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공략(1)
전 세계 뉴스가 멸망의 탑 공략대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 최후의 공략대, 10인은 누가 될 것인가?
- 멸망의 탑의 전설, 이진영 돌아오다.
- 미국을 대표하는 헌터 리암 ‘인류의 마지막 도전 될 것’
- 최후의 희망은 누구?
인터넷 뉴스부터 시작해, 테레비 언론까지 모든 이슈가 공략대에 관한 것으로 채워졌다.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마수가 출몰하는 세계에서 살 수 없다. 인류는 충분히 잘 막아내고 있었으나 따지고보면 막아내고 있을 따름이었다.
마수가 등장한 지역은 대개 황폐화 되었고, 재건이 되더라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넘쳤다.
‘마수들이 있는 한, 인류의 발전은 어렵다.’
일반인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수에게 목숨을 잃은 자들과 재산상의 피해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의 원흉은 멸망의 탑.
언젠가는 공략되어야 할 곳이란 걸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환호했다.
- 드디어 멸망의 탑이 공략되는구나.
- 제 딸아이와 아내의 원수를 갚아주세요.
- 마수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간지 세 달째입니다. 제발, 이 고통을 끝내주길.
- 응원합니다. 파이팅!
뉴스 댓글에 수 많은 응원 댓글이 달렸다.
멸망의 탑 공략은 개인의 소망이 아닌 인류의 숙원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공략대에 대한 관심 또한 커졌다.
- 누가 선정되려나.
- 대한민국 수호자 세 명은 무조건 들어가야지ㅋㅋ
- 그러면 우리나라는 누가 지킴?
- 일단 한국에서는 폭군왕도 갈만함.
- 아니, 이진영이 무조건이지. 영상 못 봄?
얼마 전 SSS급 위험지역에서 초월자를 상대로 보여줬던 진영의 활약은 동영상 사이트에서 실시간 1위를 기록하며 최고 인기 동영상에 등극해 있었다.
초월자의 군대를 순식간에 장악해, 쉴틈 없이 몰아치는 그의 모습은 세계인의 눈에 각인되기 충분했다.
- 이진영 공략대로 안뽑히면 조작임.
- 뽑는 건 리암 마음대로라던데?
- 그니까 안뽑히면 리암이 사기치는 거라고.
- 그래도 무조건 들어가야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망의 최후의 공략대 10인의 목록이 발표되었다. 대예언가 리암이 기자회견장에서 직접 열 명의 대상자를 발표했다.
“전세계인의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헌터들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서 최후의 공략대를 발표하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방송되는 기자회견. 한밤중인 나라도 적지 않았으나 각국의 시청률은 압도적이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쉴틈 없이 터지는 가운데 리암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리암은 이번 공략이 실패한다면 그 뒤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공략대원으로서 적절한 인물을 찾는 게 필수적이었다. 진심으로 인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칠 용의가 있는 자가 아니면 곤란했다.
“미국 맥 실버.”
여기에 있는 대상자들은 모두 리암이 자신의 예언 능력으로 검증을 거친 헌터들이었다.
“일본 미야자키 아이.”
동시에 진영의 주도하에 신중하게 고른 인물들.
이들은 회귀 전에도 멸망의 탑을 공략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이다.
회귀와 예언 그렇게 이중검증이 이뤄진 공략대에 변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 염태준. 그럼 이것으로 최후의 공략대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그 발언을 끝으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기자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었다.
“질문있습니다!”
“선정 기준에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뭔가 이상합니다만!”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던 인터넷상의 유저들의 채팅도 폭발하기 시작했다.
- ???
- 누가 없는데?
- 이진영 왜 안가?
- 뭐냐, 어이가 없네
기자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한국의 이진영 헌터가 공략대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요!”
다른 기자들의 질문에는 꿈쩍도 않던 리암이 기자의 질문에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자 모두가 숨죽여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이진영 헌터는 멸망의 탑에 존재하는 초월자들을 상대할 예정입니다.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공략대에 포함되지 않고 초월자들을 상대한다니?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장내가 크게 소란스러워졌다.
“그게 무슨 말이죠?”
“혼자 상대한단 말입니까?”
“초월자를 상대한다는 게 정확히 무슨 말입니까?”
달려드는 수 십의 기자들을 우락부락한 보디가드들이 막아섰다. 리암은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품 속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이후의 미래는 진영과 공략대에게 맡기는 수 밖에 없었다.
* * *
인류가 새로운 희망에 대한 이야기로 들썩일 때, 멸망의 탑에 위치한 초월자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무채색의 정원에 모이는 초월자들의 분위기는 이전과 달랐다.
【 요자도르가 자신의 군대를 모두 빼앗겼다는 게 사실이야? 】
【 하, 그 녀석은 원래부터 얼빠진 놈이었지. 】
【 자네도 웃기는군. 광멸자의 눈치를 슬슬 보던 게 누구더라? 】
【 멸망의 탑 공략과는 별개로, 이진영은 처리해야하지 않겠나? 】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으나 그들의 저변에는 두려움이란 감정이 낮게 깔려 있었다. 폭룡왕이야 경쟁에서 패배한 떨거지라쳐도 요자도르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몇 만 년을 멸망의 탑에 거주하며 거대한 초월력을 이룩한 강자였다.
【 다들 잡담은 거기까지하지. 】
웅성거림을 잠재운 것은 단 하나의 초월자였다.
초월신 아스리엘.
그의 머리에 씌워진 붉은 왕관이 특유의 빛으로 번들거렸다. 초월자들을 소집한 것은 그였다. 단합이 안되기로 유명한 초월자들이 지금 이 자리에 거진 다 모여있었다.
‘이진영이라는 플레이어가 그렇게 두려운가?’
속으론 혀를 차던 아스리엘이 입을 열었다.
【 부른건 다름이 아니라, 그대들이 걱정하는 이진영에 대해 논의하기 위함일세. 】
일전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던 초월자들이 아스리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들 중 멸망의 탑이 공략 될 거라 생각하는 자는 없었다.
그러나, 초월자로서의 생명이 다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위협이었다.
평생을 쌓아온 영생과 권능을 한 순간에 잃게 되는 것이니.
【 그대들도 알겠지만 이진영은 더 이상 단순한 플레이어가 아니지. 그가 훔쳐낼 수 있는 것은 이제 물질적인 것을 넘어섰어. 이대로 넋놓고 있다간 그대들은 목숨을 잃겠지. 】
아스리엘의 말은 한 없이 직설적이었다.
그러나 불만을 말하는 자는 없었다.
한낱 플레이어에게 초월력을 빼앗기고 초월의 좌에서 떠밀린다. 그 치욕스런 일을 당하고 싶은 초월자는 아무도 없었기에.
【 이미 요자도르의 군대를 가져간 그와 가벼운 전쟁을 해볼까 싶네. 물론 거기에 따르는 초월력은 그대들이 감내해야 할 것이야. 】
【 이봐, 아스리엘. 아무리 그래도 그건···. 】
아스리엘은 전쟁에 드는 모든 자원을 다른 초월자들에게 부담하고자 했다.
【 그래, 그건 너무 하지 않은가? 】
【 후, 둘 다 재밌는 말을 하는군. 요자도르가 당했네. 탑이 세계를 삼키며 그대들의 땅도 지상으로 추락할진데, 누가 그 땅을 지켜주지? 그대들이 하겠다는 말인가? 그대들이 이진영을? 】
【 ······. 】
아스리엘의 입가엔 경멸스런 미소가 어려있었다. 이진영은 초월자들의 손을 명백히 벗어났다. 그것은 폭룡왕이 쓰러졌을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공허 속에서 나오지 못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아스리엘에게 있어서는 비웃음만 나오는 문제였다. 고작 플레이어 따위가 자신에게 대들어 봤자인 것은 틀림 없었으니.
구우우···!
아스리엘이 허공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 하나를 꺼냈다. 그 모습에 주변의 초월자들이 침음을 흘렸다.
멸망의 탑의 시스템으로도 측정할 수 없는 힘.
측정 불가 : 논외(論外).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강대한 힘이 퍼져나오고 있었다.
초월자들도 몸서리칠만한 압도적인 초월력.
아스리엘은 차가운 눈빛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 동의하는 걸로 알지. 마침 제 발로 죽으러 오고 있으니 우리는 친절히 마중나가기만 하면 되겠군. 】
마침내 진영을 죽이기 위해 아스리엘을 중심으로한 모든 초월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최후의 공략대 집결 장소는 한국의 인천 공항.
대부분의 항공편이 안전상의 문제로 사라졌지만, 소수의 헌터를 위한 전용 항공편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들의 등장은 각자 남달랐다.
“아, 저기 보입니다!”
“히어로 맥 실버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전용기를 타고 온 맥 실버였다. 마초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가 선글라스를 올려쓰며 진영 일행이 있는 장소로 다가왔다.
“살아 있었군. 이렇게 다시 볼 줄이야. 이거 정말 반가워. 지난번엔 정말 고마웠네.”
수많은 취재진을 뚫고 진영을 향해 다가온 그가 손을 내밀었다. 진영은 미소와 함께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저도 다시 봐서 반갑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이번 공략에 참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예언가 리암이 세계적으로 공언했다. 이번 공략은 예언이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이라고.
즉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공략이다.
공략대에 참가하는 자들은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각 헌터의 참가는 헌신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후웅!
일행의 주변으로 가벼운 바람이 불었다. 때아닌 바람에 눈을 감았던 기자들이 눈을 뜨자 그 앞에는 일본 대표 미야자키 아이가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흑발을 길게 내린 그녀는 검을 집어 넣으며 어색한 한국말로 인사했다. 그녀의 클래스는 검성. 파티의 핵심 딜러 역을 맡기에 충분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어서 중국의 드래곤 워리어 클래스 장웨이, 영국의 엘레멘탈 마스터 클래스 조나단, 인도의 데미갓 클래스 쿠마르가 도착했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수호자 3명에 주오령을 더하면 총 9명이었다.
“마지막 한 명은···?”
이미 소집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도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아쉽게도 그녀에 대한 소식은 기자들을 통해서 전해졌다. 오기로 예정 되어 있던 러시아의 헌터의 사망 소식이었다.
“이런···.”
“······.”
시작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낙담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진영이 앞으로 나섰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공략은 이대로 9명이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멸망의 탑 내부에 플레이어를 도울 자가 있기도 하고요.”
그 말에 영국의 조나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멸망의 탑 내부에 아군이 있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이동하도록 하죠.”
진영이 도착이 늦어지면 초월자들의 행동이 바뀔 수도 있다. 그들의 목적이 진영이 아닌 지상이 되게 해서는 안되었다. 그들이 모든 문제는 이진영에게 있다고 생각할 때. 그들이 마음을 바꿔 인류를 없애기 전에 움직여야했다.
- !!!
갑작스런 괴성에 헌터들과 기자들이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뭐, 뭐야?”
“마, 마수인가?”
진영의 손짓에 나타난 공허룡이었다.
녀석은 괴성과 함께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그걸 모르는 기자들은 기겁하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동은 이 공허룡을 타고 할 겁니다.”
진영이 설명하자 자리에 있던 헌터들이 신기하다는 듯 탄성을 뱉었다.
멸망의 탑 하단부가 많이 붕괴되었기에, 하늘을 날지 않고서는 탑으로 다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아포칼립스 이후 탑과 외부가 단절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본 드래곤을 기르고 있다니. 테이밍 마스터 놈이 보면 놀라 자빠지겠군.”
“형 언제 이런 놈을 잡았어요?”
각자 한 마디씩하며 공허룡의 위로 올라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플래쉬 세례가 쏟아졌다. 기자들은 역사의 한 부분으로 기억될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콰아!
공허룡이 날아오르자 아래 쪽에서 거대한 플랜 카드를 든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그들의 공략 성공을 기원하고 있었다.
‘두 번은 없다.’
진영은 매 순간 필사적이었다.
절대 회귀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신화준처럼 안일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진영의 그런 다짐과 함께 공허룡이 빠르게 멸망의 탑을 향해 돌진했다.
구름에 가려져 있던 멸망의 탑이 드러남과 동시에 수상쩍은 기운이 나타났다.
“잠시만요, 뭔가가 다가오고 있어요!”
“저도 느껴집니다!”
“세상에···.”
멸망의 탑으로 들어가는 일행을 초월자들이 가만히 놔둘리 없었다.
탑으로 다가가자 구름 속에 숨어 있던 적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
거대한 비행선이 수 백 대가 증기를 내뿜으며 일행을 향해 마력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공허룡이 급선회와 함께 마력탄을 피해냈다. 미처 피하지 못한 것들은 김영훈의 실드가 훌륭하게 막아냈다.
하늘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거 멸망의 탑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겠구만!”
“아예 작정을 하고 막네.”
맥실버와 염태준이 기가 찬다는 듯 중얼거렸다.
천족, 악마족, 가고일 등등···.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하늘을 날 수 있는 존재가 어두워진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