묻고 잘라 낸다면 한성 중공업으로부터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다.
어찌됐든 섬상은 한성 중공업과의 좋은 유대관계를 맺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아니, 한성 중공업이 가진 엄청난 기술을 손아귀에 쥐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창수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을 하는 차원이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거야?"
독사와 같은 날카로운 질문이 창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포커 플레이어는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느냐에 따라 플레이가 달라진다.
높은 카드를 가지고 있다면 적절하게 상대를 유인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하고, 낮은 카드를 쥐고 있다면 강한 배팅을 할 것인가, 작은 손해는 버리고 다음 게임을 도모할 것인가 판단을 해야 한다.
더 이상 효용성이 없다면 그를 잘라 내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제가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기는 한데."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창수가 대답했다.
'이런 것까지는 쓰지 않으려 했건만.......'
머릿속에 계획이 차곡차곡 그려져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비밀이라는 것은 입이 적어야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정보가 새어 나갈 수 있는 틈을 주지 않는 것이 가장 높은 승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도 원치 않을 것이다.
자신의 계획을 들었다면 동조한 수순이 되는 것이고, 계획이 틀어진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높은 직책이란 커다란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있기는 한데?"
전무는 창수에게 넌지시 물었다.
"리스크가 있습니다."
"얼마나?"
"한 100에 60 정도입니다."
"승률은?"
"80퍼센트를 넘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대명사를 제외하고 이뤄졌다.
곁에서 들은 사람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지, 그리고 단순 녹취록이 흘러나간다고 할지라도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비밀리에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흐음."
전무는 고민에 빠졌다.
승률 80퍼센트에 리스크 60.
꽤나 구미가 당기는 아이템이었다.
정확하게 모든 말을 듣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그가 잘못하면 꼬리 자르듯 잘라 내면 된다.
다음은 기업적인 차원에서의 사과.
섬상 이사가 멋대로 진행을 했고 그것을 이제 알았다. 확인 후 적절한 조치를 했으니 용서를 해 달라는 꼬리 자르기식 영업.
만약 창수의 작전이 성공한다면 좋은 기술을 저렴하게 받아 올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창수를 자르면 그만이었다.
"그럼 진행해."
전무의 음성에는 약간의 사악함이 담겨 있었다.
대화를 통해 자신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알게 된 창수는 배수의 진을 펼쳐 놓고 자신의 계획을 수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 * *
요즘 영리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하지?'
잠자리에 누워 있어도, 밥을 먹을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심지어 볼일을 볼 때도, 온통 한 사람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테이블에 앉아 두 볼이 빨개진 채로 멍하니 있는 그녀를 보고는 한 사람이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언니?"
영리의 곁으로 찾아온 사람은 바로 은비였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그녀가 다가오는데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영리는 정신을 놓고 있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기에 멍 때리고 있던 거야?"
"아, 그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급하게 자신의 표정을 감추며 밝게 웃었다.
그녀가 고민에 빠진 것은 얼마 전 일 때문이었다.
어렴풋하게 떠올랐던 독성의 던전에서 있었던 일.
흐릿해진 시야에서 전해 주는 정보는 극히 단적이었다.
마치 백열전구가 켜지기 전, 깜빡이는 현상처럼 태욱의 얼굴이 잔상과 같이 남았다.
그녀를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기억에 너무나 선명한 탓이었다.
'아 흥, 어쩌면 좋아.'
사실 이렇게 그녀가 변한 이유는 그때의 사건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태욱의 포지션은 그저 편한 오빠, 아니 보호자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독성의 던전에서 그의 행동거지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니, 왠지 태욱의 모습이 달라 보이는 것이었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뭔가 더 빛이 나고,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요동치는 심장을 막을 수가 없었다.
"좋아, 결심했어."
"뭘 결심했다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