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5화
"살려 줘!"
영리가 소리치면 소리칠수록 주변에 있는 코브라 릴리는 더 많아질 뿐이었다.
후웅, 후웅.
커다란 도끼를 대각선으로 교차해 휘두르던 은비가 진자 운동의 힘을 그대로 이어 받아 도끼를 허공으로 던져 버렸다.
후우우웅.
커다란 나선을 그려 가며 날아간 도끼는 정확하게 코브라 릴리의 뿌리를 댕강하고 잘라 냈다.
자신의 애병(愛兵)을 아랑곳하지 않고 날려 보낸 은비는 지체할 틈도 없이 영리를 향해 뛰었다.
높은 곳까지 끌려 올라갔기 때문에 떨어지는 데 꽤나 시간이 걸려 안전하게 은비의 품으로 영리는 떨어질 수 있었다.
"언니?"
폭신한 품에 안긴 채 영리는 동그란 눈을 하고서는 은비를 바라봤다.
분명 머릿속은 딱딱한 바닥과 맞닿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영리는 아무런 내색 없이 자신을 받아 준 은비를 의아했다.
'무슨 생각으로?'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질문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점점 굳어지는 은비의 표정을 보고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자 너무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겨났다.
뿌옇게 내려앉은 안개 뒤로 희미한 그림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 둘, 셋.......'
차분히 세어 갈수록 영리의 표정은 더욱 굳어지고 있었다.
'너무 많아.'
어렴풋이 보이는 덩어리들이 벌써 대충 눈으로만 10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 들자 영리는 딱딱한 각목이 되듯 온몸이 굳어지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겁에 질린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영리의 어깨를 은비가 다독였다.
"괜찮아. 괜찮아. 다 해결할 수 있어."
공포심을 완화시켜 주는 동료들의 믿음직한 목소리에 영리는 조금씩 마음이 놓여 갔다.
chapter 2
"조심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은비는 점점 주위의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보고 팀원들이 경계심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읊조렸다.
소리 높여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고요한 숲 내부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팀원들에게 전달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응, 알았어."
하지만 돌아오는 목소리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이동을 하기 위해 바삐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약 1km를 이동해서야 누군가 하나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영리?"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도 그녀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어? 대답해."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영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은비, 지원, 태욱, 영리순으로 대형을 맞춰 이동을 했기 때문에, 가장 뒤에 있는 영리를 확인하는 빈도수가 조금씩 줄었다.
가뜩이나 정면을 조금씩 가리고 있는 습지 안개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뒤쪽까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어디서?"
태욱과 은비는 각자 영리를 놓쳤을 것이라 예상되는 곳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 길을 잃는다면 다시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이곳은 일반적인 숲과 다르다.
독 몬스터가 상주하고 있는 아주 위험한 곳이다.
이곳에 며칠이고, 아니 몇 시간이라도 낙오가 돼 버린다면 그 사람의 생존은 보장받을 수가 없다.
숲이라는 공간이 만들어 내는 효과였다.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으며 보장받지도 못했다.
다만 사라진 영리가 안전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제발 어디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이곳에서는 시간이 금이다.
오래 지체되면 될수록 피해가 중첩될 수밖에 없다.
만약 길을 잃고 영리가 헤매고 있다면?
찾는 데 무척이나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면?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찾아야 했다.
태욱은 아무 말 없이 제자리에서 돌아 뒤를 향해 뛰쳐나갔다.
갑작스럽게 행동하는 태욱의 몸짓을 아무도 모르지 않았다.
재빨리 영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나, 나도 같이."
약간의 틈을 두고 은비 역시 태욱의 뒤를 쫒았다.
마치 자신의 책임인 것 같아 무거운 마음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내가 더 빨리 눈치를 챘다면.'
자신의 탓으로 모든 잘못을 돌리는 은비였다.
조금만 더,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떠나 동료를 챙기고 있었다면?
열 걸음당 한 번씩 뒤를 돌아봤다면?
전투력이 가장 약한 영리를 자신의 등 뒤에서 데리고 다녔다면?
수없이 많은 생각이 흘러갔지만,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태욱의 뒤를 쫒아 재빨리 그녀를 찾는 것. 그리고 안전하게 그녀를 이 숲에서 탈출시켰을 때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재빨리 수습에 나서기 위해 은비도 태욱의 뒤를 쫒아 뛰어나갔다.
두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지원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또르르.
또르르르.
어디에 집중하지 못한 채 연신 돌아가는 눈동자는 그녀의 근심을 말해 주고 있었다.
어찌 됐던 팀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한쪽은 동료를 쫒아오지 못한 팀.
또 다른 한쪽은 동료를 찾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지금 제자리에서 자리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따라나설 것인가?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 상태여서 지원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무턱대고 찾아 나서면 어떡해.'
계획을 세우고 찾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라 판단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동료들이 모두 영리를 찾아 나서는 모습을 보고는 제자리에 석상이 된 듯이 멈춰 버린 것이다.
"다들 그렇게 가 버리면."
결국 투덜거리며 두 사람의 뒤를 쫒아 안개 깊숙한 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탓탓탓.
조용히 이동하는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거의 전속력으로 뛰어나갔다.
그들의 눈은 오직 영리의 흔적을 찾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저 나무는.......'
이동을 하면서 간이 목적지로 선정을 해 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숲에서 쉽게 방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주변과 다른 하나의 목표를 선정하고 그곳을 향해 이동을 한다.
그리고 다시 방향을 정하는 것이 헌터들의 생존 방법이었다.
기억을 거슬러 지금까지 이동을 해 온 곳을 역추적하면서 동료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여기도 없어."
"그렇다면?"
태욱과 은비가 서로 눈을 마주 봤다.
두 사람이 공통으로 하나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보였다.
"아카시아 공터."
"공터."
동시에 말을 내뱉는 두 사람.
"역시 거기뿐인 것 같은데."
은비의 말에 태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의견에 동조를 한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두 사람의 뒤를 쫒아온 지원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가, 같이 좀."
이마에 송골이 맺혀 있는 땀방울은 얼마나 그녀가 힘들게 쫒아왔는지를 알려 주고 있었다.
신체적 능력이 부족한 그녀인데,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태욱과 은비에게 이 정도 거리를 뛰어온 것은 단순한 준비운동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지원은 전혀 달랐다.
넘어 갈 듯한 숨을 헐떡이며 두 사람의 옷깃을 강하게 여미는 지원의 손아귀 힘이 간절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나 또한 두 사람 놓칠지 몰라."
은비와 태욱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또 이렇게 흩어질 뻔했다.'
동료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빠르게 움직였지만, 그 행동이 또 다른 실수를 불러 올 뻔한 것이었다.
"같이 이동한다."
은비와 태욱은 이동속도를 늦추면서 지원이 따라오기 수월한 속도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공터가 있으니, 급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같이 안전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태욱의 머릿속에는 선명하게 이동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저기 나무를 지나왔고.'
얼마 또 가지 않아 익숙한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넓은 공터.
넓은 곳이고 단번에 포위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태욱은 재빨리 이곳을 통과했다.
'어쩌면 이곳에서 낙오했을지 몰라.'
그의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음습한 기운이 풍기지 않았다.
깨끗한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찌르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코를 틀어막기 바빴다.
악취가 틀어막은 코끝을 타고 전해질 정도로 강력했다.
숨을 얕게 쉬면서도 태욱의 눈은 거침없이 주위를 살폈다.
혹시나 남겨진 흔적이 있지 않을까?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통했는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영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붉은 팔찌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 설마?"
태욱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밑동과 연결돼 있는 몬스터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었다.
"저기."
태욱이 손을 뻗어 가리키는 곳에는 뭔가 어색한 모양을 한 커다란 코브라 릴리가 있었다.
볼록한 배를 하고 연신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것이 막 먹잇감을 삼켜 낸 듯했다.
놓쳤던 영리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이 자식아!"
고성을 외치며 태욱이 달려들었다.
그의 행동에는 일말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혹시 자신의 검에 동료가 다칠 것이라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지 칼을 뻗는 그의 팔은 거침이 없었다.
서걱.
태욱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는 릴리의 몸통 아랫부분을 잘라 냈다.
촤아아아.
털썩.
릴리의 몸통은 하얀색 액체가 둘러싸고 있었다.
그 정체는 바로 소화액이었다.
코브라 릴리의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따로 먹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의 에너지 전체를 흡수하는 것이다.
코브라 릴리 숲에서 잃어버린 시체를 다시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먹잇감을 통째로 몸속에서 녹여 버리는 것.
태욱과 은비의 빠른 행동으로 영리를 구해 낼 수 있었다.
몸통이 잘리자 릴리는 거친 비명을 내질렀다.
"꾸웨에에엑!"
아주 듣기 싫은 소음이 고막을 찔러 들어왔다.
그러곤 연신 자신의 뿌리를 바닥으로 내리찍으며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태욱은 곁으로 다가온 은비를 확인하자마자 바닥에 뉘어져 있는 영리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든든한 아군.
경계를 세울 수 있는 그녀의 등장은 응급처치에 온전한 정신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손가락으로 영리의 눈꺼풀을 벌려 두 눈의 상태를 확인했다.
'동공이 풀려 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릴리의 몸통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가슴은?'
눈을 돌려 흉부 쪽으로 향하자 조금씩 올라왔다 내려가는 그녀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호흡도 얕아.'
보통의 상태에서는 꽤나 높이 가슴이 올라온다.
호흡을 하면서 폐부에 깊은 숨을 들이마시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리의 상태는 아주 얕고 천천히 흉부가 움직였다.
신체는 항상 뇌를 지키려고 한다.
모든 근육이 움직일 때는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 가운데는 산소가 포함된다.
몸에 저장돼 있는 영양분과 더불어 산소가 결합되면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채내의 산소량이 극히 줄어든다면?
처음에는 호흡을 크게 자주 한다.
최대한 주변에 있는 공기를 들이마시기 위해서다.
몸의 상태를 안전하게 바꾸기 위한 변화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면?
그렇다면 뇌를 살리기 위해 최대한 다른 에너지 소모를 줄이게 된다.
바로 지금 영리의 상태가 돼 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