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10화
'셋.'
'둘.'
'하나.'
마음속으로 셋을 세고 난 이후, 공격이 날아올 것을 예상했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뭐지?'
순간 태욱은 자신이 착각을 했나 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봤지만, 분명 확실했다.
서로가 말을 맞춰 놓은 곳에서 정확한 공격이 날아오길 바랐지만,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가 잘못됐나? 설마 중독?'
트리옥시가 맹독을 흩뿌릴 때, 영리와 지원은 거리를 두고 있었다.
물론 은비가 간접적으로 흡입을 했을 가능성은 높았지만, 그녀의 역할은 근거리 공격이지 원거리 공격이 아니었다.
원거리에서 공격을 담당하는 지원의 사격이 이뤄지지 않자, 계획과 다른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괜한 걱정도 들었다.
"탕!"
그때였다.
단발의 총성이 울리더니, 조용하게 뒤를 점한 뱀파이어를 정확하게 맞춘 것이다.
퍼어억.
그녀의 지원 사격이 없었다면 태욱은 필시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 분명했다.
손을 들어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태욱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여야 했다.
chapter 3
예기치 않은 공격에 트리옥시는 재빨리 모습을 숨겼다.
"흐압, 푸우우우우우."
입에서 뿜어낸 검은 독무가 트리옥시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감췄다.
'누군가 제법 머리를 쓰는 것 같은데.'
트리옥시는 독을 매개체로 싸우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독소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태욱을 맹렬하게 쫒지 못한 이유는 바로, 주변에 독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부로 여기로 끌어들였다 이건가?'
꽤나 똑똑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전혀 모른 채로 벌레 같은 놈들을 쫒아온 것이 아니었다.
바로 트리옥시의 고유 기술.
-포이즌 필드(Poison field).
몸 안에 저장돼 있는 독을 뿜어내거나, 주위에 있는 독기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능력.
전투를 하면서 주위에 뿌려 놓은 독기들이 트리옥시의 모든 신체가 되는 것이다.
독기들의 움직임을 통해 상대방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조금씩 침식돼 가는 녀석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아주 고약한 스킬이었다.
다만, 약간의 단점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금제를 걸어 놓은 것을 해제해야 된다는 점.
다시 금제를 걸 때까지 불편한 생활을 영위해야 되지만, 지금 자신의 분노를 만들어 낸 벌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했다.
"크아아아악!"
괴성과 함께 트리옥시의 피부가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지직.
마치, 그의 피부는 잘 만든 도자기와 같았지만, 갈라지고 떨어진 내부의 피부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강한 독으로 인해 녹아 버린 피부의 흔적들이었다.
"이놈들, 너희의 죄를 너희가 알렸다!"
분노하는 트리옥시가 듣지 못한 한마디의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욱의 목소리.
"초월적인 흉내 내기."
자신의 힘에 매료된 체, 상대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그의 탓이 큰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 * *
태욱은 그가 뭔가를 하려는 것을 읽어 내고는 재빨리 스킬을 외쳤다.
'어떤 스킬이지?'
트리옥시가 어떤 스킬을 사용하는지 파악을 하기 위해 사용한 스킬이 아주 운이 좋았다.
마치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이나 다름없었다.
-초월적인 흉내 내기 스킬을 통해 트리옥시의 고유 기술 포이즌 필드를 습득했습니다.
'포이즌 필드?'
지금껏 어디서도 보지 못한 기술이었다.
과거 마족들은 자신의 고유 기술이라며, 서로 특성에 맞춰 사용할 수 있는 스킬들이 있었다.
태욱은 마족들의 스킬을 흉내 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포이즌 필드.
주변에 있는 독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다.
태욱은 포이즌 필드를 사용해 주변에 뿌려져 있는 독 안개를 날리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펼쳐 트리옥시의 모습을 확인하려고 한 움직임이었다.
"끄아아아악!"
독 안개를 날려 일반 공기와 만난 트리옥시는 갑작스럽게 비명을 내질렀다.
'뭐지?'
태욱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껏 마음껏 활보하던 그였는데, 단순히 독이 사라진다고 해서 큰 타격을 받는 상태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일전의 트리옥시와 지금의 트리옥시의 모습을 비교하면 단 하나밖에 없었다.
깨끗하고 도장된 피부가 아닌, 강한 독에 의해 녹아내린 피부.
태욱은 예기치 않게 그의 약점을 알아낸 것이다.
'독 안개가 가장 중요한 방패구나.'
극한에 달하는 독에 노출이 된 트리옥시의 피부는 이제 독과 한 몸이 돼 버린 것이다.
그에게 있어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를 해 주는 피부는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독성이 임무를 대신하고 있던 것이다.
외부의 자극을 막아 주던 독 안개가 사라지자 트리옥시는 커다란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약점을 알아내자, 태욱은 계속해서 독운(毒雲)을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처음만 움직일 뿐, 독 구름은 자신의 의사를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흉내 내기의 한계인 듯했다.
스킬로 따지면 SS급 이상의 스킬로서 태욱이 효과를 낼 수 있는 수준은 50~15% 수준.
그러니 결국 완숙된 숙련도에 따라 독 구름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 돼도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 이것 하나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태욱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에겐 뒤를 지켜 주는 동료가 있고 지금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탕!"
태욱이 기회를 만들어 주자 여지없이 총성이 울렸다.
강력하다고 생각한 적의 최후는 아주 비참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연속해서 오른 시스템 음이 트리옥시의 최후를 말해 주고 있었다.
꽤나 높은 레벨을 지닌 그가 이토록 쉽게 목숨을 잃었던 것은 바로 고유 스킬을 누군가 사용했을 때의 대처법이 없던 데 있다.
지금껏 독 안개는 자신의 의지를 따라 움직였고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
수족을 부리듯 움직이던 독 안개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으니, 전력에 엄청난 차질이 생겨 버린 것이다.
만약 태욱이 고유 기술을 습득하지 않았다면, 전투의 양상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트리옥시의 독 안개의 의해 죽었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강한 탄환을 쏘아 낸다고 하더라도, 안개를 뚫고 트리옥시에게 접근하기 전, 총알이 녹아내렸을지도 몰랐다.
강한 방패이자 창을 태욱이 빼앗아 버리자, 알몸이 된 트리옥시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이다.
"쿨럭."
태욱의 곁으로 다가온 지원이 기침을 쏟아 냈다.
그리고 이어진, 붉은 선혈이 그녀가 중독됐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태욱은 포이즌 필드를 이용해, 주변에 있는 강한 독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공기 중에 흩어져 있던 독들은 한군데 모여 일정 덩어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 구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낮은 곳에서 보는 것 같았다.
높은 하늘에 있는 구름은 흰색이지만, 지금 태욱의 앞에 모인 것은 검은색이었다.
단 한 방울만 마셔도 충분한 치사량인 독성을 태욱은 스스럼없이 삼켜 버렸다.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집어넣은 것이다.
만불독침을 가지고 있는 그라면 어차피 몸에서 정화돼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괜찮아?"
태욱은 가장 먼저 동료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미약한 독기가 남아 있다면 포이즌 필드를 이용해 모두 빨아들일 작정이었다.
"괜찮아요."
"그래. 아무렇지 않아."
"나, 나도."
방금 전까지 붉은 선혈을 흘렸던 지원이 마지막으로 대답하면서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언니 그거 알아요? 방금까지 피를 토하고 있었다는 거."
"그래, 뭐가 괜찮다는 건지 모르겠다."
은비와 영리가 지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이번 출정을 통해 단번에 서로를 묶어 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지원은 자신의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머지 챙기러 가야지."
"응? 나머지?"
태욱이 또 무언가를 챙기러 간다기에, 지원이 물었다.
이들은 모두 하급 독 내성이라는 패시브 스킬을 익힐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을 했는데, 태욱의 생각은 달랐다.
'하급 독 내성으로는 부족해.'
유파스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
아직 많은 숫자가 남겨져 있었다.
만불독침이라는 스킬을 얻은 자신은 필요 없지만, 하급 내성을 지닌 이들에게 상급, 아니 최소한 중급 내성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복용한다고 반드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뭐, 혼자 간다는 거야? 같이 가."
은비가 따라나서듯 일어나다 털썩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냥 앉아 있어. 이 중에 내가 제일 쌩쌩하니까."
결국 모두가 태욱의 말을 듣고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이 태욱은 재빨리 열매를 모두 채집해 돌아왔다.
"자, 이제 돌아가자."
"그래 이 지긋지긋한 사냥터를 빨리 탈출하고 싶어."
"맞아요, 언니 저는 좀 씻고 싶어요.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챙기며 4명의 파티는 독성의 던전 밖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 * *
한성 중공업.
대회의실 내부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크음. 언제 온다는 거야?"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대우를 해 주지 않는 이 회사에 불만을 가진 것 같았지만 겉으로 표현해 내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의 이름은 김창수.
섬상 그룹 이사진 중 한 명이었다.
"저, 그게 금방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안절부절한 모습으로 곁을 지키는 남성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에잇, 쯧쯧쯧, 이렇게 시간 개념이 없어서야 나 원 참."
앉아서 상대방이 보란 듯이 불만을 토로하는 김창수는 주도권을 잡고 가려는 행동을 보였다.
분명 한성 중공업과 약속된 시간은 아직 있었다.
약 10분이라는 시간을 먼저 도착해서 저런 짓을 하고 있으니, 시선이 고울 수가 없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김창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실적뿐이었다.
한성 중공업이 발표한 마정석 합성기.
그 기기에 대한 투자금을 예치하는 일이었다.
커다란 계약 건을 앞두고 약간의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다.
강한 힘을 가진 곳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권위주의가 뼛속 깊숙이 파고 들어가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 김창수는 하나 착각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이곳은 한성 중공업.
마정석 합성기로 전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는 곳이다.
중소기업이지만 이들이 개발해 낸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단순한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낸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이슈가 됐는데, 이들이 투자를 받을 예정이다.
결국 선택은 한성 중공업이 하는 것인데, 김창수는 자신감이 넘쳐흐르다 못해 예의 없는 행동까지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