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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48화 (148/152)

100층(1)

콰과과!

99층 최후의 보스는 최선을 다해 공략대원들을 막아섰다.

[ 시스템이 플레이어들을 구속합니다. ]

[ 최후의 시험이 시작 됩니다. ]

온 몸에 철갑을 두른 거대한 타이탄이 두 눈을 뜬 채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의 아래로 파도처럼 몰려오는 새끼 드래곤 헤츨링들.

“모두 왼쪽으로 모여라! 꾸물거리다간 다 죽는다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화염 탄환 속에서 유자벨이 소리쳤다. 그의 지시에 따라 공략대가 움직였다. 지나간 자리에는 모든 것을 단숨에 녹이는 불 세례가 쏟아졌다.

“타이탄이 마력 미사일을 뱉어낸다, 다들 엎드리거나 각자 알아서 방어해!”

“그게 무슨···!”

그러나 불평을 말할 시간은 없었다. 그 시간에 쏟아지는 미사일을 하나라도 제거 하는 게 이득이었으니까.

콰과과광!

난공불락. 지금껏 마주했던 어느층보다 거대한 벽이 느껴졌다. 타이탄의 부하들을 물리치고 본체에 직접 타격을 가할 수 있을까? 도무지 불가능해보였다.

그 때 김지훈, 김영훈, 염태준이 쏜살 같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뒤는 부탁드리겠습니다!”

“힘내십시오!”

“잘들 버티고 있으십쇼! 탑 공략은 바로 끝내줄테니까!”

뒤를 이어 달리는 주오령까지.

파지지직!

탑의 시스템이 그들이 지나가는 곳을 막으려는 듯 거센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눈이 붉그스름 해진 주오령이 한달음에 선두로 뛰어 올랐다.

헤츨링 군단도, 뒤에 숨어 있던 고위 악마들도 그들을 막진 못했다. 타이탄조차 송곳처럼 뚫고 나가는 수호자들과 주오령을 바라만 보아야했다.

‘그래, 부탁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할 뿐.’

그것이 공략대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들과 자신들에겐 이미 지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같이 몸을 던졌다는 것만큼은 같았다.

“자, 지금이 공격 타이밍이야! 타이탄 심장부의 붉은 공간을 향해 네 놈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갈겨라!”

유자벨이 소리쳤다. 이쯤되면 유자벨도 죽기 살기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차피 진영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저 그런 마수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종복 관계로 맺어진 계약.

덕분에 유자벨은 이진영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이진영···. 진짜 미친놈이다. 멸망의 탑 모든 것들을 불러 모은다 해도 지금 놈보다 강한 놈은 없을 거야.’

멸망의 탑이 공략되면 탑에 종속된 마수들은 어떻게 되는가? 모른다. 더 이상 관심도 없었다. 어차피 한 번 죽은 목숨이었다. 때문에 그는 그저 자신의 주인이 탑의 정점에 올랐음에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남은 것은 주인의 뜻에 따라 99층을 공략하는 것 뿐.

“다들 정신차려! 힘 좀 내라고!”

한편 수호자들은 시스템의 방해를 넘어 99층 뒤쪽의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기이한 마력이 감도는, 거대하면서도 화려한 장식들로 치장된 문.

“드디어 도착했네요.”

“그래···. 여길 넘어가서 이진영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100층을 향하는 문이었다. 주오령이 관리자의 열쇠를 꺼내들었다.

회귀 전 이진영은 열쇠를 빌미로 신화준에게 죽임을 당했다. 도둑 클래스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몰려 제대로 된 항변조차 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잡았을 때, 진영은 노력하고자 했다.

클래스가 꺼림직하다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일이 없도록.

그 원흉이었던 다크 스컬은 진영의 손에 궤멸되었고, 더 이상 플레이어들이 차별 받는 일은 없다.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자들을 동료로 만들자고 했다.

그 결과, 주오령의 손에 관리자의 열쇠가 들려 있게 되었다.

“그럼 올라 가겠다.”

철컥.

과거 99층을 올라가기 위해 필요했던 보스의 열쇠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붉은 보석이 박힌 관리자의 열쇠가 100층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 * *

[ 축하드립니다. ]

가장 먼저 일행을 반긴 것은 축하한다는 메시지였다.

[ 멸망의 탑 100층에 도달하셨습니다. ]

동시에 그들이 마주한 것은 새하얀 공간이었다. 풀도, 나무도, 건물도 없다. 그저 무한하게 새하얀 공간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 더 이상 시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 더 이상 오를 수 있는 플로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아무것도···. 없네요.”

주변을 둘러 보던 김지훈이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미지의 세계다. 진영이 합류하는 것을 기다리는 일 밖에는 남지 않았다.

“이진영 그 놈···. 이겼겠지?”

초월자들과의 싸움에서 졌다면, 이진영은 이곳에 오지 못한다. 그럴 경우 주오령과 수호자들이 직접 100층을 공략해야했다.

“진영씨 말에 따르면,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하던데요.”

김영훈은 집중을 유지한채 팀원들에게 버프를 걸어주었다. 모두가 긴장한 채 숨을 죽이고 있는 그 때였다.

팅!

[ 초월의 좌에 오르시겠습니까? ]

Y / N

정보창 하나가 떠올랐다.

일행은 알고 있었다. 멸망의 탑이 제시하는 초월의 좌란 한 없이 추악하다. 다른 세계를 파괴하여 양분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자리에 불과하다.

멸망의 탑이 제시하는 마지막 회유책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생과 권능, 제한적이지만 전지전능한 능력까지. 그것을 얻고 싶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웃기고 있군.”

받아들일 거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묵묵히 진영을 기다렸다.

저벅, 저벅.

“!”

새하얀 공간으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장애물로 가려져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남자가 지척까지 다가오기 전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넌 누구냐?”

염태준이 미간을 좁힌 채 물었다. 이진영이 말한 ‘무언가’가 바로 저 녀석인건가?

“난 탑의 의지야.”

무언가가 대답했다.

그의 외양을 살피는 건 대단히 어려웠다. 어린 아이, 남자, 여자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며, 엘프이자 오크, 오크이자 마족 혹은 인간 같기도 했다.

애매한 생김새인 것이 아닌, 애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모든 세계의 인종이 섞여 있는 듯한 그의 형체는 일정하지가 않았다.

녀석이 말을 이었다.

“내가 바로 멸망의 탑이자, 너희들이 공략하고자 하는 원흉 그 자체이지.”

그 말에 모두가 바로 무기를 들어 올렸다.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

살기를 내뿜는 일행 앞에서도 탑의 의지는 태연했다. 오히려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도달한 너희들에게 칭찬의 박수를 선사하지. 근데, 너희들이 오를 수 있는 건 여기가 끝이야. 이제 더 이상 시련도 보상도 존재하지 않아. 어쩔거지?”

“당연한 걸 묻고 있군.”

눈이 붉어진 주오령이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가 탑의 의지를 향해 고개를 들이댔다.

“네 놈을 죽이고, 탑을 완전히 공략한다.”

“그런가.”

탑의 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거 하나는 알아둬야 할 거야. 멸망의 탑이 생겨나고 수 없이 많은 세월이 흘렀어. 그 시간에 비하면 네 놈들은 먼지나 티끌 따위에 불과할 정도야. 그 시간 동안 100층에 올라 온 자가 아무도 없었을까? 그럴리가.”

콰득!

탑의 의지가 돌연 손을 뻗어 주오령을 밀어냈다.

가벼운 동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주오령이 밀려났다. 바로 공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그의 팔 한쪽이 완전히 부러져 있었다.

“······!”

탑의 의지가 그런 일행을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이길 리가 없지. 멸망의 탑은 공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애초부터 내가 만든 시스템이고 규율인데, 그 시스템에 의존하는 너희들이 날 쓰러뜨린다는 건 말도 안되지.”

뚝, 뚝···.

주오령의 팔에서 떨어지는 피가 새하얀 바닥을 적셨다.

“너희들은 꽤나 빠르게 탑을 공략한 듯하지만 그건 네 놈들이 자초한 실수다. 탑이 모두 붕괴되면 세계는 자연스럽게 탑 안으로 들어 오게 된다.”

“어째서···.”

김지훈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어째서 이런 짓을 반복하는거야.”

공허 속에서 김지훈이 보았던 세계. 증기와 기계 장치들이 존재하는 그곳은 탑에 의해 멸망하는 게 확정된 세계였다. 이미 존재하지 않을 그곳. 그러나 그곳의 사람들 또한 분명히 살아 있었다.

멸망의 탑은 그런 세계를 먹어치운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다른 세계를 집어 삼키기 위해 움직인다.

“글쎄, 너는 식사를 왜 하지? 잠은 왜 취하는거야? 그런 당연한 걸 물으면 나로서는 해줄 대답이 없어.”

탑의 의지가 천천히 일행을 압박하며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의 이야기는 무의미하겠어. 그럼 이제 죽···크헉!”

그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리려는 찰나였다. 주오령의 주먹이 녀석의 배에 정확히 꽂혔다. 녀석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투콰앙!

다시 한 번 주오령의 주먹이 휘둘러졌고, 탑의 의지가 형편 없이 바닥을 굴렀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진한 핏자국이 길처럼 남았다.

“쿨럭···.”

기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탑의 의지가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입가에 맺힌 피를 스윽 닦아내며 말했다.

“아, 그랬었지. 네 놈들은 이계 존재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지.”

탑의 의지는 과거에 이곳까지 올라 온 자들을 떠올렸다. 시스템을 통해 성장하고, 막강한 힘을 손에 넣은 그들은 자신의 앞에서 한 없이 무너졌었다.

시스템이 제공하는 능력치, 스킬, 특성···. 이 모든 것은 탑이 만들어낸 기적이었으니까.

그러나 눈 앞의 적들은 달랐다. 시스템이 표시하고는 있지만, 놈들은 그걸 자신의 힘으로 만들었다. 이미 사라진, 어쩌면 아직 탑이 도달하지 않았을 다른 세계의 힘이었다.

탑의 의지가 미소를 지었다.

“멸망의 탑이 왜 시작부터 바로 세계를 집어 삼키지 않는 줄 아나? 시작부터 초월자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세상을 불바다로 만든다면 그것만큼 쉬운 일도 없을텐데 말이야.”

일행의 대답은 없었으나, 탑의 의지는 말을 이어갔다.

“유흥이다. 그저 유흥. 네 놈들이 살고자 발악하는 그 모든 게 유흥에 불과하단 말이지. 나는 그걸 관장하는 신의 역에 위치한 거고.”

뿌드득.

그의 몸에 새겨진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방금 네 놈들은 그 영역을 침범한거다.”

순식간에 그의 등 뒤로 황금빛 마법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수 십, 수 백을 넘어 수 천에 달하는 대규모 마법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의 근원은 그가 삼킨 세계에 있으리라.

저벅.

그러나 그 위세에 지지 않고 주오령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어쩌라는건지 모르겠군. 결국 네 놈도 탑의 마수잖나.”

주오령의 두 눈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수호자들도 그 옆에 나란히 섰다.

각자가 지닌 보물이 새하얗게 빛을 내고 있었다.

[ 모든 이계의 존재가 당신들을 주시합니다. ]

세계를 잃어 버리고 떠돌던 이계의 존재들. 그들 또한 최후의 결전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이 쉽지 않은 싸움이 되리란 것도.

“아니지, 나는 마수가 아니라 세계다.”

황금빛을 내는 마법진 하나 하나에 담긴 마법은 행성 하나를 절멸시킬 수 있는 대행성 마법이었다.

지금껏 마주한 상대들과는 차원 자체가 달랐다.

이길 수 있느냐가 아니라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그러나 일행은 물러서지 않았다.

김지훈은 배낭을 열었고, 김영훈은 모두에게 빛의 마법을 걸어 주었다. 염태준은 자신이 가진 무기를 모두 꺼내어 공중에 띄웠다.

눈이 붉게 변한 주오령이 무심하게 탑의 의지를 바라보았다.

고오오···.

근처의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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