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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46화 (146/152)

최후의 공략(2)

마력으로 이뤄진 포탄 세례가 하늘을 가득 수 놓았다. 때아닌 성대한 불꽃 놀이에 공허룡에 탄 공략대가 잔뜩 긴장했다.

“대체 이만한 마수들이 어디에서 나타난거야?”

“이야기할 때가 아닙니다, 왼쪽부터 봐주세요!”

콰앙!

날아 오는 거대한 마력탄을 엘레멘탈 마스터 조나단이 불꽃 마법으로 대항했다.

“막기는 막았는데 이대로 가는 거 맞습니까?”

공허룡을 둘러 싼 마수들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멸망의 탑이 어딘지도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 크어어!

- 크오오!

마수들의 괴성과 마력이 끊임 없이 터져나왔다. 마수 무리는 공략대를 포위하듯 둘러 싸기 시작했다. 이윽고 공허룡이 빠져나갈 구멍조차 사라졌다.

헌터들의 얼굴에 절망적인 기색이 서렸다. 지상이었다면 제대로 된 대응이라도 해봤을 것인데, 공허룡의 위에서는 무게 중심을 잡는 게 고작이었다.

“이런···.”

“시작조차 못하고 끝나는 건가?’

진영이 소리친 것은 그때였다.

“조나단, 가고일들이 뭉쳐있는 부분을 향해서 마법을 사용해주세요!”

“어, 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조나단 그는 일류 헌터였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고, 그의 다속성 마법이 솟구쳤다. 불, 물, 바람, 땅. 네 갈래의 빛 줄기가 가고일들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돼, 됐다!”

한순간 마수 무리의 전열에 공백이 생기며 미세한 틈이 생겼다.

“지훈아, 지금이야!”

“네, 형!”

여태까지 쏟아지던 마력 탄환을 ‘수납’ 스킬로 인벤토리에 저장하고 있던 김지훈이 신호에 맞춰 배낭을 열었다. 배낭을 뚫고 나온 것은 흉포한 마력의 괴물이었다.

콰아아아!

갖가지 마력들이 이리저리 뒤섞여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한 괴물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며 조나단이 열었던 조그마한 틈을 거대한 구멍을 뒤바꿔놓았다.

새까맣게 타서 그슬린 마수들이 빗줄기처럼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공허룡이 통과할 수 있을만큼의 공간이 생겼다.

“모두 꽉 붙잡으세요!”

공허룡이 뼈로 이뤄진 날개를 접고 유일한 탈출구를 향해 급속도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투두두두!

초월자가 조종하는 비행선 수 십 대가 뒤쪽으로 따라 붙으며 마력탄을 쏟아부었다. 공허룡은 몸을 반바퀴 틀어 날아오는 탄환을 모두 피해냈다.

투콰아!

다시 스물스물 줄어들고 있던 구멍을 박살내며 공허룡이 마수 무리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멸망의 탑이 보인다!”

“후우, 이게 겨우 시작이라니.”

공허룡 자체의 힘만으로는 어려웠을 돌파를, 빛의 사제 김영훈의 보조 마법 덕에 훌륭하게 해냈다. 그러나 새까만 벌떼처럼 무리지은 초월자의 공중 군단이 계속해서 공략대의 뒤를 쫓고 있었다.

“저 놈들 뭔가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무리가 갈라지며, 뒤쪽에서 거대한 함선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분명 바다 위에 있어야 할 배였으나 각종 마법에 의해 하늘을 부유하고 있었다.

시뻘건 핏줄이 함선의 겉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쿠우우우···.

그 가운데로 위치한 함포에 막대한 에너지가 모여들고 있었다.

“저건 못 막아요!”

다급한 지훈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한계치까지 충전된 함포의 마력이 발사 되었다.

단순한 마력의 덩어리가 아니었다. 초월력을 사용해 만들어진, 물리적인 법칙을 뒤흔드는 위력의 공격이었다.

하늘이 마력으로 붉게 물들 때, 진영이 그 앞으로 뛰어 들었다.

“나머지는 공략대에게 맡기겠습니다!”

진영의 명령에 따라 공허룡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멸망의 탑을 향해 전속력으로 비상했다. 결사대는 굳은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진영을 바라보았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광멸자 요자도르를 상대하는 진영의 힘을 보았기에 그들은 진영의 선택에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멸망의 탑을 공략하는 것 뿐.

스으으!

진영의 손에 쥐어진 창세급 단검 ‘룰 브레이커’가 검은 연기를 흘리기 시작했다. 단검을 쥔 채로 공중으로 뛰어든 진영이 초월력으로 이뤄진 마력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

진영이 그 중심부로 뛰어든 순간이었다.

[ 다수 대상의 마음을 ‘룰 오버’로 훔쳐냈습니다. ]

[ 다수의 마수가 당신의 명령에 따릅니다. ]

질서정연했던 마수들의 군대가 기형적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공허룡을 타면서 훔쳐낸 마수들이 내부에서부터 적을 제거하고 있었다.

모든 게 진영의 의도대로였다.

* * *

쿠우웅!

공허룡은 멸망의 탑에 부딪히듯 추락했다.

“바로 들어갑시다.”

염태준이 앞장서며 고개를 까닥였다.

콰아아아!

아래쪽에서 강렬한 마력의 광풍이 불어왔다. 굳이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그것이 마수들과 초월자들을 상대로 진영이 혼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희 목적은 어디까지나 탑의 공략입니다. 이진영이 초월자들을 막는동안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해요.”

본디 초월자들은 탑의 공략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 진영이 회귀하기 전 같았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보물을 소지한 일행의 능력은 압도적인 것을 넘어 초월적이기까지 하다.

자연스레 불안감을 느끼는 초월자도 있기 마련.

그들이 플레이어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이진영의 말대로라면 저희의 실력이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진영은 완전하게 변수를 제거하고자 했다. 초월자들 또한 진영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었으니 잘 된 일이었다. 남은 건 공략대가 99층 너머까지 탑을 공략해내는 것 뿐.

[ 멸망의 탑 74층에 입장했습니다. ]

“드디어 시작이군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공략대 모두가 서로와 눈빛을 교환하며 각오를 다졌다.

공략대의 각오도 어지간한 것이 아니었다.

죽음도 불사르고, 세상을 구해야한다고 여기는 자들만이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리더는 누가 맡지? 자세한 건 도착하고 알려준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도 궁금하군.”

맥 실버의 물음에 대답한 건 염태준이었다.

“초월자들 중에 예지 능력을 가진 자가 있을까 그랬던 거였죠. 아, 그리고 지금부터 리더는 저 놈입니다.”

염태준이 엄지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키자 공략대의 시선도 모두 그 쪽으로 향했다.

“저 사람은···.”

기이한 기운을 풍기는 사내 주오령이 서 있었다.

“잘 부탁하지.”

그가 리더라는 말에 반박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래도 좋다는 반응도 아니었다. 탑 공략에 있어 제대로 된 리더의 유무는 각 플레이어의 생명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그들이 반박하지 못한 것은, 주오령이 내뿜는 격 앞에 공략대 모두가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오령은 특유의 맹수 같은 눈빛과 함께 공략대를 향해 말했다.

“오늘부터 3일 안에 99층 안에 오른다.”

그 말에 수호자들을 제외한 공략대 전원의 얼굴에 물음표가 새겨졌다.

“3일? 지금 3일이라고 했습니까?”

“그게 가능한가요?”

1층부터 15층까지 공략되는데 약 1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이 자리에 위치한 플레이어들은 직접 공략의 최전선에 서 있었기에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탑을 오른다는 것은,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손으로 더듬어 바늘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는 걸.

그런데 3일? 30일이어도 믿을까 말까한데 3일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인지.

스윽.

주오령은 깊이 설명하는 대신 바지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이건 관리자의 열쇠다.”

“관리자의 열쇠···?”

설명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략대의 의아한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주오령은 왼손 엄지를 까득 깨물었다.

미량의 피가 나오며, 서서히 주오령의 눈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 체력이 100% 미만이 되셨습니다. 특성 광폭화가 발동됩니다. ]

[ 각성 : 모든 능력치가 4단계 상승합니다. ]

공허에서 빠져나오며 새로운 힘을 얻은 것은 이진영 뿐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능력치가 초월자 이상으로 상승한 주오령은 더 이상 평범한 플레이어가 아니다.

[ 초월의 좌가 더 이상 당신의 능력을 가늠하지 못합니다. ]

철컥.

그러자 이진영에게서 건네 받은 관리자의 열쇠가 부드럽게 돌아갔다.

허공에 꽃아 넣은 관리자의 열쇠가 빛과 함께 투명한 문을 만들어냈다.

“그럼 이제 출발하지.”

[ 이제 다음 층으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

말도 안되는, 이해도 가지 않는 광경에 공략대는 그저 멍하니 주오령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들 뭐해요? 빨리 갑시다!"

그들을 염태준이 재촉했다.

* * *

【 이 놈! 감히 초월자를 능멸하려 들어! 】

【 분수를 모르는 녀석이구나. 네 놈은 어째서 멸망의 탑을 어지럽히고, 초월의 좌를 더럽히는가? 】

각각 붉은 날개와 검은 날개를 가진 두 명의 초월자가 진영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의 진언으로 대기가 쩌렁쩌렁 울렸지만, 진영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그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들의 격은 진영의 것에 비할 바가 되지 않았다.

핏줄이 맥동하는 군함 위.

진영이 차가운 눈빛으로 두 명의 초월자를 바라보았다.

“아스리엘은 어디에 있지?”

진영의 발언은 그야말로 눈 앞의 두 초월자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 윽······. 】

그럼에도 초월자 발락과 율트는 진영에게 달려들 수 없었다.

진영의 뒤를 까맣게 메우고 있는 마수 군단. 다양한 세계에서 만들어진 공중 병기들까지.

한 때는 자신의 군대였지만, 이제는 진영의 것이었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위압감 앞에서 둘은 감히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된거지? 아스리엘이 분명히 손쉽게 끝날 거라고 했는데.’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게 틀림 없다.’

공중전에 대규모 병력과 초월력을 제공한 두 초월자 이마에는 평생 흘릴 일 없을 줄 알았던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스리엘은 장담했다.

자신의 가호가 있다면 이진영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의 특기인 ‘스틸’은 발휘 될 수 없다고. 능력치도, 군대도 빼앗길 일은 전혀 없으니 초월력이나 제공하라는 게 그의 제안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이진영은 군대를 몽땅 빼앗기다 못해, 그 능력치를 모조리 흡수하지 않았는가.

“다시 묻지, 아스리엘은 어디에 있나?”

진영의 승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의 가호는 진영의 룰 브레이커에 의해 파훼되었다.

그것도 공허 속에서 진작에.

두 번째라고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초월자 발락이 노성을 뱉어냈다.

【 감히! 본좌를 상대로 협박 따위를 해? 그 대가는 똑똑히 치르게 해주겠다! 】

함부로 진영에게 덤비지는 못해도 그는 알고 있었다.

진영은 몰라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던 전쟁.

공중전에 특화된 군대를 거느리고 있던 발락과 율트가 먼저 나섰지만, 그렇다고해서 다른 초월자들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승리는 정해져 있었다. 이제 멸망의 탑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초월자들이 한 자리에 모일 것이다.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쿠우우!

거대한 초월력이 소용돌이치며 초월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세에 몰린 두 초월자를 감싸며 이진영을 향해 비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이진영이라는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만들어낸 흙탕물의 파장은 컸다.

그의 행동은 초월자들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기엔 충분하고도 넘쳤다.

그들이 재밌는 구경이라도 난 듯 이진영의 최후를 만들어내기 위해 모였다.

【 그렇고 말고, 플레이어 이진영. 자네는 너무 설쳤어. 그만한 힘을 얻었다면 초월의 좌에 올라 영생과 풍요를 누렸어야지. 아쉽지만 이제 기회는 없다네. 】

【 하하! 맺고 끊음을 모르는 멍청이만큼 추한 것도 없지! 】

【 멸망의 탑의 생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여. 그대의 무덤은 여기다. 】

그들 하나 하나가 가진 역사와 힘의 깊이는 지대했다.

구시대의 영웅, 잊혀진 세계의 신, 한때 하나의 세상을 모두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던 전설적인 왕···.

일 백에 이르는 그들은 모두 한때 세계의 구세주였으며 신화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오랜 과거의 일에 불과했다.

그저 살아남아 다른 세계의 존재들을 억누르고 짓밟으며 그들의 피와 마력을 취해 양분으로 삶는 것이 초월자란 자들의 실체였다.

【 보잘 것 없는 플레이어여, 항복하라. 얌전히 우리의 종이 되어라. 】

밝았던 하늘이 단숨에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히고 있었다.

초월자들의 흉흉한 눈빛이 진영을 향했다.

그들의 힘이라면 세상 하나 쯤은 간단하게 뒤엎고도 남는다.

초월자들의 면면을 하나씩 살피던 진영이 말했다.

“아스리엘은 없군.”

【 허. 】

【 끝까지 자존심을 부리는군! 】

아스리엘이 없다.

아직 초월자들이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녀석들은 아직까지 자신들이 우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 백의 초월자와 플레이어 하나.

그리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다. 지금 상태라면 그렇게 느껴질만도 했으니까.

그렇다면.

고오오-.

품 속에서 그것을 꺼내드는 진영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강대한 힘이 손 안으로 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기고만장 해 있던 초월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내가 지금 잘못 보고 있는 건가? 】

【 설마, 저게 진짜일 리가 없다. 아스리엘은 건재하니, 그저 외관이 비슷한 무언가에 불과하다. 】

【 그렇다면 어째서 강대한 초월력이 이진영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거지? 】

경악하면서도 그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섣불리 움직이면 돌이킬 수 없었기에. 진영의 손에 들린 것이 무언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붉은 왕관.

초월자의 정점을 상징하는 증표.

공허 속의 아스리엘을 처치하고 손에 넣은 증표는 공허 바깥에서도 실재로써 기능하고 있었다.

처억.

진영이 두 손으로 붉은 왕관을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렸다.

파아아-!

새까맣게 어두웠던 하늘이 다시 빛을 되찾은 것은 그 탓이었다.

[ 창세급 유일 아이템 ‘붉은 왕관’을 착용하셨습니다. ]

[ 멸망의 탑이 당신을 초월자의 정점으로 인정합니다. ]

[ 이제 모든 초월자들이 당신의 행동과 말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

진영이 고개를 들어 초월자들을 바라보았다.

수 만년의 세월을 거뜬히 살아 온 그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멍청하게까지 보이는 그들의 얼굴. 그것은 새로운 깨달음의 증거이기도 했다.

초월자들은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 더 이상 멸망의 탑이 당신의 능력치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

[ 측정 불가 : 논외(論外) ]

눈 앞의 존재는 그저 플레이어 따위가 아니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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