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4화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은비의 눈동자는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한 채, 사방을 맴돌았다.
그러곤 쓰러지기 직전의 자신의 행동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참, 그랬지.'
호넷 퀸의 공격을 몸으로 막아 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어떤 감정으로 지원의 앞을 막아섰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하고 움직인 것보다 먼저, 몸이 반응한 것이다.
"언니, 괜찮아요?"
영리가 저 멀리서 은비의 기척을 눈치채고 다가와 물었다.
"멀쩡하지."
영리의 목소리에 은비는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다.
약간은 부끄러운 듯한 행동을 하고 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장군 같은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은비의 입장에서는 지금이 편했다.
갑자기 걱정을 하는 지원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을 뿐더러, 기절하기 전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영리의 모습이 더 편하게 다가왔다.
"걱정했잖아!"
소리를 버럭 지르며 은비를 향해 지원이 달려들었다.
와락.
커다란 체구를 가지고 있는 은비에게 안긴 지원의 모습은 마치 연인과 같았다.
마치 보지 못할 것 같았던 사람을 극적으로 만난 듯한 모습을 보이는 지원의 행동에 은비는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왜, 내 앞에 나서서 그랬어."
조용하게 읊조리는 지원의 음성이 은비의 귓가를 맴돌았다.
진심으로 은비를 걱정한 지원의 마음이 절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진심이었나?'
티격태격하며 서로 간의 간격이 벌어져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마치 오랜 친구가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와 같은 아우라가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다.
은비는 자신도 모르게 슬쩍 미소가 지었다.
무언가 묘한 기분이 든 탓이었다.
"언니이~"
영리 역시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와 서로를 안았다.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어 댔다.
'아니, 내가 왜?'
아차, 자신이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하자마자, 그녀의 표정은 다시 얼음같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세 사람이 서로를 챙기고 있는 사이 태욱은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탁탁.
양손을 교차하며 손바닥을 털어 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이제 출발해도 되겠지?"
그렇다.
이들의 목적지는 호넷 퀸이 아니었다.
전투를 벌이며 생겨난 돌발 상황에 시간적 변동이 생겼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일정을 뒤바꿀 필요는 전혀 없었다.
완전히 계획이 뒤틀린 것도 아니었고, 충분히 회복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벌써? 아직 회복이 다 된 건지 확인조차 되지 않았잖아."
딴에는 급하게 출발한다고 생각했던 지원은 태욱에게 이야기했지만, 태욱은 아랑곳하지 않고 은비를 가리킬 뿐이었다.
그저 손짓의 방향을 따라 움직였을 때,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움직이는 은비를 보고는 말문이 턱하고 막힌 것이다.
"출발 안 해?"
오히려 당당하게 출발 안 하냐고 물어보는 그녀의 모습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 절벽과도 같았던 외길의 모습은 사라지고 넓은 공터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를 뚫고 걷고 또 걸었다.
팔에는 조금씩 촉촉한 기운이 느껴지고, 깊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조금씩 쾌쾌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기 시작했다.
'여기는?'
태욱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몇몇의 몬스터들이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 내는 독을 힘으로 사용하는 몬스터들의 소굴.
수많은 몬스터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대다수의 몬스터들이 이내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습하고 쾌쾌한 냄새가 있는 곳.
지금 접근하고 있는 지역에 있을 만한 몬스터가 많지는 않았다.
'슬라임인가? 아니면 코브라 릴리?'
태욱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두 종류의 몬스터.
일정한 물방울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적을 자신의 신체로 빨아들여 조금씩 녹여 영양분을 흡수하는 슬라임.
그리고 외형적인 모습이 흡사 코브라와 같다며 이름이 붙여진 코브라 릴리.
커다란 식물형 몬스터로서 이동속도가 상당히 빠른 축에 속했다.
더구나, 뿌리와 넝쿨을 손과 발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몬스터였다.
일반적으로 코브라 릴리를 만난다면 뼈도 못 추린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들의 공격 수법은 간단했다.
넝쿨과 뿌리가 순식간에 쏘아져 나와 목표물을 감싼다.
피하지 못하고 붙잡힌다면 넝쿨이 온몸을 조여 몸을 으스러뜨린 뒤 천천히 양분을 흡수한다. 괴랄한 식물 몬스터라고 할 수 있었다.
태욱은 주위를 살폈다.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어.'
지금 당장 보이는 정보로서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었다.
그저 피부로 느껴지는 습한 기운과 퀴퀴한 냄새가 대략 여기 있는 몬스터를 예상하게 만들 뿐이었다.
아직까지는 정확하게 판단을 할 수 없었지만, 대략 두 가지 몬스터로 추려지자 태욱은 제자리에 멈췄다.
"정지."
손까지 뻗어 제자리에 멈추자 일행들은 태욱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두 몬스터의 비슷한 점이라면 먹잇감을 찾는 데 가장 크게 사용되는 것이 채취라고 할 수 있었다.
코브라 릴리와 슬라임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분자를 통해 먹잇감을 찾아다닌다.
썩은 식물이나 동물에서 풍겨져 나오는 채취.
채취가 담긴 분자가 많은 곳이 곧 영양분이 풍족한 곳으로 여기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면 충분히 피해 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아직까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태욱의 지식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빠른 이동? 사냥?'
태욱의 머릿속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많은 경험을 위한다면 이곳에서 사냥을 하는 것이 맞았다.
조금씩 경험을 쌓아 나가면서 성장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전투를 해야 한다.
전투를 벌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호흡은 늘어나게 돼 있다.
격한 움직임. 근육의 끊임없는 수축과 팽창을 통해 몸에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때 생성된 수많은 분자가 호흡을 통해 공기 중으로 날아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투를 벌이는 곳이 절로 영양분이 많은 것으로 판단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전투력이 좋다는 태욱과 은비도 전투를 하면서 숨을 쉬지 않는 방법은 없었다.
해결책이라면 숨을 최대한 적게 쉬는 것인데 그것도 쉽지만은 않다.
한 호흡에 한 마리를 처리한다고 해도, 움직임이 있는 이상 계속 호흡할 수밖에 없다.
한두 마리의 전투가 끝이 아니라, 시작인 셈이었다.
전투는 또 다른 전투를 낳고, 계속해서 발전돼 나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한 곳에 머물며 전투를 벌이는 것은 더 많은 몬스터를 불러들이고, 결국 빠져나갈 수 없는 늪이 생성되게 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의 반복이었다.
태욱의 뒤에는 그만을 바라보는 3명의 동료가 있었다.
아직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는 그를 지켜보는 동료들의 시선을 맞췄다.
'은비.'
'지원.'
'영리.'
누구 하나 눈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채 태욱만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자신에 차 있어.'
자신감?
물론 없는 것보다는 좋았다.
도를 넘은 자신감은 아닐까?
할 수 있는 정도인지를 파악해 내는 것이 태욱의 역할이었다.
'일단 몬스터를 파악한다.'
태욱은 두 가지 계획을 세웠다.
머릿속으로 상상되는 두 몬스터 중에 어떤 몬스터가 출현하느냐에 따라 전투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이동하지."
태욱의 말과 함께,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저벅. 저벅.
고요한 가운데,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울창한 숲 내부를 울렸다.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영리의 어깨는 잔뜩 움츠러든 채, 긴장감이 가득 서려 있었다.
"기, 기사님."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든 영리는 태욱을 불렀다.
하지만, 태욱은 손가락을 자신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쉿.'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영리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헙."
서로 교차한 양손으로 얼마나 강하게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는지, 곧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졌다.
영리의 모습을 지켜본 은비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주물렀다.
"그렇게 막지 않아도 돼."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영리를 진정시키는 은비였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지금 영리의 상태에서는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는 말 한마디가 더 좋아 보였다.
잔득 움츠린 어깨.
금방이라도 큰 숨이라도 내쉴 것 같은 표정.
그리고 버둥거리는 두 다리.
종합적인 상황 아래 내려진 은비의 판단이었다.
"이제 좀 괜찮아?"
은비의 질문의 영리는 두 볼이 붉어졌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하지만, 끊임없이 걷고 또 걸어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곳을 맴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혹시 한 곳을 맴돌고 있는 것을 아닐까 걱정하던 영리는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어디가 이상한 거 같지 않아요? 계속해서 저 나무가 보이는 것 같은데."
그녀의 말에 이상하다는 태욱과 은비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괜찮은데?"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전혀 다른데?"
두 사람의 말이라면 껌뻑 죽어 넘어가는 영리였기 때문에 더 이상 반기를 들지 않고 그저 두 사람의 뒤를 쫒아 걷고 또 걸었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가던 영리는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조금씩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
그리고 항상 자신의 곁에 머물고 있던 소환수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됐을 때.
'뭔가 잘못됐다.'
늦어도 너무 늦게 알아채 버린 자신의 상태.
영리가 손을 뻗어 휴식을 취하려고 하는 찰나.
쿠콰아앙.
땅이 흔들리면서 조금씩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4명이서 같이 딛고 서 있던 장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개미지옥과 같은 깊은 웅덩이만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꺄아아악."
갑자기 공중에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은 영리는 절로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개인의 힘으로는 가장 약한 그녀에게 단숨에 공격이 들어간 것이다.
가장 약해져 있는 사냥감을 공격해 들어가는 것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바닥을 뚫고 올라온 뿌리가 그녀의 발목을 옥죔과 동시에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살려 줘!"
전신에 있는 에너지를 조금씩 흡수해 나가는 코브라 릴리의 특성상 소환수들이 제 힘을 발휘하기 힘이 들었다.
코브라릴리가 흡수하는 힘은 영리의 소환능력을 상회했다.
만약 소환능력의 힘이 릴리의 흡수하는 힘을 넘어섰다면 이렇게 그녀가 발목을 잡힌 채로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약한 그녀를 정확하게 파고든 것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영리는 소리를 더욱 내질렀다.
"꺄아아아악!"
영리에게 패닉이 온 것이다.
분명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태욱으로부터 전달받은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소리를 내지 말 것.
최대한 숨을 적게 쉬려고 노력할 것.
강조하고 또 강조했지만, 위급한 상황에서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저 자신이 위협에 처해 있다는 사실만을 직시할 뿐이었다.
영리는 갑작스럽게 다가온 공포에 벌벌 떨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