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회귀빨로 지존 헌터
- 1권 16화
"하압!"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손으로 검을 밀어 버리는 모습에 태욱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욱신.
가슴팍에서 고통이 넘실거리며 올라왔다.
단 일격.
수준 차이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붙어 보니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괜한 호승심으로 근접전을 벌인 건 아닌가 하는 순간적인 후회가 들 정도였다.
"상처 회복."
태욱은 스킬을 사용하면서도 시선은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을 향했다.
단 한 번 칼을 섞었으나, 상처는 이미 두 군데 입었다.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의 공격 스타일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지 못했다면 이미 목이 댕강, 하고 날아갔을 것이다.
그래도 태욱은 얻은 것이 있었다.
약 2.1미터.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의 공격 반경이었다.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혀 들어온 리자드맨이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적정 거리.
태욱이 2.1미터 이상의 거리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면 발검과도 같은 리자드맨의 공격을 피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갈 수 있을까?'
정확한 파훼법이 있더라도 해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이 한 발자국 걸어 나왔다.
그에 맞춰서 태욱이 한 발자국만큼 뒤로 걸었다.
2.2미터의 정확한 거리.
"후우, 후우."
들숨과 날숨조차 드래고니아 리자드맨과 같이 호흡했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어깨가 들썩이는 사소한 것조차 태욱은 정확하게 싱크로를 맞추고 있었다.
쓰으윽.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이 앞발을 내딛어 땅에 끌자, 태욱은 딱 그만큼 뒤로 물러섰다.
그때 긴장감 가득한 전장에서 그 얼음과 같은 분위기를 깨는 것이 있었다.
스멀스멀 피어오른 검은 그림자가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의 발목을 잡아채기 위해 그것을 감싸 쥔 것이다.
탁!
그러나 마치 이를 예상했다는 듯이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은 엄청난 대시로 태욱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물론 검의 끝은 그를 향하고 있었고, 공격의 한 부분이었다.
급하게 대검을 돌려 세운 태욱은 그 뒤로 몸을 숨겼다.
깡!
일순간에 찌르기를 검 면으로 튕겨 낸 것이다.
"쿨럭."
태욱의 입가에는 진득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발경(發勁)]
주먹에 기운을 담아 상대방의 신체를 공격했을 때 강한 기운으로 내부를 진탕시키는 기술.
검의 찌르기가 극한에 달한 순간, 발경의 묘미를 찌르기에 실어 공격을 한 것이다.
붉은 선혈을 토하면서도 태욱은 다시 거리를 넓혔다.
회복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야 되기 때문이었다.
'성급했다.'
적어도, 타이타니악이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의 발목을 잡아 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태욱의 예상을 벗어난 움직임이었다.
싱크로를 하고 있더라도 상대의 신체적 능력과 동일한 신체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반사적인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시각적 정보를 받아, 뇌에서 처리를 하고 다시 신체로 뻗어 나가는 시간.
0.02초.
찰나와도 같은 시간이지만, 순간 죽음의 고비에 다가섰었다.
그 순간.
"훅, 훅, 훅."
검은 형태의 인간의 입에서 튀어나온 작은 독침이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을 향해 날아갔다.
푹, 푹, 푹.
목표에 명중하지 못한 작은 독침들은 바닥으로 박혀 버렸고, 이는 다시 흙이 되어 타이타니악으로 되돌아왔다.
무한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원거리 무기.
'호흡을 멈추고 있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점점 피부가 거무튀튀해지는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의 신형을 태욱은 놓치지 않고 쫓고 있었다.
눈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다리 또한 쉬지 않고 있었다.
타이타니악이 흩뿌린 것은 대지의 원소였다.
신체의 일부로 구성되어 있는 대지의 원소는 원하는 모형으로 변형이 가능했다.
아주 작은 크기에서부터 커다란 덩어리까지, 원하는 모든 것으로 변화가 가능했다.
피부로 숨을 쉬는 리자드맨의 특성상, 온몸에 조금씩 대지의 원소들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끈적이고 질척이는 물질.
미끌미끌한 피부를 가지고 있더라도 착 달라붙어 털어 낼 수조차 없는 물질.
대지의 원소가 조금씩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거슬리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빠른 움직임을 막고 거슬리게 만드는 정도였는데, 그것이 쌓이고 쌓이더니 점점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태욱이 그의 속도를 능가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얼굴을 비롯한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의 모든 신체가 검게 물들었을 때, 태욱은 천천히 다가섰다.
2.1미터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의 사정거리.
정확하게 그 거리에 발을 들이민 순간, 제자리에서 동상과 같이 서 있던 리자드맨이 달려들었다.
"까아아아앙."
강한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동굴 내부를 강하게 울렸다.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 것이다.
물체를 인식하는 다섯 가지 감각 중에 시각, 후각, 미각, 청각을 강제로 닫아 놓고, 오직 촉각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공기를 타고 출렁거리는 움직임이 포착된 셈이었다.
그가 다가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는 이내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 번개와도 같은 일격을 날렸다.
만약 그의 피부에 대지의 원소가 매달려 있지 않았다면 능히 태욱을 찢어발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에게 남은 것은 공격의 실패와 더불어 더욱 강하게 몸을 옥죄는 질척한 물질들뿐이었다.
거무튀튀하고 어두운 대지의 원소가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의 온몸을 감싸 안았다.
움찔.
금방이라도 대지의 원소를 찢고 튀어나올 것같이 움찔거리는 모습에 태욱은 거리를 두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태욱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리자드맨이 지치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금까지 태욱은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드래고니아 리자드맨과 전투를 벌였다.
커다란 상처를 만들지 않고 힘으로 굴복시킨다.
상처 회복을 하면서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보존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용체린을 획득하기 위한 첫 번째 발판이었다.
태욱이 타이타니악과 같이 전투를 벌인 목적이었다.
"쒜액 쉐엑."
거친 숨을 몰아쉬는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은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운이 발목을 옥죄고 있는 셈이었다.
태욱은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섰다.
'잘 받아 가마.'
감사의 인사를 건넬 필요는 없었다.
그만큼 전투를 벌이며 태욱은 위험했었고, 그 위기를 극복하면서 얻어 낸 값진 결과물이었다.
콰득.
태욱의 손이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의 심장을 향해 뻗어 나갔다.
정확하게 한 손에 쥐어진 심장에서는 반복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두근두근.
쉴 새 없이 뛰는 심장은 생명의 원천이나 다름없었다.
콰드드드드득.
손으로 쥐고 뜯어내는 고통 속에서도 단 한마디의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는 드래고니아 리자드맨이었다.
붉은 손에 쥐어진 심장이 바로 태욱이 찾던 용체린이었다.
손에 쥐어진 심장을 태욱은 그대로 자신의 입에다 가져다 댔다.
우적.
그리곤 쉴 새 없이 턱 운동을 시작했다.
콰득거리며 씹히는 심장에서 울컥울컥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액체를 모두 목구멍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겠단 단호한 행동이었다.
* * *
딸칵.
적막한 방 안을 울리는 마우스 소리.
태욱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그는 한성중공업 주식을 추가로 구매한 것이다.
추가로 구매한 주식의 금액은 25억. 한성중공업은 꾸준히 그 가치가 올라 300억이라는 값어치를 달성했다.
추가로 투입된 25억이 합쳐지면서 태욱이 한성중공업에 대한 주식이 42%까지 상승하게 된 것이다.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9%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매수할 경우 51%가 넘는 지분을 획득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회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우우우웅."
진동이 책상을 울렸다.
"여보세요?"
태욱은 전화를 받자마자 슬그머니 미소가 피어올랐다.
전화 속 주인공은 바로 한성중공업의 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한성중공업의 한 명이라고 이야기하며 만남을 가질 수 있냐는 연락을 해 온 셈이었다.
"드디어 올 게 온 건가? 후후후."
chapter 5
중소기업이라고 불리는 한성중공업.
사실 이제 기업을 보는 세상의 눈은 달라졌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기업.
세상 어느 곳을 봐도 이렇게 빨리 성장하는 중소기업은 볼 수 없었다.
특별한 물건을 만드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새 갑자기 튀어나온 송곳처럼 뾰족한 부분이 드러나듯 세상에 알려졌다.
사실 이 모든 것은 태욱 덕분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성에서 태욱에게로 연락이 온 것이다.
-만나 뵀으면 좋겠습니다.
한성의 입장에서 대주주가 되어 버린 태욱의 행동에 회사가 좌지우지될 것은 분명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42%의 주식이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처음에 태욱이 35%의 주식을 소유한 걸 알았을 때 태욱의 연락처를 찾았다.
어떠한 의도에서 한성의 주식을 사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연락처는 알고 있으나, 대주주는 한성에게 어떠한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
경영에 대한 참견?
없었다.
그냥 지금 굴러가고 있는 한성 그대로 놔두고 있는 셈이었다.
예의 주시하며 살피고 있는 와중에 그가 추가로 주식을 구매했다는 정보를 신속하게 파악했다.
이제는 정말 결단을 해야 될 시간이 온 것이다.
벌써 그가 가지고 있는 주식이 42%.
그동안의 행적과 행보를 따르면 51%까지 구매를 할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한성은 태욱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주식을 매입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주주를 초대한다는 이유로 태욱에게 연락을 가한 것이다.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방 안에서 호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야?"
"지금 1층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강태욱 씨가 도착하셨답니다."
비서의 목소리에 버선발로 유섭이 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한성중공업의 대주주를 앉은 자리에서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김유섭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강태욱입니다."
"안쪽으로 들어가시지요. 여기 마실 것 좀 부탁합니다."
유섭은 자신이 먼저 사장실 문을 열며 태욱을 안내함과 동시에 비서에게 이야기했다.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상대방과의 관계를 만들어 내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일부러 상석이라고 불리는 자리를 흔쾌히 양보하며 태욱에게 권하는 유섭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괜찮습니다."
강하게 권하는 유섭에 비해 태욱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거절의 표시를 했다.
여유 있는 웃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최대의 관용이었다.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 회사 대주주이신데, 앉으셔도 됩니다."
세 번의 권함.
한국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미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아쉬우니 두 번, 그리고 세 번까지 권하는 게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는 여기가 편합니다."
태욱은 유섭이 권하는 자리가 아닌, 동등하게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앞좌석에 앉았다.
태욱이 자리를 잡자 자연스레 유섭도 자리에 앉았다.
'무슨 생각인지 도통 알 수가 없네.'
유섭은 그의 표정을 보고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읽어 낼 수가 없었다.
무슨 의도로 회사의 주식을 샀는지, 어떤 생각으로 초대에 흔쾌히 응하며 이 자리에 왔는지.
의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무슨 생각일지 아무런 파악을 하지 못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다른 미사여구로 말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의도를 묻는 것이다.
"저희 회사는 어떻게 아시고 투자를 하셨는지?"
정중하면서도 강직한 음성으로 묻는 유섭이었다.
'역시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군.'
태욱의 기억 속에서 유섭은 바로 강직하고 직선적인 인물이었다.
뒤에서 무엇을 꾸미는 짓은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가 다 드러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