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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빨로 지존 헌터-31화 (30/146)

# 31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6화

"빨리 이동해야 돼. 이대로라면."

태욱은 상태를 확인하고 즉시 이곳을 탈출할 것을 명령했다.

이미 릴리로부터 영양분이 조금씩 빨려 들어가는 상태를 넘어 한 번에 다량에 에너지를 뺏겨 버린 영리였다.

그녀를 이곳에 계속 방치한다면 죽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가능한 빨리 이 숲을 탈출해 그녀의 회복을 돕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탈출한다!"

태욱은 검을 휘둘러 릴리의 뿌리를 잘라 냈다.

파닥파닥.

공중에서 날뛰다 몸통을 잃어버린 뿌리는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지금껏 그는 뒤에서 다른 팀원들을 서포터하는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서포터의 역할이 아니었다.

어떤 장애물이라도 뚫어 낼 수 있는 강력한 창.

돌격대가 돼 길을 내야 했다.

역할 수행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자신뿐이었다.

"간다! 모두 뒤로 붙어!"

태욱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지원은 바로 뒤를 그리고 은비는 영리를 품에 안은 채 태욱의 뒤를 쫒아갔다.

태욱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촉수를 향해 팔을 뻗었다.

"트리플 블레이드!"

과거로 돌아와 거의 최초로 익힌 스킬이었다.

3개의 검신이 릴리의 뿌리를 난도질하듯 잘라 버렸다.

"더욱 빨리 움직인다. 딱 붙어서 따라와."

그의 발길에는 망설임 따위는 전혀 없었다.

장거리 마라톤을 하듯 물 흐르듯 움직이는 그의 행동에는 팀원들을 향해 날아오는 뿌리의 공격을 모두 잘라 내는 것까지 포함돼 있었다.

태욱을 향해 날아오던 뿌리가 목표에 닿지 못한 채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콰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지면에 있던 흙무더기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뿌옇게 가려진 먼지 구덩이 사이로 팀원 일체가 뛰어들었다.

코브라 릴리가 시야를 통해 적을 찾아내는 것은 아니었다.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생체 에너지를 통해 상대방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흔하게는 채취라고도 한다.

먼지 구덩이에 몸을 던진 이유는 흔적을 지우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지난다면 다시 나타나게끔 되지만, 잠깐의 시간 동안은 그 흔적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생각한 태욱의 행동이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팀원들은 유유히 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 * *

"으으욱."

목젖을 찌르는 메스꺼운 느낌에 영리는 위장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 냈다.

툭, 드드득.

입안에서는 하얀 액체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영리가 릴리의 몸통으로 들어가서 먹어 버린 릴리의 소화액 잔여물이었다.

"우웨에에엑."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하는 그녀의 등을 지원이 다가와 토닥이기 시작했다.

탁, 쓰윽.

탁, 쓰윽.

강하게 때리고 쓸어내리는 그녀의 행동에 힘을 얻었는지 더욱 심하게 영리는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웩, 우웩."

안타깝다는 표정을 한 채로 은비가 영리에게 물었다.

"이제 좀 괜찮아진 거야?"

영리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뭐, 뭐죠? 어떻게 된 거예요?"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듯이 묻는 영리의 말에 지원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고는 지원이 옆에 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 코브라 릴리에게 흡수당할 뻔했어."

"제, 제가요?"

다짜고짜 죽을 뻔했다고 하는 지원의 말에 영리는 화들짝 놀라며 말까지 더듬었다.

"우리를 쫒아오다가 놓친 것은 기억나?"

"아니요, 전혀."

영리는 자신이 팀원들과 떨어져 나갔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코브라 릴리의 향에 매료됐을 거야."

잠자코 있던 태욱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영리는 자신의 기억이 날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은비가 자신을 구해 주는 기분이 들었고, 뭔가 따뜻한 느낌을 풍겼다.

하지만, 눈을 뜬 지금은 전혀 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코브라 릴리에 현혹돼 망상을 했던 것이다.

영리가 몬스터에게 잡힌 것도, 그리고 공격을 당한 것도 사실이었다.

환상을 통해 자신이 잡히고, 릴리의 몸통으로 들어가는 충격을 다른 동료들이 구한 것이라 착각 아닌 착각을 해 버린 것이다.

몽롱한 정신 상태에 환상에 빠져 버렸던 기억을 현실로 착각해 버린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영리는 억지로 헛구역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체액을 삼켜 버렸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을 토해 내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우웩. 어어어어."

절로 몸속에서부터 깊은 탄성 소리가 흘러나왔다.

영리는 생각을 정리했다.

동료로부터 들은 정보에 따르면, 자신은 코브라 릴리의 공격에 당했다.

코브라 릴리의 향에 취해 환상을 본 것이고 그것이 동료들과 떨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눈앞에서 동료가 멀어진다면 당연히 어떤 행동이나 반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릴리의 덫에 걸려 버린 영리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향기가 만들어 낸 기억의 날조 덕분에, 동료들에게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탈출할 생각도 없이 편안하게 릴리에 몸을 맡긴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생각의 정리를 끝낸 영리는 고개 숙여 동료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건넸다.

"가, 감사합니다."

진심을 담아서 이야기하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았다.

지금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동료들이 아닌 그녀 자신이라는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영리가 부담을 갖지 않도록 모두 말을 줄이는 것이다.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던 중,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어 있는 풀 조각을 본 영리가 입을 열었다.

"근데, 이건?"

팔부터 시작해, 온몸에 붙어 있는 풀 조각들을 볼 수 있었다.

"그거, 태욱이 한 거야."

"네? 기사님이?"

영리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태욱을 바라봤다.

"그래, 태욱이 안전한 곳으로 탈출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행동이지."

처음에 안전지대로 오자마자, 태욱이 하는 행동을 보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을 맴돌며 뜯어 온 풀 잎사귀들로 영리의 피부를 닦아 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의 머릿속에는 독성을 막아 내는 데 있어 저런 해독법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독제독(以毒制毒).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

서로 상반되는 독약으로 독성을 줄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정확하게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독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더욱 큰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태욱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독성의 던전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여기저기 독풀이 자라나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피어난 독초들 중, 태욱이 고르고 골라 그녀의 피부에 붙여 준 것이다.

해독 작용에는 즙으로 만들어 먹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태욱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독의 효과를 줄일 수 있는 수준을 원하는 것이다.

아무리 강한 해독 작용을 한다고 해도 독은 독이었다.

신체의 부담이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행한 것이 바로 피부에 독초를 직접 붙이는 것이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독초들은 심장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덕지덕지 붙여 놨다.

지금 영리의 몸속에 있는 독성들은 새로 유입되는 독초들의 독을 막아 내기 위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만든 응급처치였다.

완전하게 해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그녀가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니 빨리 움직여야 한다."

태욱의 머릿속에는 그녀가 독 내성을 얻는 것 말고는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시간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고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점점 영리의 체력은 약해져 갈 것이 확실했다.

"영리, 움직일 수 있겠어?"

"네, 기사님."

영리의 상태를 최종 확인한 태욱은 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나무가 공터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허어업, 저렇게 큰 나무는 처음 보는데?"

"저게 나무야? 에이, 저게 무슨 나무야?"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지원과 은비는 질문을 쏟아 냈다.

하지만, 태욱은 아무런 대답 없이 계속해서 나무에게로 다가서고 있었다.

커다란 갓 모양을 하고 있는 나무.

사실 나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색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버섯이라고 해야 되나?

잎사귀는 버섯의 갓 모양을 하고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모두 가리고 있었다.

햇빛이 없다고 해도, 나무 밑동 주위에 아무런 식물이 자생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갓 모양을 하고 있는 꼭대기에서 뿜어내는 독성 덕분이었다.

넓은 평야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유파스 나무 주위에는 온통 검은 흙뿐이었다.

흙들이 모두 독성에 노출된 것이다.

유파스 나무는 갓 모양을 하고 있는 잎사귀에서 독가루들이 조금씩 흩뿌려진다.

멀리서 보기에는 반짝이는 물질이 흩뿌려지며 예쁜 모습을 보이지만 실상은 주위를 모두 죽여 버리는 강력한 독성을 지닌 무시무시한 가루였다.

오랜 시간 자리하는 유파스 나무일수록 주위에 아무런 식물도, 심지어 독충들도 살지 못한다.

혼자서 땅속에 있는 모든 양분을 빨아들이며 커다랗게 성장을 하는 유파스 나무를 태욱은 찾아온 것이다.

'역시나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군.'

독성의 던전 정중앙.

모든 곳이 이곳으로부터 시작되는, 던전의 중앙에 자리매김 하고 있는 이 나무를 찾아온 것이다.

그때였다.

"정지."

태욱이 손을 뻗어 더 이상 접근을 막았다.

"왜, 왜?"

"뭔데요?"

"무슨 일이야?"

세 명이 각자 태욱에게 물었다.

"더 이상 접근하면 위험하다."

은비와 지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영리의 표정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벌써, 그 결과가 나오는 것 같은데?"

영리를 보면서 말하는 태욱을 본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영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과 다름없는 상태로 움직이고 있던 영리가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고 있었다.

"일단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금방 갔다가 올게."

태욱은 자신의 할 말만 하고는 휘리릭 하고 나무를 향해 뛰었다.

'시간이 없어.'

아직 꽤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줄 알았지만, 급격하게 악화되는 영리의 상태를 보니 여유가 사라졌다.

태욱의 눈은 나뭇가지를 꼼꼼히 살피며 양팔과 두 다리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찾, 았, 다."

숨을 참고 있었지만, 찾았다는 기쁨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비쳤다.

탐스럽게 익은 두세 개의 열매가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열매의 이름은 바로 리지스턴스 캡슐(Resistance capsule).

저항력을 높여 주는 열매이지만, 과즙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열매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성분들이 독 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물질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사실은 아주 먼 미래에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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