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8화
태욱은 의심의 눈초리로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있을 텐데.'
영리의 입에서 나온 초급 독 내성.
분명 정확하게 찾아온 것이 확실했다.
태욱도 이곳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했다.
그저 뜨내기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들었을 뿐이었다.
-독성의 던전 정중앙에 있는 유파스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독 내성을 가질 수 있다.
단편적인 정보였다.
그 정보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태욱의 스킬 덕분이었다.
신뢰를 하게 된 것은 바로 독 내성을 가진 헌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관심을 가지고 있던 태욱은 그의 스킬을 복사하면서 그의 말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말만 뻔지르르 하는 애송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태욱은 때때로 스킬을 이용하곤 했다.
'분명, 여기가 확실해.'
나무에 열려 있는 열매는 11개.
총 12개의 열매가 열려 있었으나, 급하게 영리에게 하나 먹였기에 11개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잠깐 자리를 비운 건가? 그렇다면 빨리.'
태욱은 다시 나무로 올라가 한 개의 열매를 더 따서 내려왔다.
일단 초급 내성이 생긴 영리를 제외하고 신체적 능력이 약한 지원에게 건넸다.
"지원, 네가 먼저 먹어."
"응? 나부터? 은비부터 먹어야 되는 거 아니야?"
지원은 자신보다 은비를 먼저 챙겼다.
독에 대한 불안감 때문은 아니었다.
혹시나 당장 급한 전투를 벌여야 될 때에,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한 것이다.
육체적인 능력을 비교적 적게 활용하는 그녀보다는 은비가 나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아니."
태욱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내성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은비는 조금 더 버틸 수 있었지만, 벌써 보랏빛으로 변해 가고 있는 그녀의 안색을 보고 있으면 우선순위는 지원이 맞았다.
"태욱의 말이 맞아, 너 벌써 안색이 변해 가고 있어."
유파스 나무 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절로 중독이 되는 현상을 막아 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급한 순서대로 태욱은 열매를 먹이고 있었다.
단번에 모든 팀원이 캡슐을 먹는 짓은 멍청한 일이다.
언제 파수꾼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팀원이 먹기보다는 한 명씩 차례대로 흡수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럼 알았어."
지원이 단숨에 입어 털어 넣으려는 찰나 태욱이 주의점을 이야기했다.
"절대, 입은 벌리면 안 돼. 어떤 고통이 오더라도 입은 벌리지 마."
"응, 알았어. 흐읍. 후우."
태욱에 말에 대답한 지원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단숨에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콰득.
얇은 막으로 이뤄져 있는 캡슐은 깨물자마자 순식간에 입안을 가득 채웠다.
"으윽."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양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탓에 밖으로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태욱이 조언이 적절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캡슐에 있는 것을 모두 흡수해야 생겨나기에 혹시나도 입을 벌려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빠져나가면 고통만 가미되고 중독이 될 뿐이지, 내성을 얻을 수 없었다.
열매의 개수를 따져 보니, 태욱은 먹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그는 먹지 않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는 스킬 흉내 내기를 통해 습득할 수 있기에 내성에 목이 마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 온 세 사람은 상황이 달랐다.
이곳 말고는 독 내성을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동료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스킬을 믿는 태욱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행동이었다.
지원은 영리보다 오랜 시간 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녀의 신체에 독이 침투한 시간이 적었기 때문이다.
영리는 코브라 릴리 때문에, 시간이 단축된 것이고 처음 독을 흡수한 지원은 그만큼 오래 걸렸다.
"후우, 후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지원의 얼굴은 상당히 상기돼 있었다.
체온이 올라가는 듯 연신 덥다는 듯이 손 부채질을 하며 자신의 상의를 쥐고 연신 앞뒤로 움직였다.
"하아."
약간은 야릇한 기분이 드는 소리를 내뿜자 태욱은 고개를 돌렸다.
'기분 이상하네.'
상기돼 있는 두 볼.
덥다는 듯이 앞뒤로 움직이는 손.
슬쩍슬쩍 비치는 속살.
만약 이곳이 사냥터가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면 엄청난 시선을 이끌었을지도 몰랐다.
"크음."
괜히 어색해진 태욱은 헛기침을 연신 해 댔다.
조용해진 분위기를 깨뜨린 것은 지원의 목소리였다.
"어? 진짜네?"
지원에게도 독 내성이 생긴 것이다.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은비도 독 내성을 만들기 위해 3번째 열매를 땄을 때, 유파스 나무의 주변은 어둡게 뒤바뀌었다.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가 이곳의 무서움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드디어 오는 건가?'
태욱은 파수꾼이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리지스턴스 캡슐을 채취하면서 뱀파이어가 눈치를 챈 것이다.
하나, 두 개를 땄을 때는 뱀파이어도 느끼지 못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많은 과실이 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3번째 열매를 따는 순간.
뱀파이어도 순간적으로 느끼곤 이곳으로 순식간에 날아온 것이다.
"네 이놈들! 뭐하는 짓이냐!"
저 멀리에서 뱀파이어가 날아오며 일갈(一喝)을 터뜨렸다.
팀원들은 모두 전투 준비를 취했다.
게틀링을 꺼내는 지원.
자신의 애병을 높게 치켜드는 은비.
그리고 소환수를 소환하는 영리까지 순식간에 전투 준비를 끝냈다.
다만 원거리에서 날아오는 뱀파이어 트리옥시의 속도가 조금 빨랐을 뿐이었다.
"꺄아아아악!"
강한 풍압에 의해 금방이라도 양발이 떨어질 것 같은 지원과 영리가 바닥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강력한 바람은 그녀들을 그 자리에 두지 않았다.
순식간에 공중으로 튀어 오르듯 날아가는 두 사람을 태욱과 은비가 가까스로 붙잡았다.
콰앙.
"개구리 빨판."
은비는 자신의 애병을 바닥에 꽂아 힘으로 버텼고, 태욱은 스킬을 이용해 강한 접지력을 만들었다.
"네 이놈들! 감히! 내 소중한 열매를!"
트리옥시는 굉장히 분노했다.
힘들게 키워 놓은 열매였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얼마나 참고 또 참았는가?
매일 매 시간 열매를 향해 손이 뻗어 간 숫자는 셀 수가 없었다.
참고 또 참아 극한의 맛을 느끼려고 할 때에, 저 인간들이 자신의 목적을 망쳤다는 것에 커다란 분노를 하고 있었다.
"파수꾼인가?"
태욱은 차가운 표정을 하며 물었다.
"네가 보기에 내가 파수꾼으로 보이나?"
트리옥시는 그런 그의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못했다고 시인해도 육신을 어떻게 나눌까 생각 중이었는데, 다짜고짜 하대를 하며 고작 파수꾼에 자신을 칭한다는 것 자체가 용서가 되지 않았다.
태욱 역시 강렬한 등장을 한 뱀파이어에 깜짝 놀랐다.
고작 이런 레지스턴스 캡슐을 뱀파이어가 지키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성(理性).
태욱은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이지적인 지능을 지니고 있지만, 지금은 대화로 풀어 나갈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리옥시는 달랐다.
"지금 손에 쥐어진 것을 내놓는다면 내가 정상참작을 해 줄 용의가......."
트리옥시는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 자신이 12개의 열매가 맺힌 것을 확인했는데,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은 고작 9개.
손에 쥔 것까지 합쳐도 10개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이미 2개의 열매를 먹어치우거나, 다른 곳에 챙겼다는 반증이었다.
"이런 육시랄 놈들!"
트리옥시에 조금은 남아 있던 이성이 끊어져 버렸다.
분노를 참지 못한 트리옥시는 은비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가가가강.
거대한 도끼와 손톱이 마주쳤을 뿐인데, 쇳덩이 긁는 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졌다.
"으윽."
신체적 능력이 가장 뛰어난 은비가 침음성을 터뜨렸다.
트리옥시가 강한 힘으로 은비를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대열을 정리하지 못한 채, 시작된 전투에서 태욱은 가장 먼저 트리옥시의 발목을 묶기로 결심했다.
"옭아매는 사슬!"
촤르르르르.
바닥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온 쇠사슬이 트리옥시의 발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트리옥시가 구속됐다고 판단한 태욱은 강하게 외쳤다.
"진영 재정비!"
태욱이 가장 최전방으로 나서며 지원은 원거리 공격, 은비는 근거리 공격, 그리고 영리는 서포터를 해 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각자 자리를 잡았다.
'생각보다 느리다?'
시간을 벌기 위해 사용한 스킬을 정면으로 맞아 버린 트리옥시를 보고 내린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승산은? 충분하다.'
태욱은 혼자서 전투를 벌여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나머지, 팀원들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날아간 캡슐은 은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먹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하는 태욱의 모습을 보고 은비는 아무렇지 않게 입안에 털어 넣었다.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어. 열매를 채취하고 그사이에 탈출한다.'
콰득.
콰드드득.
쇠사슬이 장력을 참지 못하고 찢어지기 시작했다.
순발력은 낮되 힘은 강력한 파워형 뱀파이어.
"네놈들이 감히!"
다시 한 번 앞으로 쏘아지려고 하는 트리옥시를 태욱이 막아섰다.
"에어 붐!"
"그레이트 쉴드."
강한 공기파로 자세를 무너뜨린 후 강력한 실드로 트리옥시의 공격을 막아 내려고 했다.
하지만, 태욱의 염원과는 다르게 마나로 만들어 낸 실드는 처참하게 부서졌다.
채재재쟁.
종이 찢기듯 부서지는 그레이트 실드에 재빨리 백스텝을 밟았다.
"크압."
재빨리 몸을 뺀다고 했지만, 기다란 트리옥시의 손톱의 사정거리를 벗어나지 못한 태욱이었다.
허공에 핏물이 뿌려지자 뒤에서 지켜보던 동료들의 목소리가 공터를 울렸다.
"꺄아악!"
"태욱!"
태욱은 손을 뻗어 동료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온통 트리옥시에게 고정돼 있었다.
'예측을 벗어나.'
섣부른 판단이 내린 미스였다.
고작 강한 힘만을 지니고 있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던 것이다.
닳고 닳은 정예 전투병이나 다름없었다.
순간적으로 무너진 신체 균형을 날개를 이용해 복원시키고 강력한 공격을 감행했다.
수준이 높아도 너무 높은 것이다.
'아직 내 육체는 따라가기 힘들어.'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곁에서 은비와 협동 공격을 하면 달라지겠지만, 혼자서 막아 내기는 힘에 부쳤다.
하지만, 이미 캡슐을 삼켜 버린 은비는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적어도 3분 이상은 혼자서 버텨 내야 했다.
트리옥시가 영리나 지원에게 관심을 갖기 전에 자신에게 시선을 쏠리게 만들어야 했다.
두근, 두근.
그때였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설마? 독?'
뱀파이어가 독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약한 수준의 독이라면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신체가 반응할 정도의 독을 사용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은 강한 신체를 가지고 전투를 벌이는 전투 종족이었다.
자신의 몸이 무기이며, 독을 이용하는 것을 치욕이라고 여기는 족속이었다.
그런 뱀파이어가 강력한 독을 사용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