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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50화 (150/152)

100층(3)

끝 없이 펼쳐졌던 새하얀 공간이 우주의 일부가 되었다.

슥-.

진영이 훔친 동료들의 능력은 그의 왼손을 거쳐 새로운 능력으로 거듭났다.

김지훈의 수납 스킬이 가지고 있던 세계의 일부를, 방출을 통해 불러 왔다.

여전히 탑의 의지는 이 모든 광경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진영의 눈에서 타오르는 홍염 또한 시스템을 초월한 무언가로 변모해 있었다. 무릇 다른 세계에서 신이라고 여겨짐에 부족함이 없을만큼의 힘이 진영에게 감돌았다.

진영은 바로 탑의 의지를 향해 덤벼드는 대신, 일행 쪽을 바라보았다. 김영훈, 아니 그가 강림 시킨 이름 없는 신이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오셨군요. 절대 회귀에 의존하지 않은 채···. 처음 회귀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그 팔찌를 사용하지 않으셨군요.”

이름 없는 신, 이름 없는 여신으로도 불렸던 그는 일전에 진영에게 신탁을 내려준 적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의 충고는 당연했다.

모든 시간측을 관측하는 이계 존재들이 비축해 둔 이계의 힘은 무한하지 않았으니까.

동시에 그녀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당신의 의지가 탑의 의지를 뛰어 넘는다는 증거입니다.”

돌이켜보면 팔찌 하나에서 시작 된 일이었다.

다른 세계의 어딘가에서 넘어 온 절대 회귀의 팔찌.

그러나 진영은 팔찌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름 없는 신이 조용하게 탑의 의지를 바라보았다.

“당신 또한 이계 규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겠죠. 당신의 필사적인 노력이 이계 규율로부터 당신을 안전하게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계의 존재들이 탑의 규칙을 비틀고, 이계의 힘을 가져오는 대신 커다란 패널티를 지게 되었다.

‘이계 규율’

그 규율에 속하는 자조차 알지 못하는 규율.

그것을 어기는 자는 존재가 말소 된다.

그렇기에 탑이 존재해 온 세월에 비해, 이계의 존재들의 수가 그다지도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진영 또한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이계 규율이 무엇인지. 아슬아슬하게 규율에 발을 담근 채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럼 이제 가보겠습니다.”

그것으로 이름 없는 신과의 대화는 끝이났다. 탑의 의지는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들어주었다.

재촉할 이유가 없었다.

멸망의 끝자락, 100층에 오른 플레이어들과의 마지막 승부.

그에게 있어 이것은 특별한 이벤트이자 성대한 연회였다.

간절한 희망을 품고 올라오는 플레이어들을 박살 내고, 그들의 절망을 유희삼아 즐기는 잔치.

그에게 있어 세계란 그저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새로워. 이진영. 너의 동료들도 색달랐지만, 너만큼은 특별하게 다르다.”

진영의 힘은 아직 탑이 닿지 못한 어느 세계에서 나오고 있었다.

“특히 네 왼손···. 그 녀석은 의지를 가지고 살아 있는데도 주인처럼 널 따르고 있잖아? 그런 걸 보면 참 신기해.”

회상에 젖은 듯 탑의 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에 널 삼켰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강력한 힘이었는데 말이야. 이미 완전히 네 것으로 만들었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지? 유언은 그걸로 충분한가?”

“후, 당연히 너와 네 세계를 완전히 집어 삼켰을 때 얻게 될 그 힘이 탐나서 그런거지.”

탐욕에 물든 탑의 의지의 눈이 번들거렸다.

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었으니까.

뚝···. 뚝···.

진영의 손에 들린 검에서는 계속해서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스리엘이 들고 있던 창세급 아이템이지만, 더 이상 탑이 설정해 둔 등급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에게서 훔쳤기에 그것은 진영의 것이었다.

그것 뿐이 아니었다.

초월자들의 모든 능력과 기술까지, 그들의 탑에 존재하며 비축했던 역사와 힘이 진영에게 있었다.

탑의 의지와도 비교해도 결코 모자라지 않을만큼의 힘. 모든 준비는 끝났다.

탑의 의지가 진영을 바라보았고, 진영 또한 검을 들었다.

이어진 짧은 침묵.

콰아아아!

이후의 격렬한 파공음과 함께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탐욕의 왼손.

맨 처음에는 그저 스킬의 부가효과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점차 성장해나가며 새로운 탐욕을 불러왔다.

비슷한 성질의 이계의 기운이 계속해서 진영에게로 모였다.

초월자들의 힘을 훔치면 훔칠 수록 왼손 또한 강해졌다.

성장에 한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한 때는 손에 닿는 물건을 훔치는데서 그쳤던 효과가 이제는 추상적인 개념조차 빼았는다.

이제 하늘 아래 진영이 훔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콰드드득!

진영의 왼손이 검게 변하며 연기처럼 뻗어나갔다. 이윽고 탑의 의지의 가슴 앞에 달한 왼손이 녀석의 심장을 훔쳐냈다.

“커헉!”

피할 수도 왜곡 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힘 앞에 탑의 의지 피를 토해냈다. 그러나 그럴 수록 그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가득해졌다.

“큭, 그래 이거야! 이 힘···. 내가 여지껏 가져왔던 모든 힘보다 더 강렬하고 난폭하고 이기적인 힘!”

진영을 쓰러뜨리고 그의 세계를 완전히 소화해 낸다면 그 세계의 일부였던 진영의 힘도 자신의 것이 될 터.

탑의 의지는 자신의 패배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야 천문학적인 양의 세계를 삼켜 왔으니까.

그리고 모든 세계에서 그는 승리해 왔다.

패배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심장이 뽑히고도 녀석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몸을 수복했다.

으레 초월자를 뛰어 넘는 자들의 싸움이 그러하듯, 신체의 파괴가 승리로 이어지진 않는다.

“그럼 이제 내 차례가 되겠군. 어디 네 힘이 얼마나 강한지 측정해 볼까.”

토옹.

공간 위로 퍼져나가는 물결과 함께 탑의 의지가 움직였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움직임이었지만, 어느새 그의 검이 진영의 복부를 꿰뚫었다.

“큭!”

보았다. 보았으나, 피할 길이 없는 공격이었다. 진영이 왼손으로 행한 것처럼 탑의 의지도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일찍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세계가 존재하고, 세계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존재했다. 그러니 그만한 수의 기술이 있는 건 당연하지. 네 힘도 결국은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이라면, 내가 질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거 아닌가?”

탑의 의지의 기괴한 미소가 짙어졌다.

투쾅!

그런 미소를 비웃기라도 하듯, 진영의 어퍼컷이 정통으로 먹혀 들어갔다. 그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어 우주 어딘가로 떨어져 나갔지만 그 뿐이었다.

비틀거리던 탑의 의지가 몸을 털자, 금새 머리가 수복되었다. 기괴한 미소는 여전히 유지한 그대로.

토옹!

그러나 이번에는 진영의 차례였다.

공간에 한 순간 파문이 일었다.

진영의 검이 탑의 의지를 베어냈다.

탑의 의지가 사용했던 것과 똑같지만 보다 발전 된 기술.

진영은 한순간에 그에게서 기술을 훔쳐내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건 좀 아프겠지.”

잊혀진 제국의 검신이 만들어낸 이 기술은 본체를 공격하는 궁극의 기술이었다.

그것이 진영의 손을 거치자 본질 그 자체를 필멸의 공격으로 바뀌었다.

“크아악···!”

여지껏 여유롭던 탑의 의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큰 데미지를 입은 녀석이 우악스럽게 진영의 검을 움켜쥐었다.

스아아아!

강대한 마력이 그의 손아귀에 맺히기 시작했다.

‘이런···!’

콰직!

멸망의 탑에서 가장 강했을 무기가, 녀석의 손에 힘 없이 바스라졌다. 곧바로 탑의 의지의 검격이 이어졌다.

“!”

첫번째, 공간을 꿰뚫는 검이 진영의 어깨 죽지를 꿰뚫었다.

세번째, 행성 하나를 가볍게 절단하는 날카로운 오러가 진영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네번째, 죽음의 기운이 심장을 뚫고 들어왔다.

다섯번째, 이해조차 불허하는 불가해의 힘이 진영의 신체를 엄습했다.

그리고 두번째.

시간검(時間劍).

서걱-.

시간을 뛰어 넘어 휘둘러진 검날이 진영의 왼손을 잘라냈다.

* * *

진영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왼손에 머물렀다.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었다.

진영이 가지고 있던 본질은 산산히 파괴되었다. 초월력이나, 마력으로도 메꾸지 못하도록 탑의 의지는 그를 쳐부수었다. 그만큼 압도적인 격차였다.

진영의 눈가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이만큼이나 강해졌는데도 이길 수가 없는 건가.’

그러나 탑의 의지 또한 방금 전 공격은 필사의 공격이었다.

본질을 훼손 당한 그 또한 고통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후윽···. 그렇게 실망한 표정을 할 필요는 없어. 모든 세계가 쌓아 올린 지식과 기술. 큭, 결국 네가 가진 힘도 그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거니까.”

저벅.

녀석이 쓰러져 있는 진영의 근처로 다가왔다.

일행들의 도움은 바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이 싸움 자체가 찰나의 빛처럼 느껴질 터였다. 이미 아득히 상식의 차원을 뛰어 넘어 있었다. 우주의 한 부분을 싸움의 장소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스윽-.

“그래도 간만에 재밌었다. 네 힘은 내가 잘 간직하도록하지.”

탑의 의지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검을 들어 올렸다.

“아차, 너 회귀가 가능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지.”

녀석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지금 생각난듯 이야기하지만 그 사실을 탑의 의지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탑 그 자체이기도 했으니까.

그는 이미 방금 전 검격에서 진영이 오른팔을 잘라냈다.

팔찌와 함께 잘려져 나간 오른팔.

녀석의 공격은 물리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진영과 팔찌의 연결 자체를 끊어냈다.

때문에 진영은 팔찌의 소유권을 잃었다.

“내 앞에서는 회귀를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단 거지. 그만큼이나 차이가 나.”

압도적인 격차.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초월자들의 훔쳐왔다 한들 멸망의 탑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유구한 역사와 영겁의 세월은 뒤집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검을 고쳐 잡은 탑의 의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네 공략은 여기서 끝이다.”

진영의 눈이 탑의 의지를 바라보았다.

단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딱 한 번만 기회를 다시 잡을 시간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다.

진영은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들었다.

“크윽, 과연 그럴까.”

“하하, 허세 치고는 별거 없구나!”

그러나 그 순간.

탑의 의지가 진영의 목을 잘라내려는 그 순간.

콰직!

검은 공간이 열렸다.

그곳에서 나타난 검은 왼손이 탑의 의지의 심장을 다시 한번 거머쥐었다.

“커허헉!”

경악스런 고통에 탑의 의지가 온 몸을 떨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녀석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분노에 어린 녀석의 눈이 진영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진영은 이를 악물고 바닥을 기어 자신의 오른팔을 향해 다가갔다.

‘크으윽!’

몸이 바스라지는 고통 속에서도 진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연도, 기적도 아니었다.

탑의 의지의 ‘시간검(時間劍)’이 왼손을 잘라내는 것과 동시에 진영은 그것을 훔쳐내는데 성공했다.

한 단계 발전된 공격이 탑의 의지를 덮쳤다.

그러나 녀석을 죽이기에는 부족했다.

그렇기에.

‘제발 닿아라!’

진영은 죽을 힘을 다해 기어갔다.

“이, 이 자식!”

그걸 보고 있을 탑의 의지가 아니었다.

녀석은 비틀거리며 진영을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눈을 부릅 뜬 탑의 의지가 날이 선 검을 바닥으로 내리쳤다.

“이 더러운 도둑 새끼가!”

그의 검이 닿음과 동시에.

콰악!

진영이 바닥에 떨어진 오른팔을 꽈악 물었다.

[ ‘이계 규율-절대 회귀’를 발동합니다. ]

[ 마지막 저장 포인트로 회귀합니다. ]

[ 마지막 저장 포인트는 ‘100층’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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