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9화
태욱은 자신의 어설픈 판단이 커다란 부메랑 효과로 날아오는 것을 정면으로 받아 버렸다.
"초월적인 흉내 내기."
태욱은 파수꾼의 스킬을 알아보기 위해 흉내 내기를 펼쳤다.
인류 최강의 방어 시스템인 이그젝션 시스템도 흉내를 낼 수 있는 스킬이었다.
고작 이 정도 파수꾼이 펼쳐 내는 스킬을 익혀 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은 저 멀리 던져 버렸다.
-독 흩뿌리기.
신체에 함유하고 있는 독을 허공에 흩뿌려 상대방의 호흡기를 공격한다.
태욱은 스킬의 정체를 파악한 이후 재빠르게 코와 입을 가로막으며 스킬을 외쳤다.
"리커버리."
강하게 요동치던 심장을 조금은 잠재울 수 있었다.
일시적으로 신체의 회복 능력을 높여 주는 스킬.
하지만, 이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품에 안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회복 능력을 높여 준다는 것.
신체 내부에 있는 세포의 활동량을 순식간에 높여 주는 것이다.
과부하가 걸린 신체가 조금의 유연성을 가지게 되지만, 그만큼 전신에 독이 퍼져 나가는 속도 또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방법이 없나?'
이제 더 이상 시간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
잘못하다가는 태욱도 쓰러지고, 더 이상 공격을 막아 낼 수 없어 전멸을 할 수도 있었다.
태욱은 연속해서 스킬을 펼쳐 냈다.
"초월적인 흉내 내기."
지금은 이 스킬 말고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었다.
강력한 파수꾼이 지키고 있는 열매를 착취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태욱은 일단 급한 대로 영리의 패시브 스킬.
하급 독 내성을 익혔다.
-초월적인 흉내 내기를 통해 하급 독 내성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아주 살짝이지만, 내성 스킬을 익히자마자 곤란했던 호흡이 돌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걸로는 부족해.'
고작 독성이 퍼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뱀파이어의 손끝에 맺혀 있는 독성이 하급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수준인 것이다.
트리옥시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양손을 이용해 교차되며 연속되는 공격을 피해 내기 위해 태욱은 요리조리 움직였다.
마치, 어린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는 듯 보였다.
마지막 사냥에 나서기 전에, 다 죽인 쥐를 놔주는 고양이와 같았다.
쨍그랑.
결국 발을 옥죄고 있던 사슬이 모두 끊겨 나가자, 트리옥시는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받아라! 벌레 같은 녀석들!"
솟구쳐 올라가 뱀파이어는 바닥을 향해 반짝이는 가루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흡사, 강력한 독을 가진 몬스터들의 행동과 유사했다.
'설마, 변형 뱀파이어?'
마음 한구석에 드는 생각이었지만, 애써 부정을 해 왔다.
뱀파이어가 독이라니?
일시적인 효과라고만 생각했지만, 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뱀파이어 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때였다.
태욱의 머릿속에 번뜩하고 드는 생각이 있었다.
'만약 독을 주로 다루는 뱀파이어라면?'
분명 독에 대한 내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마구잡이로 독성을 뿜어내고 있다면?
분명 작용하는 패시브 스킬이 있을 것이다.
태욱은 그것을 노리고 스킬을 펼쳤다.
"초월적인 흉내 내기."
강하게 외친 그의 함성과 더불어 태욱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체질 변화 만불독침(萬不毒侵)을 습득했습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던 태욱의 호흡은 단번에 돌아왔다.
결국 태욱은 이 스킬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위험에 빠져 있던 것이다.
스킬을 얻는다고 해서 모든 상황에 대한 위로를 받을 수는 없었지만, 그 또한 엄청난 역할을 하게 됐다.
물속에서 물고기가 편안하게 호흡하듯, 진한 독무 속에서도 태욱은 숨을 쉬는 데 거침이 없었다.
"흐읍. 하아."
폐부 깊숙하게 들어오는 독소들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
'이게 만불독침의 힘인가?'
만불독침.
만 가지 독에 중독돼 그것을 극복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체질.
적어도 독으로 죽을 걱정은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기연이 여기서 발생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독을 연마해 온 것인가?'
이해되지 않는 공격력.
그리고 사용하는 독공.
어떻게 보면 다른 뱀파이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매개체다.
보통 뱀파이어들은 피를 매개체로 전투를 벌인다.
피의 제물이 많을수록, 신선하고 고귀로운 혈액을 흡수할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지금 상대하는 뱀파이어 역시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문뜩 들었다.
'피와, 독.'
같은 위치에서 움직인다면?
가장 좋은 것은 독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일시적으로 상대를 약하게 만들 수 있고, 승기를 거머쥘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용하지 못했다.
독성의 던전.
이곳은 어딜 가든 독을 재충전하기 너무나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어디서든 독을 충전할 수 있는데, 전투에 유리한 이점을 잡을 수 있는 지역이 전혀 없는 것이다.
태욱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아직 내성을 지니지 못한 은비를 제외하고 나머지 동료들은 피해 범위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자신들이 가진 내성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사적으로 느끼곤 밖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태욱의 시선은 오롯이 트리옥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가장 약한 사람은 바로 은비였다.
캡슐을 삼키고, 내성을 지니기 전.
가장 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뱀파이어의 공격을 받게 된다면?
피해가 극심한 정도를 벗어나, 잘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예의주시하던 뱀파이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이 녀석!"
포물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뱀파이어의 움직임이 일정했다.
'만약 저대로 이동한다면?'
태욱은 연장선을 마음으로 그렸다.
정확하게 그는 은비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이 눈에 선했다.
'안 돼!'
지금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상대를 노리는 것이다.
태욱은 황급하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광속의 질주."
"질풍."
"쾌속 이동."
태욱은 순발력, 이동속도를 올려 주는 스킬을 영창하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녀와의 거리는 단 50m
하지만, 그토록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30m.
20m.
10m.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나갔지만, 이미 출발한 트리옥시보다 먼저 은비에게 도착하기는 힘에 겨웠다.
'늦었나?'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었다.
만불독침을 얻고 움직임에 제약이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아직 부상의 여파는 남아 있었다.
정확하게 소수점까지 판단을 내릴 수 없도록 변수의 요인이 너무 많았다.
'비슷하거나, 아니면 조금 늦겠.......'
태욱은 지체하지 않고 은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번에 습득한 만불독침을 믿고 스스로 몸을 날린 것이다.
"마력의 보호."
"강체술."
과거로 돌아와 사냥에 적합한 스킬을 찾고 있을 때, 눈에 들어왔던 스킬들.
기억나는 대로 스킬을 외쳤다.
지금은 스킬의 위력이 아닌, 중첩에 모든 힘을 쏟아야 했다.
촤압.
뱀파이어의 날카로운 발톱이 태욱을 타고 사선으로 그어졌다.
"크어어억."
고통의 찬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스킬을 사용해 신체를 둘둘 감싸 보호하고 있음에도, 타격을 전혀 입지 않을 수는 없었다.
독성의 던전이라고 불리는 이곳의 파수꾼.
최소 레벨은 90대 이상으로 추정되는 몬스터의 공격을 아무런 피해 없이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커다란 고통과 함께, 놓칠 뻔한 정신을 간신이 붙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마음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안일한 판단이 내린 실수였다.
은비에게 독 내성을 가지게 하려고만 생각했지, 그 행동을 통해 그녀가 어떤 위험에 처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완벽한 준비란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능히 해쳐 나갈 수 있도록 해 놔야 되는 것이다.
태욱의 가벼운 생각이 그녀를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을 하는 도중, 태욱은 뭔가 과거와는 다른 기분에 사로잡혔다.
'뭐지? 뭐가 달라진 거지?'
분명 그는 같았고, 뱀파이어 트리옥시의 공격도 매서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가 입는 타격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공격에 있어 가장 주축이 되는 트리옥시의 독 성분이 만불독침의 능력으로 점점 해소되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자리를 이탈한다!"
태욱은 이 자리에서 이탈할 것을 명령했다.
주변에는 유파스 나무의 독기가 계속 머물고 있었고, 전투 중간 트리옥시가 뿌려 놓은 독성들도 아직 공기 중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렇게 많은 독성들 사이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제 살 깎아 먹는 일과 다름없었다.
적어도 이곳에서 벗어나, 독성이 낮은 곳으로 이동해 트리옥시의 움직임을 제안하고 이를 통해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는 것이 효율적인 전투라고 할 수 있었다.
"이탈! 이탈!"
목소리를 크게 외침과 동시에 태욱은 스킬을 영창했다.
"옭아매는 사슬."
트리옥시의 빠른 이동을 막아 내기 위해 발동한 스킬이었다.
그를 온전하게 묶어 둘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 있었다.
잠깐의 시간을 벌기 위한 기교에 불과했다.
촤르르르르륵.
바닥에서 튀어 오른 쇠사슬이 트리옥시를 향해 날아갔다.
휘릭.
휘리리릭.
뱀파이어는 날개를 이용해 수준급의 공중제비를 펼쳐 보였다.
교묘하게 파고드는 쇠사슬을 피해 내기 위해 적절한 움직임을 하면서도 왠지 모를 여유까지 느껴지곤 했다.
트리옥시와 거리를 벌릴 수 있었던 태욱은 재빨리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곳으로.'
유파스 나무에 다가서기 전 태욱이 동료들에게 인지시킨 곳이 있었다.
바로 영리의 회복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던 곳.
유일하게, 독성이 가장 적었던 그곳을 1차 집결지로 선정한 것이다.
이탈이라는 신호와 함께,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그곳으로 모이기로 사전에 입을 맞춰 놓은 것이다.
'쫒아올 테면 쫒아와라.'
태욱은 더욱 속도를 올렸다.
정확하게는 뱀파이어의 속도를 벗어날 수 있는 자신은 없었다.
분명 얼마 가지 못해 다시 꽁무니를 잡힐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
그것이 태욱이 원하는 것이다.
태욱은 지금 몰이사냥을 하는 탱커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진형이 망가졌을 때, 혹은 그곳을 이탈해 사냥을 해야 될 때,
뱀파이어에게 벗어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를 이끌고 움직이는 탱커의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전투 준비를 마친 곳으로 몬스터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적당하게 시간을 벌어야 되는데.'
태욱은 좌우로 달리며, 가까스로 트리옥시의 공격을 피해 냈다.
촤압.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 뱀파이어의 손톱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얼마 남지 않았어.'
먼 거리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뱀파이어의 공격을 피해 가며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기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갑작스럽게 측면에서 공격을 감행하는 경우도 있었고, 공중에서 찍어 누르기도 여러 번이었다.
저 멀리 약속된 장소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태욱은 더 이상 갈지 자로 뛰지 않고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