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11화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기술 유출이라는 단어밖에 없었다.
'에이 돈 없는 중소기업 놈들 내가 왔는데, 버선발로 뛰어나오지 않고 기다리게 만들어?'
이번에 임원이 된 그는 자신의 자리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었는데, 딱 맞춰 들어온 것이 바로 마정석 합성기였다.
"어이고 찾아오셨습니까?"
마침내 김유섭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와 손을 뻗으며 악수를 건넸지만, 김창수의 반응은 영 시큰둥했다.
고고한 자세로 앉아 고개만 까딱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를 반겼다.
"하하, 오래 기다리셔서 심기가 불편하신 모양입니다."
"조금 그러네요. 시간이 돈인 사람인지라, 그래도 얼마 안 기다렸습니다. 한 10분 정도?"
김창수는 일부로 시간이 돈이라는 말에 악센트를 넣어 이야기했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대기업 이사들을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이에 고압적인 자세를 보여 주면 넙죽 엎드릴 것이라고 생각하던 김창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응하는 유섭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러셨군요?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오셔서 저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줄 알았습니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유섭의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창수였다.
"아, 네."
미적지근한 대답을 한 채로 창수는 입을 다물었다.
'배포가 좋은 거야,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거야?'
지금까지 만나 왔던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모습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김창수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로 여길 오셨나요? 투자금 지원에 관한 계약은 한 달 후에 이뤄지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유섭은 운을 띄우듯 그가 찾아온 목적을 물었다.
창수는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했다.
"아, 그거 저희가 모두 투자를 했으면 합니다."
유섭의 행동을 보아하니, 눈치가 없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캐치해 내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서는 직접적으로 던진 것이다.
"아, 그 부분은 이미 서로 상호 간의 협조로 인해 정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허허허."
"그래서 내가 직접 찾아온 것 아니오. 어차피 여기서 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면 다들 할 수 없는 거 아니요?"
답답하다는 듯이 창수가 봇물 터져 나오듯 말을 우다다다 쏟아 냈다.
"......."
유섭은 동그란 눈을 하고서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뭐, 생각할 시간이라도 필요한 거요? 우리 섬성이요, 섬성이라고. 우리랑 계약하면 당신네들도 좋은 거 아니야?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우리 기업이......."
유섭은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하는 거야? 지금 내 말이 우습게 들리는 거야?"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그저 이 자리를 이탈하려고 하려는 유섭에게 창수는 으름장을 놨다.
그 모습에도 유섭은 겁을 먹기는커녕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제가, 섬성이라는 기업을 잘못 본 것 같군요."
"뭐, 뭐야?"
"이렇게 생각이 없는 사람을 보낼 줄은 몰랐습니다. 계약하는 날 보시죠. 당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유섭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야! 야! 너 거기 안 서?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섬성의 김창수야 김창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김창수를 뒤로한 채, 회의실 문은 그대로 닫혔다.
* * *
찰칵.
찰칵.
"여기 좀 봐주세요."
"서로 악수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단상 위에 올라와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카메라가 집중되고 있었다.
머리 위에 있는 커다란 플랜카드.
마정석 합성기 수주를 위한 기업 협정.
백색으로 돼 있는 바탕에 붉은색과 푸른색의 글자의 조합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기업 협정.
서로 간의 이해관계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기업들 간의 협정이었다.
이 협정의 가장 중요한 중심 기업은 바로 한성 중공업이다.
외적으로는 사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유섭이 가장 큰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한성 중공업 사장 김유섭입니다. 바쁜 와중에도 여기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립니다."
이 자리는 밖으로는 한성 중공업의 수주를 받았다고 얼굴도장 찍는 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마정석 생산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한성 중공업은 특허 기술을 공유하고 그에 따른 투자 비용을 받는 것이다.
한성 중공업이 가지지 못한 대량생산과 유통 그리고 판매까지 모든 것을 단번에 확장시키기 위한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한성 중공업에서 큰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공개하지 않고 시간이 흐른다면, 마정석 합성기는 분명히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다.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로 소량만 생산될 것이며, 기기를 기다리기 위해 엄청난 시간도 소모될 것이다.
한성은 자신들 말고는 아무도 이 기술을 습득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지원은 처음 태욱과 이야기를 하면서 화들짝 놀랐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업가 입장에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기술은 다 빠져나간다. 머지않은 미래에 다른 기업들도 마정석 합성기를 생산할 수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오랜 연구 끝에 개발을 했는데, 단순히 기계를 분해, 분석한다고 알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긴 시간이 흐른다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태욱의 입에서 나온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다.
"향후 5년, 아니 3년쯤부터 슬슬 입질이 올라오기 시작하지."
기술이라는 것이 많은 연구비를 투자한다면 금방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미 세상에 공개된 기술.
그렇다면? 그 정체를 밝혀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방향이 정해졌으니, 다른 연구원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개발하게 될 것이다.
기기 자체를 구입해 분리 사용할 커다란 기업들은 기계와 기술을 낱낱이 분해해 확인하기 때문이었다.
한성 중공업은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최초의 마정석 합성기 생산 기업이라고 이름을 알린 지금 한성 중공업은 다음 단계를 머릿속에 그려 냈다.
이들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는 두 종류였다.
기술을 독과점하는 것.
빨리 기술을 풀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선구자 역할을 하는 것.
기술을 혼자 쥐고 있으면서 판매를 하면 독점이라는 명목하에 많은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풀리는 기술이라면?
결국 많은 돈을 받고 기업에 나누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큰 수익이 될 수 있었다.
물론, 핵심 기술 중 몇몇은 공개하지 않겠지만, 받아들이는 기업 역시 좋은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다.
대기업의 횡포라는 이름 아래 공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주고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한성은 후자를 택했다.
혼자서 쥐고 독점으로 수익을 올리는 형태가 아닌, 단기간에 많은 투자 금액을 받고 새로운 기술로 한발 앞서 나가는 선택을 한 것이다.
물론 그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태욱이었다.
"정말, 이렇게 단번에 풀어도 괜찮아요?"
"네, 물론입니다. 어차피 나중에 다른 기업들도 모두 이 시장에 뛰어들 겁니다."
태욱의 말에 지원은 토끼 눈이 됐다.
"시장에 뛰어드는 건 이익에 의해서인데, 어차피 우리가 앞서 나갈 것을 왜 공개를 하는 거죠?"
지원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과거와 같은 행동을 하면 가장 선두로 나서는 확실한 길인데, 그 선택을 바꾼다는 것은 미련한 행동으로 보임과 다름없었다.
"우리는 그래야 됩니다. 변하지 않으면 미래는 바뀌지 않습니다. 세상의 멸망이 다가올 때에도 과거와 다른 미래를 그리지 못한다면? 결국 같은 것을 반복하게 될 겁니다."
태욱의 말이 지원에게 크게 다가왔다.
무한한 광물이 매장돼 있는 광맥을 많은 광부에게 알려 주고 일반인도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많은 물품을 만든다면 삶의 질이 모두 향상되는 것이다.
지원은 여기서 광부나 다름없었다.
아직 미지의 세계에서 좋은 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어야 좋은 역할이지, 모르고 광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사장될 물건임이 뻔했다.
물론, 광부들 내부에서도 암투도 존재할 것이다.
힘이 좋은 광부들 중 많은 광물을 캐내면서 광물을 캐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정확하고 높은 수준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라면?
주변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방향을 꾸준히 밀고 나갈 수 있다.
지원에게는 태욱이라는 길잡이가 있다.
랠리 경주를 하는데, 곁에 있는 네비게이터의 역할이 크다.
레이싱 선수는 앞만 보고 달리지, 바로 이 코너 너머에는 어떤 장애물이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네비게이터의 말을 믿고 움직일 뿐이다.
태욱과 지원은 서로 이런 관계다.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알려 주고, 지원은 그 말을 믿고 있는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 이것이 최선의 길인 셈이다.
"여기 오른쪽도 부탁드립니다."
"이쪽도 부탁드립니다."
찰칵. 찰칵.
벌써 백여 명의 기자들이 특종을 잡아내기 위해, 좋은 기사를 싣기 위해 플래시 세례가 계속됐다.
이 기업 협정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바로 섬성이었다.
단 한 명의 지나친 자만과 오만심이 만들어 낸 무자비한 결과였다.
한성 중공업은 많은 거대 대기업과 협정을 맺었다.
흔하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대기업이 어디냐는 질문을 했을 때 대답이 나올 만한 커다란 기업은 모두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 불편한 자세로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섬상의 김창수.
자신이 한 일이 있으니 조용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거대 계약 수주를 자신이 다 받아 올 수 있다고 큰소리쳤을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기자회견이 다 끝나 가도록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저 멀리서 유섭을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이렇게 서 있던 것이다.
이대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의 목숨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기업 이사로 지낸 시간이 길지 않았다.
더구나, 스스로가 자처한 일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었으면 떡이라도 먹을 수 있었는데, 큰 조각에 욕심을 내면서 눈앞에 있는 가래떡도 날려 버린 미련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노의 표적을 한성 중공업에 돌렸다.
'저 녀석 때문에.'
눈은 분노로 가득 찼지만, 그의 입꼬리는 살며시 올라가 있었다.
억지 미소.
마치 위아래로 나뉜 페르소나 같았다.
코 아래쪽으로는 웃고 있었고, 코 위쪽으로는 분노를 표출하는 전형적인 형태였다.
기자회견이 모두 종료될 때까지 그는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 분노를 삭였다.
"이것으로 기자회견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많은 성원과 관심 감사합니다."
결국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 채, 회견은 끝나 버렸다.
가장 손해를 본 것은 바로 섬성이었다.
다른 대기업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계약서를 손에 쥐고 떠났다.
유일하게 섬상만이 아무런 수익을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