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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49화 (149/152)
  • 100층(2)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붉게 변한 하늘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검은 잿덩이가 떨어진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을까.

    수 많은 사람들이 건물 속에서 고개를 내밀어 멸망의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상이···. 멸망한다.”

    “정말로 그 예언자 리암의 말대로잖아···.”

    “이런 젠장···.”

    떨어져 내린 거대한 잿더미가 닿은 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따, 딸아!”

    “사, 살려주···!”

    “아빠!”

    인류에겐 더 이상 피할 장소도, 그럴만한 능력도 없었다.

    말 그대로 세상의 멸망.

    멸망의 탑이 세계를 완전히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현재 하늘에서 원인불명의 덩어리가 떨어지고 있으며, 이에 닿은 존재는 모두 사라지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협회 및 길드에서는 이 원인을 멸망의 탑에 있다고 보고 있으며···.”

    “빌딩이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지금 저희는 상공 400m에서 이 모든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 피, 피해! 으아악!”

    “저희는 프로의 정신을 가지고 시청자 여러분과 끝까지 마지막을 함께···.”

    모든 TV 채널이 절망적인 소식 뿐이었다.

    인터넷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 야, 망했는데.

    - 우리 지역은 아직 괜찮음. 개꿀ㅋㅋㅋ

    - 우리 집 절반이 그냥 사라졌어. 우리 가족도 전부.

    - 이제 진짜 종말이야.

    - 집에 있자니 이상한 게 떨어지고, 바깥은 마수가 드글드글한데 어쩌냐고 ㅋㅋㅋ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떨어지는 잿덩이들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다는 것 정도.

    점차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의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TV 방송도, 인터넷도 서서히 끊기기 시작했다.

    마지막 방송의 아나운서는 결연한 의지로 시청자들을 향해 말했다.

    “현재 탑을 공략하고 있는 공략대에게 모든 희망을 거는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탑으로 올라간 이진영 플레이어를 포함한 모든 분들. 부탁드립니다. 탑을 공략해주세요···!”

    그것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바라마지 않는 최후의 희망.

    “분명히, 분명히 공략할거야.”

    까마귀 본부의 옥상.

    무너져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임재천이 중얼거렸다.

    이미 바깥은 셀 수 없이 밀려드는 마수들로 손도 쓸 수 없는 상황.

    이제는 그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우선은 최선을 다해봐야죠.”

    옆으로 다가온 유수아의 시선은 건물 저편의 생존자들을 향해 있었다.

    “그래, 그래야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유수아와 임재천이 함께 옥상에서 뛰어 내렸다.

    그랑블루 또한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다들 위험한 사람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구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우리야!”

    마수들을 뚫고 전진하던 민아영이 소리쳤다. 그녀의 손과 옷은 마수들의 피와 살로 범벅이었지만, 그녀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하나라도 더 살려야한다.

    그들이 탑을 공략할 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 미래가 있을테니까.

    * * *

    콰지직!

    뒤틀리기 시작하던 공간이 갑작스레 틀어막혔다.

    “하하하!”

    탑의 의지가 즐겁다는 듯 폭소했다. 반면 일행의 안색은 굳어졌다.

    “방금 진영이 형···. 맞죠.”

    “맞는 것 같다···.”

    염태준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진영이 공간을 비집고 멸망의 탑 100층으로 넘어 오려는 순간, 탑의 의지가 그것을 막았다.

    “이진영! 그 놈이 너희들을 여기까지 이끈 장본인이지. 그리 쉽게 합류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나? 100층으로 들어 올 수 있는 건 99층을 통해서만이야.”

    그 말과 함께 탑의 의지가 들어 올린 손가락을 까닥였다. 시전 준비가 끝난 수 많은 마법들이 일제히 일행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대규모 마법이 동시에 수 천개가 발동되었다. 자신의 세계를 살던 이들조차 존재를 몰랐던 마법. 그 중 하나라도 직접 목격한 자는 목숨을 잃었으니까.

    그런 마법들이 무자비하게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김지훈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

    “진영이 형이 올 때까지 버텨보죠. 아니, 쓰러뜨려보죠 저 놈을!”

    [ 각성 : 수납 스킬을 발동합니다. ]

    [ 주변의 모든 대상을 수납합니다. ]

    짐꾼 김지훈의 능력 또한 더 이상 아이템에 국한 되지 않았다.

    새하얀 공간을 가득 뒤덮었던 마법들이 일제히 배낭 속으로 빨려 들어 오기 시작했다.

    “커헉!”

    김지훈이 새빨간 피를 토해냈다.

    받아들이는 마법의 규모와 수가 너무나 컸다.

    거대한 반동이 김지훈을 덮쳤다.

    그럼에도 김지훈은 끝까지 배낭을 놓치지 않았다.

    쿠과과과!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마법에 김지훈이 몸부림쳤다.

    “끄아아아!”

    그 뒤를 잇는 건 김영훈이었다.

    “지훈아, 버텨라!”

    빛의 사제 김영훈.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끌어 모아 김지훈에게 강력한 버프를 걸어주었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동시에 그의 등 뒤로 흐릿한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 각성 : 강림 스킬을 발동합니다. ]

    [ 이름 없는 신을 당신의 몸에 강림시킵니다. ]

    공허 속에서 그는 멸망의 탑에서 오랜 시간 전에 잊혀졌던 이름 없는 신을 마주했다.

    김영훈의 눈에 새하얀 안광이 들어차고, 몸놀림 하나 하나에 신성함이 깃들었다.

    [ 이름 없는 신의 축복이 플레이어 ‘김지훈’을 감쌉니다. ]

    그의 손길 한 번에 김지훈의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계의 존재들이 남겨두었던, 과거 세계를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보물.

    그것들은 탑의 시스템을 온전히 일행의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시스템에서 벗어난 능력.

    더 이상 탑에 종속되지 않은 독자적인 힘이었다.

    탑의 의지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유흥, 정말 오랜만의 유흥이야. 항상 압도적으로 쳐부수는 것만해선 재미가 없는 법이지. 네 놈들의 발악은 그만큼 흥미로워.”

    그와 동시에 달려오기 시작했다. 김지훈의 수납을 두고 볼 생각은 없어보였다. 수납된 마법은 그에게로 방출 될테니까.

    투콰앙!

    그 앞길을 주오령이 가로막았다. 주오령이 양 팔로 탑의 의지의 두 팔을 봉쇄했다.

    꿈틀.

    탑의 의지를 막아서는 주오령의 전신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어렸을 적 그가 행해 온 수 많은 훈련이 지금 눈 앞의 탑의 의지를 막아서기 위함이라는 걸.

    콰득!

    “크윽!”

    탑의 의지의 팔이 부숴졌다.

    허공을 뚫고 염태준이 날아든 건 그 순간이었다. 그의 등 뒤에 있는 수 천 가지의 무기와 아이템들도 탑의 의지를 노리고 쇄도했다.

    그의 손목에 있는 영원 회귀의 팔찌와 그가 들고 있는 엑스칼리버의 목소리가 나서야 할 타이밍을 정확히 지시했다.

    콰과과과!

    무기의 폭풍이 탑의 의지를 향해 쏟아졌다. 피할 곳도 피할 장소도 없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탑의 의지의 온 몸이 갈려나갔다.

    “유흥 좋아하고 있네, 이게 네 놈 눈에는 유흥으로 보이냐!”

    콰직.

    탑의 의지는 자신의 팔을 끊고,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무기의 폭풍 속에서 빠져나온 그의 모습은 만신창이었다. 그러나 이죽거리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 잘 싸우네. 이 정도라면 몇 달 동안은 싸울 수 있겠어.”

    스스슷.

    탑의 의지가 가지고 있던 상처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메꿔졌다.

    저벅-.

    동시에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염태준의 코 앞에 도달해 있었다. 공간을 넘나드는 보법 앞에 염태준이 당황한 찰나, 탑의 의지가 휘두른 검이 주변의 무기를 산산히 조각냈다.

    무수한 파편이 되어 흩어진 무기와 아이템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마지막으론 염태준의 입과 몸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무슨···!”

    사기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압도적인 기술.

    염태준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놀라운가? 나도 처음에는 놀라웠었지.”

    모든 것을 일격에 베어 없애는 초절기. 타차원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검술을 가지고 있던 누군가가 일생을 걸쳐 만들었던 기술이 탑의 의지를 통해 간단하게 발현되었다.

    탑이 삼킨 모든 세계의 지식과 기술이 그의 것이었다.

    “태준이 형!”

    구우우!

    김지훈은 덜덜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며 외쳤다.

    김영훈의 보조가 있었음에도 이 정도 상태였다.

    그러나 맞추기만 한다면 상황은 달라 질 수도 있었다.

    수납했던 마법들의 방출이 이루어지려는 찰나.

    “모든 마법이 그 속에서 뒤섞여 졌을테니 맞출 수만 있다면 굉장하겠군.”

    탑의 의지가 김지훈의 뒤로 이동했다.

    콰아아아!

    김지훈이 담아 두었던 모든 마법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극심한 반동으로 김지훈이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는 것.

    탑의 의지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쉽지만 몇 달 동안 싸울 상대는 너희가 아니다. 이진영이지.”

    탑의 의지의 검이 휘둘러졌다.

    콰악!

    깔끔하게 잘리는 소리가 아닌 무언가가 둔탁하게 막아선 느낌이었다.

    탑의 의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주오령이 맨 팔로 검을 막아냈다. 살은 뚫었지만 뼈는 그대로였다.

    “아니지 상대할 건 나다.”

    그의 눈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괜찮나요? 정신이 드나요?”

    스킬의 반동 때문에 정신을 잃었던 김지훈이 힙겹게 일어났다. 김지훈의 눈 앞에 있는 것은 김영훈이었지만 김영훈이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몸에 강림 시킨 ‘이름 없는 신’이었다.

    “네, 듭니다. 아!”

    아직 탑의 의지가 쓰러지지 않았다. 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주오령이 보였다. 그리고 김지훈의 바로 앞에 죽은 듯 쓰러져 있는 염태준.

    “설마···.”

    “아뇨,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싸우기는 힘들 것 같군요.”

    이 싸움은 단순한 인간 대 인간이 싸움이 아니었다. 인간을 뛰어넘은 형언하기 힘든 초인들의 싸움이었다. 신체가 잘렸다고해서 진 것이 아니며, 반대로 멀쩡하다고해서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상태가 안좋은 것은 김지훈도 마찬가지였다.

    털썩.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제 치유 능력으로 회복은 시켰지만 영혼에 새겨진 상처는 쉽사리 낫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쩌죠?”

    김지훈이 힙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주오령이 힘겹게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도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그저 조금만 더 버티면 됩니다. 진영군이 올 때까지만···.”

    콰아아앙!

    탑의 의지의 공격에 밀려난 주오령이 바닥을 굴러, 일행이 있는 곳까지 날아왔다. 그의 온 몸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탑이 세워지고 너희만한 적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지.”

    탑의 의지의 뒤편으로 황금빛 마법진이 무한하게 새겨지기 시작했다. 마법진들은 바닥과 모든 공간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세계를 합친 것만큼이나 강할 수는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주오령은 계속해서 움직이려고 발버둥 쳤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꿈틀 거리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애초에 승부는 정해져 있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고. 이미 너희 세계는 탑에 먹혔으니까.”

    “!”

    그가 내뱉은 것은 비웃음이었다.

    공략대가 출발하기 전부터 탑은 세계를 더욱 빠르게 잡아 먹고 있었다.

    이제 이진영이 이곳에 도착한다 한들, 세계를 구할 방법은 없다.

    시련, 마수, 플레이어, 관리자, 초월자.

    그 모든 것은 탑의 의지 아래에서 이뤄지는 소꿉 놀이에 불과했다. 이미 거듭하며 수 많은 세계를 삼켜온 그에게 있어 하나의 세계가 가지는 의미는 고작 그 정도였다.

    “그럼 너희들을 처리하고, 이진영을 맞이할까.”

    빛이 번쩍이며 마법이 공간을 뒤흔드는 그 순간이었다.

    파앗.

    모든 마법이 일제히 사라졌다. 황금빛으로 가득 물들었던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

    찌지지직!

    하얀 공간 위로 검붉은 균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공간이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은 섬뜩한 광경이었지만, 탑의 의지를 제외한 일행의 얼굴에는 희색이 감돌았다.

    뚝, 뚝.

    이윽고 공간을 뚫고, 익숙한 얼굴의 남자 하나가 나왔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손에 든 이진영이었다.

    탑의 의지가 당황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뚫었지? 분명히 막아두었는데···. 이미 99층도 붕괴해서 내가 열어주지 않는 이상 네가 들어올 공간은 절대로 없었을텐데.”

    진영은 고개를 들어 탑의 의지를 바라보았다.

    “아스리엘이 불더군. 초월력으로 99층을 다시 재건하면 된다고.”

    진영의 오른손에 쥔 검을 역수로 고쳐 잡았다.

    “다들 날 기다리느라 고생했어. 이제 쉬고 있어.”

    [ 모든 이계의 존재들이 이진영을 주시합니다. ]

    [ 멸망의 탑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를 진영으로 간주합니다. ]

    이진영이 왼손이 차례대로 일행을 훑었다.

    김지훈에게 손이 향했을 때, 새하얀 공간이 우주의 한 공간으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염태준에게 손이 향했을 때, 파편이 되어 흩날렸던 모든 아이템이 모습을 되찾았다.

    김영훈에게 손이 향했을 때, 무너졌던 세계가 천천히 복구 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주오령에게 손이 향했을 때.

    “이 빌어먹을 공략을 끝내 보자.”

    진영의 눈에서 홍염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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