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회귀빨로 지존 헌터
- 1권 20화
"크워어어어어!"
미노타우르스의 함성과 함께, 뿔 끝을 향했던 전류가 되돌아왔다.
슈우우우우웅.
날아오는 전류를 보는 순간, 지원은 총구를 반사적으로 내려 바닥으로 마구 쏘아 댔다.
방금 전 현상을 보고 반사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강한 전류는 또 다른 전류와 뒤섞이기를 좋아한다는 것.
지원은 단순하게 그것을 노린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냥 앉아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쾅!
자신의 발 앞으로 엄청난 번개가 떨어졌다.
그녀의 예상대로 전류가 단번에 다른 방향으로 흐른 것이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곁으로 일시적인 검은 장벽이 세워졌다 사라졌다.
태욱이 소환해 놓은 타이타니악.
모든 전류를 한곳으로 모으지는 못했지만 대다수의 전류가 다른 방향으로 흘렀고, 일부 남겨진 전류가 그녀에게 쏜살같이 쏟아지는 것을 막아 낸 것이다.
일시적인 방어막을 만들어 낸 직후, 타이타니악은 그 힘을 거뒀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원은 자신이 살았다는 것에 안심했다.
"휴우, 살았다."
하지만 저 멀리서 태욱이 보내는 눈빛은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 튀어 나가며 경고까지 했었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 뿐이었다.
'안전, 안전하게.'
이제 지원의 행동은 안전이 최우선이 되면서 움직일 것이다.
그때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지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멀리서, 원격으로 사격을 한다면?'
지원이 사격을 하자, 반사적으로 날아온 공격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몸에 위협을 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상의 공격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기로 만들어진 공격에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지원의 공격은 목표를 향해 날아가다 어느 순간 방향을 잃고 헤매더니 다시 공격한 방향으로 날아왔던 것이다.
지원은 깊은 고심에 빠져들었다.
반면 태욱은 이번 지원의 돌발 행동 덕분에 깜짝 놀랐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대비하여 타이타니악을 놓고 왔지만, 생각보다 그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 빨리 도래했다.
'이래선 안 돼. 시선을 돌려야 돼.'
태욱은 자신이 타깃이 되어 정반대로 움직여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방금 전과 같은 상황에서 지원이 살아남게 될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현무."
크기가 작아진 현무는 태욱의 어깨 위에 앉았다.
[내 도움이 필요한가?]
"물론, 지금은 누구의 도움이라도 간절해."
[예기치 못한 전투, 그것을 모두 예상했을 리는 없고.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일단은 시선 집중."
은은한 얇은 막으로 태욱이 둘러싸였다.
현무의 주된 힘.
바로 방어와 회복이었다.
그 단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 능히 뚫어내는 이가 없다고 알려진 신수다.
신수를 어깨에 두고 상대의 시선을 끌어당긴다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메인 타깃.
단체 사냥에서는 탱커.
패배한 레이드에서는 희생양.
일시적으로 시간을 벌어 주는 타임 스위퍼.
여러 종류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들의 임무는 하나였다.
팀원이 어떠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주는 것.
그것이 다였다.
'시간을 번다고 해서 다는 아니지만, 일단 시간을.......'
정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버는 것이야말로 태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당장 지원은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고,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괜한 공격으로 방금 전에 위협을 맛보았으니, 더욱 몸을 사릴 것이 분명했다.
태욱은 미노타우르스 곁을 지나 멀리 뛰어나갔다.
"후웅."
손끝에 잡힐 것 같은 작은 파리 녀석이 눈에 성가시게 움직이자, 미노타우르스는 정확하게 시선을 고정했다.
커다란 미노타우르스의 손에 의해 금방이라도 그 형태를 보존하지 못할 것 같은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앙!"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자 미노타우르스는 괴성을 터뜨렸다.
"어디 한번 덤벼 보라고!"
태욱은 쉬지 않고 도발을 하면서 머릿속을 굴리기 시작했다.
'좋은 방법이 없나? 파괴력 강한 스킬이.'
눈으로 스킬 창을 보면서 미노타우르스의 공격을 피해 보지만, 아무리 살펴도 만족스러운 스킬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방법이 없어. 조금씩 타격을 입히는 것뿐.'
태욱은 일격 필살의 스킬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가 지금까지 만난 이들이라고는 마도공학자, 소환사, 그리고 몇몇의 딜러와 탱커, 힐러와 버퍼뿐이었다.
정확하게는 자신의 힘을 가지고 적을 꿰뚫어 버릴 힘이 부족한 것이다.
'체력전이라.......'
남겨진 것은 체력전.
상대의 체력을 갉아먹으며 조금씩 타격을 준다.
어쩌면 엄청나게 긴 전투가 될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지원은 미노타우르스가 태욱에게 시선이 돌아간 틈을 타서 자신이 계획했던 것을 차분히 실행시키고 있었다.
'시간은 많아.'
적어도 다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태욱의 모습과 미노타우르스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그가 쉽게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만약, 공격력이 부족한 거라면?'
태욱이 보여 줬던 무력은 엄청났다.
작은 힘으로도 커다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지식에 깜짝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태욱이 명확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저렇게 시간만 벌고 있는 거라면?
일격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화력이 없는 것이었다.
'전류만 정확하게 쏘아 낼 수 있다면?'
과학자들의 주된 생각.
바로 원인과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결과를 도출해 내는 도중에 위험 요인.
즉,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요인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을 없애 버린다.
정확한 결과를 갖기 위해, 여러 번 반복하고 수정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지원에게 있어서 위험 요인은 바로 전력의 방향을 바꿔 버리는 것이었다.
뿔을 제거해 버린다면?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타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로 설계."
기다란 기관총으로 설계되었던 도면이 튀어 올라왔다.
그리고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격발기 부분이 변하면서 사라지고, 새로운 전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태는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몇 가지 부분이 변화되었다.
받침대가 생겨났고, 그 위치를 조정할 수 있는 조이스틱이 생겨났다.
총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연속적인 사격에서도 버텨 낼 수 있는 지지력을 지닌 지지대가 완성되었다.
"프로토 제작."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끝났다.
이제 때를 기다리는 일만 남은 것이다.
지원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타이타니악을 통해 보고를 받은 태욱은 씨익,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목적성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물론 반만 완성된 플랜이지만, 태욱은 그것을 완성시켜 줄 힘이 있었다.
완성뿐만이 아니라 조금 더 효과적인 결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재미있는 수를 쓰는군.'
간단하게 해결책을 꺼낼 수 있는 태욱은 지원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타이타니악을 이용한 수신호였다.
정확하게 태욱의 마음을 읽어 내고 똑같이 움직일 수 있는 타이타니악.
지원의 앞에 태욱의 모습을 하고 타이타니악이 나타났다.
"강태욱 씨?"
태욱의 그림자가 된 타이타니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옷의 질감까지 대지의 원소로 표현한 태욱의 분신이 지원에게 이야기했다.
"정확하게 타이밍 맞춰 공격을 해라."
"하지만 이건 단 한 번밖에 사용을 못한다구요?"
분명히 다시 공격이 날아올 것이기 때문에, 지원은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날 믿어라."
"하, 하지만."
"책임은 내가 진다. 날 믿어라."
"아, 알겠어요."
결국 요청에 못 이겨 승낙을 하는 지원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한 단어만 외치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셋, 둘, 하나, 격발!"
태욱의 신호와 함께 날아가던 전기 광선이 치직거리며 그 방향을 잃어버리려고 할 때 태욱의 검이 그 방향을 도왔다.
형태가 있는 것을 통해 더 큰 방향성을 갖게 된 것이다.
아무런 형태가 없이 전기인 상태에서는 다른 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형태를 가진 전기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태욱의 검은 미노타우르스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좋았어.'
다만 태욱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미노타우르스의 반사 신경.
전투를 벌이는 것과 생존이 달린 움직임은 서로 다른 작용을 한다.
단 일격에 생명을 잃을 수 있는 큰 타격을 받을 뻔했던 미노타우르스는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 냈다.
물론 타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쪽 눈과 양 뿔을 잃었다.
고통을 참지 못한 미노타우르스는 괴성을 질러 댔다.
"쿠웩! 크아아아앙!"
"크엉!"
전류에 익어 버린 피부는 흰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었으며 고소한 냄새가 전장을 뒤덮었다.
쿵.
쿵쿵.
쿵쿵쿵.
점점 발 디디는 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움직임이 단번에 멈췄다.
착.
태욱은 반사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도망쳐!"
미노타우르스가 스킬을 펼친 것이다.
[어스퀘이크]
대지를 진동시켜 갈아엎어 버리는 무지막지한 기술이다.
"초월적인 흉내 내기."
태욱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스킬을 복사했다.
* * *
타이타니악이 지원의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일어난 바닥의 진동은 지원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일순간에 주변이 하늘로 솟구치고, 자신은 땅 아래로 가라앉았다.
옆에 있는 벽이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쏟아져 내렸다.
"안 돼에!"
지원의 비명과 동시에 타이나티악이 검은색으로 된 반구를 형상화하여 그녀의 위로 감쌌다.
"사, 살았나?"
온통 어둠으로 휩싸여 있어 한 치 앞을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우선 양팔을 움직였다.
'이상 없음.'
다음으로는 어깨, 그리고 허리.
마지막으로 다리까지 온 신체를 움직여 봄으로써 느낄 수 있었다.
'난 지금 어떤 공간 안에 있다.'
몸이 충분히 자유로울 정도로 넓은 공간이었다.
지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바닥으로 떨어졌고, 지금 밖으로 나가야 한다.
언제 다시 어스퀘이크가 일어날지 몰랐고, 다시 한 번 일어난다면?
거대한 무게에 압사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위로 파고 올라갈 수 있는 게 필요해."
드릴이라면 간단하게 하늘을 뚫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간단한 나머지 자신의 목숨도 위험하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아치형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하나의 힘을 빼 버리면 무게 중심이 바뀌게 된다.
일정하게 무게를 나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 힘이 한 군데로 쏠린다면?
금방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드릴 안쪽으로 내가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불가.
가까스로 제 한 몸 건사하는 정도의 크기밖에 없는데, 어떻게 커다란 드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인가?
"에휴, 조금만 더 넓었어도."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간이 한층 늘어났다.
타이타니악이 지원의 말을 듣고 움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