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회귀빨로 지존 헌터
- 2권 1화
chapter 1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은비는 투덜대는 입을 멈출지 몰랐다.
"하아, 진짜 내가 그런 말만 안 했어도."
자신이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올라올 일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욱은 그 모습에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 출발할 때는 반응이라도 보였지만, 벌써 그 이야기를 5번도 넘게 하고 있으니, 저절로 내성이 생겨 버린 것이다.
"저기 보이지?"
"어디? 저기 높은 건물?"
태욱이 손끝으로 가리키는 건물을 은비가 집었다.
"응. 그래, 거기. 앞으로 니가 살 곳."
"뭐? 내가 살 곳이라고?"
번듯하고 높은 건물 어딘가에 자신이 살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의외의 반응을 보이는 은비였다.
"일단은 영입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도끼를 던진 거에 대한 책임은 지어야겠지?"
태욱은 심술궂은 표정으로 은비에게 이야기했다.
솔직히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동안 옆에서 재잘대던 그녀의 행동에 대한 소심한 복수도 담겨 있었다.
"뭐, 그거 때문에 내가 부하가 된 거 아닌가? 하아 정말 여자를 모르시네."
"모르긴 뭘 몰라. 저기 보이는 건물 702호가 네가 지낼 곳이니까,일단 거기 가 있어."
태욱이 급하게 은비를 내려 주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지원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디쯤에 왔어요?
"지금 숙소 앞이야. 왜?"
-찾았어요.
"찾긴 뭘 찾아?"
태욱은 뜬금없이 찾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지원에게 되물었다.
그러더니, 이내 한 명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직 모이지 않은 최종 생존자.
한국에서 나온 5명의 인물.
흉내술사 강태욱.
마도 공학자 김지원.
소환 여제 이영리.
피의 광전사 전은비.
그리고 마지막 금강철인(金剛鐵人)을 찾았다.
태욱은 지원에게 단숨에 달려왔다.
"정말 찾은 거야?"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그냥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찾아낼 수 있던 그녀의 능력에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응. 찾았지."
태욱과 지원이 찾고 있는 인물은 바로 금강철인이었다.
세계 18명의 강자에 들어간 강한 헌터.
한국을 대표해서 최후의 전쟁까지 살아남았던 사람들이다.
그 완성까지 단 한 명밖에 남지 않았고, 그 사람의 포지션은 다름 아닌 탱커였다.
현재 파티에 없는 딱 중요한 위치.
하지만 이 사람의 특징은 바로 어마 무시한 방어력이다.
공격력이 강하다고 하는 광전사와 공학자, 마지막 소환사까지 모두 힘을 합쳐 공격해도 금강철인의 방어력을 뚫기에는 힘이 들 터였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바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공격력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포섭은 어떻게 돼 가고 있지?"
태욱은 다급한 마음에 그녀를 독촉했다.
"아직 시간이 필요해, 그의 위치를 알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빠른 시간이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태욱은 인정했다.
정확하게 이름도 알지 못한 채, 이명만 알고 있었으니 찾기란 무척이나 힘이 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그 이명으로 불리지도 않을 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지?"
한국에서 모을 수 있는 최강자는 거의 다 모였다.
그렇다면 진행 방향에 대해 모색해야 한다.
"일단, 지금 한국의 랭커들을 포섭할 생각이야."
"한국 랭커? 헌터들 말하는 거지?"
"물론이야."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최강 무기는 되지 못하더라도 전투에서 꼭 필요한 개인 화기 정도의 화력, 아니 제일 작은 포병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 헌터들을 버리기는 너무 아쉬웠다.
패 하나라도 더 쥐고 있는 것이 상대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패를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최후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가 최강자이기는 하지만, 그들도 어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전투를 수행하고 승리를 가져다준 작은 전투부대들도 있을 것이다.
지속적이고 오랜 전투를 통해 죽어 간 이들 역시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
그들을 포섭하고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 역시 미래를 대비하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태욱은 지원에게 세세하게 설명을 듣자, 뭔가 놓쳤던 것을 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군. 거기까지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부분까지 케어를 해 주는 지원을 보고 태욱은 감탄했다.
'그래, 맡길 수 있는 부분은 맡겨야 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을 해야 돼.'
"머리를 쓰는 일은 내 역할이니까,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언제든지 실행해야지."
지원 역시 있는 그대로 인정을 했다.
태욱이 말을 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판단을 내리고 결정하는 데 무척이나 오래 걸렸을 테니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일단 세력 확장 쪽은 어떻게 됐어?"
"준비는 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그렇군, 인공지능은?"
태욱의 질문에 지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낮은 레벨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역시 아직은 무리인가?"
"일단 레벨 업이 필요해, 도와줄 수 있어?"
"어차피 손발을 맞춰야 되는 거 아닌가?"
"응?"
태욱의 나지막한 말에 지원이 되물었다.
"어차피 완성체에 가까운 우리 파티 아니야?"
"아직 탱커는 없어, 꽤 시간이 걸릴 거라고."
"임시방편으로 쓸 만한 녀석은 충분히 있잖아?"
태욱은 씨익 웃었다.
만능과 다를 바 없는 자신이 포함된 파티.
한 포지션이 자리를 비우더라도 능히 그 임무를 수행해 낼 수 있었다.
'4인 파티라, 진짜 오랜만인걸?'
태욱은 간만에 느끼는 파티 사냥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 * *
동그란 테이블에 네 방위로 각자의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피의 광전사 은비, 소환 여제 영리, 마도 공학자 지원 그리고 태욱까지. 네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이곳으로 끌려온 은비는 표정이 과히 좋지 않았다.
자신이 왜 이곳에서 이런 애송이들과 이야기를 해야 되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은비는 건들면 물어 버린다는 사나운 표정을 한 채로,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이 지속되는 가운데 그 적막을 깨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미묘하게 셋 다 여자네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는 영리.
딱딱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내기 위해 대화의 화두를 던진 것이다.
"그러네? 일부로 이렇게 만든 거 아니야?"
일부러 여자로만 구성된 파티를 만든 것 아니냐는 물음에 단호하게 태욱이 대답했다.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지. 여기 모인 사람들의 능력만 보고 모집한 거니까."
"장난은 장난으로 받아야지, 저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어쩌라는 거야."
툴툴거리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지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잘 봐. 우리의 포지션은......."
태욱은 일일이 각자의 임무를 설명했다.
소환사는 소환수를 이용한 서브 탱커. 간혹 가다 튀어 나가는 어그로 관리.
공학자는 라이트닝 게틀링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 및 서포터.
광전사는 볼 것도 없이 딜러.
그리고 태욱의 위치는 정해지지 않았다.
부족한 곳에 시시각각 투입되는 그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톱니바퀴 굴러가듯이 서로의 톱니가 정확하게 맞물리거나, 부드럽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윤활제가 필요했다.
태욱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역할을 자처한 셈이었다.
그 말고는 모든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각자 잘 부탁한다."
"네."
"알았어."
"오케이!"
각자 다른 스타일로 대답했다.
태욱이 이렇게 각자의 역할을 나누고 던전에 출정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낮은 레벨의 던전에서는 압도적인 무력을 이용해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부터 다닐 던전은 차원이 달랐다.
"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나머지 공격대 인원들이 위험에 빠진다."
"그래도, 버스기사님이 도와주시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태욱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는 영리가 물었지만, 태욱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무리,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낮은 레벨의 던전도 아니고 무려 70레벨 이상의 던전."
고속의 레벨 업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레벨 업을 위해서만 고레벨 던전을 사냥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이유가 또 하나 있지."
어차피 모든 계획은 지원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뭔데?"
날카로운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원은 은비의 물음에 답했다.
"독 내성의 열매."
"뭐? 독 내성?"
"그런 게 있어요?"
갑자기 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지원도 깜짝 놀라 대화에 참가했다.
"응 있어. 먹으면 독 내성이 생기는 열매."
"아니, 그런 게 있더라도 왜 먹는데? 혹시 독을 먹는 건 아니겠지?"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결국 내성이 생긴다는 것은 같은 종류의 것을 먹어야 된다는 것.
독 내성이 생기려면?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정도의 독을 지속적으로 먹어야 한다.
고통 없이 그저 먹는 것으로만 내성이 생길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거예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왜? 내가 독에 대한 내성을 가져야 하는데? 솔직히 독에 당하지 않으면 그만 아니야? 해독제만 잘 챙기고 다녀도 되는 거고."
은비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고는 지원에게 따졌다.
그녀는 태욱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함께할 뿐이다. 지원의 의견을 들어 줄 이유는 없었다.
태욱과 지원은 별개로 놓고 보는 것이다.
"그만하는 건, 어때요? 우리 다 같이 하는 거 아닌가요?"
은비와 지원 사이에서 심각해지는 분위기를 억지로 살리기 위해 영리가 입을 열었다.
"넌 조용히 해."
두 사람을 말리기 위해 가운데 끼어든 영리를 보고 은비가 제지했다.
은비에게 있어서 수용할 의견을 내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태욱뿐이었다.
"그만하지? 이러자고 널 데려온 건 아니니까."
결국 태욱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는지 중재에 나섰다.
아직 서로 얼굴을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의견 충돌은 당연한 것이다.
서로가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 않도록 큰 충돌만 막아도 시간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만들어 줄 것이다.
"다시 한 번 설명해 줄게. 독에 대한 저항력은 앞으로 우리에게 필수야."
"필수라니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지원에게 영리가 물었다.
모든 계획을 알고 있는 지원과 그렇지 않은 두 사람.
납득이 갈 수 있는 설명을 해야 하지만, 당장 모든 설명을 할 수는 없었다.
천천히 시간을 내서 조금씩 두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 태욱과 지원이 나설 것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갈 소굴은 [독물의 소굴]이야."
"무슨 던전인데, 이렇게 거창하게 회의까지 하는 거야? 그냥 쓸어버리면 그만 아니야?"
은비는 자신의 도끼를 공중에 휘둘렀다.
무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아니, 혼자서는 불가."
태욱이 그녀를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