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회귀빨로 지존 헌터
- 1권 5화
태욱은 손에 검을 쥐고서는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체를 벗어난 연장선.
자신의 신체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도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자를 흔히들 숙련자라고 이야기한다.
검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자는 검의 숙련자.
활을 자유롭게 사용하면 활 숙련자.
그들은 어떻게 숙련자가 되었는가?
오랜 시간 동안 손끝과 발끝으로부터 이어진 감각들이 무기의 세심한 진동까지 모두 파악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감각을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쉽게 이야기하면, 검의 끝의 감각을 손끝의 감각과 동일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다면?
남들보다는 조금 빠른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태욱은 그러한 면에서 이미 경험을 한 경험치가 있었다.
지금의 몸은 하나의 경험도 없었지만, 그의 뇌리 속에 강력하게 파고들어 가 있는 기억이 육체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었다.
신체에서 뿜어져 나간 작은 알갱이 입자 기운이 서서히 그 세를 넓혀 검신 주위를 둘러쌌다.
'조금씩, 천천히.'
전혀 급할 필요는 없었다.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이와 같았다.
아무것도 닦이지 않은 길을 걷는데 빨리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주변을 살피고 위험한 것은 없는지, 천천히 판단 후에 걸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이내 착실하게 마나가 검신의 표면에 달라붙었다.
이윽고 태욱이 들고 있던 검은 밝은 빛을 뿜더니 금세 사그라졌다.
태욱의 손에 쥐어진 검은 마치 그의 행동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잔 진동을 통해 낮게 울었다.
웅웅.
진동을 통한 검 끝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였다.
[마력 운용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행동과 마음가짐은 느려 보여도 태욱은 누구보다 빨리 앞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지금도 쉬지 않고 동굴 안쪽을 걷고 있었다.
이 던전은 반인반수(半人半獸) 던전.
하지만 사람들은 이 던전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그저 한 마리의 몬스터의 이름으로 불린다.
웨어울프 던전.
처음에는 뒤죽박죽 반인반수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곤 했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다른 몬스터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웨어울프의 세력은 점점 커다랗게 변했다.
결국 다른 몬스터들을 발견하지 못한 채, 요 근래는 오직 웨어울프만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이 던전을 웨어울프 던전이라고 불렀다.
물론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
초보자와 중급자들이 주로 찾는 던전이었다.
중급자들은 초보자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찾아오기도 했지만, 가장 많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조금 더 안전한 사냥.
몬스터 사냥이라는 것이 언제라도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곤 한다.
앞서 태욱의 일행이 몰살을 당한 것은 바로 몰이사냥 때문이었다.
높은 수준에 있는 헌터일수록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많은 몬스터를 몰이사냥을 통해 단숨에 처리를 하는 것.
시체를 처리하는 동안 휴식도 취할 수 있고 단번에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사냥이었다.
다만 오늘의 실패는 그 한계점이 넘치게 몬스터 몰이를 한 탓이었다.
일부러 많은 양의 몬스터를 몰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경계 구역을 잘못 들어간 탓이다.
워낙 넓은 웨어울프의 경계면을 내달리다가 두 개 아니, 세 개 무리의 웨어울프를 모두 몰아온 것이다.
가진 능력치를 상회하는 많은 몬스터 수를 감당하지 못한 헌터 파티는 그 자리에서 와해된 셈이었다.
태욱은 살포시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눈은 차갑고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마치 블랙홀같이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며 무겁게 아래로 깔렸다.
'세 마리? 아니, 총 네 마리군.'
아직 암흑 속에서 움직이는 몬스터의 숫자를 정확하게 캐치해 냈다.
"은신."
걷던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태욱은 모습을 감추었다.
높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몬스터가 접근하는 동안 숨을 죽이고 있다면 경계심이 많지 않는 이상 그의 존재와 위치를 파악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나, 둘.......'
눈앞으로 지나가는 웨어울프의 숫자를 세어 나갔다.
세 마리째 앞을 지나갈 때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던 그가 마지막 웨어울프가 지나감과 동시에 습격을 감행했다.
"기습!"
측면에서 들어간 기습은 정확하게 웨어울프의 앞발 날갯죽지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콰득.
콰드드득. 툭.
검이 파고 들어가면서 손끝의 감각이 미리 말을 해주고 있었다.
근육을 찢다시피 파고 들어가던 그의 검이 하나의 물체를 끊어 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인대인가?'
관절과 관절을 연결하는 인대를 단숨에 끊어 낸다면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커다란 덩치를 어슬렁거리며 비교적 작은 웨어울프를 거느리는 모습을 태욱은 눈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웨어울프가 지나갈 때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다가 커다란 웨어울프에게 기습을 감행한 것이었다.
습격으로 인해 한 마리는 전투 이탈이 되었다.
다른 웨어울프는 낮은 울음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으르르르르릉."
금방이라도 주둥이 밖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이 태욱의 신체를 물어뜯을 듯이 위협을 하고 있었다.
태욱은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전투적으로 나섰다.
한 발자국 다가선 태욱을 향해 달려드는 웨어울프.
"크아앙!"
울음소리와 함께 높이 뛰어올랐다.
'어떻게 너희는 한 패턴이냐?'
공중으로 올라간 웨어울프의 최후는 정해져 있었다.
"트리플 블레이드!"
왼발을 앞으로 뻗으며 찔러 들어가는 검신의 양옆으로 다른 마나 검들이 생겨났다.
웨어울프의 턱 밑에서 배 쪽으로 이어지는 아주 약한 부위에는 세 군데의 출혈이 생겨났다.
"크앙!"
울음소리를 낼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붉은 핏방울은 금세 바닥을 적셨다.
"두 마리."
상체를 180도 돌려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웨어울프를 공격했다.
폴짝 뛰며 태욱의 공격을 피하려고 했지만, 유려하게 움직이는 태욱의 검은 당최 그 목적지를 찾기 힘들었다.
분명 횡으로 베어지는 공격이라고 예상했지만, 그의 검로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각으로 움직였다.
좌 하단에서 우 상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검무에 회피를 했던 웨어울프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
태욱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말을 마치자마자 웨어울프 한 마리가 바닥에 쓰러져 버린 것이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태욱의 행동을 멈추게 만든 것은 또다시 시스템 알림 음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이번에도 마력에 모든 스텟 포인트를 투자했다.
망설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게 가야 할 길을 아는 것 같았다.
태욱은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각성을 하는 데 의의를 두지 않고, 그저 살아남았다는 점에서만 감사했던 그때의 기억.
뒤에 무언가 오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망치기에만 급급했던 자신.
운 좋게 헬퍼들을 만나 살아남았던 그때의 기억.
그러나 지금의 태욱은 그때와 전혀 달랐다.
'과연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을까?'
조금 더 빠르게.
지금부터 강해진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을까?
속으로는 계속해서 의문점이 무수하게 피어났다.
하지만 고민의 결과는 정해지지 않았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변화된 지금이 계산으로 들어갈 수 없을 테니까.
태욱은 자신의 성장에 박차를 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에게 지금 남은 식량은 전투식량 4식, 약간의 육포와 견과류.
3일치 식수.
'아껴 먹으면 5일도 버티겠지.'
아니, 그 이상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생존에 목적을 둔다는 전제에서였다.
하지만 그는 전투를 해야 한다.
레벨을 높이고 성장을 해 나가야 된다.
모든 체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고 했을 때 가장 효율이 높은 날짜는?
3일이다.
부족하지 않은 영양분을 흡수하고, 반사 신경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사냥을 할 수 있는 시간.
3일이라는 시간이 나오자, 태욱은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들어갔다.
"하나, 둘, 셋, 넷......."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숫자의 외침이 금세 멈췄다.
그의 말이 멈춤과 동시에 접었던 손가락이 모두 펴졌다.
뭔가 알았다는 듯이 태욱은 씨익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은 총 15회.
15레벨을 완성하고 밖으로 나간다.
마음속으로 그는 단정을 지은 것이었다.
'3일 간 15레벨을 만들고 이 던전 밖으로 나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야, 저쪽으로 가 보자."
저 멀리서 한 그룹의 헌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태욱이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온 것이었다.
chapter 2
"야, 아가리 벌려라. 음식 들어간다!"
"오케이, 준비 완료."
오랜 시간 동안 손발을 맞춰 온 트리플 파티.
딜러와 몬스터를 몰고 오는 탱커가 서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저, 정말 괜찮을까요?"
오늘 처음으로 파티에 들어온 진영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저렇게 보여도 저희 벌써 3년째 사냥 중입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우습게 흘러간 것은 아닌지, 이들의 행동들은 톱니바퀴가 착착 들어맞는 것 같았다.
가장 최전방에 나서고 있는 탱커.
그는 자신이 적당히 유지할 수 있는 몬스터를 몰이해 온다.
항상 오가면서 툭 하고 던지는 그의 말투가 꽤나 사납기는 하지만, 정작 심성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보조를 맞추고 있는 딜러.
정확하게 자신에게 넘겨진 임무를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힐러.
이 세 사람은 매일 파티 사냥을 나섰다.
요 근래 사나워진 웨어울프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과 같이 서포터 한 명을 추가로 영입한 것이다.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웨어울프 한 마리가 경계선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야, 이거 위험한 거 아니냐?"
"그러게, 얼마나 남았어?"
힐러가 딜러에게 물었다.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의 횟수를 확인하는 것이다.
빠른 속도로 사냥을 할 수 있는 대신, 오랜 휴식을 가져야 하는 반작용이 있기 때문이었다.
몸 상태를 확인한 딜러는 곧 바로 대답했다.
"한 세 번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은 힐러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흐음, 시간이 모자라는데...... 영수야, 혹시 여유 돼?"
아직 몬스터를 붙잡아 두고 있는 탱커에게 물어본 것이다.
"여유는 되는데, 그렇게 긴 시간은 못 잡아 둔다?"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탱커는 대답을 했다.
"오케이, 그 정도면 충분해."
힐러는 이 파티의 장이나 다름없었다.
평행적인 구조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은, 가장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적재적소에 인력을 투입하는 힐러가 큰 역할을 한다.
영수는 자신이 탱킹을 하고 있는 웨어울프를 꼬리처럼 달고서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웨어울프에게 다가섰다.
가장 먼저 자신에게 어그로가 끌리도록 하는 것이다.
"광기의 도발!"
"크아앙!"
곁으로 가서 스킬을 외치자, 단번에 웨어울프는 탱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덤벼라!"
금방 몬스터를 처리하고 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두 다리를 바닥에 꽂고 그 자리를 지키겠다는 일념을 보였다.
그때였다.
영수의 몸 주변에 반투명한 막이 생겨나더니 순간순간 표정을 구기던 그가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